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박물관을 찾아온 수호천사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몸을 덮은 이불 위에 오래된 체온이 묵어 있습니다.
유스텐:(정신이 들자마자 상체만 벌떡 일으켜 머리를 감싸쥐고 이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려본다) '릭스랑 저녁 식사를 하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이후에 뭘 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네. 끄응 - 아직은 연상인 내가 모범을 보였어야 했는데... 무슨 이상한 꼬장이라도 부린 거 아닌가 몰라.'
아침 세안과 목욕을 마친 듯 가운을 입은 릭사엘이
유스텐:(영문도 모르고 말없이 눈을 크게 뜬 채 깜빡거리며 너를 마주본다) '뭐지? 시간이 흐른 게 아닌가? 항상 내가 릭스를 먼저 찾았는데.' ...내가 어떻게 여기있는 거예요?
릭사엘:...그걸 나라고 알 리가... 오랜만이야, 유스.
유스텐:'반응이... 애플 사이다 마신 후에 별일 없었던 건가?'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오, 오랜만이에요...
릭사엘:...지금까지 중에 제일 늦게 왔어. 바보야.
유스텐:어... (눈치)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예요?
릭사엘:4년. 나 이제 대학생도 아니야. 연구원이지.
유스텐:(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눈을 질끈 감고 중얼거린다.) 으으 - 그때 술을 마신 게 문제였나? 바보 같이 왜 쭉쭉 들이켜가지곤... (너를 향해 돌아보며) 나 혹시 이상한 꼬장부리거나 하지 않았죠...?
릭사엘:꼬장... 당연히 부렸지. (짓궂게 투덜거리듯 웃으며) 나랑 한 키스가 그렇게 별로였어? 아무리 그래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것 같은데.
유스텐:에, ... ... 네??? 키, 키스를 했다고요?!! '설마...설마...' (눈을 데구르르 굴리며) 누구랑, 누가?!
릭사엘:... 기억도 못하는 거야? 첫 키스를? 술에 취했던 건 알았지만 기억까지 못할 줄은.
유스텐:(스스로를 가리키고) 그러니까... 나랑... (눈을 크게 뜨며 네쪽을 가리킨다) 당신이랑? 했다고요?
유스텐:'미친 유스텐!!! 기어코 사고를 쳐버렸구나!!!' (속으로 자신에 대한 욕과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없는 비명을 지른다.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입술을 달싹이다가) 으음... 미, 미안해요. 갑자기 덮쳐서...
(눈을 질끈 감으며) 어른으로써 모범을 보였어야 했는데...!
릭사엘:(손에 들린 홍차를 가만히 홀짝이며) ...덮치고 그런 거 아니었어. 네가 키스해달라고 했고, 나는 네 부탁에 응했고. 그뿐이야. 나한테 무례하게 굴지 않았어, 너는.
유스텐:(이불을 꼭 쥐고 어깨를 만 채 잔뜩 눈치를 보며 횡설수설한다) 나한테 실망했어요...? 미안해요, 내가 원래 아무한테나 막, 키스해달라고 하는 그런 파렴치한이 아니거든요? 그냥, 하아 - 전부 미안해요... 꼬장부린 것도 포함해서.
릭사엘:(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네가 하는 말마다 어쩐지 묘한 기분이라 테이블에 찻잔을 내려놓고 네가 누운 침대 옆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위에 올라타며)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나한테 사랑한다고 고백한 것도, 많이 보고 싶었다고 한 것도, 키스해달라고 한 것도?
유스텐:'가, 갑자기 왜 올라타는 거야??? 하필 가운입어서 잘못하면 다 드러나게 생겼잖아.' (맹수에게 잡힌 초식동물처럼 등골이 서늘해지고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애써 네 시선을 피하며 말을 고른다.) 그... 음... 그게... 어... '아씨... 저걸 다 했다는 거야? 다음엔 술 입에도 대지 말아야지... 유스텐 이 미친놈... 이걸 대체 뭐라고 대답해?' (쭈굴) 저, 전혀...
릭사엘:... 그래놓고 나 혼자 상념에 던져둔 채 4년이나 자리를 비운 거야? 야속하네, 내 사랑은.
유스텐:(뜨끔...) '그러니까... 술에 떡이 돼서 사랑한다느니, 보고 싶었다느니, 심지어 키스까지 요구해놓고... 4년이나 자리를 비우고 지금, 아-무것도 모른다고 한 거지, 내가? ... ... 진짜 재활용도 못 할 쓰레기잖아...' (삐질삐질...) 미, 미안...
릭사엘:...미안하면, 그때 했던 말 제 정신으로 다시 해줘. 다른 방법은 없어.
유스텐:그 말을 제정신에 하라고요...? 다른 방법 하나도 없고?
유스텐:'한껏 불쌍한 표정을 짓고 봐달라고 하면 어떻게, 통하지 않을까? 아니야... 오히려 그게 더 쓰레기새끼 같잖아. 완전 먹고 버린 거잖아...' (밑입술을 깍 깨문 채 고개를 푹 숙이며 부들부들거린다) '하아 - 이게 다 내 업보지... 안 들어주겠다고 떼쓰다가 괜히 사이 멀어지기라도 하면 그게 더 곤란해.'
릭사엘:(한참이나 말 없이 입술만 깨무는 너를 서글픈 내려다보다가) ...얘기를 안 하는 걸 보니, 진심은 아니었던 거구나. 그렇지? ...
유스텐:(다급하게 고개를 들어올리며) 아니, 그게 아니라... (작게 침음을 흘리다가 틀림없는 진심부터 전한다.)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요, 릭스.
유스텐:... 당신이 보고 싶고, 알고 싶어서 과거로 왔고... 당신을 사랑해요. 음... '이 다음은 어떡하지? 아니 , 이 허연 대낮에 스물 네 살 릭스랑 맨 정신으로 키스를 어떻게 해...'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눈만 데구르르 굴려 널 올려다본다) 키, 키스...할래요?
릭사엘:(그제서야 안심한 듯 부스스 웃으며) 응. (네 몸 위에 제 몸을 얹고는, 네 턱을 들어올려 부드럽게 키스한다. 입술이고 눈이고 모든 것이 그리움을 참는 듯 떨린다)
유스텐:(반사적으로 눈을 감고 입을 맞추며) '사, 사고쳤다...그것도 대형 사고... 아직 결혼도 안 한, 파릇파릇한, 앞날이 창창한 미래 남편(?)한테 순결을 빼앗아버렸다...'
릭사엘:(지극히 소중한 것을 대하듯 네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번갈아 빨기를 반복하다가, 네 양뺨을 부드럽게 손바닥에 감싸쥐고 네 입술 안쪽을 가볍게 헤집었다가 나온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거칠어지는 호흡도 주체하지 못한 채로 울먹이며) ...너무 보고 싶었어, 유스.
유스텐:(삐질) '어, 어쩌지? 어차피 나중 가면 기억을 잃으니까 괜찮은 건가? 생각보다 너무 깊게 엮여버렸는데. 아니지 - 어쨌든? 릭스가 기억을 잃기 전에도 첫경험(?)도 첫사랑도 전부 나로 박혔으니까 좋은 일 아닌가???' (라며 점점 정신승리를 하더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다시 원래의 페이스로 돌아와 네 눈가를 쓸어주며) 너무 늦게 와서 미안...
릭사엘:(눈물이 맺힌 눈가를 네 어깨에 비벼 내며) ... 이제라도 왔으니까 됐어. 나... 네가 다신 안 올까봐 너무 무서웠어. 살면서 그렇게 무서웠던 적이 없었어...
유스텐:(네 등을 따스하게 쓸어내리다가 어린 아이 달래듯 톡톡 두드려준다) 다시 안 올 리가 없잖아요... 당신은 4년이 지났어도 여전하네요? 아까 창가에 앉아있는 걸 봤을 땐,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싶었는데.
릭사엘:(네 말에 반눈을 뜨며 씁쓸하다는 듯 시선을 살짝 피한다) ...예전보다 사회에 찌드는 바람에.
유스텐:(씁쓸하게 웃으며) 하하, 꽤 씁쓸한 이유네요.
릭사엘:하하... 그렇지? 요즘은 낮에 피트 리버스 박물관에서 컬렉션 정리와 분류 업무를 맡고, 동시에 타일러 교수님 산하에서 인류학 연구를 돕고 있어. 아직까지는 이론을 더 배워야 하는 연구생 신분이긴 하지만 학습과 이해가 빨라서 내년 쯤에는 정식 연구원 제의를 할 테니 준비하고 있으라시네. 이곳은 피트 리버스 박물관에서 지원해주는 숙소야. 예전에 지내던 곳보다는 작지만, 지낼만 해.
유스텐:뭐, 뭔가 엄청 많은 일이 한꺼번에 요약된 것 같은데요??! 엄청 열심히 살았잖아요, 릭스...
릭사엘:그야 열심히 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지. 그래도 일은 거의 잘 풀렸어. ... 일이 힘든 것만 빼고.
유스텐:(어린 아이 칭찬하듯 네 윗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웃는다) 잘했어요. 멋진데요?
릭사엘:(기분 좋게 네 손바닥에 머리카락을 마주 비비며 웃는다) 고마워. ...오랜만에 보니까 너무 좋다. 심장이 또 뛰어.
유스텐:(장난스런 투로) 이런 - 아침부터 심장한테 너무 무리한 일을 시키는 거 아니에요?
릭사엘:... 이 정도는 무리한 일 시키는 것도 아니지. (재차 고개를 숙여 혀끝으로 네 입술을 가볍게 핥고는 해사하게 웃는다)
유스텐:(눈썹을 들어올리다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내 심장한테도 아침부터 무리한 일 시키는 것 같은데.
릭사엘:(미소를 머금으며) ...그래? 그럼 어쩌지. 난 키스 더 하고 싶은데. 유스텐:'왜 이러지? 현대에서 키스 백 번도 넘게 했으면서, 왜 두근대고 난리야... 미치겠네.' (슬쩍) 으음 - 그러면 정말 당신 심장한테 무리한 일이 되지 않을까요?
릭사엘:그렇긴 한데, 강하게 키우려고. 앞으로 얼마나 하게 될지 모르잖아. (부스스 웃으며 네 턱끝을 살짝 아래로 잡아당기고, 벌어진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개어 혀를 미끄러뜨린다)
유스텐:'저, 젊어서 그런가? 뭐이리 저돌적이야??' (라며 늙어본 적도 없으면서 혼란스러워하다 숨을 들이키며 입술을 벌린다.)
릭사엘:(깊게 파고들지 않고 치열 언저리만 훑다가 입술을 떼고, 분홍빛으로 달아오른 얼굴로 배시시 웃으며) ...너무 좋아, 유스.
유스텐:'키스 서툴 줄 알았는데 뭐 이리 자연스러운 거야?' (입을 벌리고 뜬금없이) ㅎ, 혹시 성교육 시간에 키스하는 법도 알려줬어요?
릭사엘:응...? 아니, 그런 건 안 배웠지. 그건 갑자기 왜?
유스텐:처음으로 하는 키스 치고 너무... 자연스러워서...?
릭사엘:그래? 내가 잘하는 편이야? ...잠깐, 너는 내가 자연스러운지 아닌지 그걸 어떻게 알아?
유스텐:(뜨끔) 아, 아니 - 처음이면 못하는 게 일반적이잖아요.
유스텐:'계속 물어봤다가는 내 무덤을 파는 꼴이 될 것 같다...' 그, 그나저나! 오늘은 일정 없어요?
릭사엘:(뭐지 이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은? 의아해하지만 일단 맞춰준다) 오늘? 출근해야지.
유스텐:으응... 내가 또 타이밍을 잘못 잡은 거죠?
릭사엘:(키득거리며) 조금은? 근데 요즘은 주말에도 출근하니까 어쩔 수 없어. 신경쓰지 마. (가볍게 쪽쪽 입술을 맞댔다 떼며) ... 나 일하는 곳에 같이 갈래? 오늘 학부생 대상으로 박물관 안내와 강의가 있는데 내가 진행할 거거든. 구경하기 괜찮을 거야.
유스텐:'조잘거리는 릭스... 다 크고 나서 보니까 새삼 적응 안 되네. 그리고, 한 번 키스하기 시작하니까 이젠 하고 싶을 때마다 하잖아? 으으 - 이거 괜찮은 건가?' (눈 깜-빡) 당신이 박물관 가이드가 된다고요?
릭사엘:그런 셈이지. 이전에도 몇 번 했었어. 왜, 너무 의외야?
유스텐:응... '릭스가 교주님만 하기엔 아까워서 이런 저런 일을 하는 걸 상상해봤지만, 박물관 가이드? 이건 생각도 못했는데'
릭사엘:(별로 즐거워 보이지 않는 네 모습에 잠시 걱정하며) ...재미없을 것 같아?
유스텐:으, 응? 아니, 상상이 안 가서 그랬어요.
릭사엘:(갸웃) 으음, 그런가? 그럼 어떤 일을 하는 게 상상이 잘 가는데?
릭스는 키도 크고, 내 입으로 말하기 좀 부끄럽지만 잘 생겼잖아요.
릭사엘:음, 그건 그렇지. 제의를 안 받았던 것도 아니고. (피식 웃으며) 내 적성에 맞진 않을 것 같아서 제의는 다 거절했는데,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 내 모습이 조금 궁금해도 지네.
유스텐:제의도 받았어요? 하긴... 안 받는 게 말이 안 되겠다. 흠... (연예인이 되어 유명해지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네 모습을 상상해본다) 엄-청 유명해졌을 것 같은데 그건 그거대로 질투났을 것 같아요.
뭐랄까... 너무 좋고 소중해서 나만 알고 싶은데, 또 나만 알기는 아까운 사람이에요, 릭스는.
릭사엘:음? 유...명? (고개를 갸웃한다) 내가 아는 모델의 정의가 네가 아는 정의랑 꽤 다른 것 같은데...
유스텐:응?? 이 시대에서의 모델은 무슨 일을 하는데요?
릭사엘:음, 보통 데생 모델이지? 프랑스쪽에서는 패션 모델도 출판 모델도 점차 생겨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여기 영국은 아직까지 크로키 모델을 모델로 부르는 경우가 많아서 말이야.
유스텐:아하 - ... ... (슬쩍) 옷 입는 모델 맞죠?
유스텐:(확 끌어안으며) 안돼요! 나도 아직(24살의 릭스 몸) 못 봤는데.
릭사엘:(어안이 벙벙한 채로 네 품에 안기며, 키득거린다) 할 생각도 없지만, 안 돼?
유스텐:응, 내가 먼저 봐ㅇ...(제대로 생각 안 하고 반사적으로 끄덕이며 대답하다가 말을 더듬는다) 아니, 그런 말은 안 했거든요?!
릭사엘:(아이처럼 꺄르르 웃어버리며) 아하하...! 왜 말하다 말아. 맞잖아.
유스텐:아니라니까요! (계속해서 말을 더듬으며 시선을 피한다) 그, 그러니까 내 말은! 릭스는 얼굴도 예뻐서 사람들이 하라는 누드 크로키는 안 하고 다른 마음을 품을 수도 있어서 걱정하는 거라고요!
릭사엘:(거짓말 하나하나 티가 나서 눈물이 눈꼬리에 맺힐 정도로 웃다가) 그럼 얼굴 가리고 들어가는 건 된다고? 알겠어.
유스텐:할 생각도 없다고 했으면서 (부들부들...) 어른을 놀리기나 하고!
릭사엘:(키득키득 웃으며) 우리 이제 동갑인 거 알고는 있는 거지, 유스?
유스텐:그래도 릭스는 나한테 아직 꼬마거든요?!
릭사엘:그래? 아쉽네. 그러면 유스는 내 몸 볼 일 영영 없겠다. (괜히 놀린다)
유스텐:흥! 마음대로 해요. 난 손해볼 거 하-나도 없다고요.
릭사엘:(어차피 그렇고 그런 쪽은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그래, 그래. 알겠어. 마음 바뀌어도 난 모른다?
유스텐:'이쪽은 다 벗은 몸을 수십 번이고 봤으니까, 전혀 손해가 아니지.' (삐쭉이며 고개를 휙 돌린다) 릭스나 후회하지 말아요.
