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스노우 시즌

 




39

스노우 시즌


시간은 빠르게 흘러 12월입니다.
기대하고도 두려워했던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네요.
공기는 코끝을 찡하게 얼릴 정도로 차가워지고
하늘에서는 이따금 하얀 눈송이가 내립니다.
신전 근처는 숲으로 둘러싸인 덕에
아침에 일어나 밖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설경을 당신을 맞아주곤 합니다.
배는 남산처럼 불러와 몸은 갈수록 무거워지고
당신은 어느 순간부터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들과 대화를 하는 게
익숙해진 이후입니다.
오늘도 릭사엘은 일하느라 자리를 비우고 있네요.
심심해서 배를 쓰다듬고 있으면
오늘도 꼼지락꼼지락 애들이 뱃속에서 놀고 있습니다.
유스텐:(눈 내리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벌써 올해도 거의 다 가끝나가네.
...생각보다 배가 훨씬 많이 불렀는데, 이 상태로 영국을 잘 갈 수 있으려나? 원래 만삭은 비행기 타면 안 되지 않나...?
아이들이야 평범한 인간은 아니니 잘못될 일은 없겠지만... (흐릿-) 내가 대신 고통받을까봐 무섭다.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으면 걱정 말라는 것처럼
아이들이 뱃속을 콩콩 칩니다.
하기사... 별일이야 있을까요.
어차피 죽지도 않는 몸인데.
의사에게 진찰을 받았을 때도
무리는 아니라고 했으니 괜찮을 겁니다.
사실 더 충격적인 건 비행기를 타도 된다는 소식이 아니라
당신이 6개월 차에 출산을 한다는 것이겠죠...
이제 겨우 두 달 남았네요.
유스텐:이 무거운 몸에서 조금 더 빨리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하려나... (머리를 부여잡으며) 으으- 아이들이 빨리 태어나는 건 좋은데, 내 사형선고도 두 달밖에 안 남은 것 같다...
뭐... 그래도 벌써부터 겁먹을 필요 없겠죠.
정 힘들면 릭사엘이 이것저것 방법을 취해준다고 했으니까요.
몸을 바꾸는 건 괜히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 같아서
웬만하면 피하고 싶지만 말이죠.
그러고보니 릭사엘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뭘로 줘야할지 아직 정하지 않았네요.
아무리 이단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기는 홀리데이인데
그냥 넘어가기엔 약간 아쉽기도 하고요.
유스텐:(휴대폰을 켜서 챗GPX에 들어가 "남편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 추천" 이라 검색한다)
챗GPX에 검색하니 다양한 물품들이 선물 추천으로 뜹니다.
남성 시계, 지갑, 캐시미어 머플러, 사첼백,
크리스마스 기념 다이어리, 기록용 저널, 크리스마스 인형 등이네요.
시계나 지갑은 이미 많은 것 같고...
크리스마스 다이어리나 인형은 릭사엘의 특수한 위치를 고려하면
평소에 쓰기 어렵겠죠.
유스텐:으음- 릭스는 워낙 돈이 많아서 고급 선물은 딱히 감동받진 않을 것 같단 말이지...
그렇다고 물욕이 있는 사람도 아니라 귀하고 비싼 걸 주기도 좀... 내게도 적지 않은 돈이 있지만 릭스가 훨씬 더 많기도 하고.
(다시 챗 GPX에게 "핸드 메이드 선물로, 임산부가 만들 거니 난이도가 높지 않은 걸로 추천해줘." 라고 정정한다.)
당신이 챗GPX에게 다시 한 번 요청하자
'물론이야! 임산부도 부담 없이 만들 수 있는 난이도 낮은 핸드메이드 크리스마스 선물!'
'아래 항목들이 딱 적당해.'
하면서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내줍니다.
직접 쓴 손편지와 추억 사진 스크랩북,
DIY 캔들, 니트 컵 코스터,
넥 워머 등이 나오네요.
같은 질문으로 한 번 더 물어보면
미니 캡슐 타임박스, 핸드메이드 쿠키 같은 것도 추천해줍니다.
유스텐:캔들은 좀 식상하고... 쿠키를 몰래 굽기엔 이 몸으로 방 밖을 나왔다간 5분도 안돼서 릭스 귀에 다 들어가겠지.
난 서프라이즈로 하고 싶은데... (잠깐 고민하며 유X브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검색해보고는 타이틀 하나를 발견한다) 뜨개질...?
생각보다 그리 어려워보이진 않네. 이 정도면 할 수 있겠는데?
어디보자- 목도리 뜨개질 준비물... (톡 토독 중얼거린 내용 그대로 구X에 검색한다)
검색해보면 목도리 뜨개질 준비물은 크게
대바늘이나 코바늘, 돗바늘, 가위, 털실 정도네요.
재료가 많이 필요하지 않아서 손만 움직이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스텐:앞에 있는 것들은 온라인에서도 구매할 수 있지만 털실은... 그래도 피부에 두르는 거니까 직접 만져보고 골라야 할텐데, 이 몸으로 어딜 가기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고집부려서 나가면 릭스한테 광고하는 모양이 될테고.
어쩐다... (곰곰...)
유스텐:
지능
기준치:55/27/11
굴림:84
판정결과:실패
흠... 이럴 때 같이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죠.
신전에 당신을 도울 사람이
적당히 있으려나요?
'혀 자른 자'들은 당신을 위해 언제든 준비되어 있지만
예레미야는 오도방정을 떨다가 금방 릭스한테 얘기할 것 같고
샤를롯도... 입이 좀 가볍다고 들었죠.
남은 건 한 명뿐이네요.
유스텐:역시 엘람 뿐인가? 예전에 화관 만드는 것도 도와주셨으니 손재주가 원래 좋으신 분 같았어.
어, 어떻게 부르면 되지? (<< 사제를 직접 호명해서 불러본 적은 없다)
방 밖에 누군가 있으려나? (조심스레 문을 열어 문앞에 누군가 대기하고 있는지 살핀다)
당신이 복도로 향하는 문을 열고
밖을 힐끔 바라보면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샤를롯과 눈이 마주칩니다.
샤를롯:(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예, 성배시여. 지시하실 일이 있으십니까?
유스텐:저...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이 어색해 눈을 내리깔다가 샤를롯을 향해 눈을 들어올린다) 혹시 엘람 씨 어디 계신지 아세요...?
샤를롯:엘람 사제님이라면... 아마 지금쯤은 교주님과 함께 업무를 보고 계실 겁니다. 불러다드릴까요?
괜찮으시다면 제게 얘기하셔도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유스텐:'하필 릭스랑 붙어있다고...?' 음...
엘람 씨가 자리를 비우면... 남편이 행방을 궁금해하지는 않겠죠?
샤를롯:글쎄요, 그것까지는 잘... 엘람 사제님을 불러오고 제가 교주님의 보좌를 대신 맡으면 크게 별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그분의 성정을 제가 아직 크게 모르는 탓에요.
유스텐:'엘람은 딱 봐도 높은 직급 같은데 자리를 비우면 당연히 나 때문이라 생각하진 않을까?' 어...
샤를롯, 씨...?
