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이름을 잃어버린

 

 




24

이름을 잃어버린


코끝을 파고드는 공기에 오래된 향이 배어 있습니다.
타오르는 향초와 삭아가는 나무의 냄새,
거기에 먼지 섞인 햇빛 냄새가 더해져
기묘하게 포근한 감각이 몰려듭니다.
눈을 떠 주변을 바라보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햇살이
푸르고 붉은 조각으로 쪼개어져
하얀 벽과 타일 위에 흩어져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예배당입니다.
아니, 아무도 없다고 하기에
존재감이 드러나는 한 사람만이
자리에 착석해 있네요.
그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올려야 할 예배당 앞에서도
고개를 빳빳이 든 채 십자가만을 바라보는 머리통이
햇빛 물든 남색으로 빛납니다.
소년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본 건 피투성이의 밤 속에 무너져 울던 아이였건만
지금은 이미 훌쩍 자란 청년일 뿐입니다.
어깨는 넓어지고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으며
어릴 적의 따스함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릭사엘이 그곳에 있습니다.
기도도 믿음도 없는 시선 속에는
그저 무언가를 오래 지켜본 사람의 낯빛만이 있습니다.
당신은 릭사엘의 뒷자석에 가만히 앉은 채로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멀리서 낮게 울리는 오르간 소리가 들립니다.
당신의 심장 소리는 그 오르간 소리를 따라
낮게도 쿵쿵 울리고,
모든 시야가 단 한 번의 숨결로 녹아내리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그렇게 당신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으면
릭사엘이 고개를 천천히 돌립니다.
당신이 지극히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이를 닮은 얼굴로.
그의 감정 없는 눈빛에 순식간에 이채가 솟아납니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입술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고 낮지만,
그는 눈빛으로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스텐.
마치 신도 세상도 모른 채
오직 당신만을 알아본 사람처럼.
유스텐:(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그대로 빼다박은 모습에 시선을 돌리며 어색하게 웃는다) 안녕, 릭사엘. 음... 잘...지냈어요?
릭사엘:(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 다시는 안 와주는 줄 알았...어. 유스.
유스텐:으응? 그럴리가요. '당신 보려고 과거로 오는 건데.' (시선을 피하다가도 힐끔힐끔 확연히 성숙해진 모습을 본다)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네요. 몰라볼 뻔 했어요. 하하...
릭사엘:...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나보네. 나는... 네가 이전에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의 일로 나를 가까이하고 싶지 않아하는 줄 알았어.
...너는 똑같이 생겼네. 변한 것 하나 없이.
유스텐:그런가요? 조금은 컸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처럼.
상처받았으면 이렇게 앞에 나타나지도 않았겠죠.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내가 얼마만에 오는 거예요?
릭사엘:(잔잔하게 반눈을 뜨고 네 턱끝을 바라보며) ...3년. 아주 오랜만이지?
유스텐:(진짜 몰랐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며) 3년이나 흘렀다고요...?
릭사엘:...오랜만에 온 사람이 누군데 그런 표정이야. 나는 널... 계속 기다렸는데. 책임을 피하는 거야?
유스텐:다시 올 때마다 시간을 훌쩍 넘기면서 오는 건 정말로 내 의지가 아니라서... 미안해요. 기다리게 해서.
당신의 말에 릭사엘은 부서지는 햇살처럼 가느다랗게 웃고는
앉은 좌석에서 몸을 일으켜 당신의 옆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그리고는 상냥하기 짝이 없는 느릿한 손길로
당신의 몸을 부드럽게 안네요.
릭사엘:(속눈썹을 잔잔히 떨며 네 어깨에 턱을 기댄다) ...미안, 그랬었지. 네 의지가 아니라고 했었는데... 이런, 내가 네 말을 100% 다 믿지는 않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꼴이 되어버렸네. 용서해줄래?
유스텐:(부드럽게 웃으며) 용서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걸요. 당신에게 화나지도 섭섭하지도 않았으니까.
릭사엘:(네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체온을 더듬는다) ...그래도, 내가 미안해서. 많이 보고 싶었어.
유스텐:...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래요?
릭사엘:음... 말하자면 긴데... (살짝 말을 고르듯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며, 네 뒷머리를 차분하게 쓰다듬는다)
유스텐:(네가 쓰다듬는 방향을 따라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린다) '이거 어째... 행동이 좀... 나 지금 17살한테 설레는 건가?'
릭사엘은 그리워 하던 이를 오랜만에 만났다는 것을 증명하듯
당신의 머리카락을 잔잔하게 쓸어내리고
당신의 어깨에 올려두었던 고개를 슬그머니 틀어
당신의 뺨에 제 뺨을 살짝 댑니다.
부드럽고 따스한 체온이 번져나갑니다.
유스텐:'3년 사이에 젖살 다 빠져서 귀여움이라곤 하나도 없어져가지고는... 하...지금의 릭스는 아직 성인도 아닌데 설레면 안되지 않나?' (머릿속으로 도덕성을 재거나 말거나 심장이 제멋대로 쿵쿵거린다.)
릭사엘:(네 귓가에 스치듯 속삭이며) ...너도, 내가 보고 싶었어?
유스텐:(마른 침이 넘어가고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깨문다. 이 큰 공간에 단 둘만 남아있어서 그런 걸까.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가 귓가를, 가슴을 간지럽힌다.) '3년 사이에 사람 성격이 이렇게 변할 수 있나? 아니, 3년만에 얼굴 바뀌었다고 설레냐고, 유스텐 이 바보야. 분명 성교육 시간에 얼굴 빨갛게 붉히던 어린 애가 맞나?' (숨을 한 번 들이키다가) 그, 그렇죠...
릭사엘:...고마워. 날 보고 싶어해줘서. 나 그동안 많이 외롭고 힘들었거든. 네가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매일 자각할수록... 그때 너를 그렇게 대했던 일을 후회했어.
유스텐:(도리도리) 그럴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잖아요. 이해해요. 그러니까 자책하지 말아요.
릭사엘:(부스스 웃으며) 유스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구나. 따뜻하고, 상냥하고... 아직도 나의 꼬마 유스야.
유스텐:(두근거리다가 "꼬마 유스"라는 말에 뚱- 해진다) 아직도 꼬마 취급이에요?
릭사엘:그럼, 키가 큰 것 같긴 한데 아직도 이렇게나 작은걸. (살짝 키득거린다)
유스텐:당신이 너무 해바라기마냥 쑥쑥 커지는 거라니까요...
