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신을 조우한 밤

 


03

신을 조우한 밤


불타오르는 화염이 치솟는 평야.
괴물의 아가리를 뜯어낸 듯 흘러내리는 점액질.
시뻘건 불길이 당신의 머리카락과 턱 아래를 날름거립니다.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선명하고
현실이라고 하기엔 말이 안 되는
괴생명체가 당신의 눈에 안구를 들이밉니다.
유스텐:
SAN Roll
기준치:44/22/8
굴림:21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끼기-긱!
쇳소리 끽끽거리는 소리처럼
괴생명체가 상어같은 날카로운 이빨을 갈아댑니다.
"숭배를 모르는 신부는 그 행위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게 될 테니"
늪지대에서 썩어올라온 것 같은 냄새와 목소리가
두개골을 가르고 뇌를 두드립니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화염이
당신에게 불붙습니다.
당신은 놀라 비명을 지릅니다.
피부가 쩍쩍 갈라지고 살이 익어가는 감촉이
전신에서 느껴집니다.
아파, 아파, 아파...!
생리적인 고통이 치솟다가 턱을 가득 물들이고
치직- 치직- 습기 끓는 소리와 함께 타들어갑니다.
.
.
.
번쩍!
눈이 화들짝 떠집니다.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축축함에 손을 들어 얼굴을 닦으면
손이 붉게 물들어 있습니다.
유스텐:이게 무슨...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전신이 싸늘하게 식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피눈물을 닦아내고 주변을 둘러보면
아무도 없습니다.
그저 적막한 밤의 한가운데일 뿐입니다.
유스텐:(갑작스레 피를 보자 충격에 빠진 것처럼 손이 달달 떨린다) 하아, 하아...
으...흐읏... (두려움에 미간을 찌푸리다가 공간에서 도망치듯 복도로 이어지는 문을 열고 방안을 빠져나온다.)
(얼굴이고 손이고 파자마 상의고 피가 흥건한 채로 맨발로 정처없이 다니며) 릭사엘, 릭사엘...!
당신은 급히 복도를 뛰쳐나와 이곳저곳을 헤멥니다.
까맣게 물든 복도 끝으로 누군가가 스쳐지나갑니다.
당신은 급한대로 달려가 그 사람을 붙잡습니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의문의 사제가
당신의 헐떡거림에 놀라 눈을 크게 뜹니다.
사제3:성배(聖配) 님...? 이 밤에 여긴 어찌 계시는지요.
유스텐:릭사엘... 릭사엘은 어디있어?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을 하며 붙잡은 손이 미친듯이 떨린다)
사제3:릭사엘이라니요...? 그분이 대체 누굽니까.
유스텐:하아, 하... (숨을 헐떡이다가 목울대가 힘겹게 울렁거리고 힘겹게 소리친다) 교주님은 어디있냐고!!
사제3:아... 교주님이시라면- (말을 하려다가 당신의 피범벅된 몰골을 보고는) 지, 지금 교주님이 문제가 아닌 것 아닙니까...! 어쩌다 이리 되셨어요!
유스텐:(사제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한 번 더 소리친다) 어디있냐고! 헉, 헉... (호흡이 가빠지다가 사제를 밀치고 미친 사람처럼 울면서 휘청거리며 복도를 거닌다) 릭사엘.... 릭사엘!!
사제3:잠시...!! 잠시만요...!! (급하게 당신을 붙잡으며) 안,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리 오세요. (당신에게 급히 설득하듯 소리치며 계단을 내려간다)
유스텐:(무슨 정신으로 따라갔는지 기억도 못 할 정도로 정신이 없다. 불안한 듯 흐려진 시야로 계속해서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린다) 흑...흐윽... 무서워, 죽을 거야. 죽을 거라고.
계단을 조급한 발걸음으로 뛰듯이 내려가자
사제가 당신의 손을 끌고 복도 중앙으로 이끕니다.
육중하게 양각과 음각이 새겨진 화려한 문이
당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제3:(가쁜 숨을 헐떡이며) 교주님...! 교주님 잠시 나와보...-!
