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결혼식과 뱀비늘

 




 


13

결혼식과 뱀비늘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듯 내려앉는 초여름 오후.
예식장 옆 작은 정원에서 흔들리는 꽃향기와 새소리가 넘어옵니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웃음이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옵니다.
결혼식을 위해 치장을 하느라 따로 차를 탄 탓에
아직 릭사엘은 이곳에 당도하기 전입니다.
곧 결혼식이 진행될 이 예식장 대기실에 홀로 서 있으니
복잡함과 설렘이 교차하는 기분이 듭니다.
옷을 매만지면, 하얀 예복은 당신의 몸에 꼭 맞게 재단되어 있고
따사로운 햇살이 천 자락의 광택 위를 미끄러집니다.
옅게 손끝이 떨려오네요.
유스텐:(앉아있으려다가도 일어서서 주변에 있는 꽃장식을 매만지다가 대기실에서 거울을 보기도 하며 가만있질 못한다.) '오늘 결혼식 맞나? 사실 꿈이 아닐까?'
...결혼식 당일은 되게 기쁘고 설레고 그럴 줄 알았는데. (물먹은 솜처럼 가슴이 무겁다가도,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도 모르겠고, 사실은 전부 다 내 망상이고 릭사엘은 나타나진 않는 게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들다가 고개를 젓는다)
(갑자기 실없이 키득거리며) 와중에 양쪽 다 부모님이 없는 결혼식이라니.
마음이 뒤숭숭했다가, 우스웠다가를 왕복하고 있으면
뒤에서 발소리가 천천히 다가옵니다.
당신은 반사적으로 등을 돌립니다.
검은 예복을 빼입은 무척이나 키가 큰 사내,
당신과 오늘 결혼을 올리려 치장한 릭사엘이
짧아진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대기실로 들어오네요.
릭사엘:음... 준비는 다 했어?
유스텐:(다소 놀란 듯한 얼굴로 말없이 널 빤히 바라보다가) ... ...머리 잘랐네요?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면, 뒷목을 덮던 머리카락은 짧게 쳐져 있고
전체적인 스타일은 앞머리를 반쯤 넘긴 세미 포마드를 하고 있습니다.
릭사엘:아무래도 그대 지인들 앞에 서야 하니, 단정해보이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유스텐:(숨이 멎을 것 같아 무어라 말해야할지, 머릿속이 온통 백지가 되어 입술을 달싹인다.) ... 혹시 안 오는 건 아닐까 걱정했어요.
릭사엘:그럴 리가 없잖아. (너를 슬며시 끌어당겨 입술에 쪽 뽀뽀한다)
유스텐:(머릿속이 정리가 되질 않아 얼빠진 얼굴을 하고) 그냥... 내가 결혼을 한다는 게 믿기질 않아서요, 아직까지.
머리 기른 거 아깝지는 않아요?
릭사엘:일부러 기른 게 아니라 괜찮다. 그보다, 내 차림 이상하지는 않지?
당신이 릭사엘의 그 말에 그의 예복을 훑어보면
어둡고 단정하면서, 이곳저곳 놓인 장식 배치가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만이 듭니다.
단추 하나 허투루 잠그지 않은 모습에서
어쩐지 그의 결심과 책임감이 엿보이는 것 같습니다.
유스텐:(고개를 저으며) 안 이상해요. 다 너무 잘 어울려요. (눈두덩이가 점점 무거워지는 듯 하더니 눈가가 젖어들기 시작한다. 아, 아직 결혼식 시작도 안 했는데 울면 안 되는데. 눈물을 참아내려 숨을 한 번 삼켜낸다.)
릭사엘:... 우... 는 건가? 갑자기 왜... (살짝 당황해 너를 끌어안고, 습기가 고이기 시작한 네 속눈썹 안쪽을 부드럽게 쓸어준다. 안심시키려는 듯 가볍게 입맞추며) 왜 울고 그래. 기대한 날이잖아.
유스텐:모르겠어요... 읏, 흑... 울고 싶지 않은데. 진짜 기쁜 날인데...
릭사엘:...뚝. (네 등을 토닥이며 연신 입술에 간지럽게 입맞춘다)
유스텐:(코를 훌쩍이며 푹 젖어버린 속눈썹을 연신 깜빡인다.) 미안해요, 내 마음대로, 흣, 잘... 안 돼요.
릭사엘:미안할 게 뭐 있어. 그런 생각 하지 말고. (상냥하게 너를 끌어안고 아이 어르듯 토닥이며, 귓가에 작게 쉿. 하고 속삭인다)
유스텐:(우느라 말없이 어깨를 이따금씩 들썩거리다가 혹여나 네가 오해할까봐 덧붙인다.) ... 결혼하기 싫어서 우는 건, 아니에요.