릭사엘:그런가. 그 말이 맞을지도. (품을 살짝 떨어뜨리고 네 어렸던 얼굴의 흔적을 더듬듯 찬찬히 눈썹과 눈매, 광대뼈, 뺨, 콧대, 인중, 입술까지를 매만져본다)
유스텐:(얼굴을 찬찬히 매만지는 손길에 다시금 심장이 쿵쿵 울린다. 속눈썹이 가느다랗게 떨리고 입술을 달싹인다.) '아, 진짜... 무슨 17살이 이래?' 음... 릭스? 나 좀 부끄러운데요.
릭사엘:잠시만 가만히 있어봐. 얼마나 달라졌는지 좀 보고 싶어.
유스텐:(눈을 질끈 감으며) 누,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릭사엘:(부끄럼 타는 네 모습이 귀여워서 쿡쿡 웃으며) 좀 세심하게 살필 수도 있는 거잖아. 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니까.
유스텐:(뺨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눈을 반쯤 구기고 널 노려본다) 날 놀리고 싶은 건 아니고요?
릭사엘:그런 거 아니야. 그저... 그리웠으니까, 언제 다시 훌쩍 떠날지 모르고... 언제 다시 갑작스레 만날지 모르니까... 최대한 잘 기억해두고 싶어서 그래.
유스텐:그런 거라면 알겠어요. ... 전에 내가 준 건, 잘 있어요? 그... 보고 싶다고 하길래 줬던 거.
릭사엘:머리카락 얘기하는 거지? 여기 있지. (네 손을 끌어다 제 가슴 조금 위쪽에 두고는, 손을 겹쳐쥔 채 목에 걸려있는 펜던트를 쥐여준다)
유스텐:(멍하니 펜던트를 보며) 이걸... 정말 항상 간직하고 있었던 거예요?
릭사엘:늘 가지고 다니겠다고 했잖아. 바보.
당신은 손에 닿는 펜던트의 감촉을 가만히 더듬어 봅니다.
작은 타원형 로켓 펜던트는 금빛도 은빛도 아닌,
오래된 백금처럼 탁한 빛을 머금고 있고
겉면에 우아한 덩쿨 음각이 새겨져 있습니다.
펜던트 윗부분의 고리에 작은 사파이어 조각이 박혀 있습니다.
푸른빛이 아니라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남색.
그 보석을 더듬고 있으면 릭사엘의 체온에 데워진 펜던트가
자연스럽게 당신의 손바닥 안을 구릅니다.
유스텐:(입을 살짝 벌린 채 펜던트를 매만진다) ... '그저 릭스의 과거를 보겠다는 단순한 생각 하나로 왔을 뿐인데.'
릭사엘:(멍해진 네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왜 그렇게 놀란 표정이야. 난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야.
유스텐:'관계가 이렇게 깊어져도 되는 건가? 어차피 나중에 릭스는 나와 결혼하지만... 이 시대의 릭스와 너무 깊게 엮인 게 아닐까.' (미간을 찌푸리고 웃으며) 감동이네요.
릭사엘:(부드럽게 웃으며 네 손에 깍지를 끼고, 가만히 겹쳐쥔 손을 들어올려 네 손가락 끝을 바라본다)
유스텐:... 이건, 뭐하는 거예요?
릭사엘:... 글쎄, 실존을 확인하는 거라고 할까.
유스텐:'오늘따라 되게 간지러운 행동만 하네... 3년만에 보는 거라서 그런가?' (네 마음을 전혀 모르겠어서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릭사엘:(말을 조금 더 고르는 듯 하다가, 달싹이는 입술을 떼며)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었지?
유스텐:응... 마지막으로 본 당신은 정말 위태로워보였거든요.
릭사엘:그랬지... 그날의 일은 아직도 내가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이야. 그 일 후로 우리 가문은 귀족 사회에서도 교단에서도 이름이 지워졌어. 멸문된 거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저택이 불타던 날 목이 잘리고 그 다음 날 성벽에 걸리셨고... (다시 그 일을 떠올리는 게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라는 듯 한참을 침묵하다가) ...가문의 후계였던 나는 처형을 해야 한다는 귀족들의 언성 속에서, 외숙부이신 레이븐데일 공작 각하께서 거두어주셔서 살아남았어.
가문의 죄목은...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저지르신 죄는... 신께 복종하지 않는 이단들을 처단하려다, 왕족의 몸에 피를 흘리게 했다는 이유였지.
솔직히 난 아버지께서 그렇게 치명적인 사건을 벌일 인물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지만 모든 증거들이 아버지를 지목했고... 음... 그렇게 다들 사라졌어.
그 후엔 레이븐데일 공작 각하께서 내 신분과 이름을 세탁하셨고... 지금은 여기 학생으로 지내고 있어. 별로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지?
유스텐:'전부 그렇게 된 거였구나... 좋은 일이 아니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들어올려, 고개를 젓고 네 얼굴을 바라본다) 그때 겪은 일을 이렇게 전부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꽤 많은 고통이 있었겠죠.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 잿더미에서 살아남아, 여전히 사람답게 숨을 쉬고 살아간다는 게. (옅게 미소지으며 너를 그때처럼 꼭 안아주고 어깨에 턱을 기댄다) 살아남아줘서 고마워요, 릭스.
릭사엘:(가만히 너를 마주 안으며, 눈물이 고이려는 것을 꾹꾹 눌러내린다) ...고마워, 유스. 다시 나를 만나러 와줘서. 나한텐 의미가 깊어.
유스텐:언제 올 수 있고, 언제 떠나는지는 나도 예측 불가능한 것들이라 말해줄 순 없지만... 내가 당신을 잊어버려서, 혹은 미워해서라고 생각하지 말아줘요.
릭사엘:그 말은 마치... 네가 나를 그렇게 생각할 리가 없다는 것처럼 들리네. (네 어깨에 고개를 묻고 잔잔히 웃으며 얼굴을 비빈다)
유스텐:(네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눈치챘어요?
릭사엘:(해사하게 웃으며) 응, 눈치채기 너무 쉬운걸?
유스텐:하하, 똑똑하네요. 여전히.
릭사엘:(가만히 네 등을 끌어안고 나직한 숨을 내쉬며) ...정말 좋아해, 유스.
유스텐:(순간적으로 눈을 크게 뜨며 숨을 크게 들이킨다) ... '뭐, 뭐라고 반응해야 하는 거지? 현대의 릭스한테도 결혼 후에나 이런 소리 들어봤지, 사귀기도 전에 이런 말 들어본 적은 처음인데.'
릭사엘:(살짝 키득거리며) 그게 그렇게 놀랄 만한 말이야? 내가 널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잖아.
유스텐:'모, 몰랐는데?!'
우, 우정의 의미로...?
릭사엘:(그 말에 네 시선 모르게 서글픈 얼굴을 하며) ...응.