샤를롯:예, 말씀하십시오. (사람 좋게 웃는다)
유스텐:(샤를롯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쥐며 간청하는 목소리로) 저를 위해서 연기 한 번만 해주실 수 있을까요?!
샤를롯:... 연기요? 누구에게요? 설마... 교주님께요?!
유스텐:(끄덕끄덕)
샤를롯:그... 크흠, (이건 일이다! 일! 게다가 성배께서 내려주시는 첫 지시!) 예, 물론이죠.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유스텐:지금부터 우리 둘이서 아주 치밀한 계획을 세울 거예요. 남편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남편이 수상함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면서, 엘람 씨를 이쪽으로 보내주셔야 해요.
지금 생각한 방법인데, 샤를롯 씨는 교주님을 얼마나 좋아하시나요?
샤를롯:ㅇ... 예?! (이게 대체 무슨 질문이지...?!) ㅁ... 목숨만큼? (목숨을 내놓을 정도는 되니까 어쨌든 맞지 않을까)
유스텐:그러면 어쩌면 연기가 아닐 수도 있겠네요. 다행이다.
샤를롯:(대... 체 뭘 하시려는 거지? 불안감에 자르르 떤다)
유스텐:흠흠! 제가 생각해낸 방법은! 샤를롯 씨가 남편 옆에서 보좌하는 일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저에게 허락을 맡고 엘람 씨와 선수 교체를 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에요.
어때요?
샤를롯:아... 아! 아! 네! 그럼요, 좋아하고 말고요...! (다행이다... 교주님의 관심을 끌기 위한 산제물로 바쳐지나 했다)
유스텐:물론 제가 아는 교주님이라면 "신부를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맡겼는데, 고작 그런 이유로 온 것이냐." 며 질책하실 수도 있으니 제가 직접 쪽지를 적어서 드릴게요. 그러면 샤를롯 씨도 혼나지 않을 거예요.
샤를롯:(찌잉...) 감... 감사합니다. 신경써주셔서. 곧 엘람 사제님과 교대를 요청할 테니, 잠시 들어가 계시지요.
유스텐:아! 잠시만요. 쪽지를 써서 드릴게요. (후다닥 다시 방으로 들어가 아무 종이와 펜을 집어든다)
릭스가 교대 말고 다른 쪽에 정신이 팔리게 하려면... (끄적끄적) '이따 당신이랑 연어 정찬 먹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같은 말 썼다가 엘람 보기도 전에 본인이 공간 갈라서 올지도 모르니까 뜬금없는 말을 쓰면 괜찮겠지?' (다시 방 밖으로 나와 샤를롯에게 두 번 접은 쪽지를 건네준다) 여기 있어요.
샤를롯:(당신께서 내민 쪽지를 받아들고) 예, 감사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지요.
샤를롯에게 쪽지를 건네주고 다시 실내로 들어와 소파에 앉으면
거실 테이블에 놓인 오리 가족 도자기가 눈에 보입니다.
흠, 오려면 얼마나 걸리려나요.
그동안 무얼 할까요?
유스텐:뜨개질에 대해 조금만 더 알아볼까- (목도리 뜨개질에 대한 정보를 검색한다)
구X 검색창에 목도리 뜨개질이라고 검색하자
다양한 디자인과 목도리 도안, 뜨는 방법, 실 후기 등등이 뜹니다.
오... 생각보다 다양하네요.
디자인은 뭘로 하죠?
릭사엘이라면 무늬가 있는 것보다는 없는 쪽이
나을 것 같긴 합니다만
이쪽은 초보니까요.
당신이 그렇게 스마트폰을 들고 검색하고 있으면
곧 밖에서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납니다.
엘람이 도착했나 보네요.
유스텐:
기준치:50/25/10
굴림:52
판정결과:실패
당신이 들어와도 된다고 얘기하자
곧 현관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들어오는 사람은...
릭사엘이람 엘람이네요.
이 사람은 또 왜 왔지?!
릭사엘:(거실로 들어서며) 연어 먹고 싶다길래 왔어. 점심에 같이 먹을까 해서.
유스텐:(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과 몸짓을 보인다) ㅇ, 왜, 아직 점심 시간 전이잖아요.
릭사엘:겸사겸사 내 사랑 얼굴도 볼 겸.
엘람:(뒤따라 들어오며 한 손을 가슴 위에 올리고, 고개를 우아하게 숙인다)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성배시여. 지시하실 일이 있으신 겁니까?
유스텐:'이건... 예상 밖의 일인데...' (릭사엘과 엘람을 번갈아 힐끔거리며) 어...
릭사엘:(네가 앉은 소파 옆에 앉아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며) 왜 그래. 연어 말고 다른 게 먹고 싶어졌나?
유스텐:(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눈을 못 마주친 채) 그, 그게...
(질끈) 다, 당신이...! 빨리 일하러 갔으면 좋겠어요!
릭사엘:...?
... ...?
...ㅇ, 어? (눈에 띄게 당황하게 눈동자가 흔들린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건가?)
유스텐:(점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 그래야! 빨리 다 끝내서 저녁 먹기 전에 빨리 볼 수 있을...테니까...?
릭사엘:(뭐...지? 여전히 이해를 못한 채로) ...저녁에 빨리 만나는 편이 나아?
유스텐:오늘은...?
(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아니, 앞으로는 그러고 싶어요!
릭사엘:...
...
(이제 나랑 낯을 가리는 건가? 아니면 혼자 있고 싶어서? 언제는 나보고 일을 가지 말라더니... 어떻게 된 일이지?) ...알았어. (자리에서 슬며시 도로 일어난다)
유스텐:(누가 봐도 속상한 목소리가 들리자 가슴이 바늘로 콕콕 쑤셔지는 느낌이다) 리, 릭스...
릭사엘:(혹여나 네가 저와 닿는 것도 탐탁치 않아 할까봐 가만히 문간에 서며) ...저녁에 올게. (엘람을 바라보며) 내 신부를 잘 지키도록. 난 다시 일을 하러 갈 테니.
엘람:(눈동자가 살짝 흔들린다. 이건... 부부 관계 파탄의 징조인가? 어쩐지 불길한 채로 고개를 숙인다) ...예, 염려 마십시오 라샤토그님.
릭사엘:(힐끔 다시 너를 바라보며) ...저녁에 올게.
탁, 소리와 함께 릭사엘이 문을 닫고 나가자
실내에는 당신과 엘람만이 덩그러니 거실에 놓입니다.
나중에 릭사엘에게는 해명을 좀 해야겠네요.
유스텐:(쿠웅ㅡ) '망했다... 제대로 상처준 것 같은데.'
'그치만 어쩔 수 없어. 릭스가 있으면 엘람이랑 비밀스런 계획을 못 짜잖아.'
'나중에 제대로 달래주고 지금은 일단 마저 할 일을 하자...'
(헛기침을 하고) 크흠... 엘람 씨?
제가 당신을 찾은 이유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요리조리 눈동자를 굴리며) 음... 그러니까...
엘람:예, 편히 하명하십시오 성배시여.
유스텐:(후다다닥 엘람에게 간절하게 주먹쥔 손을 다른 한 손으로 감싸올리며 눈망울을 일렁인다) 저 좀...! 이번에도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엘람:(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씀하십시오. 저는 신부님의 요청을 돕기 위해 있는 자이니까요.