릭사엘:알아. 그대도 바란 결혼이잖아. (눈물이 흐르며 조금 엉망이 된 네 얼굴을 부드럽게 매만진다) 내가 어떻게 하면 눈물을 그칠래, 여보.
유스텐:(눈을 내리깔다가 다시 동그란 눈으로 너를 올려다보며) 꼭 안아주면 안 돼요?
릭사엘:얼마든지. (너를 꼭 끌어안고 부둥부둥한다)
유스텐:... 또 애 같다고 그럴 거죠.
릭사엘:(가만히 너를 끌어안고 토닥이며) 아니. 내 것 같아.
유스텐:(울다가 피식 웃으며) 내 것 같다는 건 뭐예요.
릭사엘:(네 입가에 슬며시 키스하고 떼며) 글쎄. 내가 평생 보듬고 지켜주고 싶은 존재가 여기 있구나, 하는 생각이랄까.
유스텐:(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입술을 움찔거리다) ... 나도 릭스를 보듬고 지켜주고 싶은데, 내가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릭사엘:이미 해주고 있어.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네 얼룩진 눈가에 입맞춘다)
유스텐:정말? 난 항상 받기만 하는 줄 알았어요...
릭사엘:그대도 참... 그런 생각이나 하고. (네 정수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대 덕에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알면, 그런 소리가 안 나올 텐데.
유스텐:다행이다...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게 있어서.
왜 사람들이 시작할 때 제일 두려워하는지 알 것 같아요. 분명 우리 결혼생활은 행복할 거라는 믿음이 있지만, 제 인생의 2번째 시작 같은 느낌이라 온갖 걱정이 앞서요.
연애와 결혼은 다른 거잖아요. 자꾸만... 쓸데없는 생각이 들어서...
릭사엘:(네 입술에 솜털 같은 마무리 키스를 하고는, 슬쩍 장난스럽게 웃으며) 이 결혼식은 형식이고, 우린 이미 결혼한 지 몇 달은 넘었지. 시작은 이미 지났어. 이제 더 행복할 일만 남았지.
그래도 걱정이 되나?
유스텐:조금은요. ... 난 낭만적인 꿈을 바라면서도 영원한 게 정말 있을지 항상 의구심이 들었어요. "영원한 사랑"... "영원히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같은 마무리 멘트... 앞으로 오래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았지만, 내가 좋은 부모가, 좋은 배우자 역할을 영원히 할 수 있을지...
릭사엘:(네 이마에 부드럽게 키스하며, 슬며시 눈을 감는다) 그대는 참 걱정이 많아. 지금엔 자신 없어도 괜찮다, 현실을 두고 도망치지만 않으면 요령도 알게 되고 두렵지도 않아질 테니. 그대가 어떻든 내가 그대 옆에 있을 것은 알잖아. 같이 하면 될 일이야.
유스텐:응... (너를 꼭 끌어안고 네 어깨에 턱을 기대며) ... 결혼하고나면, 이제 진짜 무를 수 없어요. 제가 미워져도 저 버리면 안 돼요.
릭사엘:(부스스 웃으며) 그럴 일 없으니, 그대야말로 각오 단단히 해. 싫다고 해도 안 놓아줄 테니.
유스텐:(젖은 눈을 반 접으며) 저도 그럴 일 없거든요!
릭사엘:그럼 됐지. (네 작은 몸을 가득 끌어안고 행복하게 웃는다)
그렇게 당신들이 마음을 추스리고 웃고 있으면
곧 예식장 직원이 부케를 안고 대기실 안으로 들어옵니다.
"곧 예식 시간입니다. 준비 되셨나요?"
당신이 눈물을 지워내고 고개를 끄덕이자
직원은 품에 안고 있던 부케를 당신의 손에 건네줍니다.
파스텔톤의 분홍빛이 어우러지는 핑크 카라 부케네요.
우아하면서도 부드러운 이미지입니다.
당신이 그 부케를 가만히 어루만지고 있으면
릭사엘은 아무 말 없이 당신의 빈 손을 쥡니다.
따뜻하고도 확고한 온기.
점차 두려움이 지워지고 설렘이 그 자리를 채웁니다.
당신들은 천천히 숨을 가다듬고
예식장으로 향하는 걸음을 시작합니다.
서로를 향한 믿음이 서약이 되는 날.
대기실을 나와 햇빛 아래 오롯이 서면
하늘은 구름 하나 없이 투명하고
바람은 결혼식장을 스치며 하얀 천막과 꽃장식을 흔듭니다.
느릿하게 흐르난 강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이
오늘의 결혼식을 축복하는 것 같습니다.