유스텐:아... 아 --- ! (머쓱하게 웃으며) 난 또 오늘따라 너무 다정해서 착각할 뻔 했잖아요.
릭사엘:(넌지시) ...뭘 착각하는데?
유스텐:어... (입술을 움찔거리다 데구르르 눈을 굴린다) 그으-렇고 그런... 음... 간질간질한 의미의?
릭사엘:(느끼는 바와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이야기하고 싶지만... 미래에서 온 이방인인 네게 차마 사실대로 이야기하지는 못하고) 그렇게 들렸어?
유스텐:(느리게 끄덕끄덕)
릭사엘:유스는 여전히 귀엽네. 아이 같고. (네 품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가만히 네 앞머리를 정돈해주며) 어릴 때랑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 아, 그때도 정신은 어른이라고 했었지. 그러면 혹시 네 나이는 내 나이를 따라서 같이 변하는 거야?
유스텐:(말없이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뭐야... 나 지금 고백도 안 하고 차인 것 같은데???' ...외관만요.
릭사엘:그렇구나. 그럼 미래의 넌 몇 살이야?
유스텐:24살이요.
릭사엘:그러면 내 나이가 스물 넷을 넘으면, 네 외관도 그때부터는 같이 늙는 거야?
유스텐:음... 그것까진 봐야 알 것 같아요.
릭사엘:그래? 음... 나 혼자 나이를 먹는 건 별로인데. 아쉬운 일이네.
유스텐:...? 내가 나이 먹은 모습이 궁금해요?
릭사엘:...응, 많이 궁금해.
꼬마 유스가 어떻게 어른 유스가 되는지 보고 싶어.
유스텐:'2025년에도 애 취급 하던데...' (얼떨떨-) 그게 뭐예요... 아이 키우는 사람처럼.
릭사엘:음-... 뭐, 유스는 아직 꼬마니까. 더 커야 하고.
내가 할 말이 아닌가? 나보다 네가 나이가 많잖아.
유스텐:이제 안 거예요? 이 꼬맹아 -
릭사엘:(네 편안한 말투에 눈까지 가득 휘며 웃으며) 이제 반말 써주는 거야? 영광이네.
유스텐:이번만이거든요.
릭사엘:(중얼) 존댓말을 왜 그렇게 고집하는지 알 수가 없다니까...
유스텐:그야... 실제로 나이가 한 세기나 차이나니까 그렇죠.
릭사엘:(키득키득) 뭐야, 할아버지 취급해주는 거였어?
유스텐:(으쓱) 네, 노인공경해야죠.
릭사엘:정말이지 재밌다니까, 넌. (가만히 네게 손깍지를 끼고 몸을 일으킨다) 곧 예배 시간이야. 여기서는 더 얘기하기 어려우니까 나가자.
유스텐:응. (커진 손이 따뜻해서일까. 매일 봐도 그리운 얼굴로 나타난 네가 반가워서일까. 깍지 낀 손을 흔들거리며) 아, 그러고 보니, 지금은 어디서 지내요?
릭사엘:(살랑살랑 흔들리는 네 팔의 감촉에 두근거리는 심장을 누르며) 학교에 기숙사가 있어서 거기에서 지내. 이곳은 학교에 딸린 예배당이야.
유스텐:그렇구나. 헉, 그러면 기숙사에서 여러 명이랑 같이 자요?
릭사엘:아니, 이곳은 상류층들만 다니는 시골의 사립학교라 기숙사는 독방이야.
침대도 넓으니까, 밤에 같이 자고 가.
유스텐:으응 - 릭스가 룸메이트랑 같이 지내는 모습도 기대했는데, 독방이라니...
릭사엘:내가 룸메이트랑 지내는 모습이 궁금해? 왜?
유스텐:또래들 앞에서는 어떤지 궁금해서요. 그동안 마주친 사람들은 전부 어른이었잖아요.
릭사엘:아, 그런 게 궁금했던 거구나. 음... 또래들과 대화는 자주 하지 않아서 소개시켜줄 만한 사람은 없는데.
유스텐:(눈을 가늘게 뜨며) 릭스... 친구 없어요?
릭사엘:아무래도... 가까운 사이에서는 이런저런 말이 오가기 마련이고 나는 숨겨야 하는 사실이 있으니까.
그래도 표면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있지만서도.
그리고 친구는 여기 있잖아. (너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다)
유스텐:(무의식 중에 줄줄 내뱉는다) 에이 - 우리는 친구가 아니라 부ㅂ, ...아니, 그게 아니라 친한 친구 맞죠...
릭사엘:부... 뭐라고?
유스텐:부.... 음... '부로 시작하는 말이 뭐가 있지?'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친한 친구라는 뜻이죠. 하하...!
(재빠르게 주제를 바꾸려 한다) 그, 그러면 인기도 많겠네요, 릭스는. 똑똑하고 잘생겼잖아요. 성격도 좋고.
릭사엘:음... 그런가? 친하게 대해주는 사람은 많은데 나는 그저 그들의 말을 듣기만 해. 내가 별로 말을 많이 하지 않는데도 살갑게 대해주니 고마울 따름이지.
유스텐:'저거 괜찮은 관계 맞나...?' 그, 정말 고마운 일이네요.
릭사엘:그렇지.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 많아, 여기. 그래서 나도 큰 무리 없이 다니는 거고.
유스텐:(살풋 웃으며) 안심이네요. 당신이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릭사엘:고마워, 유스. 내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해줘서.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나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어.
유스텐:여기서 배우는 건 어때요?
릭사엘:음- 사실 가문에서 가정교사에게 배우던 내용과 큰 차이는 없어. 문학, 법학, 라틴어, 그리스어, 철학, 수학, 지리, 역사. 이미 다 아는 내용이라서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쉽더라고.
유스텐:와 - 그럼 성적도 엄청 우수하겠네요?
릭사엘:응, 수석. (별 감흥 없이 예배당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다)
당신이 릭사엘을 따라 밖으로 따라나오면
예배당의 바깥은 봄빛으로 희미하게 물들어 있습니다.
겨울과 봄의 경계선의 선 어느 계절이네요.
햇살은 부드럽지만 살짝 서늘하고,
공기 속엔 흙과 풀의 냄새가 어렴풋이 섞여 있습니다.
살며시 실려오는 바람마다 어린 풀잎이 고개를 들고
그 사이로 떨어진 작년의 낙엽이 바스락거립니다.
예배당 바깥에 보이는 회색빛 돌벽 위에는
새로 돋은 이끼가 잔잔하게 번지고
창틀 아래엔 이름 모를 작은 흰꽃들이 무리지어 피어 있네요.