릭사엘:(내가 후회한다고?) 음, 설마 너도 안 보여줄 생각인 거야? 난 네 몸 보고 싶은데 왜?
유스텐:(얄밉게 팔짱을 끼며 고개를 치켜든다.) 하! 이유도 없이 내가 왜 벗어요? 릭스도 영영 안 보여줄 거면서.
릭사엘:(키득키득 웃으며) 글쎄, 모르지? 내가 언제 싫다고 했어. 우리 다 큰 유스가 날 안 보고 싶어하는 것 같길래 배려해준 거지.
유스텐:(으쓱) 배려는 내가 한 거거든요? 꼬마 릭스한텐 아직 이르다 - 이 말이에요.
유스텐:'뭐지? 매번 나한텐 잘도 매번 꼬마라고 불렀으면서.' (괜히 지기 싫어서) 네! 완전 땅꼬마로 보여요.
릭사엘:그럼 벗어줄 테니까 꼬마인지 아닌지 확인해볼래? (슥슥 허리에 묶여 있던 가운끈을 푼다)
유스텐:에? 거, 거짓말... (진짜로 다짜고짜 끈을 풀려고 하자 다급하게 두 손으로 저지한다) 자, 자자, 잠깐만요!
릭사엘:왜 그래? (저지하는 네 손을 놀리듯 끈을 완전히 풀어낸다) 확인해보는 편이 좋지 않겠어?
유스텐:(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으아아 - ! 아직, 아직 마음의 준비가...! 귀, 귀하신 분이 왜 이렇게 거침이 없는 거예요?!
릭사엘:마음의 준비 하고 말고 할 게 있어? 언제는 꼬마라더니. 확인도 안 해보고 눈부터 가리는 거야? (입고 있던 가운을 완전히 벗어내 침대 옆에 두고는 얼굴을 가린 네 손을 끌어내린다)
유스텐:(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뒤로 젖히고 낑낑거린다.) 진도가 너무 빠르다고요! 우, 우린 아직 키스밖에 안 했는데...! '미치겠네! 언제는 볼 뽀뽀만 해도 부끄럼타더니,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릭사엘:그냥 보는 것뿐인데 왜. (네 손을 끌어다 제 가슴 위에 얹다가, 고개를 갸웃하며) 키스밖에라니, 키스했으면 다 한 거 아니야?
유스텐:(어떻게든 네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 애쓰지만 결국 손끝에 푹신- 하면서도 단단하고 따뜻한 살의 감촉이 느껴져 소스라치게 놀란다.) 힉!!! 아, 제발... 저 좀 살려줘요, 릭스! (거의 울다시피 애원하다 네 말에 슬쩍 눈을 뜨며) '어라? 이 시대의 릭스는 설마 남성 간에 어떻게 섹스하는지 전혀 모르는 건가?' ... 그, 음... 그으-렇죠. 키스했으면 다 한 거죠. 하하!
릭사엘:(너와 이렇게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사회에서 규탄받을 일인 것을 떠올리니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으면서도 아무렴 어떠냐는 생각에) ...그렇지. 우린 이미 선을 넘었으니까. (네 손을 들어 제 뺨에 비비며) ...욕심을 더 채우든 채우지 않든, 난 너와 갈 수 있는 곳까지 가고 싶어, 유스.
유스텐:'어... 무슨, 뜻이지? 섹스하든 말든 상관없다 이건가? 배려?' (어색하게 웃으며) 으, 으응...
릭사엘:(애교부리듯 네 손등에 뺨을 비비며)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야?
유스텐:(무슨 뜻인지 제대로 못 알아들었지만 일단 느리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죠...?
릭사엘:(피식 웃으며 네 손등에 입을 맞추고는 도로 제 몸을 짚게 하며) ...더 만져볼래?
유스텐:'지, 진짜 이 사람 오늘 왜 이러지. 4년만에 사람이 너무, 너무... 혹시 쌓였나?' (현대의 릭사엘과 별다를 것 없이 똑같은 몸을 마주하자 심장이 쿵쾅거린다. 코로 호흡하는 것도 잊어버린 채 긴장한 숨소리만이 울린다. 손끝이 가느다랗게 떨린다. ) ... '만져도 되나? 이거 너무 불경하지 않나? 바람? 아니- 이미 키스도 해버린 마당에 바람 신경쓸 건 아니긴 하지... 아, 신이시여 - 왜 나에게 이런 힘든 시련을...'
릭사엘:(긴장한 듯 떨리는 네 손끝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숙여 네 입술을 부드럽게 베어물었다 뗀다. 가슴에 번지는 잔잔한 파문에 심장이 전율하듯 쿵쾅거린다) ... 유스, 난 너에게라면 나를 다 줄 수 있어. 주고 싶어.
유스텐:(심장이 과하게 뛰다 못해 머리까지 울려, 정신이 점점 산을 넘어서 우주로까지 간다.) '과거로 온 게 아니라, 사실 나는 어떤 시험을 받고 있는 거 아닐까?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 같은. 하하, 누가 나한테 이런 시험을 낸다고... 릭스? 뭐, 릭스가 모시는 신?' ... ... 다 줄 수 있다는 게, 어디부터 어디까지...?
릭사엘:(애틋하면서도 사랑스럽고,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너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우주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확신이 드는 기분에 옅게 눈물이 맺힌다) ... 내 몸과 마음, 희망과 꿈... 전부 다. 심지어 목숨마저도.
유스텐:(얼빠진 얼굴로 네가 하는 말을 들으며) '이 사람은 대체... 어떻게 기억 잃은 후랑 다를 것 없이 내게 전부를 주려 할 수 있지? 그때나 지금이나 특별한 걸 하지도 않았는데.' (고백을 넘어 저를 관통하는 듯한 저릿저릿한 충격을 받는다. 곧바로 얼굴이 귀끝까지 빈틈없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고개를 푹 숙인다.) '이걸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저도요." 라고 말하기엔 무게가 너무 커서, 가볍게라도 그런 말은 못 하겠어...' ... 내가 왜 그렇게 좋은 거예요? 난, ... 나는 딱히 그럴만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외관이 특출나게 잘난 것도 아닌데...
릭사엘:(부서질 듯 위태롭게 웃어보이며) ...그러게. 이유를 조목조목 따져보자면 사소한 것들인데... 너를 처음 만났던 화창한 날의 날씨와 바람, 온도... 네 손을 처음 잡았을 때 느껴졌던 부드러움과 처음 들었던 네 목소리... 정원에서 숨죽여 울던 나를 안아주던 네 품... 함께 거닐던 초원의 풍경... 그 모든 순간이 운명 같았어. 마치 내가 살면서 몰랐던 내 결핍을, 내 소망을, 널 만남으로써 처음 알아차린 것처럼 .
유스텐:으, 으으... (부끄러워 어떻게든 숨고 싶어 고개를 숙였음에도 숨고 싶은 마음은 여전해서, 눈까지 꾹 감아버린다. 웅크린 자세로 두 팔을 교차해 네 앞을 막고 끙끙거린다.)
릭사엘:(키득키득 웃으며 네 팔을 끌어내리고 부끄럽다는 듯 달아오른 네 뺨에 입맞추며) ...나 지금 고해성사 하는 기분으로 고백하는 중인데 그렇게 모른 척할 거야, 내 사랑?
유스텐:(어쩔 줄 몰라하는 바싹 익은 얼굴로 입술을 움찔거린다.) 부끄러운 걸 어떡해요... 이런 건, 이런 건 전혀 예상 못 했단 말예요. 전부 벗겨지는 기분이라고요...
릭사엘:(쿡쿡 웃으며) 그래? 그것 참 희한하네. 옷을 벗은 것도 나고 고백을 한 것도 나인데, 왜 네가 벗은 것 같아?
유스텐:(미간을 찌푸리며) 전부 당신 때문이잖아요. 당신이...! 막, 막...! (잠시 머리까지 멍청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무어라 설명해야 좋을지 단어조차 하나도 떠오르질 않아 다시 고개를 숙인다.)
릭사엘:(상냥하게 네 찌푸려진 미간에 입술을 꾹 누르며) ... 내가 낯부끄러운 말을 잘해서 부끄러워?
릭사엘:...나라고 이런 말을 하는 게 부끄럽지 않을 리가. (네 손을 들어올려 손가락 사이사이 깍지를 끼고는, 그대로 네 손등에 입을 맞추며 네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 난 말이야, 우리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네가 미래로 돌아가서 영영 오지 못하는 날이 올 걸 알아. 그래도... 내가 널 사랑했다는 확신 하나만큼은 네가 가져가줬으면 좋겠어. 내가 네게 가장 줄 수 있는 가장 가치있는 건 그거일 테니까. 그러니 난 너와 함께하는 모든 시간에서 노력할 거야. 네가 날 잊지 않도록.
유스텐:'아, 진짜... 교주님일 때의 릭스나 어린 시절의 릭스나 하나같이 너무 치명적이잖아. 스킨십은 아무것도 안 했는데 말로 죽게 생겼네... 나중에 이 모든 기억을 외계인한테 반항해서 다 까먹는다고? 진짜?' (빙글빙글 어지러이 돌아가는 눈을 하며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으, 으응...
릭사엘:(키득키득 웃으며 네 손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처럼 핥고 입맞춘다. 네 손끝, 손톱, 손가락의 관절 마디, 손등에 옅게 도드라지는 골격의 윤곽마저 더없이 귀하게만 느껴진다)
유스텐:'아이씨... 무슨 24살이 150넘은 교주님 급으로 야한 거야? 이거 사기 아니야?' 으음 - 나 민망한데.
릭사엘:(네 손목 안쪽의 동맥이 지나가는 자리에 입술을 마저 누르며) ... 부끄러움을 많이 타네, 내 사랑은.
유스텐:(시선을 피하며) 당신, 4년 사이에 너무 많이 변했어요. 그땐 볼 뽀뽀만 해줘도 부끄러워했으면서... 갑자기 엄청 적극적으로 변했어.
릭사엘:(눈을 감고 가만히 웃으며) ... 너 없는 4년이 너무 길었거든.
릭사엘:(감정이 오래도록 쌓인 것은 맞아서) ...그렇지.
유스텐:(힐끔) 그래서 부끄러움이고 자시고 내가 다음 시간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쌓인 걸 해소하겠다는...?
릭사엘:... 글쎄, 열심히 고백은 하지만 감정이 해소가 될까 모르겠네. (까지 얘기하다가 네 눈빛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에) ...? 왜 그런 표정이야?
유스텐:... 밤새도록 키스라도 하려는 건가 했어요.
유스텐:'잠깐... 이거 혹시 내가 지금 빌미를 제공해준 건가?' 그... ! 일단 출근 준비 해야죠!
릭사엘:(갑자기 말을 돌리는 네 모습이 그저 사랑스러워 짧게 입술을 붙였다 떼며) ...응, 그래야지. (라고 말하면서도 도저히 네 얼굴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아 한 번 떠 쪽 키스하고는 몸을 일으킨다)
유스텐:'뽀뽀 귀신...' 나랑 얘기하느라 시간이 꽤 많이 흐른 것 같은데, 괜찮아요?
릭사엘:응, 이제 준비하면 딱 맞아. 잠시만.
릭사엘은 나신으로 방 안을 터벅터벅 걸어가더니
스트라이프 패턴이 있는 베스트와 남색의 무지 재킷을 걸치고
그리고는 거울 앞으로 다가가 가만히 머리카락을 매만지더니
왁스를 꼼꼼히 발라 포마드 헤어를 한 채로 당신의 곁으로 돌아옵니다.
릭사엘:(가만히 회중시계를 열어 시간을 확인하고는) 유스 넌 옷 안 갈아입고 나갈 거야?
유스텐:(홀린 듯 바라보며) '릭스는 이런 모습으로 출근했구나... 머리 올린 건 결혼식 이후로 처음 본다. ...조교 맞아? 조교라기엔 너무 말도 안될 정도로 잘생겼잖아. 누가 이 모습을 보고 조교라고 생각해?'
어? 나는... (항상 상황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혀져 있었어서, 뒤늦게 제 차림을 확인한다)
얇은 천으로 된 갈색 톤의 면바지를 걸치고 있습니다.
릭사엘:(가만히 너를 일으키고 옷차림을 확인하며) 이대로 나가면 춥겠는데... (옷장에서 두꺼운 양모 니트 셔츠와 코트를 꺼내와 네 팔에 끼워입히고,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한다) 바지는 어떡하지... 너무 클 텐데.
유스텐:이 정도면 괜찮아요. 나 추위는 그렇게 많이 안 타거든요.
릭사엘:그래? 그렇담 다행이긴 한데... (너를 가만히 일으켜 세우고는, 코트 단추를 꼼꼼히 채워주다가 피식 웃어버린다. 평소 제 몸에서 종아리까지 오는 긴 코트를 입혔는데, 네 몸에서는 발목까지 닿아서. 새삼스럽게 네가 작은 게 실감되고 귀여워서 그저 웃음이 샌다) 유스텐:뭐야 - 왜 웃어요... 아빠 옷 훔쳐입은 사람 같아요?!
릭사엘:(키득) 응, 너무 귀여워. 바지는 따로 안 입어도 안 춥겠다. (코트가 발목까지 내려와서)
유스텐:(찌릿) 당신이 너무 큰 거라니까요! ... '따뜻하긴 엄청 따뜻하겠네.'
릭사엘:(연신 웃으며 장난스럽게 계속 네 입술에 입술을 붙였다 떼기를 반복한다) 알았어, 우리 꼬마 유스. 안 작다, 안 작아-
릭사엘:(말갛게 웃으며 네 이마에 쪽 키스하고는) ...사랑해. 봐줘.
유스텐:누가 그러면 봐준대요? ... ... (툴툴) 나니까 봐주는 거예요.
릭사엘:그럼, 그럼. 알고 있지. 우리 유스가 대인배인 거.
유스텐:'뭐지? 뉘앙스가 이상한데.' (갸웃거리다가 단순하게 넘어간다.) 완전 복 받은 거예요, 릭스.
유스텐:'이러다 다음에 만날 땐 여보라고 부르는 거 아니야?' 자기라고 불러도 좋아요.
릭사엘:(살짝 부끄러워하며) 그렇게 불러도 괜찮다는 뜻이야, 아니면... 좋다는 거야?
유스텐:'설마 기억 잃기 전에 결혼 한 번 더 하는 거 아니겠지???' 좋다는 뜻이에요.
릭사엘:(볼이 발그레 물든 채 너를 끌어안고 네 뺨에 제 뺨을 대며) ...정말? (네 뺨에 애교부리듯 쪽쪽거리다 네 귓가에 입술을 대고) 나 정말 기뻐...
유스텐:(꾸깃꾸깃 네게 안긴 채) '강아지 같네... 이때의 릭스는.' 가, 간지러워요.
릭사엘:(계속 히죽거리며) ...간지러워? 귀여워 죽겠어. (네 앙증맞은 귓불에도 쪽쪽 입맞추다가 살짝 빤다)
유스텐:(눈을 감고 바르르 떨며) 으응 - 간지럽다니까 왜 더 간지럽히는 거예요...
릭사엘:(속삭이며) ...자기가 몸 떠는 게 너무 귀여워. 계속 놀리고 싶어.
유스텐:(귓가를 간지럽히는 속삭임에 어깨를 들썩인다) 흐... 뭐만 하면 다 귀엽대, 진짜 - 출근 안 할 거예요?
릭사엘:...해야지. 알고 있어. (아쉽다는 듯 네 뺨에 한 번 더 입 맞추고는, 네 손에 깍지를 끼려다가) 아차. 이걸 줘야지. (근처의 서랍에서 회중시계 하나를 꺼내 네 손에 꼭 쥐여준다)
유스텐:(가만히 회중시계를 받아 살펴보다 널 올려다본다.) 이건 왜요?
릭사엘:알람 기능이 있는 거야. 전에 네가 시간을 건너뛰는 간격에 대해 얘기했을 때 잠드는 것 같다고 해서... 그러면 잠을 깨울 수 있을 만한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마련했어. (잠시 네 손바닥에 놓인 회중시계를 달칵 열며) 장인에게 부탁해서 6시간마다 타종음이 울리게 해뒀으니까, 어쩌면 도움이 될 거야.
