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결혼식과 뱀비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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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과 뱀비늘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듯 내려앉는 초여름 오후.
예식장 옆 작은 정원에서 흔들리는 꽃향기와 새소리가 넘어옵니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웃음이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옵니다.
결혼식을 위해 치장을 하느라 따로 차를 탄 탓에
아직 릭사엘은 이곳에 당도하기 전입니다.
곧 결혼식이 진행될 이 예식장 대기실에 홀로 서 있으니
복잡함과 설렘이 교차하는 기분이 듭니다.
옷을 매만지면, 하얀 예복은 당신의 몸에 꼭 맞게 재단되어 있고
따사로운 햇살이 천 자락의 광택 위를 미끄러집니다.
옅게 손끝이 떨려오네요.

...결혼식 당일은 되게 기쁘고 설레고 그럴 줄 알았는데. (물먹은 솜처럼 가슴이 무겁다가도,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도 모르겠고, 사실은 전부 다 내 망상이고 릭사엘은 나타나진 않는 게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들다가 고개를 젓는다)
(갑자기 실없이 키득거리며) 와중에 양쪽 다 부모님이 없는 결혼식이라니.
마음이 뒤숭숭했다가, 우스웠다가를 왕복하고 있으면
뒤에서 발소리가 천천히 다가옵니다.
당신은 반사적으로 등을 돌립니다.
검은 예복을 빼입은 무척이나 키가 큰 사내,
당신과 오늘 결혼을 올리려 치장한 릭사엘이
짧아진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대기실로 들어오네요.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면, 뒷목을 덮던 머리카락은 짧게 쳐져 있고
전체적인 스타일은 앞머리를 반쯤 넘긴 세미 포마드를 하고 있습니다.




머리 기른 거 아깝지는 않아요?

당신이 릭사엘의 그 말에 그의 예복을 훑어보면
어둡고 단정하면서, 이곳저곳 놓인 장식 배치가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만이 듭니다.
단추 하나 허투루 잠그지 않은 모습에서
어쩐지 그의 결심과 책임감이 엿보이는 것 같습니다.



















왜 사람들이 시작할 때 제일 두려워하는지 알 것 같아요. 분명 우리 결혼생활은 행복할 거라는 믿음이 있지만, 제 인생의 2번째 시작 같은 느낌이라 온갖 걱정이 앞서요.
연애와 결혼은 다른 거잖아요. 자꾸만... 쓸데없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도 걱정이 되나?






그렇게 당신들이 마음을 추스리고 웃고 있으면
곧 예식장 직원이 부케를 안고 대기실 안으로 들어옵니다.
"곧 예식 시간입니다. 준비 되셨나요?"
당신이 눈물을 지워내고 고개를 끄덕이자
직원은 품에 안고 있던 부케를 당신의 손에 건네줍니다.
파스텔톤의 분홍빛이 어우러지는 핑크 카라 부케네요.
우아하면서도 부드러운 이미지입니다.
당신이 그 부케를 가만히 어루만지고 있으면
릭사엘은 아무 말 없이 당신의 빈 손을 쥡니다.
따뜻하고도 확고한 온기.
점차 두려움이 지워지고 설렘이 그 자리를 채웁니다.
당신들은 천천히 숨을 가다듬고
예식장으로 향하는 걸음을 시작합니다.
서로를 향한 믿음이 서약이 되는 날.
대기실을 나와 햇빛 아래 오롯이 서면
하늘은 구름 하나 없이 투명하고
바람은 결혼식장을 스치며 하얀 천막과 꽃장식을 흔듭니다.
느릿하게 흐르난 강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이
오늘의 결혼식을 축복하는 것 같습니다.
푸른 잔디 위에 놓인 간이 제단과 의자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고
하객들은 얼떨떨하면서도 밝은 얼굴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91 |
| 판정결과: | 실패 |
두근거리는 심장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초청장을 보낸 하객들은 모두 참석해준 것 같습니다.
그렇게까지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당신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나 봅니다.
고개를 들어올려 릭사엘을 바라보면
차분하게 절제된 광택이 도는 정장을 입은 릭사엘이
깊은 애정을 담은 채 당신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발걸음이 천천히 길게 뻗은 버진 로드로 내디뎌집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마주치는 하객들의 시선과
나풀거리며 내려앉는 초여름의 꽃잎들,
한 손에 꽉 쥔 아름다운 부케와
당신을 안심시키려는 듯 따스한 릭사엘의 손이 느껴집니다.
맑고 투명한 햇빛 아래 자신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아 간신히 참아내면
이윽고 주례사의 앞까지 발걸음이 닿습니다.
울듯 말듯한 당신의 얼굴에 릭사엘의 얼굴에 곤혹이 스칩니다.
그러다가 하객들은 안중에도 없는지,
당신의 눈가를 매만지고 손등을 토닥여주네요.