연한 황금빛 햇살을 머금은 꽃잎들이
마치 오래된 성화의 금빛 테두리처럼 반짝입니다.
학교의 건물들은 정제된 질서 속에 세워져 있습니다.
직각으로 교차하는 복도와 돌기둥 아래를 통과하는 회랑,
햇빛을 잘게 쪼개어내는 창문의 철제 격자무늬들이 보입니다.
교복을 입은 채 지나가는 학생들 위로 그 그림자가 흐릅니다.
학교 안쪽 정원에 놓인 연못 위에는
새싹이 돋은 수련 잎들이 떠 있고
물새들이 가까이 날아가며 경쾌한 물방울을 흩날립니다.
물가를 에워싸고 앉은 교복 차림의 학생들은
책을 들고 앉아 있거나 성경 구절을 암송하고 있네요.
릭사엘이 당신과 함께 그 사이를 지나쳐가면
릭사엘을 알아본 학생들이 먼저 인사와 안부를 건네오고
릭사엘은 가볍게 손을 흔들며 멀어지기를 반복합니다.
유스텐:(한 손을 입에 대며 소곤소곤) 뭐야, 완전 유명인사인데요?
릭사엘:그런 거 아니야. 다들 친절해서 그래.
유스텐:근데... 여기는 남학교인가요? 여학생은 한 명도 없네요.
릭사엘:이곳은 시골쪽에 위치한 학교인지라, 여학생을 학교에 보내는 경우가 드물거든.
유스텐:그렇구나... 여학생도 있었다면 릭스는 인기가 엄-청나게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고백도 많이 받고요.
릭사엘:...그런가? 난 잘 모르겠는데. 내가 고백을 많이 받으면 어떨 것 같은데?
유스텐:... '어떨 것 같긴.' (작게 중얼거리며) 조금 질투날 것 같은데.
릭사엘:(살짝 놀랐다가 웃으며) 아하하, 질투가 날 것 같아? 내가 그들 중 한 명과 가까운 관계가 된다면 너와 멀어질까 해서?
유스텐:(뚱 - ) ... 네. '내가 미래를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바뀔 수도 있는 거니까.' 저는 찬밥 신세가 되는 거 아니에요?
릭사엘:...그럴 일 없어. 내 관심은 너 하나에게 주기로도 벅차거든.
유스텐:... ... (안 좋은 버릇인 걸 알면서도 괜히 떠본다) 릭스가 첫눈에 반하거나, 이상형이 나타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릭사엘:(...그게 너인데. 이 말을 전할 수 있는 날은 영영 없겠지) ... 그러려나. 잘 모르겠는걸.
유스텐:(과거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끝나면, 릭스와 부부인 시간선으로 돌아가는 걸 알면서도 괜히 안 좋은 가설들이 스쳐지나간다. 자꾸만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욕심이 나서 너를 꼭 안고 올려다본다.) "그럴 일 없다"는 말. 지켜야 해요. 내가 과거를 여행하는 이상, 나한텐 릭스뿐이니까...
릭사엘:(갑자기 제 품에 쏙 안겨들어오는 너를 상기된 얼굴로 내려다본다. 네가 이렇게 시선을 올려다보면, 자신이 네게 얼마나 더 닿고 싶어 미칠 지경인지도 모르고...) 알았어. 걱정 마, 유스. 혼자 두지 않을게.
유스텐:(네 가슴팍에 볼이 짓눌리도록 푹 기대며) 진짜 약속한 거예요...
릭사엘:(저보다도 한참 작은 네 정수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응, 약속할게. 나 약속 잘 지켜. 믿지?
유스텐:응. 펜던트로 이미 확인했으니까... 믿을게요.
릭사엘:(손을 뻗어 네 등을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쓸어내리며) ...옳지, 착한 아이네.
유스텐:(익숙할 정도로 자주 들었던 말에 흔들리는 눈으로 널 다시 올려다본다. 저도 모르게 눈두덩이가 무거워져 황급히 고개를 돌린다) 아이 아니라니까요...
릭사엘:아이가 아니야? (부스스 웃으며 옆으로 돌아가는 네 고개를 붙잡아 저를 바라보게 하고는) 이렇게 따뜻하고 해맑고 상냥하고 사랑스러운데. 아이처럼.
유스텐:'아... 울면 안되는데 울 것 같아. 내가 왜 이러지...'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애쓰며 환하게 웃는다) 바보...
릭사엘:(키득거리며) 그럼 우리는 바보끼리 붙어다니는 거겠네. 좋은 조합이다, 그렇지?
유스텐:그러네요... (밑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눈을 내리깐다) 진짜 바보 같다.
릭사엘:(네 손에 깍지를 단단히 끼고는 가만히 앞뒤로 흔들며 웃는다) 그러게. 바보인 걸 다른 사람들에게 안 들키려면 얼른 기숙사로 가야겠는걸.
유스텐:(조용히 안았던 팔을 풀고) 그러게요. 어서 가요.
릭사엘:응.
당신은 릭사엘이 이끄는 방향을 따라
마저 걸음을 옮깁니다.
화창한 하늘 아래로 낮게 떠가는 구름을 지나
직각으로 꺾이는 건물들을 돌아돌아 가면
고요하면서도 고풍스러운 회백색 벽돌 건물이 나타납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하얀 비둘기가 조각된 대리석 조각이 장식처럼 놓여 있고
유리창 너머로 한낮의 햇살이 내부를 밝히고 있습니다.
계단을 하나 오르고 복도를 조금 건너가면
릭사엘이 품에서 열쇠를 꺼내어 달칵 나무 문을 엽니다.
정갈한 고동색의 책상과 책장, 서랍장, 옷장들이 가볍게 놓여 있고
창가 가까이에 놓인 침대가 하나 있습니다.
책상과 침대 사이에는 작은 파티션이 구획을 나누어두고 있네요.
릭사엘이 귀족 도련님으로 생활할 때의 방보다
절반 정도 작은 방입니다.
릭사엘은 당신을 안으로 들여보내고 마저 문을 잠근 뒤
서랍장을 열어 사탕이 든 작은 유리병을 꺼내고
하나를 꺼내어 당신의 입에 쏙 밀어넣습니다.
순식간에 달콤한 레몬맛이 혀끝에 번집니다.
유스텐:'달다...' (입 안에서 사탕을 데굴데굴 굴리며 여기저기 방 내부를 살펴본다)
릭사엘:(다시 병 입구를 닫아 서랍에 넣으며) 예전에 단 걸 좋아한다고 해서 다음에 오면 많이 주겠다고 했었는데... 약속 못 지켜서 미안. 이걸로 조금이나마 용서해줘.
유스텐:(사탕을 오물거리며 고개를 젓는다) 이거 하나면 충분해요.