유스텐:비켜...! (사제를 힘껏 밀치며 거칠게 문을 열어버린다) 하아, 하아... (여전히 눈물을 뚝뚝 흘린 채로 눈을 빠르게 굴려 사람을 찾는다)
당신이 급하게 문을 젖히고 들어가자
갑작스런 방문에 놀란 릭사엘이
천천히 당신을 향해 다가옵니다.
릭사엘:한밤중에 무슨... (놀라서 다가서다가 네 얼굴과 옷이 피범벅인 것을 보고) 어떻게 된 건가...!
유스텐:(네가 무어라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고 네 모습을 보자마자 눈물과 콧물로 엉망인 얼굴을 네 가슴팍에 얼굴을 묻는다. 네 옷깃을 꼭 붙잡으며 전신을 덜덜 떤다) 무서워, 무서워... 죽고 싶지 않아.
릭사엘:(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가 덜덜 떨리는 네 몸을 억세게 잡아 붙들고 품에 꽉 껴안는다) 진정, 진정해. 안 죽어. 죽기는 누가 죽는다는 거야, 대체.
유스텐:으... 흐으... (억세게 잡는 손길에 네 얼굴을 제대로 마주본다. 미우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 어쩐지 안도감이 들어서 울부짖는다.)
릭사엘:(어찌 반응할 줄 모르고 너를 껴안은 채 애처로운 등을 쓸어내린다. 살짝 화가 난 얼굴로 사제에게 윽박지르듯) 어떻게 된 상황이지. 설명.
사제3:그, 교주님... 제가 복도를 순찰하는 사이 성배께서 복도로 뛰쳐나와 교주님을 찾으셨습니다. 사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릭사엘:(살짝 입술을 짓씹으며) 진짠가?
사제3:...예, 신께 맹세코 사실입니다.
릭사엘:(네 떨리는 어깨를 가득 팔로 두르고는) 알았다. 나가봐라.
당신이 릭사엘의 옷깃에 엉망진창이 된 얼굴을 비비는 사이
당신의 뒤로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립니다.
다정한 목소리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당신을 부드럽게 마주 안고 등을 토닥입니다.
릭사엘:갑자기 왜 그래. 악몽이라도 꿨나?
유스텐:나,... 헉... (쉴새없이 심장이 뛰고 울음으로 인한 딸꾹질이 난다) 끅... 피, 피가 나요, 나, 죽는 거예요?
죽고 싶지 않아요, 릭사엘. 사실은 (훌쩍거리며) 죽고 싶지 않아...
살고 싶어.
릭사엘:(너를 품 안에 보듬고 조급한 손길로 등과 뒷머리를 쓸어내리며) 살면 되지. 살면 된다.
하아... 얼굴 들어봐. 상태를 확인해야겠다.
유스텐:(네 말이 들리지 않는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중얼거린다)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아, 아아...!
릭사엘:(정신을 놓아버린 네 음성을 듣다가, 네 두 손목을 거칠게 잡아쥐고) 정신 차려...!! 죽긴 누가 죽는다고!!!
유스텐:(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올린다) 윽, 흐....흐윽, 릭사엘...
릭사엘:(그제야 고개를 든 네 얼굴을 꼼꼼히 살피며) 하아... 얼굴은 피범벅인데... (네 손목을 놓아주고 뺨을 가만히 쓸어보고는) 상처가 난 건 아니군. 다행이다.
유스텐:나, 끅... 무서워, 무서워요. (눈물이 하염없이 주륵주륵 흐른다)
릭사엘:하아... (너를 어떡하면 좋나 고민하다가 품에 가볍게 안아들고는, 침대로 향해 너를 내려놓는다) 괜찮다. 내가 지켜줄 테니. 진정해.
유스텐:(불안한 눈동자가 흔들리며 어린아이처럼 네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옷깃을 꽉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버리고 가지 말아요. 제발....