설마 시간을 건너뛸 때 선물도 두고 가는 건 아니지? 그러면 나 좀 서러울 거야.
유스텐:(회종시계를 요리조리 뒤집어보며) 신기하다... 19세기에도 그런 기능을 넣을 수 있구나.
설마요- 당신이 준 선물인데, 사라지면 나도 서러울 거예요. (주머니에 회중시계를 쏙 넣고 장난스럽게 웃는다) 근데 이거, 나 빨리 보고 싶어서 의뢰한 거예요?
릭사엘:어쩔 수 없어. 오히려 좋은 거지. 난 네 거잖아.
유스텐:그건 그렇죠. ... 과거로 와서 소중한 게 많이 생겼네요. 이 시계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릭사엘:우리 어머니 유품이니까, 잃어버리면 안 돼. 알겠지?
유스텐:(눈과 입을 쩍 벌어지며 온몸이 굳어버린다.) 어, 어어, 어머니 유품을 지금 나한테 주는 거라고요??
유스텐:(고개를 빠르게 저으며) 안 돼요, 이거는... 받을 수 없어요! 너무 소중한 물건이잖아요...
릭사엘:하지만 타종 기능이 있는 회중시계는 시중에서 구하기 힘들어서 이거 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었는걸. 괜찮아, 네가 가지고 있어준다면 내가 갖고 있는 거랑 같으니까.
유스텐:그래도.... 어떻게 이렇게 귀한 걸....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눈가에 습기가 맺힌다)
릭사엘:어... 어? (네가 울 듯한 표정을 짓자 안절부절 못하며 네 뺨을 보드랍게 쓸어준다) 괜찮아, 유스? 응?
유스텐:(주먹 쥔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훌쩍인다.) 바보예요? 나의 뭘 믿고, 흑...이렇게 귀하고 소중한 걸 주는 거예요. 내가, 흣...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이래요... 만난 횟수도 열 번조차 안 되는 나한테 왜 이걸...
릭사엘:(네 젖어버린 눈가를 안타깝게 손가락으로 쓸어주다가, 눈물이 멎기를 바람으로 상냥하게 눈가에 입 맞추며) ...네가 이렇게 말할 사람인 걸 아니까 주는 거야. 이 물건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줄 너라면, 나도 믿을 수 있으니까. 분명 소중히 지녀줄 테고, 잃어버리지 않으려 노력해줄 테고, 설령 잃어버린대도 그건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일 때문이겠지. 그러니까 괜찮아. 받아줘, 유스. 유스텐:(저 같은 게 이런 걸 받아도 되는 걸까 싶어 불안함에 입을 연다) 잃어버려도 난 몰라요... 잃어버려도 나 미워하고, 나한테 화내면 안 돼요.
릭사엘:응, 화 안 내.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네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고는, 네 입술에 달콤하게 입맞춘다)
유스텐:(여전히 눈물을 매단 채 뭐 이런 바보 같은 사람이 있나- 하는 표정으로 널 바라보다 꼭 안는다) 바보...
유스텐:(네 가슴팍에 이마를 비비며 웅얼웅얼거린다) 사랑해요. ... 너무 순진해서 어떤 못된 사람한테 사기당할까 걱정돼서 곁에 있어야겠어요.
릭사엘:(부스스 웃으며) 나 그렇게 순진하지 않은데, 큰일났네. 앞으로 더 많이 순진해져서 유스 네가 어디도 못 가게 해야 하려나 봐.
(네 등을 토닥거리며 정수리에 다정하게 입맞춰준다)
유스텐:(울먹이면서도 투덜거린다) 일부러 바보 연기하면 화낼 거예요...
릭사엘:알았어. (네 턱끝을 살짝 들어올리고 고개를 숙여, 네 입술에 제 입술을 보드랍게 파묻는다)
유스텐:(어린 아이처럼 눈을 감은 채 훌쩍이는 소리만 낸다)
릭사엘:(너를 달래듯 연신 쪽쪽거리며 웃는다) ...이렇게 울어서야 밖에 나갈 수 있겠어? 아무리 다른 사람들은 못 본다지만, 우리 자기가 이렇게 슬퍼하고 있으면 나도 발걸음이 안 떨어지는데.
유스텐:(도리도리) 이제 안 울게요. 릭스는 바쁜 직장인이니까... 출근 안 하면 안 돼요.
릭사엘:옳지, 착한 아이구나. (네 눈물을 손으로 훔쳐 닦아내주며 네 얼굴 이곳저곳에 빠짐없이 키스한다)
유스텐:'세수라도 하고 나가야 하나 했는데 입으로 세수시켜주네...'
릭사엘:(네 다 닦인 얼굴을 보고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웃으며) 슬슬 나갈까? (그렇게 말하고는 서랍에서 털모자를 하나 꺼내 네 머리에 꼭 눌러씌운다)
유스텐:'따뜻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겨울옷으로 꽁꽁 싸맨 채 끄덕인다)
릭사엘이 곧 당신의 옷차림을 꼼꼼히 점검하고는
손깍지를 단단히 낀 채 당신을 현관으로 이끕니다.
찻잎 향과 벽난로의 연기 냄새가 살짝 새어나옵니다.
당신이 릭사엘을 따라 저택 현관도 지나 완전히 밖으로 나오면
햇살이 이른 겨울의 냉기를 살짝 밀어내고 있습니다.
언제 챙겨들었는지 가죽 서류 가방을 손에 든 릭사엘이
당신을 연신 돌아보며 마저 걸음을 내딛습니다.
하늘은 흐리지도, 완전히 맑지도 않은 잿빛 청색이고,
거리는 오래된 대학 건물과 서점, 제단 모양의 골목들이
꽉 닫힌 창문들 너머로 비치는 커튼이 햇살을 머금고 있네요.
릭사엘은 길을 건너며 주머니 속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그 소리 사이로 살 오른 비둘기 몇 마리가 날아오르는군요.
얼마 가지 않아 박물관으로 보이는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직 완공되지 않은 정원 한 켠의 벽돌더미와 상자들.
그 사이로 새로 칠한 간판이 반쯤 가려져 있습니다.
“University of Oxford — Pitt Rivers Collection”
이 시대 릭사엘의 아침은 늘 이렇게 시작되었겠지요.
이 오래된 향취가 나는 기나긴 박물관 복도를 지나가며.
릭사엘:(가만히 실내로 들어서 주변을 살피다가 너를 박물관 홀 중앙의 벽난로까지 데려가고는, 가만히 불을 쬐게 한다) 괜찮아? 안 추웠어?
유스텐:(옅게 볼이 붉어진 채로 고개를 젓는다) 응, 안 추웠어요.
릭사엘:(잠시 주변을 살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손에 끼워둔 장갑을 잠시 벗어 발갛게 달아오른 네 뺨을 부드럽게 문지른다) 우리 유스는 추위도 잘 참네.
유스텐:(아이처럼 자신있게 웃으며) 이 정도는 벗고 다닐 수도 있어요!
릭사엘:그래? (키득키득 웃으며 네 차가운 뺨에 입술을 누른다)
그래도 벗고 다니는 건 참아줘. 내가 걱정될 것 같아.
유스텐:어차피 릭스 말고는 아무도 못 보는데도요? '진짜로 벗고 다닐 생각은 없지만.'
릭사엘:응, 추울까봐 걱정될 것 같아. 우리 유스 얼마나 소중한데. (네 뺨을 다시금 감싸쥐고 입술에 쪽 짧게 입 맞추었다가 뗀다)
유스텐:'어째... 현대의 릭스보다 더 뽀뽀 귀신인 것 같은데, 기분탓인가?' 으응...
릭사엘:(해사하게 웃으며 네 볼을 주무르고는, 천천히 다시 장갑을 끼며) 몸은 조금 따뜻해졌어? 기록부는 사무실에 있을 거야. 출결 확인을 하러 가야 해.
유스텐:'하긴, 이 시대에는 카드 찍고 그런 게 있을 리 없지.' 잘 따라갈게요.
릭사엘:응, 이쪽으로. (너를 데리고 복도를 이동한다)
오래된 시계 초침 흐르는 소리가 점차 가까워져 옵니다.
릭사엘은 손에 들려 있던 서류 가방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표지에 “STAFF ATTENDANCE – 1882” 라는 글자가 금박으로 찍혀 있네요.
릭사엘은 가볍게 펜촉을 잉크병에 찍어 날짜를 적습니다.
그리고는 그 아래에 이름을 유려하게 적어내네요.
유스텐:(네가 적은 글씨를 가리키며) 어, 헤일턴은 뭐예요?
릭사엘:음... 전에 가문의 이름이 지워진 뒤에 이름과 출신을 세탁했다고 했잖아? 일단은 이쪽 성을 쓰고 있어. 레이븐데일 공작 각하의 먼 외척인데, 당시에 가주가 후계 없이 별세했거든. 그래서 나를 그쪽 집안 성씨로 넣으셨지.
유스텐:그렇구나... '하긴, 그 사건이 벌어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는 해도, 관련된 자들이 늙어 죽었을 정도로 오래된 건 아니니까...' 나도 헤일턴이라고 불러야 해요?
릭사엘:아니, 유스는 안 그래도 되지. 어차피 다른 사람들에게 말이 들리지도 않잖아. 그리고, 음... (말을 잇기 어려운 듯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나를 내 진짜 출신으로 불러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남아 있으면 좋겠어.
유스텐:'지워진 가문이라고 하니까 왠지 내 이름이 "유스텐 벨손드"로 바뀐 게 새삼 묘하네...' (끄덕) 그럼 내가 릭스만의 증거가 되어줄게요.
릭사엘:...고마워, 내 사랑. 그렇게 말해줘서.
출결 기록이 끝나자 릭사엘은 잠시 고개를 기울이며 생각에 잠기더니
박물관의 넓은 전시 준비실 쪽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릭사엘:(중얼거리듯) 오늘은 석기 구역을 정리해야겠네. 오후에 방문하는 학부생들이 주로 살펴볼 곳이 저기거든. 게다가 표본 라벨 정리가 완전히 끝나지 않기도 했고.
당신이 고개를 끄덕이면 릭사엘은 자켓을 벗고 흰 앞치마를 걸친 뒤
당신을 데리고 넓은 전시실 안으로 발걸음을 뻗습니다.
릭사엘은 당신이 구경하기 편하도록 벽난로 앞 책상의 의자를 끌어
하얀 면 장갑을 끼고 서류 더미를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그 속에서 릭사엘은 메모와 태그가 달린 유물 상자를 정리하며
유리 진열대 위의 두꺼운 먼지를 손수건으로 닦고,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옮기고 배치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는군요.
유스텐:(느리게 눈을 꿈뻑거리며) '하도 울어서 그런가. 이렇게 따뜻하게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하니까 되게 잠 오네. 이대로 한 숨 자는 것도...' (헉! 하며 빠르게 도리질친다) '안 돼! 여기서 잠들면 릭스가 엄청 속상해할 거야. 4년 만에 왔는데 반나절도 안 돼서 가 버리면...'
인근에서 상자를 정리하던 릭사엘이 키득키득 웃으며 다가와
유스텐:'에잇! 이렇게 편하게 있으니까 잠이 오는 거야. 뭐라도 해야겠어.' (벌떡 일어서서 살며시 네 등뒤로 다가가 빼꼼 - 하고 상체를 기울인다) 릭스, 나 심심한데. 내가 도와줄 건 없어요?
글쎄, 어디 보자... (품에서 장갑 한 켤레를 더 꺼내며) 그러면, 여기 있는 상자들 지역별과 연도별로 구별해줄래?
유스텐:(띠용) 으, 응? '이 상황... 현대에서도 한 번 겪었던 것 같은데, 기분탓인가?' (생각보다 엄청 본격적인 지시를 받아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니지... 현실적으로 당장 일터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이 뽀뽀로 기운나게 해달라느니 그런 도움을 바라는 게 이상하겠구나.' (장갑을 받고 주먹을 불끈 쥐며) 열심히 할게요!
릭사엘:(키득키득 웃으며) 그렇게 열심히 할 것 없어. 무리하지 않아도 나 혼자 오전중까지 끝낼 수 있으니까. 이곳 정리가 조금 일찍 끝나면, 카페테리아 가서 맛있는 걸 먹을 순 있겠지만.
유스텐:(고개를 기울이며) 엄청 늦게까지 일할 줄 알았는데, 오전 중에 퇴근하는 거였어요?
릭사엘:정리는 오전 중에 끝나고, 오후엔 학부생에게 내부 전시실 가이드를 한 다음 집에 돌아갈 거야.
음... 오후 4시쯤이면 끝나지 않을까?
내일까지 논문 검토 보고서와 세미나 자료를 만들어야 하긴 하지만, 거의 다 끝내뒀으니 아예 내일로 미루지 뭐.
유스텐:(쿠궁...) '또 미룬다고...? 내가 또 릭스를 충동적으로 만든 건가?' 서, 설마 또 나 때문에 충동적으로 결정한 거예요?
릭사엘:충동적이라니, 네가 오늘 아침에 내 침대에서 등장할 때부터 이 정도는 변경했어. (키득키득)
유스텐:(안절부절) 그래도 내일까지 해야 하는 거를 미루면 안되지 않을까요? 나 때문에 그런 거라면, 나는 혼자서도 얌전히 있을 수 있으니까 신경 써주지 않아도 돼요...!
릭사엘:음? (네 말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아, 내가 오해하게 말했구나. 보고서도 세미나도 아직 4일은 남았어. '내일까지'라고 한 건 내가 구체적인 단계를 정하고 개인적으로 정한 데드라인인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유스텐:뭐야아 , 그런 거였어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나는 또, 릭스가 대학 다닐 때 무단 결석 한 것처럼 과제도 확 째버리는 줄 알고 걱정했잖아요...
릭사엘:그럴 리가 없잖아. 유스 너도 참. (슬쩍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장갑을 낀 상태임을 자각하곤 대신 이마에 쪽 입 맞춘다) 걱정이 참 많다니까.
그리고 나 무단결석 한 번 했는데, 너무 오래 기억하는 거 아니야?
유스텐:꽤 충격적이었단 말이에요... 나도 릭스네 학과 교수님처럼 릭스가 엄-청 성실하고 모범생으로 생각했으니까. 교수님들이야 아파서 빠진 걸로 알지만, 난 다르잖아요. 당신이 결석한 이유가 나 하나 때문인데!
릭사엘:(살짝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응, 너 때문에 결석해 놓고는 술 마시고 키스하고 다 했지. 근데 난 후회 안 해. 돌아가라면 똑같이 할 걸?
유스텐:술 마시고 키, 키스했단 얘기까지는 안 해도 되거든요?!
릭사엘:그렇긴 한데, 말하면 유스 네가 또 귀엽게 굴 것 같아서 얘기 꺼내봤어.
유스텐:(부들거리며) 또 나를 가지고 논 거였어...!
릭사엘:(피식피식 웃으며 네 이마에 마저 키스하고는, 묵묵하게 다시 일하기 시작한다)
유스텐:(네 키스에도 분이 안 풀려서 씩씩거리며 뚱한 표정으로 네 옆구리를 콕콕 찔러댄다.) 맨날! 사랑한다면서! 놀리기나 하고! 나빠! 나쁜 릭스!
릭사엘:(옆구리가 찔려 간지러운 통에 정리하다 말고 웃음 소리를 내며) 읏, 흡... 간지러워, 잘못, 큽, 잘못했어.
유스텐:나빠! 무지 나빠요! 릭스는 강아지로 태어났으면 "BAD DOGGY" 소리 들었을 거예요.
릭사엘:(웃음 소리를 겨우 참아내듯 누르며) 그러니까 다행, 큽, 인거지. 아, 그만- 그만 찔러 자기야.
릭사엘:(간지러움을 참다 못해 장갑을 재빨리 벗고는, 네가 더 찌르기 못하게 몸을 꽉 끌어안고는 즐겁게 웃어젖힌다) 아- 잘못했어. 그러니까 진정해, 유스.