릭사엘:(살짝 웃으며) 그래? 다행이다. 계속 마음에 얹혔었거든.
편하게 있어, 난 옷 좀 갈아입을게.
유스텐:(끄덕끄덕하고는 침대에 앉아 책장에 꽂혀있는 게 뭔지 살펴본다)
책장을 살펴보면 온갖 교육용 서적이 눈에 띕니다.
지리, 역사, 라틴어, 철학 관련 책이 주를 이루네요.
그중엔 독특하게도 민속학에 대한 책도 꽂혀 있습니다.
유스텐:"민속학"도 배워요?
릭사엘:아,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아니고 내가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서.
유스텐:(고개를 갸웃거리며) 갑자기?
릭사엘:음... 갑자기는 아니고. 사실 더는 신을 믿지 않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인류에 대한 관심이 늘었거든.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됐어.
유스텐:아하 - '하긴... 대학도 인류학? 어쩌고로 갔다고 하지 않았나.'
릭사엘:재밌는 일이지. 난 내가 평생 신에게 봉사하며 살 줄 알았는데, 관심이 다른 쪽으로 갈 줄은.
유스텐:(흘긋) '외계인 같이 생긴 신을 믿어서 사이비 교주가 되니까 신에게 봉사하는 건 맞지 않나...'
그럴 수 있죠.
릭사엘:(벗고 있던 상의를 의자에 대충 걸치고는 책장에 있던 민속학 책을 꺼내어 네게 내밀며) 최근에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인류학이라는 강의가 개설됐대. 나중에는 그 강의도 한 번 들어보고 싶어. 알면 알수록 인간은 다채롭고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유스텐:(다른 생각을 하다 네 하얀 몸이 가까워지자 다급하게 한 쪽 팔을 들어올려 눈을 가린다) 옷! 옷은 입고 줘야죠!
릭사엘:...? 아, 옷. 알았어. (옷장에서 편안한 셔츠를 꺼내 가볍게 걸쳐 입는다)
유스텐:(안도의 숨을 내쉬며 네게서 책을 받고 파라라락 빠르게 페이지를 넘긴다) ... ... (바로 덮으며) '나한테는 좀 어려운 내용 같다.' 정말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릭사엘:(그런 네 모습을 지켜보고는 키득거리며) 그렇게 빨리 읽었어? 능력이 대단한걸?
유스텐:(눈치...) 하하... 제가 좀...
릭사엘:(별로 관심이 없는 눈치네. 네게서 책을 도로 받아들고 책장에 다시금 꽂으며 가만히 바지춤을 푼다) 네가 관심 있는 영역은 어느 쪽이야? 문학? 수학? 예술?
유스텐:(바지춤을 벗으려는 네 손을 두 손으로 저지한다) 으아아! 자, 잠깐만... 바지는 갑자기 왜 벗어요?!
릭사엘:응? 갈아입는다고 했잖아.
유스텐:여기서요?!
릭사엘:그럼 바깥 복도에서 갈아입어?
유스텐:아아니...그건 아닌데... (삐질...) 그러면... (침대에 얼굴이 닿도록 뒤집어눕는다. 뭉개진 목소리로) 이러고 안 볼테니까 어서 갈아입어요!
릭사엘:(이쯤 되니 네 반응이 의아해서 옷을 벗다말고 침대로 다가가 네 몸을 뒤집어보며) 왜 그런 반응이야? 무슨 문제라도 있어?
유스텐:(필사적으로 널 안 보려고 눈을 아플 정도로 끼긱끼긱 돌린다) ... 당신, 너무 많이 컸어요. 이제 어리지 않잖아요.
릭사엘:봐도 상관 없잖아. 친구 사이에.
유스텐:'친구...' 그, 그래도...
릭사엘:음... 내가 갑자기 너무 커서 낯설어서 그래? 이런 건 예상을 못했는데...
유스텐:커도 너무 커버렸어요...
릭사엘:어... 징그럽게 여겨진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유스텐:아니 그건 절대 아니고요. 으음... '내가 너무 과민반응하는 건가?'
하아- 그냥... 내가 좀 놀라서 그랬어요. 편하게 갈아입어요. 어차피 릭스 방이니까.
릭사엘:음... 알았어. (더 물어봐도 답은 안 해주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가만히 바지를 내리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유스텐:(편하게 갈아입으라 했으면서 몸을 옆으로 돌린다.) '현대에서도 릭스 알몸은 질리도록 자주 봤으면서 왜 이렇게 부끄럽지? 아직 성인이 아니라서 그런가?' (복잡한 생각으로 눈앞이 빙빙 돌다가 네 체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말없이 네 체향이 짙게 밴 이불 냄새를 맡는다.)
'이때는 허브향이 아니었구나...'
릭사엘:(발목이 드러나는 루즈한 바지를 입은 채 네가 누운 침대 옆자리에 풀썩 누우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유스텐:새삼 릭스한테서 좋은 냄새가 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릭사엘:그래? 무슨 냄새인데? 나는 못 맡으니까 궁금하네.
유스텐:뭐랄까... 포근한 냄새가 나요. 따뜻한 햇살 같기도 하고...
릭사엘:그건 그냥 이불 냄새 아니고?
유스텐:그런가? 안을 때도 같은 향이 났던 것 같은데.
릭사엘:그 사이에 그런 것도 맡았어? 후각이 좋구나, 유스는.
유스텐:사람은 누구나 체향이 존재하잖아요.
릭사엘:하긴. 너한테도 좋은 향기가 나긴 해. 따뜻하고 포근한 냄새.
유스텐:(별 생각없이 웃으며) 이 시대에서는 당신만 아는 향이 되겠네요.
릭사엘:그래? 제대로 맡지는 않았었는데. 어땠더라. (살짝 상체를 낮춰 네 품에 들어가 고개를 묻는다.)
유스텐:(눈썹을 들어올리며 뻣뻣하게 굳는다)
릭사엘:(가만히 고개를 좌우로 비비며 숨을 들이킨다) ...살짝 수증기 같기도 하고, 하얗기도 한 포근한 냄새가 나.
유스텐:... '친구끼리는 원래 이러나? 알렉스는 딱히 좋은 냄새 안 나던데.'
릭사엘:(심장이 두근두근 뛰며 더운 숨을 코끝에 흘려보낸다) 유스는 미래에서 사귀는 사람 있었어?
유스텐:... '어, 어떻게 얘기해, 이걸...' 으음 - 누굴 사귄 적은 한 번도 없었죠...? '릭스랑도 연애 안 하고 바로 결혼했으니까...어쨌든 거짓말은 아니잖아.'