릭사엘:(애처로워보이는 네 뺨과 이마에 입술을 찍어눌렀다 떼며) 안 버린다. 대체 그런 생각은 왜 하는 거야.
유스텐:절대... 절대 날 혼자 두지 말아줘요. 부탁이에요, 릭사엘.
릭사엘:그래, 그래... (옷깃을 꾹 붙든 네 손을 떼어내고 너를 품에 끌어당겨 다시 보듬다가, 작게 중얼거린다) 갑자기 진짜 어린 애가 됐군...
유스텐:(당신의 품에서 얼마나 훌쩍이며 울었을까. 점차 호흡이 돌아오더니 옅은 숨만 내쉰다) ...
릭사엘:(네 숨이 안정된 것을 느끼고 천천히 품에서 떼어내 얼굴을 확인한다. 잠든 건가?)
유스텐:(당신에게서 안정을 찾은 듯 눈을 감은 채 작게 숨만 내쉰다. 잠들면서도 당신과 떨어지지 않은 듯 주먹을 꽉 쥐고서.) ...
릭사엘:참, 나... (작게 탄식하며 잠는 너를 그대로 제 침대에 눕힌다. 얼굴이고 옷이고 핏물 범벅이 되어서는 왜 여기까지 자신을 찾아왔는지...)
(네게 이불을 고이 덮어주고 일어나 설렁줄을 약하게 당긴다. 곧 들어온 사제에게 젖은 수건을 부탁하고 건네받아 네 땀 젖은 이마를 닦아주며, 중얼거리듯) 이랬다 저랬다... 우유부단도 하네.
.
.
.
아침을 깨우는 청명한 새소리가 들려옵니다.
당신은 천천히 눈을 뜹니다.
처음 보는 천장과 벽지.
어쩐지 익숙한 듯도 같은 침구의 내음.
여긴 당신의 방이 아닙니다.
유스텐:(거울을 보지 않아도 눈이 퉁퉁 부은 것이 느껴진다. 어쩐지 쓰라린 것 같기도 하다. 고개를 천천히 돌려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여긴...
당신이 옆을 돌아보자
눈을 감고 평온하게 잠든 릭사엘의 얼굴이 보입니다.
유스텐:
지능
기준치:55/27/11
굴림:33
판정결과:보통 성공
...아. 그러고보니.
어젯밤의 일이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현실과 구분되지 않는 충격적인 꿈을 꾸고서
당신은 제 발로 릭사엘을 찾아 그의 방으로 뛰쳐들어왔었죠.
무슨 말을 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릭사엘이 당신을 보듬고 연신 토닥였던 것만은
분명하게 기억납니다.
유스텐:(간밤의 일들을 기억해내며 곤히 자고 있는 릭사엘을 빤히 바라본다. 작게 중얼거리며) ... 미워하라고 할 거면 끝까지 나쁜 사람으로 있어주지.
릭사엘:(작은 중얼거림을 듣더니, 인기척에 눈을 슬며시 뜬다. 곧 이어 눈을 두어 번 깜빡이다가, 옆에 누워 있는 너를 보며) ...좋은 아침.
유스텐:(어쩐지 마음이 간질거린다. ...낯선 감정이 느껴져 네 말에 대답 않고 가만히 네 눈을 바라보다가 웅얼거린다) 어젯밤에는 미안했어요.
릭사엘:미안할 것 없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랬겠지. (살며시 팔을 들어 네 위에 덮힌 이불을 빈틈없이 눌러주며) 좀 더 자라. 피곤했을 텐데.
유스텐:... (말없이 네 품으로 더 파고들어간다) 조금만, 이렇게 있게 해줘요.
릭사엘:...그래. 원한다면. (품에 고개를 묻는 네 행동을 의아한 듯 내려다보다가 이내 손을 내려 네 등을 다정하게 토닥거린다)
유스텐:저, ... (손을 잡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 입을 다문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이런 마음이 들어서는 안 되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이 사람에게 의지해서는 안된다는걸.)
릭사엘:(눈을 슬며시 감았다가 다시 뜨며) 왜 그러지?