유스텐:저번에 화관 만드는 걸 도와주셨었죠. 혹시... 뜨개질도 할 줄 아시나요?
엘람:(갑자기 뜨개질...?) ...예, 어느 정도는 소양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유스텐:그럼 저에게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무, 물론 저번처럼 동영상을 보면서 저 혼자 터득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시간이 모자랄 것 같아서요...
엘람:(잠시 생각하고는 고개를 숙인다) 물론입니다, 성배시여. 준비물부터 마련해오도록 하겠습니다. 원하시는 실의 색상이나 성분, 원하시는 뜨개 방법, 원하시는 디자인이 있으신가요. 맞추어 구비해오겠습니다.
유스텐:두 개의 색으로 목도리를 만들고 싶어요. 데님 블루랑 아이보리를 조금 섞어서... (슬쩍 옆으로 붙어 휴대폰 화면을 보여준다.) 이런 꽈배기 모양으로 하려 하는데... 혹시 많이 어려울까요?
엘람:(고민...) 뜨개질은 처음이신가요?
유스텐:그으-렇죠?
아, 맞다. 남편에겐 꼭 비밀로 해야 해요. (진지하게) 이 일은 우리끼리만 알아야 해요...!
엘람:(아, 슬슬 무슨 상황인지 알겠다) 라샤토그 님께 드릴 선물인 건가요?
유스텐:(끄덕끄덕!) 절대로 남편이 알아서는 안돼요.
우리는 한 배를 탄 거예요
엘람:(작게 웃으며) 알겠습니다. 도안은 뜨개질 초보자가 시도하기에 난이도는 조금 있지만, 곁에서 도와드릴 테니 걱정 마십시오. (꾸벅)
준비물부터 구비해오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문을 도로 나선다)
유스텐:(덩그러니-) ㄷ... 된 건가?
확실히 엘람이 조용하고 재주도 많은 것 같습니다.
엘람마저 다시 나가자, 거실에는 조용한 정적이 가득 찹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곧 다시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납니다.
엘람:신부님, 들어가도 괜찮으실까요?
유스텐:네네! 들어오세요!
당신의 허락 하에 엘람이 문을 밀고 들어오면
그의 품에는 커다란 바구니가 두 개 담겨 있습니다.
엘람은 당신에게 한번 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곤,
문을 닫고 들어와 테이블 위에 바구니를 차곡차곡 내려놓습니다.
엘람:기본적인 부자재와 대바늘과, 신부님께서 요청하신 색 스펙트럼에 속하는 실을 여러 종류로 가져왔습니다. 한번 직접 골라보시지요.
유스텐:이걸 벌써 준비하셨다고요? 주문부터 할 줄 알았는데...
엘람:교단 내 의상실에서 받아왔습니다. 창고와 이어져 의류나 잡화 부속들은 얼마든지 있으니, 편하게 요청하셔도 됩니다.
유스텐:아. '맞다, 의상실이 있었지. 다시 생각해도 무슨 교회에 의상실이 따로 있나 싶지만,'
(신중하게 실을 둘러보다가 연하늘색, 밝은 아이보리로 된 실과 들어올리며) 이거랑 이 색깔로 짜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엘람:(신부님의 손에 들린 털실과, 원하신다는 도안을 함께 비교하고는) 네, 물론이죠. 다만 양끝부분에 흰색을 넣고, 나머지를 하늘색으로 채우시는 편이 깔끔할 듯한데 그러한 방향도 괜찮으실지요.
유스텐:그럼요! 지금부터는 엘람 씨가 제 스승님이니까 편하게 대해주세요!
엘람:예, 알겠습니다. 혹시 옆자리에 착석하여도 괜찮으실까요.
유스텐:(끄덕끄덕!) 오늘 하루만에 다 뜨긴 어려울 것 같으니 괜찮으시면 남편이 일하러 가는 동안에 몰래 진행하는 게 어떨까 해요.
엘람:아무래도 그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라샤토그 님께는 제가 따로 신부님의 태교로 진행하는 일이 있어, 한동안 보좌 어렵다고 말씀을 드릴 터이니 염려 놓으십시오.
(잠시 실례하며, 옆자리에 착석하고 신부님께 대바늘과 실을 건네드리고는, 저도 옆에서 똑같이 집어든다) 옆에서 시범을 보이며 알려드릴 테니 천천히 따라해보시면 됩니다.
(가볍게 하얀 실타래 끝을 풀어내고 첫 코를 만드는 방법부터 설명한다)
아무래도 소양이 있다는 이야기는 정말인지
엘람은 손쉽게 몇 코를 대바늘 안에 감아냅니다.
이렇게 보니 별로 어렵지 않아 보이네요.
한 번 해볼까요?
유스텐:
손놀림
기준치:60/30/12
굴림:19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어설프게 따라해보자, 엘람이 한 대로 금세 몇 코가 뜨입니다.
신기하네요...
유스텐:(자신이 뜬 걸 신기하게 바라보며 감탄한다) 우와- 신기해요. 어떻게 한 거지?
엘람:(작게 웃으며) 벌써부터 솜씨가 있으시네요. 처음하는 사람답지 않으신걸요.
유스텐:(수줍게 웃으며) 그런가요? 엄청 헤맬까봐 걱정했는데.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시는 것도 크게 작용하는 거겠죠?
엘람:선생님이라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신부님께서 잘 따라와주시는 덕이죠.
(털실을 감은 손을 정리하며 대바늘을 슥슥 움직여 코를 몇 가지 더 떠낸다) 이렇게 계속 코를 만들어주시면 됩니다. 코의 개수는, 음... (잠시 수를 헤아리며) 마흔넷 정도로 하면 될 것 같네요.
유스텐:마, 마흔 넷이나요?! 으으- 숫자 잘못 세다 실수하면 어쩌죠?
엘람:걱정 마십시오, 저도 도우니 괜찮을 겁니다.
유스텐:알았어요. 엘람 선생님.
유스텐:
손놀림
기준치:60/30/12
굴림:30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손놀림
기준치:60/30/12
굴림:29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손놀림
기준치:60/30/12
굴림:95
판정결과:실패
손놀림
기준치:60/30/12
굴림:42
판정결과:보통 성공
손놀림
기준치:60/30/12
굴림:42
판정결과:보통 성공
슥슥 옆에서 따라해보니 크게 어렵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매 코마다 방법을 다르게 사용하고 개수를 세야 하는 게
상당히 귀찮기는 하지만요.
중간에 코를 한 번 빠뜨리는 바람에
엘람이 어떻게 코바늘을 가져와 수습해줬지만
음... 자세히 보지 않으면 티가 안 날 테니
괜찮겠죠?
당신이 짜낸 목도리 일부를 만져보면
도톰하고 탄력이 있습니다.
벌써부터 폭닥폭닥해 보이네요.
유스텐:(자신이 지금까지 뜬 부분을 만지작거리며) 와아- 엄청 푹신푹신해요.
엘람:손재주가 좋으신 것 같습니다, 신부님. 보통 초보자는 이 정도로 능숙하게 못하거든요.