푸른 잔디 위에 놓인 간이 제단과 의자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고
하객들은 얼떨떨하면서도 밝은 얼굴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유스텐:
관찰력
기준치:55/27/11
굴림:91
판정결과:실패
두근거리는 심장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초청장을 보낸 하객들은 모두 참석해준 것 같습니다.
그렇게까지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당신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나 봅니다.
고개를 들어올려 릭사엘을 바라보면
차분하게 절제된 광택이 도는 정장을 입은 릭사엘이
깊은 애정을 담은 채 당신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릭사엘:(입장 아치에서 고개를 숙여 네게만 들리도록 귓가에 속삭이듯) 가자, 내 사랑.
유스텐:(우느라 눈가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네 손을 조금 세게 잡는다)
발걸음이 천천히 길게 뻗은 버진 로드로 내디뎌집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마주치는 하객들의 시선과
나풀거리며 내려앉는 초여름의 꽃잎들,
한 손에 꽉 쥔 아름다운 부케와
당신을 안심시키려는 듯 따스한 릭사엘의 손이 느껴집니다.
맑고 투명한 햇빛 아래 자신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아 간신히 참아내면
이윽고 주례사의 앞까지 발걸음이 닿습니다.
울듯 말듯한 당신의 얼굴에 릭사엘의 얼굴에 곤혹이 스칩니다.
그러다가 하객들은 안중에도 없는지,
당신의 눈가를 매만지고 손등을 토닥여주네요.
유스텐:(평소라면 이 모습을 볼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겠지만 네 다정함에 빠져들어 너를 올려다보며 빙긋 웃는다. 너와 그렇게 눈을 맞추다 주례사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릭사엘:(빙긋 웃는 네 표정에 자신도 하릴없이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너를 따라 주례사를 바라본다)
깍지를 낀 손가락 너머로 그의 존재가 느껴집니다.
당신이 진정했다는 것을 확인한 주례사가
다행이라는 듯 웃으며 입을 열기 시작합니다.
부드러운 오케스트라 음악이 예식장 안을 흐르며 그의 말과 조금씩 어우러집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아주 특별한 순간을 함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부드러우며, 강물은 잔잔하고, 꽃들은 조용히 피어나 있지요."
"마치 자연도 이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하듯, 조심스레 숨을 고르며 지켜보는 것이겠지요."
"오늘 이 자리에 선 두 사람은 서로를 선택했고, 서로를 이해했으며,"
"수많은 순간을 견딘 끝에 앞으로의 모든 계절을 함께하겠다고 결심한 이들입니다."
"결혼이란 완벽함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함께 보듬으며 살아가는 용기이지요."
"어떤 날은 햇살 같고, 어떤 날은 비바람 같겠지만,"
"오늘 이들이 맺는 약속은 그 모든 날을 함께 견뎌내겠다는 다정하고 단단한 선언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가장 가까운 편이 되어 누구보다 먼저 기쁨을 나누고,"
"누구보다 조용히 아픔을 들어주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는, 이 두사람이 앞으로도 그 눈빛을 잃지 않기를"
"서로를 바라보며 지금처럼 웃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두 분, 서로를 마주보시지요."
유스텐:(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돌려 너를 마주본다)
릭사엘:(약간 어색한 듯 주례사에게서 시선을 떼고 너를 마주본다)
당신들이 서로를 마주보고 서자 주례사가 담담하게 서약문을 읊기 시작합니다.
그의 시선이 먼저 당신을 향합니다.
"애쉬미어 신랑분께 먼저 묻겠습니다."
"당신은 눈 앞의 이 사람을, 사랑하는 동반자로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리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변함없이 곁을 지키겠다고 약속하시겠습니까?"
유스텐:(입술을 살짝 벌리다가 꾹 다문다. 나와야 할 대답은 단 하나뿐인데도 그 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잘 알기에. 목울대가 한 번 넘실거리더니 드디어 결심한 듯 입을 연다) ... 네.
당신이 한참이나 고민한 듯 긍정을 답하자
주례사는 화답하듯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이번에는 릭사엘을 바라봅니다.
"다음으로 벨손드 신랑분께 묻겠습니다."
"당신은 지금 눈 앞의 이 사람을 인생의 친구이자 연인으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리고 어떤 날에도 이 사람의 손을 놓지 않겠다고,"
"어떤 일이 닥쳐도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겠다고 약속하시겠습니까?"
릭사엘:(너를 한참이나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한치의 주저도 없다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예.
그렇게 답하며 당신을 바라보는 릭사엘의 시선은 한결같이 곧고
더없는 애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불현듯 또 다시 울고 싶은 벅차오름이 덮칩니다.