릭사엘:(네가 보지 못하게 얼굴을 묻고는 배시시 웃으며) 그랬구나. (저도 모르게 안심이 되어서 가만히 눈을 깜빡거리며 더욱 파묻힌다)
유스텐:누굴 만날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살았었거든요.
릭사엘:(살짝 부스스 웃으며) ...좋은 사람 만나서 함께해야지. 난 네가 미래에서도 행복하게 지내면 좋겠어. 그동안 힘들었던 일이 기억나지 않을만큼 행복하게.
유스텐:'난 이미 당신 덕분에 행복하게 지내는데.' (눈을 내리깔며 중얼거리듯이) 릭스, 예전에 약혼에 대한 얘길 했을 때 기억나요?
릭사엘:...기억나. 그건 갑자기 왜?
유스텐:...나도, 내가 언젠가 함께할 사람이 당신 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릭사엘:큰일났네. 나 같은 사람은 또 없을 텐데. (장난스럽게 웃으며 네 품에서 떨어져 나와 네 얼굴을 가만히 마주본다)
유스텐:(같이 마주보며) 혹시 모르죠. 세상은 넓고 사람도 많으니까요.
릭사엘:(울망거리는 눈망울로 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 같은 사람 말고,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나야지. 물론 찾기는 어렵겠지만, 세상에 존재는 하지 않겠어?
유스텐:(고개를 저으며) 방금 당신이 말했잖아요. 당신 같은 사람은 또 없을 거라고. (손을 뻗어 네 눈가를 부드럽게 쓸어준다) 왜 그런 표정이에요, 릭스.
릭사엘:으응, 아니야. 그냥 생각이 좀 많아져서 그래.
(왜 이렇게 다정한 거지. 울어버릴 것 같게...)
유스텐:하하, 오랜만에 보는 건데 날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하는 거예요? 이거 섭섭한데 -
릭사엘:...너랑 관련된 생각이니까 너무 섭섭해 마. 네가 앞에 있는데 내가 어떻게 다른 생각을 하겠어.
유스텐:...무슨 생각을 했는지 물어봐도 돼요?
릭사엘:그냥... 이런저런 거.
유스텐:(눈가를 쓸어주던 손을 물리며) 말하기 곤란하면 말하지 않아도 돼요.
릭사엘:응... 고마워, 유스. (얼굴을 조금 더 가까이 붙이고, 네 이목구비 하나하나를 기억하려는 듯 가만히 매만진다)
유스텐:(이번엔 무어라 하지 않고 스르르 눈을 감은 채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하도록 둔다.)
릭사엘:(가만히 네 얼굴을 매만지다가 입맞추고 싶은 충동이 든다. 그러나 이 순간을 그저 흘려보내기는 싫어서 당혹스러운 감정을 누른 채로) 피곤해?
유스텐:...아니 - .
릭사엘:... 유스, 만약에 네가 과거로 가서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이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낀다고 한다면 넌 어떨 것 같아?
유스텐:릭스 외에... 다른 누군가를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글쎄. 전 이미 한 명에게 주는 관심으로도 벅차서요. 설령 나도 그 사람을 좋아한다 해도, 난 좋은 연인은 될 수 없을 거예요.
9개월에 한 번씩밖에 볼 수 없으니까. (애써 웃으며) 그건 상대한테 너무 미안한 일이잖아요.
릭사엘:(피식) 그건 그렇네... 잊어줘. 실없는 소리를 했어.
유스텐:... 좋아하니까 기다리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릭사엘:... (다른 사람 얘기로 시작했던 것이 마치 제 얘기가 된 것 같은 기분에) 그래도 그 사람에게도 기다림이 나쁜 것만은 아닐 거야.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보고 싶어하는 게, 애정의 증명이 될 수도 있겠지.
유스텐:그렇지만... 9개월이라는 긴 시간 사이에 힘들고 외로운 시간도 있을지 모르잖아요. 거의 1년에 한 번씩만 볼 수 있는 사람이 어떻게 좋은 연인이 될 수 있겠어요...
릭사엘:네 말을 들어보면, 미안해서라도 그렇게 못 하겠다는 뜻으로 들리네.
유스텐:... ... 사랑은 이기적이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릭사엘:그렇구나. 유스는 건강하네- 좋은 일이야.
유스텐:그런가요? 이기적이면 안 된다느니 해놓고는, 난 이미 이기적인 부탁을 한 번 했는데.
... (다른 말로 돌리며) 오늘은 특별한 일정 없어요?
릭사엘:응, 수업이 끝난 오후라 저녁을 보내고 쉬면 돼. 유스는 뭘 하고 싶어? 좀 쉴래?
유스텐:(고개를 가로저으며) 무려 3년만에 보는 건데 가만히 앉아 쉬고만 있으면 아쉬울 거잖아요.
릭사엘:그건 그렇지. 그럼 뭘 할까?
... 난 이렇게 너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유스텐:그럼 오랜만이니까 릭스가 하고 싶은 걸 할까요. 잠들기까진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그동안 내 얼굴을 질리도록 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릭사엘:그럼 우리 벌칙 놀이나 살롱 놀이할까?
유스텐:응? 그게 뭐예요?
릭사엘:벌칙 놀이는 우리가 직접 만든 '규칙'을 어기면 어긴 사람이 벌칙을 수행하는 거고, 살롱 놀이는 쉽게 말해서 비밀을 하나씩 말하다가 비밀이 먼저 다 떨어지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야.
유스텐:오 - 처음 들어봐요. 재밌겠다. 할래요!
릭사엘:그럴까? 그럼 어느 걸 하고 싶어?
유스텐:음 - 살롱 놀이? '릭스한테 비밀이 있긴 할까?'
릭사엘:(키득키득 웃으며) 그러지 뭐. (가만히 네 얼굴에서 손을 떼고 베갯잇을 가지런히 쥔다) 유스부터 해봐.
유스텐:'내 비밀...? 뭐가 있지?' 음 ------ 사실 내 목에 점 있어요. 모르는 것 같아서. 근데 지면 벌칙이 뭐예요?
릭사엘:글쎄. 이제 정해볼까? 보통은 즉석 시나 노래를 만들어 승자에게 바치게 하는데 너랑은 뭘로 해야 할지 모르겠네.
유스텐:그러면! 간단하게 소원 들어주기 어때요?
릭사엘:그럴까? 좋아.
으음... 그럼 이제 내 비밀을 말할 차례인 거지? 조금 곤란하네. 너한테는 비밀을 딱히 만든 적이 없어서.
유스텐:재밌겠다고 고른 거긴 하지만, 나도 마찬가지라 처음부터 고민을 엄청 많이 했어요. 으음 - 그냥 벌칙 놀이를 하자고 할 걸 그랬나.