유스텐:정말요?? (활짝 웃으며 대바늘을 든 상태로 목도리 일부를 소중하게 품에 안는다)
엘람:(귀여우시네... 작게 웃으며) 지금까지 알려드린 방식으로 끝까지 동일하게 떠주시면 됩니다. 보통 남성용 목도리는 2미터 정도 뜹니다만, 교주님께서는 키가 크시니 20cm 정도 더 뜨시면 될 거예요.
유스텐:이, 이걸 쭉 해서 220cm로 만들라고요??
(슬쩍 자기가 뜬 목도리를 들어올려 눈대중으로 길이를 가늠한다) 어어.......
엘람:화이팅입니다, 신부님.
유스텐:(슬쩍) 꼭... 220cm여야 할까요?
엘람:... 2미터까지만 일단 해볼까요?
유스텐:그, 그래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시계를 확인한다)
시간을 슬쩍 확인해보면 시간은
오후 두 시입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지났다니...
믿을 수가 없네요.
유스텐:헉... '벌써 점심 시간이 지났잖아?' 언제 시간이 이렇게...
엘람 씨는 괜찮아요? 점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엘람:괜찮습니다, 교주님을 보좌해드리다보면 식사를 거르는 경우가 잦아 점심 시간이 지나도 배가 고프지 않아서요.
유스텐:그래도... 저를 돕다가 점심을 못 드신 건데...
아! 아니면 지금 저랑 같이 드실래요?
엘람:(당황...) 제가 어찌 감히 신부님과 동석을...
유스텐:뭐 어때요- 엘람 씨는 지금 제 선생님이잖아요?
저는 괜찮은데 혹시 엘람 씨는 불편하실...까요?
드시고 싶은 음식 있으세요? 좋아하는 음식이라든가...
엘람:(혼자 드시면 외로우시려나...) 아닙니다, 동석하죠. 저는 샌드위치처럼 간단한 음식이면 뭐든 괜찮습니다. (신부님과 함께 식사하기엔 제 위치가 그 정도로 높지 않아 최대한 간단한 메뉴로 말씀드린다)
유스텐:샌드위치라뇨. 더 좋은 걸로 골라주세요.
아! 혹시 생선 요리 좋아하세요?
엘람:(생선 요리라면 교단의 채식 권장에 반하지는 않으니...) 예, 물론입니다.
유스텐:그럼 팬에 구운 할리벗이랑... 토마토 샐러드 괜찮으세요?
엘람:네, 물론이죠.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며) 주방장님께 전달하고 오겠습니다. 잠시 기다리고 계시지요. 혹, 음료와 디저트는 어떤 것을 원하십니까?
유스텐:레몬 휘낭시에와 아이스티 같이 드실래요?
엘람:('같이'라는 말에 잠시 흠칫했다가 표정 관리를 하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다) 예, 바로 준비시키겠습니다. 쉬고 계십시오, 성배시여. (문을 열고 사라진다)
유스텐:(소파에 푹 기대 종아리를 좌우로 번갈아 들어올렸다 내리며) 릭스는 사무실에서 점심 먹었겠지? 여기로 오지 않은 걸 보면...
(벌떡) 아차! 이렇게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지, 참.
(엘람이 가르쳐준 대로 마저 목도리를 뜬다)
유스텐:
손놀림
기준치:60/30/12
굴림:99
판정결과:실패
어... 어라?
이게 아닌가... 엘람이랑 있을 때에는 잘만 떠졌는데
혼자 떠보니 조금 엉성합니다.
흠...
그래도 앞면에서는 크게 티가 안 나니 괜찮겠죠?
당신은 엘람이 식사 준비를 하러 간 틈을 따
손을 꼼질꼼질 움직입니다.
으음...
한 너댓줄 뜨니 조금 엉성한 티가 나네요.
뭐... 괜찮겠죠?
2미터나 뜰 건데, 1, 2 cm 정도 어설퍼도.
유스텐:밑에 있는 부분을 잘하면 이정도는 딱히 티도 안 날 거야!
(더 할까 하다가 방금의 실수로 기가 죽어 슬쩍 뜨개질 한 것을 옆에 둔다)
당신이 소파에 기대어 앉아 뻐근한 어깨를 돌리며 쉬고 있으면
배에서 꼼지락꼼지락 아이들이 또 장난치는 촉감이 납니다.
심심한가 보네요.
유스텐:(갸웃) '배고픈 건가? 하긴 점심시간을 훌쩍 넘었으니까.'
(배를 문지르며 속닥거린다) 금방 밥 줄게. 조금만 기다려.
당신이 부드럽게 배를 문질러주자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이 조금 잦아듭니다.
당신의 손길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네요.
아니면 정말로 말을 알아들어
밥을 얌전히 기다리고 있거나요.
유스텐:진짜 말을 알아듣는 건가? 뱃속에 있는데다 수분으로 가득차 있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옛날에 어딘가에서,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 "엄마가 ~~ 라고 말했잖아." 하고 기억하는 아이도 있으니까 알아들을지도 모르겠다.
... 우리 애도 그런 건가?! 똑똑한 걸 보니 역시 미니 릭스임이 틀림없어!
꼼질꼼질.
배 안쪽에서 아이들이 애교부리듯 몸을 비빕니다.
어쩐지... 아주 귀엽네요.
유스텐:나중에 둘이 싸우지는 않겠지?
에이, 설마요.
이 작은 것들이 싸울 일이 뭐 있겠어요.
당신이 배에 손을 올리고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있으면
시간이 조금 지나 문밖에서 다시금 노크 소리가 들립니다.
엘람이 음식이 든 트레이를 끌고 실내로 조심스럽게 들어섭니다.
엘람:신부님, 요청하신 식사를 내어 왔습니다. 상은 어디에 차릴까요?
유스텐:(거실 테이블을 가리키며) 여기다 둬주세요.
엘람:예. (우아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천천히 테이블에 매트를 깔고 냅킨을 올려놓은 뒤, 식기류와 음식들을 천천히 세팅한다)
고소하고도 짭짤한 할리벗 냄새가 거실을 향긋하게 채웁니다.
레몬그라스와 바질을 넣고 함께 구웠는지 냄새가 무척이나 좋네요.
부산스러운 소리 없이 식사를 차리는 엘람을 보면
정말이지 프로다운 몸가짐이 배어납니다.
마지막으로 식탁 위에 얼음 띄운 아이스티까지 올라오자
간단하면서도 침이 꿀꺽 삼켜지는 식사가 준비되네요.
엘람:(조금 민망하게 옆의 다른 소파에 앉으며) 식사하시지요, 성배시여.
유스텐:아, 맛있는 냄새-
저는 신경쓰지 마시고 엘람 씨 편하게 드세요.
두 번이나 저를 도와주신 구세주잖아요.
엘람:구세주라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미미한 웃음으로) 드시지요. 식사 자리에서는 상전부터 드셔야 아랫것들이 식사를 합니다.
유스텐:'내, 내가 상전?'
(어색하게 볼을 긁적이며) 전 딱히 제가 상전이라 생각을 안 하는데요...
엘람:저희 주군의 신부님이시지 않습니까. 신께 선택받으신 몸이시고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부디.
유스텐:(머쓱) '작년까지만 해도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이게 맞나...'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작게 끄덕이고 할리벗을 조금 잘라 제 접시에 덜어먹는다) 맛있어요. 엘람 씨도 어서 드세요.