"두 사람은 오늘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미래의 계절을 함께 걸어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이 서약은 비단 오늘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이 서약은 두 사람의 앞으로의 삶에서 매일 새롭게, 그리고 깊게 지켜질 것입니다."
"한 걸음 더 함께 나아갈 다짐을 위한 반지 교환식이 있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잠시 뜸을 들이듯 주례사가 공백을 만들자
부드러운 결혼식 음악이 조금 더 선명하게 들려옵니다.
릭사엘이 그에 조심스럽게 품에서 무언가를 꺼냅니다.
백금빛으로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
그는 당신의 손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끌어당기고
조심스럽게 당신의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웁니다.
그리고는 당신의 손을 매만지듯 덮다가,
제 것으로 보이는 반지를 당신의 손에 넘겨줍니다.
유스텐:(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채 가만히 있다가 네가 손에 반지를 쥐여주자 정신이 든다. 손에 든 반지를 응시하다 네 손을 어색하게 잡아당겨 조심조심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워준다.)
릭사엘:(가만히 네가 제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는 모습을 내려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주변의 모든 분위기가 정숙하게 가라앉듯 붕 떠오릅니다.
"이제 서로의 손에는 사랑의 약속과 믿음이 담겼습니다."
"두 분, 이제 서로의 손을 잡고 오랜 끝에 맺는 사랑을 세상 앞에 증명해주십시오."
"이곳에서의 첫 입맞춤이 앞으로의 나날을 시작하는 가장 아름다운 서약이 될 것입니다."
부드럽게 주례사가 읊는 말 속에서
심장이 뭉근하게 부풀어 오르기를 지속하다가
이윽고 눈앞이 희어질 듯 환하게 물듭니다.
"두 분, 입 맞추셔도 좋습니다."
주례사가 그렇게 말하자
릭사엘이 부드럽게 당신의 손을 놓고 당신의 허리를 끌어 당깁니다.
가늘게 속눈썹을 떤 채 그의 얼굴이 조심스럽게 다가오다가
이윽고 당신의 눈앞에 닿고, 입술이 겹쳐집니다.
하객석에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옵니다.
어떤 이는 눈물을 훔치고, 어떤 이는 웃음을 터뜨리는.
아름다우면서도 밝은 분위기에
당신의 입가에 웃음이 슬며시 솟아 오릅니다.
.
.
.
당신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릭사엘과 다시금 조용히 대기실로 돌아왔습니다.
방금까지도 손에 꼭 쥐고 있던 부케의 촉감과
사랑스럽게 물들던 결혼식의 분위기가 눈앞에 닿을 것 같습니다.
주위에 사람들을 물린 릭사엘이 조심스럽게 당신의 예복에 갖춰진
장신구들을 하나씩 떼어냅니다.
여전히 다정하고도 상냥한 손.
애틋한 것을 어루만지듯 조심스러운 손입니다.
유스텐:... 진짜 순식간에 지나갔네요.
릭사엘:(기분 좋게 미소 지은 채로) 그러게. 너무 순식간이었지.
유스텐:이 짧은 순간을 위해서... 이렇게 많은 걸 준비하다니...
그나저나 당신 반지는 또 언제 준비한 거예요?!
릭사엘:준비한 지는 한참 됐지.
유스텐:갑자기 반지를 꺼내서 깜짝 놀랐잖아요...
릭사엘:놀랄 것까지야. (네 손을 가지런히 들어올리고, 속눈썹을 내리깐 채 부드럽게 손등에 키스한다)
유스텐:준비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어요.
이미 목걸이도 받았는데...
릭사엘:그렇지만, 그대에게는 반지가 주는 의미가 훨씬 클 테니까.
유스텐:릭스... 고마워요.
(손을 쫙 피고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바라보며 수줍게 얼굴을 붉힌다) 정말... 마음에 들어요. 예뻐요.
릭사엘:(네 손을 조심스레 내려놓고 다가가 네 이마에 입술을 찍어누르며) 그대가 제일 예뻐.
유스텐:머리까지 자르고 메이크업도 받은 사람이 저한테 그러면 어떡해요, 부끄럽게...
릭사엘:누가 뭐라고 하겠어. 내 신부가 제일 예쁜 것쯤이야 사실인 것을.
유스텐:(눈썹을 까딱이며 피식 웃는다) 제 쪽 하객분들이 당신 보고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못 봤어요?
릭사엘:못 봤다만. 그대 밖에 안 보여서.
유스텐:(장난스럽게 높은 목소리로) 모두가 저는 안 보고 당신만 보고 있던데요? 입이 떡 벌어져 있던데.
릭사엘:(이해하지 못한 채로) 입이 떡 벌어질 일이 있나?