유스텐:흥... (여전히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밑입술을 툭 내민다)
릭사엘:(삐죽 네 입술에 애교부리듯 쪽쪽거리며) 응? 유스, 용서해줘. 응?
귀여워서 그랬어. 기분 상하게 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 응?
유스텐:바 -------------------------------- 보.
릭사엘:(키득키득 웃으며) 그래? 우리 유스 대단하네. 천재고.
난 바보라서 어떡하지?
유스텐:(슬쩍) ...천재가 지켜줘야죠. 사기당하지 않게.
릭사엘:(장난스럽게) 그래? 좋아, 그럼 앞으로 어디 가지 않는 거야. 알겠지? 너 없으면 바보인 나는 사기 당해서 무일푼으로 쫓겨다닐지도 몰라-
유스텐:'실제로는 부자가 된 릭스가 날 먹여살리는 중인데...' ... 나중에 토지문서 조심해요, 알았죠?
유스텐:릭스는 순진하니까 나중에 사기당한다면 그런 걸로 당할 것 같았거든요. '실제로도 당했고.'
릭사엘:에이, 그런 귀중한 걸 금고도 아니고 그냥 보관할 리도 없고. 괜한 걱정이야.
유스텐:금고가 털릴 가능성도 생각해야 하는 거라고요!
릭사엘:(잠시 네 진지한 외침에 생각에 빠지며) ...금고까지 작정하고 터는 놈을 막을 순 있어?
유스텐:... 그, 러니까 넣고 50년 뒤, 아니, 30년 뒤에 열어봐요. 타임캡슐처럼. '30년 뒤면 릭스도 신체변화가 다 되고도 남았을 시간이겠지?'
릭사엘:... (죽은 뒤에 열라는 소리인가? 이게 대체 무슨 뜻이지?) 어... 일단은 알겠어...
유스텐:(네 양 어깨를 두 손으로 감싸쥐고 줄줄줄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천재 유스텐님의 귀하디 귀한 1인 단독으로 들려주는 돈 주고도 못 듣는 강의니까 꼭 새겨 들어요.
릭사엘:어... 알았어, 유스... (왜 이렇게까지 진지한 거지? 그나저나 폭탄이 터지는데 토지 문서가 무사할 순 있나?)
유스텐:'휴... 이걸로 릭스도 사기당할 확률이 줄어들겠지? 난 진짜 착한 배우자라니까 - '
그렇게 누군가는 진담, 누군가는 농담으로 이해하는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전시실 내부로 들어오는 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공기 속의 먼지 냄새 사이로 새로 닦은 구두의 향이 스며듭니다.
짙은 회색 트위드 코트를 입은 교수가 들어오고,
그 뒤를 따라 다른 조교가 서류뭉치를 들고 들어서네요.
교수:(전시실 내부를 둘러보며) 헤일턴 씨, 오늘도 일찍 나오셨군요.
릭사엘:(천천히 너를 안고 있던 팔을 풀며) 좋은 아침입니다, 교수님.
교수:(손에 든 안경을 벗어 들며) 어제 회의에서 논의한 컬렉션 분류안 말입니다. 도구군의 문화별 분류 체계를 조금 바꿔보려 합니다.
‘기능별’ 구분이 더 합리적이라는 의견이 있었어요.
그렇게 말한 교수는 릭사엘에게 서류를 하나 내밉니다.
릭사엘은 그것을 가까이 다가가 받아들고는, 종이 가장자리를 매만지며
릭사엘:(잠시 고민하듯) 그러한 의견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용 목적에 따른 구분은 지역 간 중복을 야기할 수 있겠지요. 기원적 연관성을 무시하면 진화적 전이가 흐려질 우려가 있습니다.
교수:(예의 바르지만 단호한 말투에 눈썹을 살짝 올리며) 그렇다면 헤일턴 씨는 이전의 분류 체계를 유지하자는 입장이신 겁니까?
릭사엘:유지라기보다, 병행 검증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인력을 움직이는 것은 비용면 시간면에서 부담하게 될 리스크가 크니까요.
교수:(그 말에 잠시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미묘하게 웃으며) 헤일턴 학생의 의견을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체계와 기존 체계, 두 가지 모두로 보고서가 필요하겠군요.
이번 주 중으로 초안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릭사엘:알겠습니다, 교수님. 이번 주 중으로 찾아뵙지요.
교수는 안경을 다시 쓰고 문 쪽으로 향합니다.
유스텐:(빼꼼) 저 할아버지가 뭐라는 거예요? 기껏 정리해놨는데 바꾸라는 거예요?
릭사엘:(교수님을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네 말에 그저 웃으며) 응, 그런 셈이지.
일단 내가 보고서 제출하면, 교수님과 조교들 사이에서 다시 합의점을 찾을 거야.
유스텐:그러니까... 꼬우면 긴 문서로 반박하라는 거네요?
어쨌든 당장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건 없으니까, 마저 일이나 할까? 곧 점심 시간이니까 나가서 맛있는 거 사줄게. 체웰 강 보면서 먹는 송어 구이는 어때?
유스텐:'조교는 박봉 아닌가? 나중에 교단 만들려면 지금부터라도 돈을 아주아주 많이 모아둬야 할텐데.' (도리도리) 으응 - 괜찮아요.
릭사엘:음, 별로야? 그럼 양고기 커틀릿 먹으러 갈래? 근처 호텔 다이닝룸에서 제공하는 게 있는데, 꽤 맛이 좋아.
유스텐:양고기 커틀릿?! '맛있겠다...' (빠르게 고개를 저으며) '아니지, 릭스 빨리 돈 모아야 하는데 나 때문에 괜히...' (그러다가도 멍한 얼굴로 침이 나올 것처럼 입이 벌어진다.) '그치만, 양고기 커틀릿은 아직 못 먹어봤는데...'
릭사엘:(실시간으로 가지각색 변하는 네 표정을 보며 웃다가, 네 입술에 쪽 입 맞추며) 침 나오겠어, 유스. 알았어, 먹으러 가자.
유스텐:으어? 아, 아니 - 나는... (스읍 하고 입밖으로 나올 뻔한 침을 삼키며) 진짜 괜찮은데...
릭사엘:(먹고 싶은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부정하려 하는 네 모습을 보다가 툭) 나 그렇게까지 돈 없지 않아, 유스. 가서 개인 다이닝룸 들어가서 편하게 먹자.
유스텐:그래도... 나중에 많은 돈이 필요한 날이 올 수도 있잖아요...
릭사엘:너한테 맛있는 것도 못 사줄 돈이면 버는 의미도 없잖아. (네 귀여운 머리통을 폭 끌어안고 쓰다듬는다)
유스텐:그럼 릭스가 돈 버는 이유는 다 나 때문인 거예요?
릭사엘:(네 머리를 연신 쓰다듬으며 미소짓는다) 다 너 때문인 건 아니지만, 일부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 나는 학자인걸.
유스텐:그렇구나... (너를 올려다보며) 릭스는 돈 많이 모으면 뭐하고 싶어요?
릭사엘:음... (저를 올려다보는 네 시선에 살짝 고개를 낮추며) 딱히 생각해본 적 없는 것 같아. 비용 때문에 무언가를 못한 적은 없거든.
그나마 하고 싶은 거라면... 여행? 난 영국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으니까.
유스는 돈이 많으면 뭘 하고 싶어?
유스텐:음 - '이젠 진짜 돈 걱정 안 해도 되는 상황이지만, 듣고 보니 뭘 하고 싶은지는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네.' 방에서 부르주아 놀이 하고 싶어요.
릭사엘:(갸웃) 부르주아 놀이...? 어떻게 하는 건데?
유스텐:어... 1달러짜리 지폐뭉치를 뿌려보기?
릭사엘:음, 그렇구나... (잠시 고민하다가) 유스 성이 애쉬미어라고 했었던가?
릭사엘:(네 말에 답하지 않고) ...출신지는 미국 어디야?
유스텐:'왜 물어보는 거지?' 오하이오 주요.
릭사엘:그렇구나. 알겠어. (네 머리카락을 마저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릭사엘:그냥. 너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아서. (...시점은, 유스가 2025년에서 왔다고 했으니... 2026년 정도면 되려나)
유스텐:아, ...대화를 되게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단순한 것도 안 알려주고 있었네요, 내가.
릭사엘:(부스스 웃으며) 그걸 이제야 알면 어떡해. 천재라며. 천재 맞아?
유스텐:처, 천재도 굴러떨어지는 법이거든요?! '정확히는 원숭이지만...'
릭사엘:(귀엽기는...) 알았어, 천재 유스. 자, 그럼 마저 일할게 난. 자기는 여전히 나 도와주겠다는 말 유효해?
릭사엘:(네게 입맞추며) 좋아, 그럼 어서 하고 점심 먹으러 가자. 실내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나가고 싶어.
유스텐:'실내가 답답하다고...? 현대 릭스는 외출을 3년만에 하는 사람인데?' 으응!
릭사엘은 다시 장갑을 끼고 일에 열중하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그런 그를 따라 마저 장갑을 손에 끼고는
당신의 앞에 놓인 유물이 든 나무 상자들을 바라봅니다.
유스텐:지능| 기준치: | 55/27/11 |
| 굴림: | 24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당신은 지역별로 크게 유럽, 중동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등의 대륙별로
상자를 구분한 뒤 연도별로 상자를 일렬로 놓습니다.
중간에 안데스가 어디였었는지 까먹어 헷갈렸다지만
릭사엘이 마저 장갑을 벗고 다가와 당신을 껴안습니다.
릭사엘:(네 등을 토닥이며) 고생했어. 나도 다 끝냈으니까 식사하러 갈까?
유스텐:좋아요. (한 쪽 팔을 번쩍 들어올려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릭스도 고생했어요.
릭사엘:고마워, 유스. (머리 위에 닿는 촉감에 방긋 웃다가, 네가 쓰다듬기 좋게 머리를 숙여준다)
유스텐:(북북북 쓰다듬으며) '현대 릭스는 거대한 맹수 같은데, 과거 릭스는 덩치만 큰 강아지 같다...' 좋아요?
릭사엘:(배시시 웃으며) ...응, 기분 좋아. 더 해줘, 자기야.
유스텐:'털 안 빠지는 대형견... 좋을지도.' 근데 계속 만지면 기껏 말끔하게 올린 머리가 꼬질꼬질해질텐데.
릭사엘:그런가? 오후에 학부생들 앞에서 설명해야 해서 신경 쓴 건데. (피식피식 웃다가 너를 안아 들어올리며) 모르겠다, 좀 꼬질꼬질한 채로 설명하지 뭐. 유스텐:끙 - (얌전히 네게 안긴 채 곰곰이 생각하다가) 치, 침바르면 좀 낫지 않을까요?
릭사엘:(쿡쿡 웃으며) 재미있는 발상이네. 누구 침을 바르라고?
릭사엘:곤란하네. 내가 침 바르고 싶은 곳은 여기뿐인데. (장난스럽게 입술을 마주 겹치고 혀로 쓸었다가 뗀다)
유스텐:(놀란 토끼눈을 하며 얼굴을 붉힌다) 머리 얘기하다가 갑자기 왜 거기로 튀는 거예요...!
릭사엘:(수줍게 웃으며) ...이 각도에서 자기 입술이 엄청 잘 보여서.
유스텐:이 각도 아니어도 뽀뽀하면서...! 오늘만 열 번도 넘은 것 같아요.
릭사엘:...계속 해도 또 하고 싶은 걸 어떡해. 넌 안 그래? 나만 이런 거야?
유스텐:으음 ... 생각나기도 전에 매번 먼저 해줘서.
릭사엘:...그럼 지금 해주면 되겠네. (네 엉덩이를 단단히 받쳐 안은 채로 너를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유스텐:우리 머리 얘기 하고 있던 거 아니었어요? 어쩌다 이렇게 됐지...
릭사엘:...말 돌리지 말고 빨리. (품에 안아든 네 엉덩이를 살짝 매만지고 보챈다)
유스텐:(화들짝 놀라며) 으앗! 거긴 왜...! '진짜 키스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 맞나?'
하아 - 알았어요. '도저히 이길 수가 없네.' (속으로 항복 선언을 하고 고개를 들어올려 네 입술에 새털처럼 가볍게 입을 맞췄다 뗀다)
릭사엘:(네 품에 고개를 묻고 반짝이는 눈망울로 너를 올려다보며) ...더.
유스텐:(네 한 쪽 뺨에 손을 올려 고개를 끌어당겨 다시 한 번 입술을 포갰다 뗀다. 솔직한 부탁이 귀엽게 느껴져 웃으며) 일터에서도 참을 생각이 없네요, 당신은.
릭사엘:(배시시 웃으며) 내가 너랑 있을 때 무언가를 참는 거 본 적 있어? 없을 것 같은데.
유스텐:그건 그렇죠. 어디까지 참지 않으려나 몰라 -
릭사엘:그건 내 의지가 아니라 너한테 달린 거 아니야? 난 네가 허락해주거나 넘어가주는 선까지만 하잖아.
유스텐:의외로 욕심은 없는 편이네요, 릭사엘.
릭사엘:응, 그렇지?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게 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 (너를 품에 안아올린 채 네 품에 아이처럼 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비비며 웃는다)
유스텐:하하, 그건 조금 수도승 같네요. 어차피 더 할 것도 없나... '릭스는 키스가 전부인 줄 아니까.'
릭사엘:(고개를 갸웃하며 순수한 얼굴로) 더 할 건 많지 않아?
릭사엘:음, 글쎄... 데이트도 해보고 싶고 여행도 가보고 싶고... 생각해보면 더 있겠지? 그리고 나 아직 네 몸도 못 봤잖아. (별 뜻 없이 이야기한다)
유스텐:마, 마지막 말은 뭐예요? 키스밖에 모른다고 했잖아요. 나한테 거짓말 친 거였어요?
릭사엘:응? (고개를 갸웃하며) 내가 그런 말을 했었다고?
유스텐:아니, 내 말은... 키스면 다 한 거 아니냐는 식으로...
릭사엘:아하... 이미 선은 넘었으니까 거리낄 게 더는 없다는 뜻이었지... 음...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 모르진 않아.
(뒤늦게 황망하게 덧붙이듯) 그, 그렇다고 하고 싶다는 뜻은 아니고...
유스텐:(슬쩍 떠보며) ...어디까지 아는데요?
릭사엘:어... 성교육 받을 때 배운 정도까지는 알지?
근데 난 너랑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딱히 신경쓰지 않아도 돼.
릭사엘:그거야... 사랑하는 사람 몸이니까 궁금한 거고... (말을 하다보니 민망해져서 살짝 시선을 피한다)
유스텐:'다른 건 하나도 안 부끄러워하면서 이건 부끄러워하네. 조금만 놀려볼까...' 그러니까 - 내 몸만 궁금하다?
릭사엘:내,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 (귀끝까지 붉게 달아올라 입술을 움찔거린다)
유스텐:(생글생글 웃으며) 나한테는 그렇게 들렸는걸요? 그래요, 릭스. 당신 원하는대로 데이트하고, 여행하고, 손잡기랑 키스만 해요.
(새빨갛게 익은 얼굴로 부루퉁하게 눈매를 좁히며) ...또 나 놀리는 거지, 이 장난꾸러기.
유스텐:(능청스럽게 네 코끝을 톡 건드리며) 배려해주는 건데요? 당신이 아침에 말했던 것처럼.
릭사엘:(살짝 툴툴거리며) ... 유스 넌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날 봐도 그런 생각이라곤 일절 안 들어?
유스텐:(눈을 내리깔며 네 입술라인을 검지로 덧그린다) 그런 생각이 뭔데요?
릭사엘:(입술에 닿는 촉감에 속눈썹을 내리깔고 파르르 떨며) ...더 많이 닿고 싶다는 생각.
유스텐:'아, 재밌다. 순수한 릭스는 엄청 귀엽구나...' 당신은요? 가진 것에 만족한다고 했잖아요.
릭사엘:... (고개를 슬쩍 돌리고 눈동자만 굴려 너를 올려다보며)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
유스텐:'지금의 릭스한테는 너무 이른 거 아닌가?' (라고 동갑인 주제에 그런 생각을 하며) '아직 섹스 비스무리한 것까진 잘 모르겠는데. 지금의 릭스가 풋풋하고 귀엽게만 느껴져서. 음 - 그래도 아니라고 하면 상처받겠지.' 사랑하는데 당연히 닿고 싶죠.