유스텐:...아무것도 아니에요.
릭사엘:그래. (네 뒷머리를 스윽 쓰다듬어주고는, 네게 눈을 맞추고 어서 자라는 듯 눈을 깜빡인다)
유스텐:(눈을 맞추는 당신이 어쩐지 부담스럽게 느껴져 슬쩍 피한다.) 손... 잡아도 돼요?
릭사엘:손? 그래. (어깨를 살짝 비틀어 네 손을 깍지껴 잡는다) 이러면 되나?
유스텐:'그냥 잡아달란 소리였는데.' (깍지 낀 손을 빤히 바라보다 눈을 감은 채 제 뺨에 대고 비비적거린다)
릭사엘:(왜... 애교를 다 부리지? 가만히 놔둔다)
유스텐:(네 눈, 코 , 입을 차례로 관찰하듯 보다가) ... 입 맞춰도 돼요?
릭사엘:...네가 바라는 건 다 해도 된다.
유스텐:(고개를 살짝 뒤로 젖히고 네 입술에 새털처럼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뗀다.) ...
릭사엘:(허락해놓고 막상 입술이 닿자 어색한 듯 굳으며) 이제 됐나?
유스텐:... 당신도 해주세요.
릭사엘:... (말 없이 고개를 숙여 네 정수리에 입술을 찍어누른다)
유스텐:거기 말고.
릭사엘:그러면?
유스텐:... 제가 한 것처럼 입술에다 해주세요.
릭사엘:...그래. (머리를 더 숙이고 고개를 비틀어 네 입술에 제 입술을 맞췄다가 뗀다. 옅게 콧날이 스친다)
유스텐:(네 입술이 떨어지려 하자 뒷통수를 지그시 끌어당겨 다시 한 번 입맞추고 그대로 몇초간 입술을 붙인 채로 옅게 숨만 내쉰다)
릭사엘:... (적극적인 네 행동에 놀라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이내 속눈썹을 내리깔며 가볍게 입술을 문다)
유스텐:'더...더 닿고 싶어.' (숨을 살짝 들이키며 고개를 살짝 틀어 서툴게 네 윗입술을 머금은 채 입술을 맞비빈다.)
릭사엘:(숨결과 살갗이 옅게 섞이는 감각이 간지러워 좀 더 입술을 크게 베어물고 빨았다가, 살짝 입술을 떨어뜨리고) ...어디까지 하고 싶길래 그래.
유스텐:(볼이 상기된 채로 숨을 고르다가) ... 말하면, 들어줄 건가요?
릭사엘:결국엔 들어주겠지. 내 신부의 부탁인 것을.
유스텐:...저도 모르겠어요. 어디까지 하고 싶은지.
지금은... 당신이랑 키스하고 싶어.
릭사엘:...그래. (천천히 입술을 다시 맞대고 아랫입술과 윗입술을 번갈아 깨물다가, 입술 사이를 가볍게 핥는다)
유스텐:'좋아... 더... 이대로 더...' 응...(수줍게 눈을 감은 채로 입술이 미세하게 떨려온다. 돌려주듯 입술을 맞대고 쪽쪽거리다가 아랫입술과 윗입술을 잘근거리며, 당신이 하는 걸 어색하게 따라한다.)
릭사엘:(네 뺨에 손을 얹고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다물린 입술을 가르고 들어간다. 촉촉한 혀가 조심스럽게 맞물리고 질척한 타액이 고루 섞인다. 조금 가빠진 숨을 내쉬며 어설프게 따라하는 네 얼굴을 조용히 지켜본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충격적이었나보군...)
유스텐:(살짝 풀린 눈을 하고서는 ) 하아... 하.... 왜 그렇게 보는 거예요?
릭사엘:걱정 돼서.
그리고 잘 못하네.
유스텐:(살짝 자존심이 상해서 눈썹을 찌푸린다) ... 이런 걸 어디서 해봤어야 알죠.
당신은 왜 그렇게 능숙한 건데요.