유스텐:(네 뺨에 손을 올리려다 혹시나 메이크업을 망칠까 싶어 두 어깨에 손을 올린다) 내 남편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너무 잘생겼다는 뜻이죠.
릭사엘:(피식 웃으며) 그래? 그럼 그렇게 잘생긴 남편을 둔 내 신부의 소감은 어때.
유스텐:(바람빠진 웃음을 흘리며) 제법 짜릿하네요. 잘생기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뭐하나 부족한 게 없는 사람이 내 남편이잖아요.
릭사엘:(그 말에 속절없이 그저 웃어버리며, 네 손을 제 뺨에 대고 슬며시 문지르듯) 평생 그대 것이지. 자랑스러워 해도 좋아.
유스텐:신문에 광고라도 넣어야 할 판이에요. 당신 얼굴 대문짝만하게 프린트해서 릭사엘, "유스텐 애쉬미어"와 결혼하다. 타이틀 달고 말예요.
릭사엘:(픽 웃으며) 그렇게까지?
유스텐:(쪽) 마음 같아서는요.
릭사엘:(쪽) 귀여워.
유스텐:(쪽 쪽) 그래서, 당신은 결혼한 소감이 어때요?
릭사엘:행복해. 더할 나위 없이. (쪽)
깃털 같은 입맞춤에 간지럽다는 듯 웃어버리자
릭사엘이 웃음을 머금은 채 다시 당신의 예복을 벗기고
조금은 편안한 정장으로 갈아입힙니다.
섬세한 손길이 당신의 셔츠를 정갈하게 여미고
단정하게 넥타이를 매어줍니다.
예복보다는 훨씬 활동성 좋도록 베스트까지 입고 나자
몸이 한결 가뿐하네요.
릭사엘은 당신의 옷을 갈아입힌 뒤에
조심스럽게 대기실의 소파에 앉히고는
자신도 금세 옷을 갈아입습니다.
장식이 덜어내진 단출한 정장을 입은 그가
다시금 당신의 옆으로 다가와 손을 쥐고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합니다.
릭사엘:피로연을 앞두고 하객들 앞에 너무 자리를 오래 비웠지. 내가 먼저 나가서 정리하고 있을 테니 천천히 나와. 알겠지.
유스텐:응.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하객들이랑 인사도 나눠서 기가 쪽 빨려버렸지...' 난 여기 조금만 쉬다가 나갈게요. 고마워요.
릭사엘은 그런 당신을 보며 부스스 웃다가
당신의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남깁니다.
사뿐하게 닿은 입술에서부터 번진 체온이 몸을 부드럽게 데웁니다.
조용히 대기실을 나서는 뒷모습에 조금 눈이 감깁니다.
아무래도 아침부터 장거리 이동을 하랴, 식 준비를 하랴
정말 정신이 없었었죠.
깜빡, 깜빡.
눈꺼풀이 조금 느릿하게 내려앉습니다.
화창한 날씨에 걸맞는 새소리가 공간을 울립니다.
짹짹, 예쁘게도 운다는 생각이 들 찰나
찌이익-! 갑자기 새소리가 찢어집니다.
귀가 찌를 듯 아픕니다.
당신이 그 소리에 갑자기 놀라 눈을 뜨면
실키스:안녕, 신부님? (단번에 당신의 목을 틀어쥐고 켁켁 거리는 숨결을 느낀다) 하하, 살아 있는 감촉이 황홀하시네요.
유스텐:(숨이 틀어막혀 눈가에 찔끔 눈물이 고인다. 제 목을 쥔 손을 붙잡고 떼내려한다) '이 남자는 누구지? 릭사엘은?'
실키스:소리를 지르실까 싶어 목부터 막았으니 무례를 용서하시길? 아 물론- 신의 선택을 받으신 분이니 그 정도의 자비는 겸비하고 계시겠죠? (네 목을 틀어쥔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어 부러뜨릴 듯 움켜준다)
유스텐:흐극, 윽... (눈을 질끈 감으며 발버둥을 치다가 산소가 부족해 점점 시야가 흐릿해진다.)
실키스:우리 신부님 - 잠꾸러기시네. (그러면서도 네가 정신을 잃을 때까지 계속해서 목을 틀어쥔다)
공기가 차단된 시야가 점차 흐릿해집니다.
마지막으로 보이는 얼굴에 박힌 번쩍이는 금색이
소름끼치게 피부를 기어오릅니다.
아, 릭사엘에게 이 일을 알려야 하는데...
마음과 달리 몸이 가누어지지 않습니다.
저항을 하려던 몸에서 힘이 죽 빠집니다.
.
.
.
숨이 탁 막힙니다.
거친 호흡을 뱉어내며 눈을 뜨자
공기는 습하고,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습니다.
여긴... 어디지?