릭사엘:(심장 소리가 귓가에 울릴 듯 쿵쿵거려서 조심스럽게 다시 고개를 들며) ...것 봐. 나라고 다르진 않다고.
유스텐:(픽 웃으며) 아깐 현재에 만족한다고 했으면서.
릭사엘:... 절반은 그렇고... 절반은 욕심나고... 그래.
유스텐:(도리도리) 지금 한 말이 거짓말이라는 게 아니라, 아깐 욕심 같은 거 없는 것처럼 말했으니까요.
릭사엘:그야... 난 그런 쪽 경험은 한 번도 없는걸... 뭘 알아야 원하니 마니 얘기라도 하지... (시선을 다시 피하다가도 너를 힐끔거리며) ...나도 사람인데, 사랑하는 사람 앞에 두고 욕심이 어떻게 없을 수 있어.
유스텐:처음부터 솔직하게 얘기하면 좋잖아요. 모르는 거야 뭐- (잠시 시선을 돌리다가 다시 눈을 마주치며 별 생각 없이 던진다.) 연구원 같은 자세로 임하면 뭐든 얻는 게 있지 않을까요?
릭사엘:(네 말을 들으면서도 입술을 비죽 내밀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 연구원 같은 자세...? 그게 어떻게 가능한데?
유스텐:뭐, 학자나 탐험가 같은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미지의 영역에 대해 알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이것저것 시도해보잖아요? 그런 거죠. 시도하고 싶은 건 일단 다 해보는.
(으쓱) 모른다고 아무것도 안 하면 평생 아무것도 모르는 게 되니까요.
(눈을 가늘게 뜨며) '근데, 섹슈얼한 내용에 관한 얘기하는 중 아녔나? 어쩌다 보니 이상한 쪽으로 흘러간 것 같기도.'
릭사엘:일리가 있네...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어. 노력해볼게.
유스텐:'뭘 노력한다는 거지?' 으, 응원할게요?
릭사엘:응...!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지르고본다)
(천천히 너를 품에서 내려두며) 그럼 이제 식사하러 갈까? 양고기 커틀릿 먹고 싶어했잖아.
유스텐:좋아요. ...생각보다 여기서 대화를 너무 오래했네요.
릭사엘:좋아, 그럼 슬슬 이동하자. (네 손에 깍지를 끼며 기분 좋게 흔든다)
사무실에서 앞치마를 벗고 재킷을 다시 걸쳐 입는 릭사엘을 보고
아직까지는 조금 서늘한 복도를 건너 박물관의 문을 밀고 나오자 마차 몇 대가 굴러가며 자갈 위로 부드러운 소리를 남기고
햇살이 기울며 도로의 돌 틈마다 반짝임을 남깁니다.
문득 내려다본 바닥에 릭사엘의 그림자가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당신이 이방임임을 증명하듯 당신의 그림자는 흐릿하기 짝이 없네요.
"Randolph Hotel"이라는 이름의 호텔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입구 위의 황금색 문장이 햇살 속에서 은은하게 빛납니다.
공기에는 버터와 와인의 향이 아주 미세하게 섞여 있네요.
당신들이 다가오자 호텔의 직원이 방문 의사를 묻고
릭사엘은 프라이빗 다이닝룸에서 식사를 원한다고 전합니다.
당신들은 곧 작은 식탁이 마련된 방으로 안내받습니다.
릭사엘이 이번에도 다른 식사때와 같은 꼼수를 사용했는지
릭사엘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는지 이번에는 당신의 자리를 빼주지 않고
다가온 웨이터에게 민트 소스가 드리즐 된 양고기 커틀릿 두 접시와
유스텐:'뭐가 있는지 모르는데...' 레, 레모네이드?
릭사엘:(피식 웃으며 마저 레모네이드를 주문하고 웨이터를 물린다)
유스텐:이번엔 어떻게 말해서 식기 두 세트를 준비하도록 한 거예요?
릭사엘:(웨이터가 나가고 문까지 닫히는 것을 확인한 뒤) 동행인이 있는데 학회에서 급한 연락을 받아 출타했고, 식사 시간까지 올지 안 올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두 세트를 내와달라고 했어. 일정이 바쁜 친구라 요리 중의 시간까지 기다릴 여유 없다고.
기다리고 있으면 금방 나올 거야. 10분 정도?
유스텐:릭스는... 거짓말의 신이구나... 상상도 못했어요.
릭사엘:(피식) 이 정도 요령은 있어야 살기 편하지.
유스텐:릭스는 착한 사람이라 다행이란 생각을 했어요. '똑똑한 사람이 거짓말도 잘 친다는 게 진짜였구나.'
유스텐:릭스가 나쁜 사람이었으면 분명 희대의 사기꾼이 되었을 거예요.
유스텐:그럼요 - 무지무지 똑똑하다는 뜻이에요.
릭사엘:이거 영광인걸? (슬쩍 손을 뻗어 네 손을 부드럽게 잡은 뒤, 손등에 쪽 뽀뽀하며 웃는다)
유스텐:(으쓱) 물론 천재 유스텐님을 따라오기엔 한 - 참 멀었지만요.
릭사엘:그럼, 앞으로 (2025에서 1882를 빼며) 133년이나 남았지.
릭사엘:그렇게나 오래? 그 정도로 오래 살면 지구상에 있는 걸 다 해보는 거 아냐?
유스텐:반은 농담이었어요. 그만큼 살면 사는 것도 재미없을 것 같아요.
릭사엘:그렇지. 물론 농담이겠지만서도... 음, 나 혼자 오래 살아서 뭐해. 사는 의미가 있어야지. (너를 손가락으로 슬쩍 가리켰다가 거둔다)
유스텐:(피식) 뭐예요, 방금. 사는 의미가 나라는 뜻?
릭사엘:에이, 시위까진 아니었지. (제 맞은편에 앉아 있는 너를 보면서도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유스텐:하하, 알아봐달라는 뜻이 아니라고는 안 하네요.
릭사엘:(키득키득) 유스 네가 나랑 같이 지구 나이만큼 살아준다면, 나도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너도 지구 나이만큼 살아.
유스텐:지구 나이만큼 살면 할 거 다 하고도 남아서 재미없지 않겠어요?
릭사엘:...그럼 그때는 널 보고 있으면 될 테니까. (발갛게 물든 얼굴로 미소지으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인다)
유스텐:그래도 내 얼굴도 언젠가는 오래 보면 질릴텐데.
유스텐:(한 쪽 턱을 괴며) ... 릭스, 나 사실 현대에 있을 때도 영국은 한 번도 안 가봤거든요? 이렇게 과거로 와서 보는 영국이 처음이란 뜻이죠.
문득 궁금해진 건데, 영국 사람들은 다 이렇게 신사적이에요? 다 릭스처럼 로맨틱하게 말하는 건가 해서.
릭사엘:응? (네 말이 잠시 이해가 가지 않아 눈을 살짝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소리내어 웃어버린다) 아하하...! 그런 생각을 했어?
(계속 싱글벙글 웃으며) 으음- 미국은 이곳과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사람 사는 곳이고, 그곳은 영국 사람들이 이주해 세워진 나라이니 여기나 거기나 다르진 않을 거야.
릭사엘:2025년의 미국은 지금보다는 훨씬 다를 수 있겠네. 지금은 미합중국이 생겨난 지 100년도 안 되었고, 네가 살고 있는 미국은 지금보다 100년 넘는 시간이 흘렀을 테니까. 유스텐:그렇구나. 그럼 모두가 릭스처럼 말하는 건 아닌 거예요?
릭사엘:글쎄, 이곳은 신분에 따라 사용하는 말투가 다 달라서. 화이트 채플 같은 곳에 가면 코크니 억양을 들을 수 있다는데, 그쪽 말은 많이 험하다고 들었어.
릭사엘:그래? 음, T 소리를 아예 숨으로 먹어버리는 거친 억양이래. 들어본 적 없어?
아, 이런 소리는 이상하려나. 사실 나도 들어본 적은 없어서.
유스텐:상상이 안 가는걸요... 어떻게 하는 거지? 머릿속으로 발음해보려니까 이상한데.
유스텐:시, 싫어요 - 상상해도 이상하고 어색한 걸 입밖으로 내뱉는 건.
릭사엘:(귀여워...) 알았어, 나중에 내가 배워와서 어떤 말투인지 알려줄게.
릭사엘: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 없지, 대체로 노동자 계층에서 많이 쓰니까 아무데서나 한 명 붙잡을 수 있지 않겠어?
유스텐:(눈을 휘둥그레 뜨며) 부, 붙잡아요?
유스텐:휴 - 붙잡는다고 하니까 오해했잖아요.
릭사엘:응? (갸웃) ...이상한 걸 생각했어?
유스텐:(슬쩍...) 납치... 같은 걸 생각했어요. 지하실 의자에 묶어두고 ... 코크니 억양을 릭스가 제대로 이해할 때까지 가두는...
릭사엘:... 자기야, 언제는 나보고 착하다며...
(저 말이... 나를 순 악당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랑 뭐가 다르지? ...)
유스텐:오해해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거지, 릭스가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식탁 위에 바삭하게 구워진 양고기 커틀릿이 올라옵니다.
음식을 서빙해온 직원이 당신들의 앞에 고급스러운 와인 한 병과 글라스,
그리고 초록빛 바질잎이 올라간 상큼한 레모네이드를 내려놓습니다.
릭사엘:(가만히 와인 병을 기울여 잔을 채우며) 어서 먹자, 나 일하는 거 도와주느라 배고팠지?
유스텐:(고개를 저으며) 일하는 게 꽤 재밌어서 배고픈 줄도 몰랐어요. '릭스 만나고서 일 같은 일을 해본 게 오랜만이었지.'
릭사엘:그랬어? 그랬다면 다행이지만. (건배하자는 뜻으로 잔을 들어올려 네 쪽으로 내민다)
릭사엘:조금만 마셔. 낮부터 취하면 큰일 나.
유스텐:... 저번에 만났을 때 이후로 술 입에도 못 대게 할 줄 알았는데. (장난스럽게 웃으며 잔을 받아든다.) 나 믿어요?
릭사엘:(키득키득 웃으며) 솔직히 저번에 제대로 당해서 믿음은 잘 안 가지? 그래도 유스 너 술 좋아하는 것 같던데 어떻게 나만 마셔.
유스텐:믿음은 안 가는데 준다는 건... 신뢰와 사랑 중에 후자가 이겼다는 거네요? 술보단 음료수를 더 좋아하긴 하지만, 살짝 취기 오르는 느낌이 좋아서 끊을 수가 없어요.
릭사엘:귀엽기는... 몸에 부담되지 않을 선에서는 얼마든지 마셔도 용인해줄 테니까, 지금 이 와인이 입에 안 맞으면 다른 걸 시켜. 음료수를 좋아한다면 칵테일도 좋아하겠네.
유스텐:("칵테일"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활짝 웃는다.) 아 ~ 칵테일 너-무 좋아하죠. 음료수와 주류의 사이에 낀 최고의 액체죠.
릭사엘:(키득키득 웃으며) 어지간히 좋아하나 보네. 그러면 이 다음 잔은 펀치로 시켜줄게. 어서 마셔봐.
유스텐:'펀치 마시려면 빨리 비워야겠다.' (호기롭게 와인이 든 글라스잔을 기울이다가 눈을 질끈 감으며 잔을 멀리 떨어뜨린다. 혀를 살짝 내밀며) 윽, 써 -.
릭사엘:(쿡쿡 웃으며) 우리 애기, 써? 입에 안 맞나 보네. 레모네이드 마셔.
유스텐:(혀에 남은 쓴맛을 씻겨보내려 레모네이드로 목을 축이고선) 나도 어른이지만 대체 이렇게 쓴 걸 다들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릭사엘:고급 와인은 맛을 보려고 먹는 게 아니라 향을 맡으려고 먹는 거니까 그렇지. (쿡쿡 웃으며 옆에 놓여있는 작은 벨을 흔들어 직원을 부른다)
직원이 다시금 요청 사항을 받으러 들어옵니다.
릭사엘은 잠시 식탁 위에 놓인 레모네이드를 보고는
웨이터가 얼마 가지 않아 한 잔을 가져와 테이블 위에 놓습니다.
릭사엘:(네 앞에 놓인 커틀릿을 제 쪽으로 끌어다 먹기 좋은 크기로 우아하게 썰어낸다) 펀치 마셔봐. 맛이 좋을지 모르겠네. 그래도 호텔이니 평타는 칠 것 같긴 한데.
유스텐:(펀치를 빤히 보며) 예쁘다... 먹기 아까워요.
릭사엘:예뻐? 유스 예쁜 거 좋아? (커틀릿을 마저 단정하게 썰어낸다)
유스텐:예쁜 거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릭스도 예쁘게 생겼잖아요. 물론 얼굴 때문에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릭사엘:(나이프를 움직이다 말고 쿡쿡 웃으며) 내 얼굴이 예뻐? 네 취향에 맞아?
유스텐:(한 치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응, 예뻐요. 여자로 태어났어도 인기 많았을 것 같아요.
릭사엘:(살짝 장난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그래서 네 앞에 놓인 펀치처럼 아껴 먹으려고?
유스텐:응? 그게 무슨 ㄸ... ... (갸웃거리던 얼굴이 말없이 3초간 점점 달아오르더니 구겨진다.) 릭스...!
릭사엘:(장난스럽게 웃으며 정갈하게 썰어낸 커틀릿을 도로 네 앞에 놓아주고는, 태연하게) 왜 그래, 내 사랑. 내가 못할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다-
유스텐:(씩씩거리며 말이 생각을 거치지 않고 나온다) 아껴먹긴 뭘 아껴먹는다는 거예요?! 게다가 먹어도 내가 먹는 게 아니라 당신이 먹는 게 맞죠.
릭사엘:내가 널 먹는 게 맞다고? 그런 거야? 어떤 논리로?
유스텐:아. ... '현대의 릭스랑 완전히 똑같이 생겨서 그런가. 계속 말실수하게 되네.' (고개가 빳빳하게 옆으로 돌아가며 널 눈치보듯 시선을 피한다) 그, 글쎄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 "하하, 릭스도 참-! 그건 말이죠- 릭스 게 내 안으로 들어와서 여기저기 헤집고 엉망진창으로 휘젓고 나오니까 릭스가 먹는 게 맞다는 뜻이에요! 어때요, 말 되죠?" 이러라고? 차라리 죽겠다.'
릭사엘:(네가 얼마나 엄청난 생각을 했는지는 전혀 모르고 고개를 갸웃한다) 표정이 왜 그래?
유스텐:(이런저런 말로 둘러대며) 보, 보통... 덩치 큰 동물이 작은 동물 잡아먹고 그러잖아요. 그런 뜻이죠. (눈치)
릭사엘:(그저 키스 좀 먼저 해달라고 보채는 데에 약육강식 논리까지? 뭔가 이상함을 눈치채지만 일단 넘긴다) 그 말도 맞네. 그럼 내가 널 잡아먹는 게 당연한가?
유스텐:(빨리 대화 주제를 넘기려 연신 끄덕인다) '일단 릭스 말은 무조건 다 맞다고 하자.' 응, 그렇죠.
릭사엘:그러면 아무 때나 잡아먹어도 된다는 뜻이지?
유스텐:응, 응! 아무때ㄴ.... (제대로 듣지도 않고 일단 끄덕이고 보다가) 네?
유스텐:무, 문제가 엄청 많죠!! 아무 때나 어떻게 그런 변태 같은 짓을...!
릭사엘:...? 응? (변태 같다는 소리에 고개를 갸웃한다)
유스텐:(얼굴이 새빨개진 채 입술을 달싹이며 씩씩거린다.) 당신, 키스 말고는 잘 모른다는 거 거짓말이죠.... 나 놀리려고 모른 척 하는 거죠, 지금?!
릭사엘:(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여전히 갸웃거리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유스?
유스텐:방금 막...! 아무 때나 잡아먹겠다고 했잖아요!
