[AU] 02 불편한 호의

 




한적한 햇빛이 기울어지는 카페테리아.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테이블에 앉고
샌드위치며 간식을 나눠먹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당신은 카페테리아 외곽에 앉아
챙겨온 과자 한 봉지를 가방에서 꺼냅니다.
툭, 봉지를 까고 도리토스를 입에 대충 넣어 씹고 있으면
학생회 구성원으로 보이는 인원들이 카페테리아 가운데를
슥 지나갑니다.
남들보다 키가 큰 릭사엘은 그 사이에서도
또렷하게 잘만 보이네요.
어제 있었던 일 때문인지.
점심을 때우면서도 힐끔힐끔 시선이 갑니다.
유스텐:(과자를 하나씩 집어먹으며 릭사엘 쪽으로 곁눈질을 한다) '대체 뭘 보고 좋아한다는 건지... 아니면 뭐, 잘 나가는 애들끼리 내기라도 한 건가? "누구 유스텐한테 고백해볼 사람?" 하면서.' (어제 들은 말을 곱씹을수록 자꾸만 안 좋은 생각이 들어 얼굴에 그늘이 진다) ... '애초에 말이 안 되잖아. 릭사엘 같은 사람이 게이인 것도, 주변에 예쁘고 부유한 애들 냅두고 굳이 내가 좋다는 것도...'
당신이 그렇게 온갖 생각을 하다 고개를 들면
탁, 가운데를 스쳐가던 릭사엘과 눈이 마주칩니다.
방금 전까지 릭사엘에 관한 생각을 해서인지
짧게 숨이 턱 막히고 머릿속이 멈춥니다.
그러나 릭사엘은 당신의 자리와 당신이 먹던 과자 봉지를 보고는
다시 슬며시 고개를 돌리네요.
유스텐:뭐야... '내 도시락 보고 지금 저러는 건가?'
(평소와 같은 식사일 뿐인데 네 시선을 의식해서일까. 오늘만큼은 이 과자 봉지가 부끄럽게 느껴진다.) '불편해...' (과자 봉지를 묶어 가방에 다시 넣고 카페테리아를 빠져나온다)
점심 시간이 남아 있지만
다른 학생들과 교류를 하는 것도 아닌지라
자유 시간은 적적합니다.
당신은 카페테리아를 빠져나와 학교 정원에 있는 벤치에 앉고는
등받이에 나른하게 등을 기댑니다.
어젯밤 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서인지
나른한 햇살에 취한 몸이 조금 졸음을 꺼내옵니다.
유스텐:(손등으로 눈을 가려 눈부신 햇살을 피한 채 고개를 뒤로 젖힌다) '피곤해... 어차피 이 시간에 사람도 잘 안 다니니까 조금만 자야겠다.'
홀로 이방인인 채로 남아 있는 곳인데도
졸음은 어쩜 이리도 솔직한지.
눈을 감아내리자 몸이 푹 꺼지는 듯한 기분과 함께
아득하게 정신이 멍해집니다.
어차피 수업이 시작할 때엔 종이 울릴 테니
잠에서는 깨어날 수 있겠죠.
.
.
.
그렇게 얼마나 졸았을까.
불현듯 기다린 그림자가 당신의 위를 덮더니
작은 인기척을 남기고 도로 사라집니다.
꿈뻑, 꿈뻑...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아무도 없는 정원 안을 바라보다가
소지품이 사라지기라도 한 게 아닐까 급히 주머니를 뒤져보면
다행히 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네요.
유스텐:
관찰력
기준치:55/27/11
굴림:10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당신이 앉은 벤치 옆 자리에
작은 플라스틱 도시락 통이 놓여 있습니다.
...누가 실수로 두고 갔나?
통 위에는 작게 접힌 종이가 놓여 있네요.
...남의 것인지라 읽어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은 들지만
그래도 주인이 누군지는 알아야 돌려주겠지, 란 생각에 종이를 펼쳐보면
안에는 "먹어." 라는 말만 적혀 있습니다.