릭사엘:음... 하지만 이미 시작했는걸? (잠시 고민하며 머리를 굴리다가) 이거 얘기하면 되겠네. 나 사실 열 살이 되어서까지 어머니와 종종 함께 잤어.
유스텐:(눈썹을 들어올리며) 정말요?? 어쩌다 같이 자지 않게 된 거예요? 백작님 때문에?
릭사엘:어머니께서 남쪽의 따뜻한 시골로 홀로 요양을 떠나시면서 밤을 버티는 수밖에 없어졌거든.
아버지께서는 이때까지 살아계셨어도 내가 그 나이까지 어머니와 함께 잠들었는지 모르실걸?
유스텐:그렇구나. 귀엽다... '지금의 릭스는 혼자서도 아주 잘 자는데.'
릭사엘:(키득키득 웃으며) 어릴 때 얘기지. 이제 네 차례야.
유스텐:음 - 입양을 한 번 당했다가 파양된 적이 있어요. '근데 이거 비밀이 맞나? 뭐... 알렉스도 모르는 거니까.'
릭사엘:... (잠시 말이 없어졌다가) 그건... 너무 슬픈 비밀이잖아.
유스텐:(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다) 외모를 보고 트로피로 쓸 수 있겠다 싶었던 것 같은데, 너무 눈치보고 말수도 적어서 마음에 안 들었나 봐요.
릭사엘:(그런 네 모습이 어쩐지 아픔을 감추는 것처럼 느껴져서,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네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그 사람들이 잘못했네. 우리 꼬마 유스는 조금만 따뜻하게 대해줘도 이렇게 조잘조잘 말을 잘하는 귀여운 아인데.
유스텐:(장난스럽게 웃으며 농담을 던진다) 하하, 그럼 입양해줄래요? 아, 미성년자가 성인을 입양할 수 있으려나?
릭사엘:서류상으로는 내가 출생일이 빠르니까, 가능은 하지 않을까? (키득거린다)
유스텐:그렇게 되면 난 릭스를 뭐라고 불러야 하나 - (고개를 기울이며) 아빠?
릭사엘:응, 우리 아가. (피식거리며 네 머리를 마저 쓰다듬는다)
유스텐:(쿡쿡 웃으며) 17살이 무슨 아빠예요 - 릭스도 참... 이제 당신 차례예요.
릭사엘:음... 뭐가 있으려나. 나 사실 당근 못 먹는 거?
유스텐:으, 응? 당근을 못 먹는다고요? '이건 지금의 릭스랑 있을 때도 몰랐던 사실인데.'
릭사엘:응, 특히 익힌 거. 식감이 이상해서 도저히 못 먹겠더라고.
다른 이와 겸상할 때 식탁에 올라오면 먹기는 먹는데... 그럴 때는 씹는 척하고 그냥 꿀꺽 삼켜.
유스텐:그래도 아예 안 먹지는 않네요. 기특해라. (쓰담쓰담)
릭사엘:(반눈을 뜬 채 피식피식 웃으며 네 손길에 제 머리카락을 비빈다) 자, 이제 다시 네 차례.
유스텐:사실...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 입을 연다) 차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릭사엘:(눈을 살짝 크게 뜨며) ...그랬어? 몰랐어.
유스텐:설탕을 넣으면 마시긴 하는데 이 시대는 설탕이 귀하잖아요? 그래서 그냥 마셨어요.
릭사엘:얘기를 하지... 난 차를 좋아해서 그저 좋은 거 주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다음부터는 신경 쓸게.
유스텐:괜찮아요. 못 먹는 건 아니니까...
릭사엘:(살짝 웃으며) 내가 잘해주고 싶어서 그래, 너한테.
유스텐:그 말, 내가 릭스에게 있어 굉장히 특별한 사람이 된 것처럼 들리는걸요?
릭사엘:...특별하지. 이걸 내가 말로 해야 알아?
유스텐:사실 이미 아는데, 직접 듣고 싶어서 그랬어요.
릭사엘:귀엽기는... (살며시 미소짓다가) 이제 또 내 차례네. 어떡하지. 순서가 너무 빨리 돌아와서 생각해둔 게 없는데.
유스텐:없으면 내가 이기는 거죠. 정말 더 없어요?
릭사엘:음... 잠시만... 있기는 있을걸?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 나 5살쯤 되었을 때 어머니께서 임신하셔서 동생이 생길 뻔했는데, 내가 하루 종일 꺼이꺼이 울었대.
유스텐:네...???
릭사엘:(키득거리며) 진짜야. 그때 어머니께 울고 매달리면서 어머니를 뺏기기 싫다고, 동생은 천사로 만들어서 하늘로 돌려보내달라고 울었었대.
유스텐:(눈을 가늘게 뜨며) 릭스...
릭사엘:(엷게 미소지으며) ...어릴 적이라 난 사실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어머니께서 결국은 유산을 하셔서... 음...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생각보다 꽤 힘들었어. 어릴 땐 그게 내 탓 같았거든.
유스텐:그럴 리가요... '어릴 때의 릭스는 정말이지 귀엽지 않은 구석이 하나도 없네.'
릭사엘:지금은 괜찮아. 동생이 세상에 태어났었다면 어쩌면... 지금 내 곁에 남은 가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또 어쩌면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에 그 아이도 참혹하게 죽었을 거라는 생각도 드니까.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런 아픔도 몰랐을 때 갔던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속에 담긴 이야기를 꺼내려니 눈가가 살짝 촉촉해진다)
유스텐:(점점 네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눈치채고 제 품으로 끌어안는다) 더 얘기하지 않아도 돼요.
릭사엘:하하... 괜찮아. 그저 가정을 해본 것뿐인데 뭘. 나 이런 생각 정도로 무너질 만큼 약하지 않아, 유스.
유스텐:(네 뒷통수를 쓰다듬으며) 알죠. 당신이 강한 사람이라는 건.
릭사엘:(네 머리카락에 마저 제 고개를 비비며 웃는다) 알고 있었어? 모르는 줄 알았어.
유스텐:당신이 어릴 때부터 알았는걸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무너지지 않고 더 잘해보려고 노력했잖아요. 뭐든...
릭사엘:...그거야 노력하는 것 말고 달리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특별할 건 없었어.
유스텐:... 그게 특별한 건데, 스스로를 너무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하지 말아요.
릭사엘:음...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건 아니고... 나도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는 얘기였어. 사람마다 이야기는 제각기 다르지만, 사연을 듣고 보면 다들 그렇게 살잖아.
유스 너도 힘든 상황에서도 열심히 살았고. 다 그런 거지.