릭사엘:(여전히 의아해하며) 안 되는 거였어? 오늘도 여러 번이나 했잖아.
막상 할 때는 아무 소리도 안 했으면서.
유스텐:여, 여러 번...? (깜빡 - 깜빡 - )
유스텐:설마... 잡아먹겠다는 게... "키스"?
(까지 얘기하다가 묘하게 일그러지는 네 얼굴을 보며) ... 혹시 다른 걸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유스텐:(얼빠진 얼굴로 입을 벌린 채 말없이 어버버거린다) '나...나 지금... 혼자서 오해하고 있었던 거야???'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푹 숙인다. 한숨을 땅이 꺼져라 내쉬며) '그러니까, 릭스는 끝까지 순수했고, 나는 혼자 변태 같은 생각을 했다는 거잖아. 아... 죽고 싶다. 지금 이 자리에서 벗어나서 숨고 싶다.' ... ...방금 말은 전부 잊어줘요.
릭사엘:음... (너와 함께 민망해져서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며) 섹스 쪽...으로 생각한 거지? 괜찮아. 그렇게 들렸을 수도 있지.
유스텐:(여전히 얼굴을 가린 채) ... 저, 집에 가고 싶어졌어요. 제 집은 없지만 집에 가고 싶어졌어요.
릭사엘:(네가 그런 은밀한 쪽으로 생각을 했다는 데에 겹쳐 저도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귓불이 뜨끈해진다) 음... 집에 가지는 못하지만, 커틀릿은 먹을 수 있잖아.
... 식사 하면서 우리 아무렇지 않은 척할까?
유스텐:(천둥번개가 칠 것처럼 먹구름이 잔뜩 낀 얼굴로 울먹거린다.) 그, 그래요... '도저히 얼굴을 못 들겠다...'
릭사엘:(살짝 몸을 일으켜 네 앞에 놓인 포크를 들어다 소스를 적당히 바르고 입가에 내민다) 어서 먹어봐, 얘기하느라 좀 식긴 했지만 맛있을 거야. 응?
난 크게 신경 안 쓰니까 걱정하지 말고. 알았지, 내 사랑?
유스텐:으응... (그대로 받아먹지 않고 어색하게 손을 들어올려 포크를 넘겨받아 먹는 둥 마는 둥 씹어먹는다.) '죽고 싶은 와중에 이건 왜이리 맛있는 거야...'
릭사엘:(네 손에 포크를 꼭 쥐여주고 네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옳지, 예쁘다 우리 유스. 잘 먹으니까 두 배로 예쁘네. (둥기둥기)
(도로 자리에 앉아 천천히 식사하기 시작한다)
릭사엘:(간간이 와인을 마시며 너를 바라보다가, 그래도 음식만은 잘 먹는 네 모습에 흐뭇해져서) 잘 먹어서 좋네.
유스텐:... 맛있어요. '밤 되려면 한참 남았는데 어떡하지? 쪽팔림이 사라지질 않네.' (네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자꾸 목이 타서 힐긋거리며 펀치를 쭉쭉 들이킨다.) '릭스는 진짜 아무렇지 않은 것 같기도... ...그냥 확 이자리에서 취해버릴까'
릭사엘:(너무 급하게 잔을 기울이는 너를 보고 황급히 말리며) 그러다 취해, 유스. 목이 타? 물 가져다달라고 할까?
유스텐:(도리도리) ... 나 당신한테 너무 추태만 부리는 것 같아요.
릭사엘:(피식 웃으며, 네 잔을 밀어내려두고는 코끝을 검지로 톡 두드린다) 추태는 무슨. 괜찮아. 귀엽고, 사랑스럽고... 딱 내가 사랑하는 꼬마 유스인걸.
릭사엘:응? 그래? 내가 어른스럽다고? 난 평범하다고 생각하는데. 으음...
글쎄, 정확히 말하면 난 어른스럽다기 보다는... 남을 살피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닐까?
유스텐:그런가. 매번 애 취급하는 거 생각하면... 맞을지도.
릭사엘:(쿡쿡 웃으며) 내가 귀여워 해주는 걸 좋아하잖아, 너도. 우리는 잘 맞는 짝인 거지.
유스텐:(축 쳐져있다가 네 웃음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 첫 사랑이 이루어지기도 쉽지 않은데, 잘 맞기까지 하다니 신기하네요.
릭사엘:(아무렇지 않게 다시 앉아 식사를 이어가려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손을 멈춘다) ... 그러고보니... 너도 내가 첫사랑인 거야?
유스텐:(멈칫) '첫사랑? 대답하기 곤란한데.' 첫사랑의 기준이 뭔데요?
릭사엘:음... (이런 질문을 하는 걸 보면 처음으로 마음에 품은 건 아닌가 보네) 주관적으로 보면 여러 기준이 있기는 하지. 처음 마음을 준 사람, 처음으로 사귄 사람, 가장 사랑했던 사람...
유스텐:(흐릿 - ) '사춘기 때 잠깐 관심있던 여자애 얼굴이랑 이름도 기억 안 나는데...' 릭스가 생각하는 건요?
릭사엘:음... 내가 이 사람이 첫사랑이었다고 일말의 주저 없이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게 첫사랑 아닐까? 나한테 넌 전부 다 해당되긴 해.
유스텐:그런 거라면... 릭스가 내 첫사랑이긴 하죠?
릭사엘:(발갛게 볼을 물들이며 미소 짓는다) ...이것 참 영광인걸.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첫사랑이라니.
유스텐:나한테도 당신은 세 가지 기준 다 해당돼요. (진짜 모른다는 듯 어깨를 들어올리며) 잠깐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가진 적은 있어도 얼굴도 이름도 하나도 기억 안 나는걸요? 돈 벌기 시작할 때부턴 누굴 마음에 들일 여유도 없었고요.
릭사엘:음... 그래? (억누르려고 해도 입꼬리가 한계까지 당겨올라간다. 심장이 뛰어서 죽을 것 같은데, 이게 정상일까.)
유스텐:'사랑 같은 감정도 여유가 있어야지 하지...' (사회에 찌든 어른처럼 씁쓸한 표정을 짓다가) 릭스 지금 표정 어떤지 알아요?
릭사엘:(말갛게 볼을 물들인 채로) 으, 응? 어, 어떤데?
유스텐:(두 검지 손가락을 입 양 끝에 끼워넣고) 막 이렇-게 히죽히죽 웃고 있어요.
릭사엘:그게 뭐야, 웃긴 표정이잖아. (눈꺼풀을 깊게 내리감고 수줍게 마저 웃는다)
유스텐:그러니까요. 당신이 지금 그런 표정을 하고 있어요.
릭사엘:(눈을 부드럽게 감았다 뜨며) ...숨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하지.
유스텐:(턱을 괴며 가벼운 한숨을 내쉰다) 하아 - 죄 많은 사람이 된 기분이에요.
유스텐:당신은 남자 여자 안 가리고 인기 많을 것 같은데, 무슨 동시대 사람도 아니고 뜬금없이 미래에서 날라온 내가 당신을 점 찍어버렸잖아요 -
릭사엘:아하, 그런 뜻... 부정하지는 않을게, 그래도 만족스럽지 않아?
유스텐:나야 당연히 만족스럽긴 하지만, 당신도 알잖아요. 사람들은 쓸데없는 호기심이 많다는 거. 당신처럼 예쁘게 생겼고 키도 훤칠한데다, 성격도 모난 곳 하나 없는 눈에 확 띄는 사람이 어느 누구에게 관심도 없고 결혼도 안 하면... 분명 이상한 시선으로 볼 걸요?
릭사엘:그렇게까지 생각하려나...? 어쨌든 지금은 이어야 할 가문도 없는데. 만약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학문에 매진하느라 그런 감정을 가져본 적 없다고 둘러대야지.
유스텐:하하, 학자 신분인 게 이렇게 큰 도움이 될 줄은 몰랐네요.
릭사엘:그러게, 유용하지? (피식피식 웃으며 마저 식사를 끝낸다)
당신은 릭사엘과 함께 조용히 마지막 커틀릿 조각을 삼키며
입술 자국만 남은 유리잔과 비어버린 접시 위가 반짝거립니다.
당신은 다시 밖으로 나서기 전 당신이 혹여 춥지는 않을까
꼼꼼하게 자락을 여며주고는 당신의 뺨을 그러쥐며
박물관의 공기는 겨울의 냉기와 먼지 냄새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밖에서 들리던 바람소리가 스르르 멎고, 안쪽의 정적만이 남네요.
창문 틈으로 들어온 빛은 희뿌연 안개처럼 떠 있습니다.
릭사엘은 사무실로 들어서 걸치고 있던 재킷을 벗어 걸고
잠시 당신을 벽난로 앞에 따뜻하게 불을 쬐도록 합니다.
릭사엘:(가만히 의자를 끌어당겨 너를 앉히고는 시간을 확인하며) 곧 학부생들이 견학을 올 텐데, 몇 번 이전에 해봤지만 네가 보고 있을 거 생각하니 조금 떨려.
유스텐:(쿡쿡 웃으며) 내가 교수님처럼 평가하는 것도 아닌데 긴장할 게 뭐가 있어요?
릭사엘:그건 그렇지만, 아예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랑 네가 나를 보는 시선은 다를 거 아냐.
유스텐:'릭스 정도면 릭스만 학부생들을 모를 것 같은데. 매일 견학 오는 사람도 있을 거고.' 음. 그럼 귀 막고 있을까요?
릭사엘:(쿡쿡 웃으며) 그럴 것까지야. 그냥 투정 좀 부려본 거지,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유스텐:나 방해되는 거 아니에요? 나 때문에 집중 못 하면 어떡하지...
릭사엘:별 걸 다 걱정해. 내용은 이미 머릿속에 다 있으니까 그대로 입만 조잘거리면 되는 건데?
유스텐:그래요? 그럼... (장난스럽게 웃으며 너를 꼭 안고 올려다본다) 내가 이러고 있어도 제대로 조잘거릴 수 있어요?
릭사엘:(저를 끌어안는 품에 덜컥 숨이 막히듯 심장이 뛰어와 멈추었다가, 이내 부드럽게 네 앞머리를 쓸어올려주며) ...아니. 이러고 있으면 너밖에 안 보여서 설명 못 할 거야.
유스텐:(안은 팔을 풀어서 들어올리며) 4시까지는 모든 스킨십 금지겠네요.
릭사엘:그러게, 최대한 빨리 끝내야겠어.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네 귀여운 정수리에 쪽쪽 입 맞춘다)
유스텐:(바람 빠진 웃음소릴 흘리며) 그렇다고 말을 2배속으로 하면 안 되는 거 아시죠? 릭사엘 조교님.
릭사엘:(장난스럽게) 안 돼? 그럼 3배속은?
유스텐:하하! 장난도 - 3배속을 어떻게 해요?
당신 혀 꼬이겠어요.
릭사엘:내 혀가 꼬이면 네가 키스해서 풀어주겠지. 안 그래?
유스텐:키스해서 풀어주려면 꽤 오래 걸릴텐데 -
릭사엘:흠, 저번에 체리 꼭지 묶던 솜씨를 보면 내 혀 풀어주는 건 눈 깜짝할 새일 것 같은데, 내 사랑?
유스텐:응? 체리 꼭지요? '무슨 얘길 하는 거지?'
릭사엘:(피식) 그것마저 기억이 안 나? 그대가 나와 체리 꼭지 매듭을 묶기로 대결을 했잖아. 내가 졌고.
유스텐:지능| 기준치: | 55/27/11 |
| 굴림: | 39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그러고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듯도 싶습니다.
유스텐:(얼굴이 화악- 불 붙듯 달아올라 덜덜 떨며 입을 가린다) '유스텐, 이 미친놈아............ 어디까지 한 거야, 대체...'
릭사엘:(네 뺨을 부드럽게 주무르며) 기억이 좀 나?
릭사엘:왜 잊어버리고 싶어. 우리 첫 키스도 했잖아, 그때. 잊지 마.
유스텐:너무... 객관적으로 봐도 쓰레기 같단 말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갓 스무살이 된 릭스한테 이상한 걸 알려줬고, 정신도 못 차리면서 키스하자고 했고...
릭사엘:... 뭐 어때. 난 좋았어. 너랑 하는 건 늘 모두 좋았어. 그러니까 그런 생각하지 마. (다정하게 네 광대뼈를 쓸어주다가 고개를 숙여 네 입술에 짧게 입맞춘다)
유스텐:정말...? 첫 키스가 주정뱅이랑 한 건데도...?
릭사엘:응.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주정뱅이랑 했잖아? 그럼 됐지.
유스텐:...당신은 너무 착해요, 릭스. 보통 첫키스는 기대하기 마련이잖아요. 낭만적인 장소, 적절한 시간을 상상하지 않나...
릭사엘:보통의 사람들은 그럴지 모르겠지만, 난 그저 너라면 다 좋아서. 내가 보통 사람은 아닌가 보지. (살며시 웃으며 네 입술에 제 입술을 다시 한 번 덮었다 뗀다)
눈가에 닿은 입술의 감촉이 따스하게 맴돕니다.
따뜻하기 그지없어서, 벽난로의 불빛보다도 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네요.
자연스럽게 사무실을 나서는 발걸음을 따라 복도로 나가면
스무 명 남짓 되는 학생들이 주변을 둘러보며 조용히 대기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릭사엘을 따라 학생 무리의 앞까지 도달하면
일제하게 릭사엘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하긴... 박물관에 있기엔 과하게 눈에 띄는 외양이긴 하죠.
유스텐:(힐끔) '박물관을 설명하기보단... 박물관에 전시되어야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긴 하지.'
릭사엘:(학부생 숫자를 세어보며) 모두 참석한 것 같군요. 좋습니다, 결원이 없으니 예정대로 진행해도 좋겠군요.
저는 오늘 박물관 내부 전시실의 설명과 안내를 맡은 릭사엘 헤일턴입니다. 피트 리버스 컬렉션 정리와 문헌 보관을 담당하고 있지요. 현재는 조교 신분이지만, 박물관 개관 전 준비 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늘 방문한 여러분께서 새로이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니 분명 여러분께는 이곳의 방문이 처음이겠지요.
이 건물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일반적인 전시장과 다릅니다. 정식 개관 전이기 때문에 구조가 조금 복잡하고, 몇몇 구역은 아직 진열이 완비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따라오시죠.
릭사엘이 시선을 돌려 복도 안쪽을 바라보는 척하며
릭사엘: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여러분께서는 이 공간이며 분위기 모두 낯설 것이기에, 모두 익히 아는 부분부터 소개하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유리 진열장 사이의 통로를 천천히 걸어갑니다.
각자의 노트와 펜을 손에 든 채 조심스레 발소리를 죽입니다.
벽을 따라 늘어선 진열대마다 연한 노란빛이 번지고,
유리 위에는 희미한 성에와 손자국이 어지럽게 섞여 있네요.
그렇게 조금 걷던 릭사엘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첫 번째 유리관의 모서리를 톡 건드립니다.
그 작은 진동에 유리 표면의 먼지가 미세하게 흔들립니다.
릭사엘:선사 시대부터 시작할까요. 이건 후기 구석기 시대의 석기입니다.
유리관 안에는 손바닥보다 작은 석기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회색빛의 돌은 한쪽 면이 매끄럽게 깎여 있고,
표면에는 손의 흔적처럼 미세한 홈이 파여 있네요.
릭사엘:(가볍게 유리관 위를 짚으며) 보이시죠, 끝이 비스듬하게 깎여 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이러한 유물은 단순히 원시적인 도구로 보이지만, 사실 이러한 장비는 단순히 도구의 진화가 아니라, 인간 사고의 진화를 의미합니다.
인류가 이 시기에서부터 기존에 존재하던 자연물을 응용하거나 즉흥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사용해본 것이 아니라, 목적에 맞춰 무언가를 가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하죠.
(차분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그렇기 때문에 이는 생존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생각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이 시대의 유물들은 인간이 단순한 생물이 아닌 ‘설계자’로 진화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지요.
학생들은 익숙하게 알던 내용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유리관에 비친 학생의 얼굴이 하얗게 번집니다.