엘람:예, 성배시여. (우아하게 집기류로 덜어 먹기 시작한다)
유스텐:어때요? (초롱초롱)
엘람:(음식을 완전히 씹어 삼키고 조심스럽게 식기를 내려둔 뒤에 대답한다) 무척 맛이 좋습니다. 안배에 감사드립니다.
유스텐:에이, 안배라는 말까지 쓰실 필요 없어요. 우린 친구잖아요!
엘람:예... 예...? 어, 어찌 그런... (황송해서 고개를 살며시 숙인다)
황송합니다, 성배시여.
유스텐:황송하다뇨-
아, 혹시 "친구"라는 말이 불편하신 건...
엘람:아, (혹여나 당신께서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까 당황하여 예절에 벗어나게 손사래를 치며) 아닙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어 무척 감사한 나머지... (살짝 웃으며 가슴팍 위에 손을 얹으며) 영광입니다, 신부님.
유스텐:(활짝 웃으며) 다행이다...
요리도 입에 잘 맞으신 것 같네요.
알차게 보낸 뒤에 먹는 음식이라 그런지 저도 평소보다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엘람:다행입니다, 성배시여. 함께 식사할 영광을 선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스텐:흠... (빤-히 엘람이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릭스한테만 집중해서 사제분들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 지금 보니까 꽤...'
엘람 씨는 결혼했어요?
엘람:(조심스럽게 음식을 삼키고는) 예, 아내와 딸이 하나 있습니다.
유스텐:역시 결혼하셨구나-
아내분이 서운하시겠어요. 이렇게 잘생기고 유능한 남편을 자주 못 보니까.
엘람:(살짝 웃으며) 말씀에 감사합니다. 아내가 아쉬워는 하더군요. 그래도 딸아이를 키우는 일에 부모님과 친척 분들께서 많은 도움을 주고 계셔서, 생활은 순탄히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유스텐:... 엘람 씨는 그립지 않으세요? 가족들이.
엘람:그립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저는 이 신전에서의 삶이 있으니까요. 일주일에 하루 가족들이 새벽 예배를 오는 날이면 얼굴을 보고는 합니다.
유스텐:그건... 너무 짧잖아요.
어쩌다 신전에서 일하기로 하신 거예요?
이 곳 복지가 좋지만, 제약이 꽤 많지 않나요?
엘람:그렇지요. 하지만 살다 보니 알게 되는 것들이 있더군요. 저는 세상 풍파를 견뎌내는 힘이 녹록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 제 바람은 저희 교단의 종교에 헌신을 다하고 싶다는 것. 별다른 계기는 없었으나 그 두 가지만으로 이른 나이에 신전에 수습 사제로 들어왔습니다.
(표정이 온화해지며) 아내는 제 여동생이 어릴 때부터 함께하던 친구로, 저에게도 소꿉친구와 같은 존재이지요. 사제가 되겠다는 제 바람을 이해하고 적극 지지해준 사람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제가 이곳에서 신께 봉사하며 살지요.
유스텐:좋은 배우자네요.
(아이스티가 들은 잔을 들어올리고 빨대를 휘휘 저으며) 이건 엘람 씨에게만 미리 말하는 건데, 사실... 최근에 남편이랑 사제분들의 휴가에 대해 얘기했거든요. 아직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엘람 씨에게 좋은 소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요.
엘람:아, 그러십니까? 그것 참 좋은 일이군요.
유스텐: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엘람 씨도 가족들을 더 자주 볼 수 있을 거예요!
엘람:그렇겠네요. 그렇게만 된다면, (작게 웃으며) 딸아이가 곧 학교에 가는데, 입학 전에 함께 식사를 할 수도 있겠네요.
유스텐:(자기 일처럼 웃으며) 그렇죠?
혹시 괜찮으시다면 사제가 되기 전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전 여기 성역에만 거의 머무르다 보니 마을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든요.
엘람:으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제게 여동생이 있다는 말씀은 전에도 드렸었지요. 저는 맏오라비인데다 부모 두 분께서 모두 베이커리를 운영하셔서 제가 그 아이를 반쯤 키우며 살았습니다. 사실 여동생보다는 딸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지요. 화관을 만드는 법도, 뜨개질을 하는 법도, 여동생이 알려달라고 부탁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배웠습니다. 별로 재미있는 얘기는 아니지요?
유스텐:(도리도리) 재미있어요.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건데 재미를 어떻게 따지겠어요? 저는 여기서 대부분을 남편이랑만 얘기해서 이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거든요.
들어보니 바깥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오히려 재밌어요. 신전에서의 의식이나 가치관은 여전히 저에게 낯설지만요...
엘람:다들 신전의 행보에 순종적이고 신앙심이 깊다는 점을 제외하면 다른 외부의 사람들과 생활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외부 세계보다는 조금 더 전통적이고 아날로그적인 면이 있지만, 사람 사는 곳은 대체로 거의 비슷하지 않습니까.
유스텐:리, ... 남편이 좋은 일을 많이 했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을 수용하며 교단이 커진 건 알지만... 신기해요. 이 많은 사람들이 전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남편을 믿는다는 거잖아요.
그럼 여긴 범죄율이 많이 낮겠네요?
엘람:새로이 외부에서 영입된 교인들 사이에서는 아주 가끔 흉흉한 일이 벌어지긴 합니다만, 대체로 크게 번지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됩니다. 저희 교단은 오갈 데 없는 취약계층들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종교 귀의를 제의하기 때문에, 새로이 들어온 이들이 사고를 치는 경우가 많지요. 이곳에 완전히 정착한 주민들은 풍요롭게 살고 신전의 교리를 뼛속 깊이 따르며 사는지라, 가끔 일어나는 말다툼을 제외하면 큰 분쟁은 잘 없습니다
유스텐:흉흉한 일이 발생하거나 분쟁이 발생하면 보통 어떤 식으로 해결을 해요? 경찰이 이런 곳에 같이 살지는 않을 것 같고...
엘람:새로이 들어온 교인들은 성역의 외곽 분리된 구획에 거주하는지라 이곳까지 영향이 미치지는 않지만, 신체 상해나 사기, 살인 사건과 같이 사안이 심각한 경우에는 동태복수법에 따라 동등한 처벌을 받도록 합니다. 다른 곳에 비해 처벌은 엄중하게 내려진다고 볼 수 있지요. 하지만 그 덕분에 다들 몸을 사리며 범죄를 저지르지 아니하는 것이니 선순환에도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의외로 단순하지 않습니까. 사실 몸 누일 곳이 있고, 밥이 제때 나오며, 미래를 그릴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성향이 온유해지기 마련이지요. 그렇게 복지를 제공해주는데도 범죄를 저지른 인물이라면 봐주지 않는 것이 교주님의 철칙입니다.
유스텐:(끄덕) 정말 교주님다운 발상이네요.
...?
교인이 새로 들어와요? 계속?
포교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외곽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마을은 여기에만 있는 거 아니었어요?
엘람:아닙니다. 포교 활동을 통해 새로 들어온 교인들은 외곽 분리된 구획에서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검증이 될 때까지 주로 생활하며, 외곽과 이 중심부 신전 사이에 마을이 여럿 있지요. 보통 어린 자녀들의 학군이나 산업 직군에 따라서 마을 단위를 나누는 편입니다.