깍지를 낀 손가락 너머로 그의 존재가 느껴집니다.
당신이 진정했다는 것을 확인한 주례사가
다행이라는 듯 웃으며 입을 열기 시작합니다.
부드러운 오케스트라 음악이 예식장 안을 흐르며 그의 말과 조금씩 어우러집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아주 특별한 순간을 함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부드러우며, 강물은 잔잔하고, 꽃들은 조용히 피어나 있지요."
"마치 자연도 이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하듯, 조심스레 숨을 고르며 지켜보는 것이겠지요."
"오늘 이 자리에 선 두 사람은 서로를 선택했고, 서로를 이해했으며,"
"수많은 순간을 견딘 끝에 앞으로의 모든 계절을 함께하겠다고 결심한 이들입니다."
"결혼이란 완벽함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함께 보듬으며 살아가는 용기이지요."
"어떤 날은 햇살 같고, 어떤 날은 비바람 같겠지만,"
"오늘 이들이 맺는 약속은 그 모든 날을 함께 견뎌내겠다는 다정하고 단단한 선언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가장 가까운 편이 되어 누구보다 먼저 기쁨을 나누고,"
"누구보다 조용히 아픔을 들어주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는, 이 두사람이 앞으로도 그 눈빛을 잃지 않기를"
"서로를 바라보며 지금처럼 웃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두 분, 서로를 마주보시지요."


당신들이 서로를 마주보고 서자 주례사가 담담하게 서약문을 읊기 시작합니다.
그의 시선이 먼저 당신을 향합니다.
"애쉬미어 신랑분께 먼저 묻겠습니다."
"당신은 눈 앞의 이 사람을, 사랑하는 동반자로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리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변함없이 곁을 지키겠다고 약속하시겠습니까?"

당신이 한참이나 고민한 듯 긍정을 답하자
주례사는 화답하듯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이번에는 릭사엘을 바라봅니다.
"다음으로 벨손드 신랑분께 묻겠습니다."
"당신은 지금 눈 앞의 이 사람을 인생의 친구이자 연인으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리고 어떤 날에도 이 사람의 손을 놓지 않겠다고,"
"어떤 일이 닥쳐도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겠다고 약속하시겠습니까?"

그렇게 답하며 당신을 바라보는 릭사엘의 시선은 한결같이 곧고
더없는 애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불현듯 또 다시 울고 싶은 벅차오름이 덮칩니다.
"두 사람은 오늘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미래의 계절을 함께 걸어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이 서약은 비단 오늘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이 서약은 두 사람의 앞으로의 삶에서 매일 새롭게, 그리고 깊게 지켜질 것입니다."
"한 걸음 더 함께 나아갈 다짐을 위한 반지 교환식이 있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잠시 뜸을 들이듯 주례사가 공백을 만들자
부드러운 결혼식 음악이 조금 더 선명하게 들려옵니다.
릭사엘이 그에 조심스럽게 품에서 무언가를 꺼냅니다.
백금빛으로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
그는 당신의 손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끌어당기고
조심스럽게 당신의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웁니다.
그리고는 당신의 손을 매만지듯 덮다가,
제 것으로 보이는 반지를 당신의 손에 넘겨줍니다.


주변의 모든 분위기가 정숙하게 가라앉듯 붕 떠오릅니다.
"이제 서로의 손에는 사랑의 약속과 믿음이 담겼습니다."
"두 분, 이제 서로의 손을 잡고 오랜 끝에 맺는 사랑을 세상 앞에 증명해주십시오."
"이곳에서의 첫 입맞춤이 앞으로의 나날을 시작하는 가장 아름다운 서약이 될 것입니다."
부드럽게 주례사가 읊는 말 속에서
심장이 뭉근하게 부풀어 오르기를 지속하다가
이윽고 눈앞이 희어질 듯 환하게 물듭니다.
"두 분, 입 맞추셔도 좋습니다."
주례사가 그렇게 말하자
릭사엘이 부드럽게 당신의 손을 놓고 당신의 허리를 끌어 당깁니다.
가늘게 속눈썹을 떤 채 그의 얼굴이 조심스럽게 다가오다가
이윽고 당신의 눈앞에 닿고, 입술이 겹쳐집니다.
하객석에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옵니다.
어떤 이는 눈물을 훔치고, 어떤 이는 웃음을 터뜨리는.
아름다우면서도 밝은 분위기에
당신의 입가에 웃음이 슬며시 솟아 오릅니다.
.
.
.
당신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릭사엘과 다시금 조용히 대기실로 돌아왔습니다.
방금까지도 손에 꼭 쥐고 있던 부케의 촉감과
사랑스럽게 물들던 결혼식의 분위기가 눈앞에 닿을 것 같습니다.
주위에 사람들을 물린 릭사엘이 조심스럽게 당신의 예복에 갖춰진
장신구들을 하나씩 떼어냅니다.
여전히 다정하고도 상냥한 손.
애틋한 것을 어루만지듯 조심스러운 손입니다.



그나저나 당신 반지는 또 언제 준비한 거예요?!




이미 목걸이도 받았는데...


(손을 쫙 피고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바라보며 수줍게 얼굴을 붉힌다) 정말... 마음에 들어요. 예뻐요.

