당연히 이러한 정도의 지식은 알 거라 판단하고는
릭사엘:이쪽은 신석기 토기입니다. 점토를 구워 음식을 보관했죠. 단순하게만 보이는 물건이지만 이는 인류가 시간을 저장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즉, 이 시기부터 인간은 ‘지금이 아닌 내일’을 상상하기 시작한 겁니다. 이른바 사유의 시작이죠.
음식을 저장하고, 씨앗을 묻고, 계절을 기록하며, 인간은 기억과 계획이라는 능력을 얻었습니다.
우린 흔히 도구의 진화를 ‘문명’이라 부르지만, 사실 문명은 ‘시간 감각’의 탄생이라는 점을 미루어볼 때 인류는 이때부터 문명을 이루었다고 보아야겠죠.
학생들이 토기 가까이서 사진을 스케치북에 옮깁니다.
벽면에는 파피루스 문양이 그려진 천이 걸려 있고,
유리관 안에는 도자기, 황동 장신구, 청동기 조각들이 빼곡히 놓여 있습니다.
릭사엘:이제 고대입니다. 여기 보고 계시는 건 이집트 토기이지요. 기원전 1500년 무렵의 겁니다.
표면의 소금 결정과 안료 분포를 보면, 이건 단순한 생활용기가 아니라 저장용입니다. 즉, 인간이 ‘생존’ 외의 목적, 즉 보존과 계획을 인식하기 시작한 흔적이죠.이 런 토기들은 문명 이전의 ‘시간 감각’을 가르쳐줍니다.
내용물을 내일, 다음 달까지 유지하려는 욕망.
그건 곧 인간이 미래를 상상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이지요. 이렇듯 유물은 시간을 기록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바라보던 눈’을 보여줍니다.
이게 바로 고고학이 역사를 넘어 철학이 되는 이유죠.
당신은 릭사엘의 설명에 따라 내부를 구경하고 이동하며
유리관 안에는 무겁게 생긴 갑옷과 검, 방패 조각이 놓여 있습니다.
그 위로는 정교한 문양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십자 형태, 왕관, 가문 문장들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네요.
이건 13세기 스페인제 철제 투구, 그리고 옆은 노르만 방패 조각이에요. 당시 유럽은 봉건적 질서가 약해지고, 개인 전사의 상징이었던 갑옷이 ‘집단의 상징’으로 바뀌던 시기였습니다. 즉, 이 물건은 단순한 방어구가 아니라 ‘개인에서 국가로 넘어가는’ 권력 구조의 전환을 보여줍니다.
표면을 자세히 살피면 균열이 아니라 문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의 제작 기술을 감안하면 상당히 섬세한 작업이었겠죠.
표면의 문양은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가문 문양과 신앙 상징이 섞여 있죠. 개인의 정체성이 종교와 제도에 귀속되던 시대의 흔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릭사엘의 나직한 음성이 유리 위에서 반사되어 맑게 울립니다.
철의 냄새와 먼지, 기름칠된 가죽의 향이 배어 있는 공기 속에서
학생 중 한 명이 숨을 죽이고, 메모에 필기를 옮깁니다.
유스텐:'엄-청 집중해서 필기하네. 뭘 적고 있는 건지 구경해볼까.' (슬그머니 릭사엘의 곁을 빠져나와 학생의 등 뒤로 필기를 살펴본다)
릭사엘:(네가 멀어지다가 사라져버릴까 싶어 어깨를 짚어 말린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보이지 않게 입 모양으로) '어디 가?'
릭사엘:(호기심이 많네... 별안간 웃으며) '남의 걸 훔쳐보면 안 되지, 유스.'
유스텐:엇! (눈을 크게 뜨며 점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안 되는 거예요?
릭사엘:흠... (키득키득 웃으며) '가서 딴 짓하는 학생 알려준다고 하면 허락할게.'
유스텐:(허락이 떨어지자 밝게 웃으며 크게 끄덕인다) 응!! 내가 충직한 쥐가 되어서 돌아올게요!
릭사엘:(웬 쥐? 계속 웃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그가 환히 웃자 영문을 모르고 고개를 갸웃하다가
릭사엘이 웃는 얼굴로 돌아서자 멍하니 바라봅니다.
유스텐:관찰력| 기준치: | 55/27/11 |
| 굴림: | 94 |
| 판정결과: | 실패 |
이렇다 하게 딴 짓을 하는 학생은 없는 것 같습니다.
유스텐:흠... 의외로 다들 성실하네. 얼굴이나 목소리에 홀려서 집중 못하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했는데. (흥미가 식어 어깨를 내린 채 고개를 뒤로 젖히며 아쉬워한다)
중세 유럽 섹션을 크게 한 바퀴 돌며 설명을 잇고는
유리관 안에는 빛을 받으면 거의 흰색에 가까운, 매끄러운 도자기들이 놓여 있습니다.
형태는 단순하고, 표면엔 가느다란 회색 선이 감돌고 있네요.
릭사엘:이쪽에 보이는 것은 16세기 조선의 도자기입니다.
당시 유럽은 르네상스 이후 장식 과잉에 빠져 있었죠. 하지만 이 도자기는 그 반대입니다. 단순하고 절제된 형태, 거의 무색의 유약.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완벽한 비움의 미학을 추구한 결과입니다.동양의 공예가 서양의 미술과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표현’보다 ‘균형’을 중시했죠. 이 도자기가 유럽에 들어오면서 유럽의 미학이 바뀝니다.
18세기 프랑스의 세브르 도자기나 영국의 웨지우드가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이 동양 도자기의 미감이 자리하고 있죠. 즉, 이 한 점이 세계 미술사의 기준선을 이동시킨 셈입니다.
도자기의 표면이 햇빛을 받아 미세하게 빛납니다.
릭사엘은 도자기의 표면을 허공으로 어루만지는 듯 손을 뻗으며
학생들 사이에서 조용히 감탄사가 흘러나옵니다.
...릭사엘의 말 때문인지, 아니면 릭사엘이 하는 행동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전시실 구석구석을 돌고 이제 거의 끝나간다 싶을 때쯤
유리관 안에는 남태평양 군도의 나무 조각상들이 놓여 있습니다.
목재의 표면은 검게 마르고, 거친 결이 그대로 살아 있네요.
단순한 형태지만 눈, 코, 입이 추상적으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릭사엘:남태평양 군도에서 온 조각들입니다. 모양이 거칠어 보여도, 실제로는 형태의 단순화를 의도했죠. 기능적인 형태, 상징성보단 실질적 목적이 앞선 유물들입니다. 예컨대 이 조각은 마을 입구나 가정의 문간에 세워, ‘죽은 자의 영혼이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하는 표식’으로 사용됐습니다.
머리와 팔의 구분이 거의 없이, 하나의 통나무처럼 이어진 형태입니다.
릭사엘:또 어떤 조각은 항해 중 배의 선수에 달려 있었습니다. 항해 중 폭풍이나 암초를 피하기 위해, 바다의 정령에게 제물을 드리는 상징이었죠. 즉, 이건 장식이 아니라 기능적 주술 도구입니다. 신앙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았던 사회에서, 실용과 신앙은 같은 의미였으니까요.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래서 이 조각들의 단순함은 ‘기술의 미비’가 아닙니다. 오히려 필요한 기능만 남긴 정제된 형태에 가깝습니다. 가장 덜 깎인 조각이 가장 오랫동안 마을을 지켰고, 가장 간결한 형상이 가장 강한 보호력을 지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조각은 예술이 아니라, 생존의 일부였던 셈이죠. 가정의 수호자이자, 바다의 눈, 그리고 공동체의 언어. 이 시대의 인간은 조각을 만들어 남긴 게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세워둔’ 겁니다.
“조교님, 이런 조각은 어떻게 분류해야 합니까? 종교적 유물인가요, 민속품인가요?”
릭사엘:(잠시 생각하다가) 둘 다입니다. 종교품이 곧 생활의 일부였으니까요. 우리가 지금처럼 용도별로 구분하는 건, 결국 현대의 분류 체계에 불과하죠.
릭사엘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복도에 잔잔히 남습니다.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마무리합니다.
릭사엘은 학생들이 노트를 덮는 모습을 바라보며 말을 맺습니다.
릭사엘:좋아요. 오늘은 여기까지 보죠. 다음 주에 내방 일정이 하루 더 있으니 그때 각자 관심 있는 전시품을 고르고, 견학 담당 교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여러분 한 명씩 이 컬렉션 중 하나를 선택해 간단히 보고서를 제출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견학은 이로써 마치겠습니다. 다음 주에 뵙죠.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학생들은 어수선하게 인사를 하고
개중에는 릭사엘에게 말을 걸어보려 하는 학생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릭사엘은 그저 옆에 서 있는 당신에게 시선이 못 박힌 채로
당신의 손에 손깍지를 끼고 전시실을 벗어나 사무실로 돌아옵니다.
공기 중엔 아직도 금속과 흙, 먼지의 냄새가 남아 있고
장작이 들어가지 않은 벽난로가 조금 식어 있습니다.
릭사엘:(너를 벽난로 앞 의자에 앉히고, 의자를 하나 더 끌어와 네 옆에 앉으며) 미안, 생각보다 오래 기다리게 했네. 좀 지루했으려나?
유스텐:지루한 건 아닌데, 음... 묘했어요. 난 학교 학생도 아닌데 전시도 공짜로 보고, 미모의 조교님을 봐도 되나...
릭사엘:(키득거리며) 앞전의 것은 이해가 되는데, '미모의 조교님'은 또 뭐야.
유스텐:아까 눈치 못 챘어요? 설명 다 끝나고 나서 당신한테 말 걸어보려던 학생이 한 둘이 아니던데.
릭사엘:눈치는 챘지. 그러니까 잽싸게 빠져나온 거잖아.
내 말은, 그 미모의 조교님이 네 건데, 보면 안 될 게 뭐 있냐는 뜻이야.
유스텐:(뒷말을 듣고 멍해지더니 의자에 등을 늘어지도록 기댄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발가락까지 쭉쭉 펴진다) 아 -- 그런 말을 덧붙여버리면, 곤란하잖아요...
릭사엘:(얼굴을 가려버리는 네 손을 끌어내리며, 덥썩 얼굴을 가까이 붙인다) 곤란해? 왜?
유스텐:(푹 익어버린 얼굴을 하고 눈동자를 데구르르 옆으로 굴린다.) 그렇게 말하면, 사람이 괜히 우쭐해진단 말이에요.
릭사엘:(조그맣게 움직이는 네 입술을 바라보다가 사랑스러움을 참지 못하고 부드럽게 입 맞추었다 떼며) 우쭐하면 어때. 내가 네 거인 건 맞는데.
유스텐:(눈을 꾹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그 부분이 문제라고요.... (부끄러움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손가락이 바짝 말려든다) 사람들이 "내 거"를 막, 탐내는 거 보니까... 막, 되게 엄청나고 귀한 걸 가진 것 같다고요.
근데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겉모습만 보는 것 같고...
릭사엘:... 정말이지 귀여워 죽겠다니까. (네 뺨을 둥글게 손으로 문지르고는 쪼듯이 연신 입술에 키스한다) 우쭐하면 어때. 난 네 기분이 좋은 게 최우선이라 다른 건 신경 안 쓰는걸. 유스텐:(툴툴) 왜 그렇게까지 과하게 잘나서는 나도 탐내고, 남들도 탐내고 신경쓰이게 만드는 거예요?!
릭사엘:(쿡쿡 웃으며) 이거, 내가 사과해야 하는 부분인 거야?
유스텐:릭스는 박물관에서 가이드를 할 게 아니라 박물관에 전시되어야 할 사람이라고요.
정말로 전시되면, 질투 안 나겠고?
유스텐:... (상상하더니 곧이어 앓는 소리를 내며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는다) 질투나요!
릭사엘:그럴 줄 알았어. (몸을 일으켜 의자에 앉은 너를 품에 폭 감싸안는다) 걱정 마, 그럴 일 없어. 난 네 거니까, 네가 나를 박물관에 기증하지만 않는다면.
유스텐:남ㅍ, 아니, 애인을 박물관에 기증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당신도 참... .... (네 품에 이마를 비비며) ...역시 난 의인은 못 되나봐요. 좋은 건 나눠야 한댔는데, 나만 알고 싶어... 꿀단지처럼 남들 안 볼 때 몰래 폭 찍어먹고.
릭사엘:(어떻게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 이렇게 사랑스러운지... 가슴이 뻐근해져 오며 얼굴이 잔잔하게 달아오른다. 그러다가 흠칫 놀라 몸을 살짝 뒤로 빼며) ... 유, 유스. 잠시만.
유스텐:(갑자기 당황하는 네 모습에 어리둥절해하며) 왜요?
릭사엘:그... 음... (황망한 얼굴을 슬쩍 가리며) 그, 그게... 음...
릭사엘:아, 아무것도 아니야... (슬그머니 의자에 도로 앉으며 시선을 피한다)
유스텐:'어디 아프기라도 한가? 지금의 릭스는 평범한 인간이니까 가능성이 있어.' (일어서서 네 앞에 쪼그려 앉고 걱정스런 눈으로 올려다본다) 어디 아파요?
릭사엘:(아래에서 위로 저를 바라보는 시선에 더욱 황망해져 귀끝까지 달아오른 채 고개를 푹 숙인다) 아, 아프기는... 그런 거 아니야. 괜, 찮아.
유스텐:(네 다리사이로 가까이 다가가 손을 뻗어 네 뺨을 쓸어내린다) 그치만 안색이 안 좋아요...
릭사엘:(네가 가까이 다가오자 솜털이 쭈뼛 서 헛숨을 들이키며) 그... 그런 게 아니라... (예전에 네가 나오는 꿈을 꿨을 때 이후로 이런 적이 처음이라 쉽사리 입도 열지 못하고 움찔거린다)
유스텐:'얼굴이 뜨거운데...' ...집으로 갈까요? 얼른 침대에서 쉬는 게 좋겠어요.
릭사엘:... (계속해서 저를 걱정하는 듯한 네 모습에 한참이나 우물쭈물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은 솔직하게 토해낸다) ... 그런 게 아니라... 흥분, 해서 그...래.
유스텐:흥분했다고요...? (자동적으로 삐그덕삐그덕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 ...
릭사엘:(민망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 ... 그걸 왜 보고 있어...
유스텐:(헉! 하고 화들짝 놀라 빠르게 뒤로 물러난다.) 미, 미안해요, 오해해서... '진짜로 커졌잖아... ' 그, 음... 화장실 다녀오고 싶으면 다녀와도 돼요...
릭사엘:그... 화장실 얘기는 왜 꺼내는지 모르겠지만, 괜찮아. 잠깐 쉬고 있으면 돼.
유스텐:다녀오는 편이 더 빨리 진정될 것 같아서 그랬어요. ... 내가 있으면 쉬는데 방해될 것 같은데.
릭사엘:...내가 거길 가버리면, 네가 사라지잖아.
유스텐:아, 그, 그렇죠. 입구에서 기다리면 괜찮지 않을까...요?
릭사엘:... 그건 괜찮으니까... 음...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릴만한 얘기 없을까?
화장실에 간다고 달라지지도 않을 것 같고...
유스텐:으응... 무, 무슨 얘기를 하는 게 좋을까... 하하, 하... (머릿속에 바지 위로 한껏 부푼 네 중심이 계속 떠올라 말을 더듬는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아무 얘기라도 꺼내보려 한다) 아, 그, 그러고보니! 사람의 유두는 귀에서 일자로 딱 떨어지는 위치에 있다고 친구가 말해줬어요. 정말 재밌지 않나요? 하, 하하...하...
...
릭사엘:(이...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그... 그렇구나. 처음 알았네. 인체는 신기하구나.
유스텐:(과장된 어투로) 그렇죠? 저도 듣고 따라해봤는데 너무너무 신기하더라고요!
릭사엘:(따라해 봤다는 말에 무의식적으로 네 귀를 바라보고 시선을 내려 네 가슴팍을 바라봤다가, 얼굴에 더욱 열이 뻗친다)
유스텐:(황급히 두 팔로 가슴을 가리며) 무, 무무, 뭐, 뭘 보는 거예요?!!!