교주님께서는 전부 다 같은 마을로 통칭해 부르시기는 합니다.
유스텐:생각보다 여기까지 오려면 꽤 많은 시험? 같은 걸 거쳐야 하는 거네요.
엘람:이 신전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은 농업과 유통, 상업이 주 직군이지요.
아무래도요. 매주 1회는 신전에 방문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이곳에 거주하는 최소 요건이니, 지리적으로 이 신전 인근에서 생활하고자 하는 이들을 수용하려면 차별점을 두지요.
유스텐:이건... 마을이 아니라 작은 나라 같아요. '대체 얼마나 규모가 큰 거야?'
예배가 최소 요건이면 다른 조건들은 뭐가 있나요?
엘람:아무래도 규모로 따지면 도시국가에 비등하지요. 라샤토그 님께서는 시스템을 만드실 뿐 자체의 독립된 국가로 나아가실 생각이 없는 듯 하시지만요.
최소 요건에는 '신전의 예배에 주 1회 이상 참석할 것', '중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 '주 2회 이상의 생산 활동을 할 것'이 포함됩니다. 이외에 요건이라 할 것은 없습니다. 사실상 무척 널널한 편이지요.
마지막의 '생산 활동' 사안의 경우, 직계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생산 활동을 한다면 그 가족 구성원은 양육이나 집안일, 휴식을 비롯한 다른 일에 전념하여도 된다는 항목 또한 있습니다.
유스텐:생각보다 되게 널널하네요? 그럼 성역 중심부에 오고 싶은 사람들이 엄청 몰리지 않나요?
엘람:그렇기에 성역 중심부에 이주할 수 있는 인원은 정해져 있지요. 신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곳인지라, 여건별로 심사를 거쳐 이주하게 됩니다. 라샤토그 님의 개인 명의 토지인지라 교인 개인이 마음대로 거주지를 건설하여 정착할 수도 없게 되어 있죠.
유스텐:사람들은 이 성역이, 이 마을이 낙원처럼 느껴지겠네요.
그럼 포교 자체는 항상 차고 넘칠 정도로 사람이 들어오는 건가요?
엘람:아니요, 외부 세계의 빈민들을 중심으로 포교를 진행하기는 하나 성역 내의 신생아 출생률이 많아 최근에는 그리 활발하게 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교주님께서는 외부인보다는 이곳에서 오래 터를 내리고 살아온 교인들을 더욱 아끼시니까요.
유스텐:출생률이 그렇게나 높다고요?
어... 여긴 결혼을 어떻게 해요?
엘람:음... 외부와 같이 결혼식을 진행하지 않고, 일가 친척들과 가족들 사이에서 만찬을 즐기며 가족으로 인정을 받으면 결혼했다고 여깁니다. 다양한 애정 형태가 보편화된 성역 내부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고 연애만 하거나, 여러 사람을 만나는 등도 허용되고 있지요. 나누는 예물도 반지뿐만 아니라 목걸이, 팔찌 등으로 다양합니다. 그리고 새로이 맺어진 가정의 보금자리는 교주님께서 지정하신 빈 집 구획 중 선착순으로 고르고 말이지요.
유스텐:(눈을 크게 뜨며) 여, 여러 사람을 동시에 만난다고요??!
엘람:예, 제 아내에게도 저 아닌 연애 상대가 둘 있습니다.
유스텐:네????
둘이나????!!!
그,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엘람 씨는 괜찮은 거예요?!
엘람:제가 신전에 일평생을 바치기로 하면서부터 당시 연애 중이었던 아내와 의논했던 사항이니, 괜찮습니다. 여성 홀로 살림을 꾸리는 것은 덧없이 외롭기도 할 테니 말이지요.
괜찮...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질투는 나지만, 아내가 안심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아서요.
유스텐:(시무룩) 맞는 말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는 건 너무 슬픈걸요.
엘람:그렇게 슬퍼하실 것은 없습니다. 아내에게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은 제 가치관으로는 가끔 버거운 일이지만, 저를 그들과 동등하게 취급하거나 그들을 더 우선시 여기는 일 또한 없으니까요.
유스텐:이해하기 힘든 이유는 아마도 제가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겠죠... 당신이 괜찮다니 제가 더 슬퍼하진 않을게요. 실례일 수도 있으니까.
엘람:하하... 세상 어디에서나 연애사는 복잡한 법이죠. 저희 교단이 성을 죄악시하지 않고 자유롭게 두고는 하나, 외부에서도 이런 이들은 얼마든지 있지 않겠습니까.
중요한 건 서로 동의를 한 상태인가, 자신이 무엇을 포기하는 만큼 상대가 무엇을 포기하는지 알아주는 이해를 교환한 상태인가이겠지요.
유스텐:그건 그렇죠... '구시대라면 모를까. 외부에서도 요즘은 합법 양다리도 이상하게 보는데...'
'내가 더 의견을 드러내봐야, 이 곳 문화랑은 전혀 다르니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게 좋겠어.' 말씀 감사해요, 엘람 씨.
다음에도 종종 수업하면서 얘기 들려주시겠어요?
엘람:예, 물론이지요. 뜨개질을 하다 막힐 때에도 편하게 불러주십시오. 라샤토그 님께 허락을 맡아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유스텐:허락 맡다가 릭스가 의심하면 어쩌죠? 엘람 씨는 거짓말 잘해요?
엘람:(슬쩍 웃으며) 저희 본가는 대가족인지라, 다들 거짓말의 귀재들이죠.
교주님께 오늘 일은 비밀로 해드릴 테니 염려 마세요.
마침 의상실 창고에 다녀오면서도 입단속을 철저히 해두었으니 걱정하실 일 없을 겁니다.
유스텐:고마워요, 엘람 씨... (찌잉-)
(덥석 손을 잡으며) 정말 정말 좋은 사람이군요. 엘람 씨도 제게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꼭 말씀해주세요!
엘람:그저 제가 해야 할 일이었을 뿐인걸요. 그렇게 여겨주시니 감읍합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테이블을 치워드리고 물러날 테니 편히 쉬십시오. 뜨개질 재료와 만드시던 목도리는 위층에 제가 옮겨놓겠습니다.
유스텐:아, 저도 같이 도와드릴게요...!
엘람:(작게 웃으며)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아도 될런지요. 별로 힘든 일도 아닌 데다, 신부님께서 안정을 취하셨으면 합니다. 몸이 무거우셔서 고생이 많으시지 않습니까.
유스텐:알았어요...
... 엘람 씨는 좋아하는 거 있으세요?
엘람:음... 좋아하는 것은 따로 없습니다만, (잠시 머뭇거리며) ... 제게 감사의 의미로 무언가를 주시려는 것이라면 저희 딸아이에게 줄 그림을 선물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성배께서 주셨다고 하면 무척 기뻐할 겁니다.
유스텐:그, 그그그림이요? (당황)
(두 손을 저으며) 저는 전문 교육을 받은 사람도 아니고, 여기 오기 전에 낙서만 한 게 전부라서...! 엄청 대단하고 멋진 작품 같은 건 못 그려요!