릭사엘:능숙하다고는 생각해본 적 없는데, 내가 능숙한가?
유스텐:... 다른 사람이랑 해본 적은 없지만, 능숙한 것처럼 보여요.
릭사엘:너랑 하는 게 다 처음이야.
유스텐:그런 말 들으니까 좀 억울한데.
처음이라면서 내가 못 하는 건 어떻게 아는 거예요?
릭사엘:나보다 못해서.
유스텐:(오기가 생겨서 네 두 뺨을 감싼 채로 제쪽으로 당긴다) ...그럼 알려주세요.
릭사엘:...응. (다시금 네 입술을 머금고 빨다가 치열을 가르고 들어간다. 어색한 듯 움찔거리는 혀에 제 것을 비비고 빨자, 네게서 옅은 신음이 들린다. 가까이 마주댄 뺨에서 묘한 열기가 전해진다)
유스텐:으응, 흐... (자꾸만... 가슴이 간질거려서 어딘가로 숨고 싶은 기분이다. 도망칠 수 없어서 그저 눈을 감은 채로 속눈썹이 잔잔하게 떨린다. 혀가 소심하게 당신의 혀를 건들다가 부끄러운지 뒤로 물러난다)
릭사엘:(네 턱을 잡고 입술이 열리도록 잡아당긴 뒤 깊게 점막을 파고 들어간다. 도망치듯 물러나는 네 혀가 마음에 들지 않아 혀 끝을 톡톡 두드리자, 작은 신음이 새는지 네 숨결이 거칠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유스텐:(민망해서 귓등이 간질거리고 어깨가 뻣뻣하게 굳는다.) 읏... (숨이 조금 가빠지더니 네 옷깃을 붙잡는다. 이상한 기분이다. 이건 마치... 진짜 연인 같아서.)
릭사엘:(부드럽게 손을 뻗어 네 턱에서 어깨선까지를 쓸어내리고, 깊은 숨을 내쉰다. 질척하게 엉키는 살갗이 정말로 살아있는 것 같아서, 눈꺼풀이 조용히 여닫아진다) 하...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번갈아 깨물고는 젖은 입술을 뗀다) 더 하고 싶어?
유스텐:(숨을 고르며 불그스름하게 볼을 붉힌 채로 멍하니 당신의 눈을 응시한다. 심장이 빨리 뛴다. ) '키스 때문인 걸까. 이건.' ... 당신은요?
릭사엘:(뺨이 불그스름해진 채로 물끄러미 시선을 맞추는 문득 제 것이라는 실감이 들어, 입술을 짧게 눌렀다 뗀다) 더 할까.
유스텐:...응.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다시 입술을 맞물린다. 이상하게 이 시간이 영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영원이라니, 그렇게 내보내달라고 말했던 주제에.' (그런 생각이 드는 자신에게 비웃다가 그저 이 순간을 즐기기로 한다. 당신의 뺨을 감싸고 나긋하게 입술을 핥고 빨아당긴다. 당신이 제게 했던 것처럼. 여전히 서툴고 어색한 티가 난다. )
릭사엘:(눈을 감고 키스에 열중하는 네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네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네 위로 올라탄다. 열기에 물든 듯 발긋해진 네 피부를 보며 조금 더 깊게 혀를 넣고 타액을 비빈다) 후... (다정하게 네 턱선을 더듬다가 이내 귓불을 검지와 엄지로 문지른다)
유스텐:(감은 눈이 잔잔하게 떨려온다. 점점 더 깊게, 다정한 키스를 하자 고개를 뒤로 살짝 물려 입술을 잠시 떼내고 흔들리는 눈을 한다.) 리, 릭사엘...
릭사엘:(입술이 마찰하는 간지러움에 취해 있다가 고개를 뒤로 물리는 너를 의아한 듯 내려다보며) 왜 그러지, 유스.
유스텐:'유스라니...' (분명 이 남자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고 바라던 바인데, 지금은 그 사실이 가슴이 저려온다.) 왜... (왜 그렇게 다정하게 구는 거냐고 물으려다 당신의 대답이 어떻든 간에 상처받을 것을 예상하고 입을 다문다.) ...아니에요.