릭사엘:아, 아니... 그, 네, 네가 확인해봤다고 하길래 무의식 중에... (부끄러워서 고개를 다시금 푹 숙인다)
유스텐:... '망했다...제대로 망했어... 이 분위기를 어떻게 살려...' 음. 우리 지금까지의 일은 싹... 잊어버릴까요? 새로 시작하는 거 어때요?
릭사엘:잊을 수가 있어야 잊지... (손바닥으로 마른 세수를 하다가 고개를 살짝 들고는, 붉어진 눈으로) ...이제 어떡하지.
유스텐:'진짜 어쩌지... 도, 도와줘야 하는 건가?' 어... 쉴 수 있겠어요?
릭사엘:...모르겠어. (잠시 멍하니 생각에 빠져 입술을 달싹이다가, 겨우 생각해낸 마지막 수단처럼) ...이리 와서 뒤로 앉아 봐. (제 허벅지 위를 툭툭 손바닥으로 친다)
유스텐:어? 으응... (뭘 하려는지 모른 채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네 허벅지 위에 앉는다.)
릭사엘:(네 옆구리 안으로 손을 밀어넣고 등을 껴안으며, 네 어깨에 살짝 턱을 기대고 눈을 담는다. 따뜻하면서 안온한 체온이 번지자 깊은 숨이 한 차례 기어나오다가 점차 마음이 안정된다. 무릎 위에 앉혔는데도 작게만 느껴지는 네가 애틋하고 소중하기만 하다)
... 내가 정말 너 때문에 못 살겠어.
유스텐:'왜 앉으라고 한 거지?' (어리둥절) 왜,왜요?
릭사엘:...너 때문에 내가 계속 생각지도 못한 감정을 느끼고 경험하게 돼.
(고개를 슬그머니 부비적거리며 부모 품에서 진정되어가는 어린 아이처럼 숨을 내쉰다)
유스텐:(허벅지 위에 정자세로 앉아있으려니 어쩐지 불편하면서도 어색해서 조금씩 자세를 바꿔가려 비비적거린다.) ... 기분이 어떤데요?
릭사엘:(몸을 비비적거리는 네 행동에 살짝 몸을 움츠이며) 설레고 두근거리고, 어떨 때는 당황스럽고 민망하고... 그런데 그게 싫지 않고... 가까이 있어도 닿고 싶고, 목소리를 들어도 듣고 싶고... 그냥 그래. 바보가 된 것처럼.
유스텐:그래요? 바보가 되면 곤란한데. 그럼 바보가 둘이나 되잖아요. '불편해.' (엉덩이부터 등허리까지 빳빳하게 굳히며 계속해서 비비적거린다)'가만... 앉으라고만 했지, 꼭 정자세로 앉으라고는 안 했잖아. 기대도 되지 않을까?' (슬쩍 네 가슴팍에 등을 기댄다. 네 무릎 위에 앉아서인지 눈높이가 같아진다.) 기대도 돼요?
릭사엘:(잠시 말이 없다가) ...물론. ("유스... 네가 그렇게 움직이는 건 내 진정에 도움이 안 돼" 라고 딱 잘라 얘기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네)
유스텐:무겁지는 않아요? 나 가벼운 편은 아닌데.
릭사엘:하나도 안 무거워. 괜찮아. (네가 편하도록 몸을 끌어당기고, 목덜미에 살짝 입 맞추며 고른 숨을 내쉰다)
유스텐:(귀끝이 달아오르며) 간지러워요, 릭스.
릭사엘:(살짝 떠는 듯한 네 피부를 느끼며 잔잔히 웃는다) 간지러워? 하지 말까?
릭사엘:그래? (배시시 웃으며 강아지처럼 네 어깨에 얼굴을 비빈다)
유스텐:(슬쩍 네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제 진정은 좀 됐어요?
릭사엘:...응, 이제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아. 여기서 계속 있을 수는 없으니 집에 가야지.
유스텐:그건 그렇죠. (장난스런 투로) 계속 진정 안 됐으면 여기 평생 갇혔으려나 -
릭사엘:(쿡쿡) 장난도- (고개를 살짝 틀어 네 귓불을 입에 물었다 뗀다)
유스텐:(어깨를 흠칫 떨며) 응... 강아지에요? 자꾸 입에 물고...
릭사엘:네가 자꾸 강아지라고 하니까, 그런 걸로 할까? (해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더 틀어 네 뺨에 곱게 입맞춘다) 어떡하지, 나. 이렇게 행복해서.
유스텐:(복잡하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 내가 당신 곁에 자주 못 있어주는데도 행복해요?
릭사엘:(네 품을 조금 더 단단히 끌어안으며) ...안 슬픈 건 아니지만, 그래도 행복해. 네가 곁에 있으면 뭐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야. 내 수호천사님.
유스텐:하하, 다 컸는데도 날 수호천사 취급해주는 거예요? 기뻐라 -
릭사엘:당연하지. 한 번 수호천사는 영원한 수호천사잖아. (네 끌어안은 허리춤을 살짝 매만지다가, 키스하고 싶은 충동에 살짝 네 귓가에 입술을 대고 속삭인다) ...키스하고 싶은데, 해주면 안 돼?
유스텐:(귓가를 간질이는 음성에 옅게 숨을 들이키며 네 쪽을 흘긋거린다.) ... 키스하면 집에 못 가는 거 아니에요? 또 진정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릭사엘:음... (스스로도 장담하기 힘들어서 고개를 숙이고 웃으며) 일리가 있네. 그럼 우선 갈까? (일어나자는 뜻으로 네 엉덩이를 살짝 토닥인다)
유스텐:응. (장난스럽게) 업고 뛰어가려는 거 아니죠?
릭사엘:(키득거리며) 자기는 그게 좋겠어? 그렇게 할까?
유스텐:(같이 키득거리며) "그렇게 할까?"는 뭐예요!
릭사엘:나야 자기랑 꼭 붙어 다니면 좋기만 하니까 그렇지. 물론 다른 사람들 눈에는 네가 안 보이니 우스꽝스러운 자세긴 하겠지만.
유스텐:당신은 별로 신경 안 쓰는 것 같지만 사람들이 내 거를 우스꽝스럽게 볼 거라 생각하니까 내가 신경쓰여요.
릭사엘:그래? (계속 웃으며)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손 잡고 가자. (네 손에 깍지를 낀다)
릭사엘:(너와 함께 일어나며 네 옷 상태를 점검하고는, 벗어두었던 재킷을 걸치고 서류 가방을 든 뒤 네 손을 도로 잡는다) 갈까?
박물관을 나서면 차가운 공기가 한꺼번에 들이칩니다.
그 아래의 건물들도 채도를 살짝 잃어 있습니다.
겨울 바람을 맞아서인지 뺨과 코끝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고
숨결이 입술 앞에서 작은 김으로 흩어지는 모습이
곧 도보를 걸어 아침에 릭사엘과 함께 나왔던 저택으로 들어가면
안쪽은 벽난로 냄새와 따뜻한 먼지 냄새로 가득합니다.
릭사엘은 재킷을 먼저 벗고 당신에게 입힌 두터운 코트의 단추를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선명한 감정이
유스텐:(마음이 무겁게 짓눌리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숙인다) ... '어차피 영생을 사는 몸으로 변해서 미래에 나를 만나 결혼한다고는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1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나를 사랑해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삶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좋진 않네.'
릭사엘:(네 코트 단추를 다 벗겨주고 외투걸이에 걸고는, 활짝 웃으며 보채듯이) ...이제 도착했으니까 키스해주는 거야?
유스텐:(착잡한 마음을 숨기며 애써 미소짓고 네 두 뺨에 손을 올려 살며시 끌어당긴다.) 응. 착하게 있어준 보답으로. (고개를 비틀어 네 윗입술에 제 것을 살포시 얹다가 입을 벌려 머금고 빨아당긴다.)
릭사엘:(떨리는 눈동자로 뭉클하게 웃으며, 입술에 닿는 네 피부를 받아들인다. 벅차오른 듯한 숨결이 가느다랗게 떨리며 인중 위로 흩어지고, 맞닿아 있는 너를 갈구하듯 입술이 너를 마주 빨아당기며 보챈다)
유스텐:하아... (어쩌면 생이 다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는 삶을 자신 하나 때문에 기꺼이 선택한 네 심정을 헤아리고 싶어, 평소와 다르게 눈을 감지 않고 반눈으로 네 표정을 살핀다. 입술을 다정하게 포갰다가도 어루만지듯 혀를 내밀어 입술 안쪽과 함께 치열을 훑는다.)
릭사엘:(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저 행복에 취해 발갛게 물든 얼굴로 치열에 닿는 네 혀끝에 제 혀끝을 조심스럽게 톡톡 두드린다. 아, 심장이 터져나갈 것처럼 크게 뛴다. 제게 입맞춰주는 네가 너무도 애틋하고 소중하고 사랑스러워서, 온몸이 끊임없이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사랑한다는 말로도 감히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아. 단순한 말 몇 마디로 담아낼 수 없는 감정이 어떤 건지.)
유스텐:(아, 익숙한 눈빛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서도 제 세상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저 눈빛. 동시대 사람도 아닌 자신을, 모든 걸 포기해서라도 소중히 대하고 싶은 눈빛. 가슴이 뭉클해지면서도 애틋함이 느껴지고 자신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 네가 차라리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았으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난 정말로 당신의 과거만 구경하다 가려는 가벼운 마음으로 왔던 건데.' (눈이 시리도록 젖어드는 채로 너를 더욱 끌어당겨 몸을 밀착시킨다)
릭사엘:(두근두근 뛰는 심장 소리가 귓가를 메울 듯 울린다. 네 손길에 그대로 끌려간 몸으로 섬세하게 네 허리선을 덧그리고 조심스럽게 등을 끌어안는 과정 속에서도 감정이 벅차올라 눈가가 옅게 촉촉해져온다. 이윽고 입술이 마지막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눈물로 자욱이 희미해진 시야 사이로 붉어진 네 얼굴과 눈가가 보인다. 네가 우는 이유를 알 수 없는데도, 어쩐지 짐작이 가기도 해서 부스스 웃음이 샌다. 손으로 네 눈가를 닦아주며) ...울보구나, 내 사랑은.
릭사엘:(다정하게 입술을 두어 번 짧게 쪽쪽거리며) 둘 다 울보라서 어떡하지. 이러다가 둘 다 평생 울게 생겼네.
유스텐:울다 보면 언젠가는 눈물도 안 나올 정도로 말라붙지 않을까요??
릭사엘:그러려나? (키득키득 웃으며) 그렇게 된다면 다행이고. (장난스럽게 제 이마를 네 이마에 콩 부딪힌다)
유스텐:안에 들어가서 제대로 쉴까요? 계속 여기서 키스할 수는 없으니까.
릭사엘:응, 그래. (네 손을 들어올려 설레는 아이 같은 표정으로 깍지를 끼고 침실로 향한다)
유스텐:(네 침대 위에 푹 앉으며) 아 - 보람찬 하루였다 -
릭사엘:(가만히 네 옆에 앉아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며, 피식 웃는다) 보람찼어?
유스텐:응. 당신이랑 같이 출근하니까 보람차게 보낸 것 같아요. ... 일은 당신이 거의 다 했지만.
릭사엘:귀여워 죽겠다니까... (네 몸을 슬쩍 끌어안고 뺨에 쪽쪽 입맞춘다) 오늘 하루 고생했어. 도와줘서 고마워, 내 사랑.
릭사엘:고마워. 이제 좀 쉴까? (외출복을 다 벗지도 않은 것도 아랑곳 않고, 너를 껴안고 침대 시트에 폭 쓰러진다. 그리고는 네 얼굴을 뭉클하게 애정 어린 눈빛으로 들여다본다)
유스텐:(갑작스럽게 시야가 천장으로 바뀌자 눈을 크게 뜬다.) 으앗, (힐끔) 실내복으로 갈아입지 않아도 돼요?
릭사엘:괜찮아, 잠깐만 이러고 있을 건데 뭐. (작은 네 품에 어떻게든 꼬깃꼬깃 안겨들어가 해사하게 웃는다)
유스텐:'와... 릭스는 이렇게 웃을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리, 릭스... 그렇게 웃는 건 반칙이라고 생각해요.
릭사엘:(고개를 갸웃하며 말간 얼굴로) 응? 반칙?
유스텐:(안겨서 고개만 멀찍이 거리를 두며) 그, 너무... 음... 바보가 될 것 같아요.
릭사엘:(생각지도 못한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푸흐흐 웃어버리며) 그게 뭐야- 너도 참 못말려. 유스텐:... 나중에 거울 보고 똑같이 웃어봐요. 진짜 위험해요.
릭사엘:위험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야? (어린 소년처럼 볼을 물들인 채로 너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다가, 슬며시 시선을 높인다. 그리고는 네 입술에 다정하게 입을 맞추며 말갛게 웃는다)
유스텐:으... 지, 지금도 그래요! 위험하다니까 또 웃었어!
릭사엘:(눈꺼풀을 짙게 감아내리고 웃으며) 어쩔 수 없잖아. 네 옆인데.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 웃음이 안 나오면 그게 사랑이게?
유스텐:그건... 그렇죠... 하아, 예비 심장을 여러 개 구비해둬야 하나...
릭사엘:(옆으로 누운 탓에 중력을 따라 아래로 쏠린 머리카락을 이불 위에 살짝 비비며, 부드러운 눈동자로 너를 들여다본다) 내 심장을 줄까?
유스텐:무, 무슨 그런 무시무시한 소릴 해요...
릭사엘:...너한테라면 줘도 아깝지 않아. 원래 네 거니까.
유스텐:심장까지 주려고 하면 어떡해요. 그건 잘 갖고 있어요...
릭사엘:난 이미 너에게 주기로 마음 먹었는걸. 오래 전부터.
유스텐:절대 안 돼요! 당신이 죽는 건 싫으니까.
릭사엘:(피식피식 웃으며) ... 네 시간대에서 난 이미 죽은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유스텐:무슨 그런 말을 웃으면서 해요?! 하아- 내가 당신 때문에 못 살아...
릭사엘:(못살겠다는 말에도 쿡쿡 웃으며) 안 돼, 자기는 오래오래 살아야지. 오래오래 살아서 내가 차후에 다시 태어나면 만나러 와줘.
유스텐:(피식 웃으며) 으음 - 늦게 태어나면 어쩌지? 만나기에 양심 찔릴 것 같은데. 당신인지는 또 어떻게 알아요?
릭사엘:(허황된 소리라는 걸 알지만 현실이 되기를 마음으로) ...내가 먼저 널 알아볼 거야. 다시 만나도 지금처럼 또 사랑에 빠져서, 네 옆을 지킬 거야.
릭사엘:그렇지? 그러니까 유스는 오래오래 몇 백년이고 살아줘야 해.
유스텐:알았어요. 아 - 돈 많~이 벌어서 불사로 만들어주는 약에 전부 투자해야겠다.
릭사엘:(키득키득 웃으며) 응, 돈 많이 벌어서 꼭 기다리고 있어.
릭사엘은 그렇게 이야기하더니 하루의 묵은 피로가 몰려오는지
그러면서도 혹여 당신을 잃을까 두려운 표정으로
릭사엘:...안 돼, 그러면 네가 사라지잖아... (말하면서도 졸음기를 누를 수 없는지 말끝이 길게 늘어진다)
유스텐:그래도 잠은 자야죠, 릭스. (너를 마주보며 눈가와 코끝에 입맞추며) 우린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릭사엘:...다음에는 빨리 와 줄 거야? (슬픔이 가득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거린다. 무게추처럼 내려앉는 눈꺼풀이 야속하기만 하다)
유스텐:(또 얼마나 시간을 넘기게 될지 확신이 안 서지만 저도 빨리 만나길 바라는 마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응... 이번에는 당신이 준 소중한 시계도 있으니까.
릭사엘:...응, 그러면... 기다리고 있을게. (네 품에 살짝 얼굴을 비비며) ...정말 많이 사랑해, 유스...
유스텐:(입술을 움찔거리며 머뭇거리다 끝내 진심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입을 연다) 나도... 많이 사랑해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릭사엘:(살짝 울먹거리는 눈으로) ...또 만나, 나의 수호천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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