엘람:(작게 웃으며) 대단치 않은 낙서여도 좋습니다. 딸아이가 교단의 마스코트이신 신부님을 꼭 한 번 만나뵙고 싶어 하여 그렇습니다. 부담스러우시다면 거절해주십시오. (꾸벅)
유스텐:'마스코트....' 그...
'부담스러워...!! 그치만 하나뿐인 딸아이 줄 선물이라잖아... 근데 선물을 낙서쪼가리로 줘도 되는 건가?! 엘람 씨 이거 맞아요?!!'
음...
(입술을 달싹이며 손을 꼼지락거린다) 어디 밖에 내놓지 않는다고 하시면... 그려드릴게요. 마음에 드실지는 모르겠지만...
엘람:예, 딸아이에게 꼭 언질해놓겠습니다. 밖에 보여주지 말라고 말이지요.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여 예를 취하고는 식탁을 정리하고, 네가 뜨개질하던 물품도 정리한 뒤 돌아오며) 밖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성배시여.
유스텐:그, 그래요... 혹시 언제까지 주면 되나요?
엘람:편하실 때 어느 때나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며 물러간다)
달칵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거실은 당신이 홀로 남겨지자 뽀얀 색감으로 다시금 가득 찹니다.
어쩐지 엘람과 함께 있으면서 많은 것들도 알게 되고
당황스럽게 선물용 그림까지 그리게 되었네요.
낮이 짧아진 탓인지 해는 제법 기울어 갑니다.
당신이 뻐근하게 기지개를 켜고 소파에 앉아
배를 쓰다듬으며 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이들이 씰룩거리는 촉감과 함께 눈이 조금 감깁니다.
하긴, 요즘 잘 때에도 간혹 아이들이 꾸물거리곤 해서
잠이 자도 자도 부족하죠.
눈꺼풀이 느리게 깜빡이고 있으면,
그때 밖에서 누군가 다가와 문을 엽니다.
심각해보이는 표정의 릭사엘이 들어옵니다.
아, 그러고보니... 릭사엘에게 축객령을 내리고는
별다른 말도 하지 않았더랬죠.
릭사엘:(사형대에 선 죄수같은 심정으로 거실에 들어선다) ...나 왔어, 여보.
유스텐:(그림과 뜨개질에 정신이 팔린 상태) 왔어요?
왜 그렇게 목소리에 힘이 없어요?
릭사엘:...? (뭐지? 내가 무언가 잘못한 일이 있어서 빨리 나가라고 재촉한 것 아니었나?)
...아무것도 아니야. (별달리 심각해보이지 않는 네 얼굴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옆으로 다가와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오늘은 어떻게 보냈어.
유스텐:엘람 씨랑... (잠시 뜸을 들이고는) 수다를 좀 했어요. 심심해서.
릭사엘:(나는 내쫓았으면서...) 그랬군... 식사는 했어?
유스텐:(끄덕) 수다 떨다 보니까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나버려서... 그냥 여기서 같이 식사하라고 했어요.
맞다, 당신은 점심 잘 챙겨먹었어요?
릭사엘:(잠시 우물쭈물하다가) ...일하느라 바빠서 넘겼어.
(네가 저를 밀어내기라도 할까봐 지레 걱정하며 슬금슬금 허리를 끌어안는다)
유스텐:왜 넘겨요. 걱정되게... 안 그래도 많이 먹지도 않으면서.
응?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네가 안는대로 네 곁에 붙어 마주 안는다)
릭사엘:(걱정 만땅...) 그대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서, 그렇게 됐지. 빨리 오라고 해서 빨리 왔어. (옆에서 저를 마주 안는 손길에 슬쩍 입꼬리를 당기며 너를 제 무릎 위로 들어 앉힌다) 보고 싶었어, 내 사랑.
유스텐:(뺨에 쪽) 나도 많이 보고 싶었어요.
또 내 이름 한가득 쓰고 온 거 아니죠?
릭사엘:...오늘은 생각을 더 많이 했지. (다행히 별일 아닌가 보네... 그제서야 겨우 안심하고는, 다정하게 네 뺨에 쪽 뽀뽀한다)
유스텐:(뺨을 옅게 붉히며 작게 까르르 웃는다) 무슨 생각을 했는데요?
릭사엘:(사랑스러워) 어서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랑, 그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괜한 걱정이었나 싶네. (작게 웃으며 네 사랑스럽게 달아오르는 뺨에 제 뺨을 비비며 몸을 토닥인다)
유스텐:에이- 항상 여기 있는데 무슨 일이 생길 게 뭐가 있어요?
릭사엘:그러게, 정말 괜한 걱정이었지. 어쩌겠어, 그대만 생각하면 가슴이 뻐근하고 보고 싶고, 걱정이 되는데. (쪽쪽)
유스텐:사랑꾼 다 됐네요, 당신.
릭사엘:하루이틀인가. 새삼스럽게. (예뻐 죽겠다는 듯 웃으며 너를 꼭 끌어안고 웃음 소리를 흘린다)
유스텐:(네 품에서 뺨을 비비고 어리광부리다가 엘람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
릭사엘:응? 왜 그래, 내 사랑? (갑자기 심각해지는 네 표정에 의아해하며 입술에 쪽 뽀뽀한다)
유스텐:음... 릭스는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난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요? 헤어지고 만나는 게 아니라, 당신이랑 동등하게 골고루 애정을 준다고 하면?
릭사엘:(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안 돼.
갑자기... 무슨 뜻이야 그게? (심각한 표정으로) 내가 무언가 잘못했나...?
유스텐:으, 응? 잘못한 게 아니라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어떨 것 같냐는 말이었어요.
아까 엘람이랑 대화하면서 엘람에 대한 얘기랑... 마을 문화? 를 좀 들었거든요.
릭사엘:(놀란 가슴을 겨우 쓸어내리며) ...깜짝 놀랐잖아. 난데없이 그런 소리를 해서.
유스텐:이 곳 사람들이 성에 개방적인 건 의식을 할 때부터 눈치채긴 했지만... 연애나 결혼한 상태에도 한번에 여러 사람과 사랑할 수 있다고 해서...
엘람 씨처럼 잘 생기고 손재주 좋은 남편이 있는데도 배우자분이 두 명의 다른 애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엄청 충격받았어요...
릭사엘:(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지며) ... 설마 그대도 그러고싶다는 건 아니지?
유스텐:어? 아니, 난 그럴 생각 없어요.
그냥... 내 일도 아닌데 괜히 슬퍼져서...
릭사엘:...아. (그제서야 이해해서 표정이 도로 부드럽게 풀린다) 음... 그런 거였군. (쓰담쓰담)
유스텐:물론 다들 합의해서 하는 연애라지만... 난 릭스를 다른 누군가랑 공유할 마음은 안 들거든요.
릭사엘:(너를 꼬옥 끌어안으며) 나도 마찬가지야. 절대 안 돼.
유스텐:어떻게 그게 가능한 걸까요? 속상하거나 질투나지 않냐니까 그런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괜찮다고 했어요.
릭사엘:아무래도 함께하지 못해 미안한 것과 필요할 때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하는 미안함은 다르니까. 엘람은 후자라도 덜 미안하고 싶었겠지.
유스텐:나는... (고개를 저으며) 난 잘 모르겠어요.