누가 보아도 결혼식을 치르던 예식장은 아닙니다.
회색 벽돌이 층층이 쌓여 천장까지 이어진 공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벽인지 그림자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습니다.
물 비린내와 철 냄새가 복잡하게 뒤엉킨 냄새가 콧속을 파고듭니다.
유스텐:
지능
기준치:55/27/11
굴림:21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분명... 결혼식을 마치고 피로연 전에 대기실에 있었는데
의문의 남자가 다가와 목을 틀어 쥐었었죠.
그렇다면 이곳은, 그 남자가 자신을 데려온 곳일 겁니다.
실키스:이런, 우리 신부님. 벌써 일어났네? 내 얼굴이 빨리도 보고 싶었나 봐요, 그렇지?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남자가
비싯 웃으며 당신의 턱을 손으로 들어 올립니다.
거칠기 짝이 없는 손입니다.
차갑고, 음험하고, 파충류의 비늘처럼 매끄러운.
유스텐:... '릭스가 맨 처음 신전에 있는 게 안전할 거라고 했던 게 이런 뜻이었던 건가.' 당신은 누구죠?
실키스:(네 물음에 뒤늦게 아하하 웃으며) 아, 내 소개를 안 했던가? 실키스라고 불러주세요, 아름다운 신의 배필이시여. 그보다, 생각보다 침착하시네요? 반항하실 줄 알았는데. 이것 참, 저는 순순한 먹잇감에는 취미가 없는데 이를 어쩐다.
유스텐:(의심스러운 눈으로 널 노려보며 한 번 졸렸던 목을 매만진다. 얼마나 세게 졸랐던 건지 저릿저릿하다) 제가 납치당했다는 사실 쯤은 눈치챘으니까요. 신도들이 많은 곳에서 그런 일을 벌였을 정도면 여기서 저항해봤자 좋을 게 없지 않나요?
실키스:우리 신부님, 생각보다 배짱도 좋고 머리도 좋네. 이것 참 탐나는데. (비릿하게 미소지으며, 네 양 손목을 움켜쥐고 목에 입술을 박아 핥는다)
유스텐:(이를 꽉 깨물며 신음한다. 날카로운 이빨이 여린 살결을 파묻는 게 고스란히 느껴져 소름끼쳐 팔에 힘을 주어 너를 밀어내려한다) 읏, 이거, 놔...!
유스텐:
근력
기준치:50/25/10
굴림:6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실키스:
근력
기준치:55/27/11
굴림:1
판정결과:대성공
이런, 이런. 우리 신부님 힘이 제법 세신데? 까딱하면 놓아드릴 뻔 했잖아요. 응? (너를 간단히 제압하고 좀 더 여유롭게 네 목선을 미끄러뜨리듯 핥는다) 아, 맛있네- 신이 되어가는 육체의 맛은 이런 거군요. 짜릿해라.
그 아래도 맛봐도 될런지요?
(네 의사 따위 중요치 않다는 듯 네 옷깃을 이빨로 갈기갈기 찢어 벌린다)
유스텐:이게 무슨, 자, 잠깐만. '아무리 봐도 이 남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워, 원하는 게 뭐예요?
실키스:내가 원하는 거? 신부님의 사랑과 릭세이르의 절망, 그리고 세 번째 혀 교단의 파멸이랄까.
어때요, 내가 그걸 다 이루면 재밌어질 것 같지 않아?
유스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널 바라보다가) ... 릭사엘이 가만 있지 않을 거예요. 교단 사람들도요.
실키스:내가 그 사람들을 무서워할 것 같아요? 우리 신부님, 이런 데에선 머리가 안 돌아가시나 보네. (여유롭게 네 셔츠와 베스트, 넥타이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네 가슴팍에 입술을 댄다)
그래요, 좀 멍청한 것도 매력이지. 난 이러다 신부님께 홀딱 반할 것 같거든.
유스텐:대체... '말이 통할 것 같지가 않잖아...'
릭사엘이 당신 뜻대로 되도록 두지 않을 거예요.
실키스:그래요? 그러라고 해요. 나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성정은 아닌지라. (소름이 돋아나 바짝 선 네 유두에 질척하게 혀를 대며) 과연 그 잘난 교주가 신부님을 찾아내는 게 빠를지, 내가 신부님을 죄다 탐하는 게 빠를지. 이것 참 오랜만의 내기라 기대되네요. 신부님은 어느 쪽에 거실 거죠? 역시 내 쪽이지?
유스텐:(온몸에 소름이 끼쳐 갈비뼈가 들어올려질 정도로 호흡이 가빠진다.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다 무릎을 들어올려 너를 밀어내려한다) 저리 가, 흣, 저리 가라고!