깃털 같은 입맞춤에 간지럽다는 듯 웃어버리자
릭사엘이 웃음을 머금은 채 다시 당신의 예복을 벗기고
조금은 편안한 정장으로 갈아입힙니다.
섬세한 손길이 당신의 셔츠를 정갈하게 여미고
단정하게 넥타이를 매어줍니다.
예복보다는 훨씬 활동성 좋도록 베스트까지 입고 나자
몸이 한결 가뿐하네요.
릭사엘은 당신의 옷을 갈아입힌 뒤에
조심스럽게 대기실의 소파에 앉히고는
자신도 금세 옷을 갈아입습니다.
장식이 덜어내진 단출한 정장을 입은 그가
다시금 당신의 옆으로 다가와 손을 쥐고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합니다.


릭사엘은 그런 당신을 보며 부스스 웃다가
당신의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남깁니다.
사뿐하게 닿은 입술에서부터 번진 체온이 몸을 부드럽게 데웁니다.
조용히 대기실을 나서는 뒷모습에 조금 눈이 감깁니다.
아무래도 아침부터 장거리 이동을 하랴, 식 준비를 하랴
정말 정신이 없었었죠.
깜빡, 깜빡.
눈꺼풀이 조금 느릿하게 내려앉습니다.
화창한 날씨에 걸맞는 새소리가 공간을 울립니다.
짹짹, 예쁘게도 운다는 생각이 들 찰나
찌이익-! 갑자기 새소리가 찢어집니다.
귀가 찌를 듯 아픕니다.
당신이 그 소리에 갑자기 놀라 눈을 뜨면


공기가 차단된 시야가 점차 흐릿해집니다.
마지막으로 보이는 얼굴에 박힌 번쩍이는 금색이
소름끼치게 피부를 기어오릅니다.
아, 릭사엘에게 이 일을 알려야 하는데...
마음과 달리 몸이 가누어지지 않습니다.
저항을 하려던 몸에서 힘이 죽 빠집니다.
.
.
.
숨이 탁 막힙니다.
거친 호흡을 뱉어내며 눈을 뜨자
공기는 습하고,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습니다.
여긴... 어디지?
누가 보아도 결혼식을 치르던 예식장은 아닙니다.
회색 벽돌이 층층이 쌓여 천장까지 이어진 공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벽인지 그림자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습니다.
물 비린내와 철 냄새가 복잡하게 뒤엉킨 냄새가 콧속을 파고듭니다.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21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분명... 결혼식을 마치고 피로연 전에 대기실에 있었는데
의문의 남자가 다가와 목을 틀어 쥐었었죠.
그렇다면 이곳은, 그 남자가 자신을 데려온 곳일 겁니다.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남자가
비싯 웃으며 당신의 턱을 손으로 들어 올립니다.
거칠기 짝이 없는 손입니다.
차갑고, 음험하고, 파충류의 비늘처럼 매끄러운.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6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1 |
| 판정결과: | 대성공 |
이런, 이런. 우리 신부님 힘이 제법 세신데? 까딱하면 놓아드릴 뻔 했잖아요. 응? (너를 간단히 제압하고 좀 더 여유롭게 네 목선을 미끄러뜨리듯 핥는다) 아, 맛있네- 신이 되어가는 육체의 맛은 이런 거군요. 짜릿해라.
그 아래도 맛봐도 될런지요?
(네 의사 따위 중요치 않다는 듯 네 옷깃을 이빨로 갈기갈기 찢어 벌린다)

어때요, 내가 그걸 다 이루면 재밌어질 것 같지 않아?

그래요, 좀 멍청한 것도 매력이지. 난 이러다 신부님께 홀딱 반할 것 같거든.

릭사엘이 당신 뜻대로 되도록 두지 않을 거예요.

무릎을 들어올리려는 순간 발목에 달린 구속구가 달그락거리며 당신의 행동을 제어합니다.
실키스라는 이름의 남자는 그런 당신을 비스듬히 기울이며 웃다가
당신의 젖꼭지를 한가득 핥고는 가증스럽게 쪽쪽 입까지 맞춥니다.



아, 신부님이 좋아하실만한 소식을 알려드릴까요? 제 부탁 하나를 들어주시면이지만.







날 동요하게 만들려고 말을 지어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이것만 미리 말씀드릴까요? 릭세이르가 지금 미쳐 날뛰고 있다는 사실만.







어때요, 사랑해주실래요?



릭세이르가 신부님을 찾고 있다고는 하지만, 찾을 수나 있겠어요? 모든 인류를 동원해서 미국의 모든 땅을 100피트씩 파도 못 찾을 텐데.

그러니까 당신 따위에게 사랑을 줄 일은 없어요.

그러더니 그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가볍게 빗질하고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킵니다.
그리고는 당신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기나긴 복도를 따라 사라지네요.
당신은 돌바닥 위에 덩그러니 놓인 채
발목을 감싼 구속구에 서늘한 몸을 떱니다.
밤인지 낮인지도 알 수 없는 곳에서
몸을 떨던 촛불이 훅 꺼집니다.
완전한 암흑이 덮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