유스텐:그렇죠.... '어쩌다 이런 진지한 분위기가 됐지?' (헛기침을 하고) 흠흠, 이제 내 차례네요?
릭사엘:(슬픈 표정을 덜어내고 키득거리며) 응, 어서 해봐. 기대되네.
유스텐:나 뼛속부터 무신론자예요. 신이 존재한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해봤어요. '...너무 무신론자라 릭스를 처음 봤을 때도 컨셉충이라 생각했었지.'
릭사엘:(저 자신도 신을 믿지 않게 된 지 오래라 별다른 반응 없이) 그래? 독특하네... 미래에선 그게 흔해?
유스텐:흔한 편이죠?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여러 종교가 들어오기도 했고요.
릭사엘:그렇구나... 다른 종교라. 미래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사나 보네. 이 시대엔 서로 자신들의 종교를 다른 종교의 신도들에게 퍼뜨리기 위해 전쟁을 치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데 말이야.
미래가 어떤지 나는 잘 모르지만, 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살기에 나쁘지만은 않은 곳 같아.
유스텐:지금이랑 비슷한 점이라면... 지도자를 잘못 고르면 안된다는 부분이랄까요.
릭사엘:그건 경험담?
유스텐:그...그렇죠...
릭사엘:힘든 시대구나... 인간은 참...
유스텐:시대가 변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머리가 좋아지는 건... 아니니까요.
릭사엘:그러게. 학습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안 되고...
아. 그러고보니 또 내 차례네. 또 뭐가 있더라? (곰곰이 생각해본다)
어릴 때... 아버지 서재에 몰래 들어갔다가 코르크 마개 열린 위스키가 있기에 궁금해서 입 대 본 적이 있어... 진절머리치면서 뱉어냈지만.
유스텐:네??? 하하! 어린 시절의 릭스는 정말 사고뭉치였네요.
'지금은 엄청 잘 마시는데.'
릭사엘:궁금해서 어쩔 수 없었단 말이야... 나 그때의 술 맛이 정말 끔찍했던 기억이 있어서 앞으로도 술은 안 마실 것 같아.
유스텐:(슬쩍) '되게 잘 마시던데.'
릭사엘:...? 왜 그런 표정이야?
유스텐:응? 아, 아니에요. 의외라서요. 술 잘 마실 것 같았거든요.
릭사엘:음... 전혀? 나 내 또래들이 마신다는 사이다나 희석한 에일조차 마셔본 적 없어.
유스텐:'...지금은 어쩌다 잘 마시게 된 거지?' 그렇구나...
그럼 평소에 뭘 마셔요?
릭사엘:난 차를 훨씬 좋아해. 주스도.
유스텐:'귀엽다...' 주스 좋죠.
릭사엘:너무 어린 아이 입맛 같진 않고?
유스텐:그건 모르겠고 귀여워요.
릭사엘:너도 참... (피식 웃으며) 이제 다시 네 차례.
유스텐:술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음... 술 잘 못해요. 맥주만 가끔 한 캔씩만 마셨어서 몰랐는데, 최근에 알았어요.
릭사엘:그래? 잘 못 마시는구나. 귀여워.
유스텐:(한 쪽 눈을 구기며 입꼬리를 끌어당긴다) 자기는 술도 입에 안 대려고 하면서?
릭사엘:아버지 어머니께서 술을 잘 드셨으니까 나도 마시려면 잘 마시긴 할걸? 주량은 유전이라고 했어.
유스텐:(중얼) 유전의 부조리함이란...
릭사엘:(키득거리며 남은 비밀이 무엇이 있는지 고민해본다) 음... 이제 내 차례인데... 이제 거의 다 떨어졌는지 생각이 안 나. 큰일 났네.
유스텐:(키득거리며) 너무 가까운 사이는 살롱 놀이하면 안되나봐요. 비밀이랄 게 없어서.
릭사엘:그럴지도 모르겠네. 게임이 금방 끝나잖아. (까지 얘기하다가 툭) ...사실 나 네 초상화를 그려뒀었어. 저택이 불타면서 사라졌지만.
유스텐:(웃다가 놀란 표정으로) 어...?
릭사엘:... (끄덕)
유스텐:왜 그렸는지 물어봐도 돼요?
릭사엘:...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그때.
유스텐:... 지금보다 더요?
릭사엘:네가 와주지 않았던 최근 3년보다는 덜했지. (슬쩍 웃으며 손바닥으로 네 뺨을 감싼다)
유스텐:(흔들리는 눈으로 시선을 내리깔며) ... (이렇게 깊게 엮여도 되는 걸까?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모든 추억이 네 기억 속에서 사라질 거라 생각하니까 가슴이 저려온다.)
릭사엘:...유스, 넌 정말 내게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야. 어디 가지 않았으면 해. 물론 네 의지가 아닌 일로 부담을 주려는 생각은 없지만... 항상 돌아와줬으면 좋겠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든, 나는 너를 기다릴 테니까.
유스텐:'이건... 어떤 의미지?' ... 나에게 있어 마찬가지로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에요. 가능하면 그러고 싶지만, 아마도 과거를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겠죠. '정확히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릭사엘:(웃고 있던 표정이 점차 식어내린다) ... 그 말은, 오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야...?
(좀처럼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 왜... 어째서...? 왜?
유스텐:내가 과거로 올 수 있도록 해준 도구는... 현대에도 보편화 된 기술이 아니에요. 굉장히 구하기 힘든 물건이라고 들었어요. 남은 시간은 내가 알기로 아직 걱정할 정도는 아니니까... (까지 말하고 네 표정을 마주하자 가슴이 쿡쿡 찔리는 듯 아파온다) ...
릭사엘:(하늘이 무너진 것을 보듯 하얗게 질린 얼굴로 네 얼굴을 가만히 쓸어본다. 점차 눈가에 눈물이 고이며 시야가 흐려진다) 그런... 그런 게 사실이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어떻게, 어떻게... 나한테는 너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렁그렁 차오른 눈물이 뚝뚝 맺혀 뺨으로 흘러내린다)
유스텐:아... ... '알려주지 말았어야 했나. 하지만 그랬다가 날 하염없이 기다리기라도 한다면...' (차마 널 마주하지 못하고) 미안해요...
릭사엘:(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온몸을 잠식하는 서러움을 참지 못하고 너를 품에 가득 끌어당겨 어깨를 들썩인다)
유스텐:(어떤 말을 해도 위안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조용히 너를 마주안는다)
그렇게 릭사엘은
한참이나 어깨를 들썩이며 울다가
기운을 다했는지 이내 고른 숨을 내쉬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조용히 잠든 릭사엘의 등을
한참이나 말없이 쓰다듬으며 깊은 잠에 빠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