무릎을 들어올리려는 순간 발목에 달린 구속구가 달그락거리며 당신의 행동을 제어합니다.
실키스라는 이름의 남자는 그런 당신을 비스듬히 기울이며 웃다가
당신의 젖꼭지를 한가득 핥고는 가증스럽게 쪽쪽 입까지 맞춥니다.
실키스:신성이 깃드는 몸이란 참으로 맛 좋은 거군요. 이러니 그 교주가 매일 물고빨고 지랄을 해댔지. 좆질도 엄청 열심히 한 것 같던데, 그 몸으로 제 것도 받아주실래요?
유스텐:(제 머리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살면서 제일 모욕적인 말을 들은 기분이다. 최대한 온몸으로 계속해서 저항해대며) 하아, 꺼, 져.
실키스:꺼지라뇨,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까지 말하고 스스로도 어이없다는 듯 웃어버리며) 내가 얼마나 신부님을 사랑하는데요. 신의 자비로움을 몸에 업으십사, 내 육신에도 자비를 보여주심이?
유스텐:(자꾸만 헛소리를 늘어대는 너를 보며 말문이 막힌다) '이자식, 나를 완전히 조롱하고 있잖아.'
실키스:(네 배꼽까지 고개를 미끄러뜨려 움푹 패인 곳을 둥글게 핥고는) 사랑한다고 해주시면 안 될까요?
유스텐:저리, 꺼지라고! (단시간에 잔뜩 몸부림친 탓에 점점 힘이 빠진다.)
실키스:(네가 힘이 빠지는 광경을 바라보다가, 흥미가 조금 식은 표정으로 고개를 떼며) 이런, 벌써 힘이 부쳐요? 아직 재미있는 건 시작도 안 했는데. 이를 어쩌나 -
아, 신부님이 좋아하실만한 소식을 알려드릴까요? 제 부탁 하나를 들어주시면이지만.
유스텐:(전신에 식은땀이 솟아오른다. 이 눈앞의 미친 남자가 뭘 할지 전혀 감도 안 잡혀서. 나는 여기서 죽게 되는 걸까.) ... 원하는 게 뭐죠?
실키스:말했잖아? 난 신부님의 사랑을 원한다고. (얼굴을 훅 들이대며) 키스해주세요.
유스텐:... 당신이 진짜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잖아요. 사랑을 갈구할 사람처럼은 안 보이는데.
실키스:이런, 제 마음을 간과하시다니. 잔인한 사람이시네요. (비릿하게 웃으며) 신부님이 그토록 사랑하는 릭세이르 교주의 행방을 알려드릴까 했는데, 거래가 불발되었으니 어쩔 수 없죠.
유스텐:...릭사엘의 행방을 안다고요?
실키스:왜요, 갑자기 흥미가 동하시나?
유스텐:그건... 왜 하필 내 사랑이죠? 릭사엘 때문인가요?
실키스:그 교주 때문도 있고, 순수하게 탐나는 마음도 있죠. 우리 신부님이 이토록 아리따우신데, 내가 어떻게 사랑에 빠지지 않고 배기겠어요. 응?
유스텐:'사랑하는 눈빛보단, 정신 나간 눈빛인데.' ... 거짓말치지 말아요. 다짜고짜 내 목부터 졸랐잖아요, 당신.
실키스:그야 - 우리 신부님이 그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비명이라도 지르면 내 마음이 아플 테니까요. 이 얼마나 순수한 사랑인지. (스스로의 말에 감격한 듯 과장된 반응으로) 그러니 받아주시면 안 될까요? 솔직히 미모로 따지면 그 교주에 꿇리지는 않을 텐데, 나.
유스텐:'뭐라는 거야, 미친놈이...' 싫어요.
실키스:싫어도 어쩔 수 없어요, 여기 있는 동안 신부님은 내 거니까. 그래서, 교주의 행방이 궁금하진 않아요? 짧게 키스만 해주시면 당장이라도 알려드릴 텐데.
유스텐:내가 당신 말을 어떻게 믿죠?
날 동요하게 만들려고 말을 지어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실키스:난 거짓으로 장난치는 걸 좋아하지만, 사랑하는 신부님에게까지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없답니다.
이것만 미리 말씀드릴까요? 릭세이르가 지금 미쳐 날뛰고 있다는 사실만.
유스텐:릭사엘이... (눈을 반쯤 내리깐 채 소중한 이의 이름을 중얼거린다. 역시 날 찾고 있구나.)
실키스:신부님을 찾는 모양이지만, 소용 없을 거예요. 여긴 그 누구의 손에도 닿지 않는 지하세계의 외곽이고, 지상의 지도를 참고해 말씀드리자면 필라델피아와는 한참 먼 유타 주니까.