그러고보니 당신도 기억을 잃기 전에 내게 그랬었죠. 의식을 끝마치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좋다고...
릭사엘:...나한테는 기억이 없지만, 그랬었나?
유스텐:(끄덕) 그때는 내가 먼저 요구했었어요. 모든 게 강제되는 상황에 뭐라도 요구하고 싶었거든요.
릭사엘:... 여전히 그러고 싶다는 건... 아니지?
유스텐:그야 당연히 아니죠. 딱히 누굴 엄청 만나고 싶었던 것도 아녔어요. 일종의 보험 같은 거였지.
릭사엘:(마른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러면, 그저 생각이 많아져?
유스텐:(끄덕) 내가 만약... 릭스를 1년에 조금밖에 못 만나고,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면 힘들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랑 굳이 정을 나누고 몸을 섞고 싶진 않거든요.
릭사엘:...나에게도 마찬가지야. 그대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네 손에 손깍지를 끼며) 이렇게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사랑을 속삭이는 건 그대와만 하고 싶어. ...설령 그대가 내 곁을 영영 떠낸대도.
유스텐:그거 엄청 기쁜 말인데요? 영영 떠날 일은 없지만.
(멍하니 고개를 뒤로 젖히며) 여긴 여기만의 문화가 있고, 당사자들은 괜찮다고 하니 내가 말을 얹을 권리는 없지만... 역시 전 엘람이 많이 슬플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릭사엘:그래서 걱정이 돼?
유스텐:응... 완전히 괜찮은 게 아니잖아요.
릭사엘:...무언가 방법을 마련해주고 싶은 건가?
유스텐:엘람은 무척이나 좋은 사람 같아서 방법이 있다면 뭐든 해주고 싶어요.
그렇지만 이 곳에서 일하기로 한 건 엘람의 선택이니 다른 일을 제안하는 건 그에게도 실례가 되겠죠. 당신에게도 신뢰받고, 도움이 많이 되는 사람이고.
릭사엘:음... 정 걱정이 된다면, 수습 사제들 중에서 내 보좌를 맡을 이를 더 선출할까. 그렇게 하면 몇 명 정도는 신전에서 반드시 숙식을 해결하지 않아도 업무에 차질을 안 빚을 순 있으니.
안 그래도 연말이 가까워, 수습 사제들 중 정식 사제를 추가로 선출할 계획이었어. 우리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의 수발 업무를 생각하면 혀 자른 이들은 지금보다 두 배 정도 있어야 하고.
유스텐:좋은 생각이에요! 정식 사제가 많아지면 당신도 부담이 덜할 거고...
릭사엘:(작게 웃으며) 그럼 이번 사제들의 선출은 그대에게 맡겨도 될까.
그대의 손발이 될 사람을 뽑아야 하니, 그대 마음에 맞는 이를 고르는 것이 좋을 듯하여.
유스텐:에? 제, 제가요?
릭사엘:(끄덕) 그대가 쓸 사람들이잖아.
유스텐:그, 그치만...! 잘못 보고 뽑으면 어떡해요?
릭사엘:2년 간의 묵언 수행을 마쳤고 신전에 봉사하고자 하는 이들이니 자질은 다들 충분해. 그대 마음에 들기만 한다면 편히 뽑아도 상관 없어.
유스텐:마음에 든다고 뽑으면 너무... 불공평하다고 느끼지 않을까요?
그리고 지원하는 분들이 많을지 모르겠어요... (안절부절)
릭사엘:불공평하기는. 모든 채용 시장은 고용주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뽑는 것인데.
포교 활동을 시킬 인원을 줄일 생각이었으니, 그대가 볼 예비 사제들은 스물 정도 될 거야. 그중 서너 명을 골라봐.
유스텐:스, 스무 명 중에서 서너 명을 고르라고요?
너무 책임이 막중하지 않나요?
릭사엘:고르는 것뿐인걸. 그대도 이 신전의 주인이니 한번은 해보아야지.
유스텐:그치만 수습 사제분 하나하나를 살펴본 것도 아닌데 갑자기 관상만 보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고르면...
릭사엘:되지. 그래도 돼.
정 걱정이 된다면 1월 1일에 묵언 수행이 완전히 끝나니, 그 다음에 직접 면접처럼 대화를 해봐. 임무 배정까지는 며칠이 더 소요되니, 그동안 그대가 대화해보고 즐거운 사람을 고르면 되지.
유스텐:(얼떨떨...) 뽑히려고 어필만 해봤지, 사람을 뽑는 입장이 되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 벌써부터 긴장돼요.
릭사엘: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은 몇 마디만 해도 알 수 있으니, 과정이 까다롭진 않을 거야. 걱정부터 하지 말고, 일단 해봐. 어렵다 하면 내가 평소처럼 맡아서 진행할게.
유스텐:알았어요. 나를 믿고 맡긴 일이니까 잘 뽑아볼게요!
릭사엘:기특하기는... (쪽쪽)
믿고 맡길게, 여보.
유스텐:응!
릭사엘:(귀여워... 사랑스러워... 너를 꼭 붙들어 안고는) 슬슬 저녁 시간인데, 씻고서 저녁 식사할까?
유스텐:너무 좋아요!
(웃으며 입을 헉 하고 벌린다) 헉! 그럼 저녁에 진짜 연어 정찬 나와요?
릭사엘:물론. 준비시켜 두라고 얘기했지.
유스텐:빨리 식사 시간이 왔으면 좋겠어요!
밥 먹은지 얼마 안 돼서 엄청 배고픈 건 아니지만...
(혹시나 누가 들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속닥속닥) 지금... 쪼꼬미들한테 연어 영업 중이거든요!
릭사엘:쪼꼬미들?
유스텐:(말없이 자기 배를 콕콕 가리킨다)
릭사엘:아아, (그제야 눈치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네 배를 쓰다듬는다) 안녕, 쪼꼬미들. 아빠 왔다.
(너를 보고 피식 웃으며) 애들한테 인사가 늦었네.
유스텐:하하, 당신이 어쩐 일이에요? 원래는 오면 나 말고 배부터 뽀뽀했잖아요.
릭사엘:원래도 아름답지만, 오늘따라 내 사랑이 더욱 아름다워서. (쪽)
일할 때도 사실 애들보다는 그대가 더 보고 싶지.
유스텐:정말? (쪽쪽) 나도 그런데-
릭사엘:(귀여워) 당연하지. 내 사랑이 곁에 있는데, 아무리 우리 아이들 이라지만 생각이 날 리가.
유스텐:(쿡쿡 웃으며) 아이들이 나중에 이 말 기억해뒀다가 나오고 나서 뭐라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릭사엘:(피식 웃으며) 어쩌겠어. 받아들이라 해야지. 아빠가 엄마를 사랑하는 게 잘못인가. (쪽)
유스텐:아하하! 그건 그렇죠. 아빠가 엄마를 사랑해서 아이들이 생겼는데!
릭사엘:예뻐 죽겠어, 정말... (환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네가 눈부시게 사랑스러워 너를 끌어안고 입술을 나긋하게 겹친다)
유스텐:(부드럽게 쪽쪽 마주 입맞추다가) 슬슬 씻으러 갈까요, 여보?
릭사엘:그래, 내 사랑. (너를 부드럽게 안은 채로 일어나,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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