유스텐:...?
뒷면에는 "유스텐"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유스텐:'...이런 짓을 할 사람이 지금 딱 한 사람밖에 안 떠오르는걸'
'이런 호의는 부담스러운데. ...일단 뭔지 열어나 볼까?' (도시락 뚜껑을 열어본다)
도시락 통을 열어보면 안에는
식빵 사이에 에그 샐러드와 아보카도 슬라이스를 끼워넣어 만든
간단한 샌드위치와 멸균 팩에 담긴 초콜릿 우유가 들어 있습니다.
카페테리아에서 파는 것은 아니고 집에서 만든 것 같네요.
유스텐:'왜 이걸 나한테 주는 거지...? 설마 아까 과자봉지 때문에 불쌍해보여서 자기 걸 준 건가?'
(손을 댈까 말까 머뭇거리다 답답한 숨을 내쉬며 도시락 뚜껑을 다시 덮는다) '부담스러워... 이따 학교 끝나고 다시 돌려주든가 해야겠어.'
당신은 한숨을 쉬고 시간을 확인합니다.
곧 역사 수업 시간이네요.
일단 이 도시락은 사물함에 넣어두고 수업이나 들으러 가야겠어요.
벤치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고
카페테리아로 다시 향하면 학생들은 수업 직전이라서인지
거의 건물 내로 들어가 있네요.
늘 그렇듯 당신에게는 이방인이라는 기분만을 남긴 채.
.
.
.
어느덧 시간은 흘러
학생들이 모두들 하교하기 시작하는 시간.
당신은 여전히 돌려주지 못한 도시락을 손에 든 채
주변을 돌아봅니다.
역사 시간도 대수학 시간도 수업이 겹쳐
어떻게 말을 붙여볼까 했는데
릭사엘 주변엔 사람이 많아서 그조차
여의치 않았더랬죠.
유스텐:'어떻게 돌려주지? 난 쟤 사물함도 모르는데.'
'부르지도 않았는데 학생회실에 가기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하면 상할텐데. 나도 곧 아르바이트 가야 하고...'
하아... '그냥 사물함에 걸어놓고 가야겠다. 사람들 틈에서 전해주기도 좀 그렇고... 혹시나 본인이 준 게 아니라고 하면 어떡해?' (눈치보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아무 학생의 옷깃을 슬쩍 잡아 말을 건다) 저기...
알렉스:음? 뭐냐?
유스텐:혹시 학생회장 사물함이 어딨는지 알아?
알렉스:아 그 릭사엘 재수없는 새끼 거? (대충 사물함들 사이 중앙을 휘휘 가리키며) 저기 저거.
유스텐:(알렉스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따라간다.) '아. 더 안 물어봐도 알겠네... '
별달리 독특하게 생기지도 않은 사물함이건만
틈새에 쪽지가 가득 끼워져 있는 사물함이 하나 있네요.
이 사실을 왜 이제야 눈치챘는지 모를 따름입니다.
유스텐:(저 틈에 도시락을 제대로 걸어서 돌려줄 수는 있을까 잠깐 걱정하다 다시 알렉스를 향해 작게 고개를 꾸벅인다) 고마워.
알렉스:뭘. (슥 지나간다)
유스텐:(쪽지가 가득한 사물함으로 다가가니 속으로 감탄이 나온다) '와... 되게 눈에 띄는 외모인 건 알고 있었지만, 진짜 나랑은 다른 세계 사람 같네... 대체 이런 애가 나를 왜 좋아한다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기에서 진 것 같은데. '
(혹시 누가 볼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사물함에 도시락을 잘 걸어놓고 도망치듯 그자리에서 빠져나온다)
당신은 혹여 누가 보기라도 할까 급히 도시락통을 걸어두고
자리를 빠져나갑니다.
복잡한 생각은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나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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