유스텐:'필라델피아에서 유타 주까지 이렇게 단번에 왔다고?' ... 당신도 인간이 아닌 건가요?
실키스:이런, 당연한 물음을 너무 늦게 하시는데? 아, 역시 좀 멍청하신 게 제 취향이에요. (뺨에 돋아 있는 비늘을 네 뺨에 비비며) 인간이 아니어도 사랑해주실 거죠?
유스텐:(네 행동이 혐오스러워 정수리에서부터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이 자꾸만 전신에 소름이 끼친다. 말문이 막힌 채 흔들리는 눈을 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이렇게 먼 곳까지 와버렸으면... 릭사엘이 찾기 힘들 거야. 어쩌지? 어떡하지? 내가 어떻게 해야...'
실키스:우리 신부님,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좋아요, 릭세이르의 행방이 별로 궁금하지 않다면 거래 조건을 바꾸죠. 신부님이 키스만 해주신다면, 한 마디 정도는 그와 연락이 닿게 해드리겠어요. 어때요, 이 제안은 솔깃하지?
유스텐:... (네 말이 솔깃해 멈칫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저건 나를 회유하려 드는 거다. 들어주면 오히려 릭사엘을 자극할지도 몰라.' 싫어요. 여기 가둬서 저를 어떻게 할 작정이죠? 죽일 건가요?
실키스:이런, 귀하신 신부님을 내가 어떻게 감히 죽이겠어요. 죽일 거라면 그 식장에서 릭세이르가 바로 시체를 마주치게 했겠죠. 하, 내가 이렇게나 자비롭다니까요. 어때요, 좀 사랑하게 될 것 같지 않나요?
유스텐:'저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 일 없어요.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안다고요. 릭사엘을, 교단을 흔들기 위해 협박 목적으로 저를 납치한 거, 아닌가요?
실키스:뭐, 그 목적이 없었다고는 말 못 하죠? 저는 제법 계산적인 사람이라서. 다 아실 만한 분이 왜 당연한 걸 물으실까 - 아 그래도 곧 신으로 각성할 신부님의 몸이 맛있는 것도 사실이니 너무 섭섭해 마시길.
유스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내보내주세요.
실키스:미안, 신부님. 그건 못 들어주겠네요.
유스텐:어떻게 하면 날 내보내줄 건데요.
실키스:음 - 그거야 신부님이 저를 사랑해주시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내보내드릴 수 있죠.
어때요, 사랑해주실래요?
유스텐:"사랑"의 기준이 뭐죠?
실키스:제법 예리하게 파고드시는데? (재밌는 구경거리를 본 이처럼 즐겁게 웃다가 픽 터뜨리듯) 세간에서는 정신적 사랑 어쩌고 하는데, 제가 원하는 건 물론 그쪽은 아니죠.
유스텐:그러면... '설마...'
실키스:네, 간단하죠? (히죽거리는 것인지 이죽거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미소로) 신부님이 그 예쁜 다리 벌려서 제 좆도 받아주시면 금방 끝나요. 이 얼마나 쉬워요?
유스텐:... (본능적인 두려움에 휩싸여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내가 거절한다면요?
실키스:뭐, 그러면 - 평생 여기 갇혀서 사시는 거죠. 그러다 미치시는 거고.
릭세이르가 신부님을 찾고 있다고는 하지만, 찾을 수나 있겠어요? 모든 인류를 동원해서 미국의 모든 땅을 100피트씩 파도 못 찾을 텐데.
유스텐:... 난 릭사엘을 믿어요.
그러니까 당신 따위에게 사랑을 줄 일은 없어요.
실키스:그래요? 그것 참 아쉽네요. 난 신부님의 사랑이 꼭 필요한데. (네 허벅지 사이를 벌려서 안쪽을 은근하게 쓰다듬으며) 잘 생각해봐요. 어려운 거 아니잖아. 안 그래?
유스텐:당신 같은 사람이나 쉽겠죠. (네 도발에 점점 걸려들어가서는 증오가 담긴 눈빛을 하며) 아쉽게 됐네요.
실키스:흐음- (반복되는 네 거절에 흥미가 식은 듯 성가시다는 눈으로) 그래요, 그럼 계속 여기 계셔 보시든가. 그 잘난 릭세이르가 여길 얼마만에 찾아오는지 두고 보죠.
그러더니 그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가볍게 빗질하고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킵니다.
그리고는 당신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기나긴 복도를 따라 사라지네요.
당신은 돌바닥 위에 덩그러니 놓인 채
발목을 감싼 구속구에 서늘한 몸을 떱니다.
밤인지 낮인지도 알 수 없는 곳에서
몸을 떨던 촛불이 훅 꺼집니다.
완전한 암흑이 덮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