릭사엘:(너를 무덤덤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의중을 고민하다가) 그만하고 싶나?
유스텐:아. ... 그만하고 싶지 않아요.
더 하고 싶어.
릭사엘:그래. 이리 와. (네 턱선을 따라 손가락을 미끄러뜨리고, 연약한 맥박이 닿는 목선을 감싸며 마저 입을 맞춘다)
유스텐:(가장 연약한 부위를 내어주는 것을 당신에게 허락한 채로 코가 짓눌리도록 짙게 입을 맞춘다. 입을 몇 번씩 맞추면서 달뜬 숨을 내쉬고 저도 모르게 몸을 밀착해온다.) 하아...
릭사엘:(밀착된 몸의 체온이 전해지지 천천히 맞붙어 있던 입술을 떼고, 네 코끝에 짧게 입술을 찍고는 네 눈가를 손끝으로 문지르며) 흥분했어?
유스텐:(잠깐동안 말없이 고민하다가) ...네.
릭사엘:(고개를 위로 당겨올려 네 눈가에 옅은 도장을 찍듯, 짧게 입 맞추었다가 떼며) 내가 뭘 해줄까.
유스텐:(한참을 머뭇거린다.) '나는 뭘 원하는 거지? 지금은 그저... ' ...만져주시면 좋겠어요.
릭사엘:그래. (유연하게 손끝을 미끄러뜨려 네 목과 어깨가 이어지는 선을 쓰다듬다가, 천천히 네 옷 속으로 손을 밀어넣고 피부를 넓게 어루만진다)
유스텐:(피부와는 다른 온도의 손이 제 피부를 만지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져 폐부가 들어올려질 정도로 숨을 크게 들이킨다.) ... (손을 어디다 둘지 몰라 어정쩡하게 허공에서 맴돌다가 결국 네 어깨를 붙잡는다)
릭사엘:(네 허리춤과 복부를 쓸어보다가 작게 중얼거리듯) ...처음 온 날보다 말랐군. (어깨를 붙잡는 네 손에 그대로 붙들린 채 입술을 핥다가, 혀로 궤적을 만들듯 네 턱을 스쳐 목선까지 입술을 누른다)
유스텐:(미약하게 숨만 내쉬다가) ...그걸 다 알고 계시네요. (너무도 다정한 입맞춤에 자꾸만 열이 오른다) 흐... 리, 릭사ㅇ...
릭사엘:(손을 뻗어 네 가운의 매듭끝을 툭 풀어내고는 다물린 천을 조심스럽게 열어젖힌다. 아침 햇살에 비친 피부가 희고 붉다. 고개를 아래로 옮겨 네 가슴 사이에 두고, 애정하는 것을 다루듯 쪽쪽 뽀뽀하고는) 지금은 안 부끄럽나?
유스텐:(심장이 간질거렸던 것이 이제는 온몸을 간지럽히는 기분이 든다. 민망함과 부끄러움, 묘한 흥분감이 뒤섞여 그 모든 것이 낯설어서 다리를 조금씩 꼼지락거린다.) 하아... (고개를 저으며) 여전히 부끄러워요. 그치만 좋아요.
릭사엘:다행이구나. (네가 밀어내고 싶으면 밀어낼 수 있을 정도로 느릿하게 고개를 틀어 도톰하게 솟은 유두를 문다. 따뜻한 체온이 뺨과 입술에 가득 번진다. 체중을 겹치고 있어 허벅지를 떠는 네 몸이 고스란히 느껴지자, 네가 무겁지 않도록 무릎을 세워 네 두 허벅지 사이에 두고 마저 정점을 핥는다)
유스텐:(밑입술에 자국이 남을 정도로 꾹 다문 채로 어깨를 흠칫 떤다.) 흣, 릭사엘...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이 간절하도록 당신의 어깨를 더욱 더 꽉 잡는다.)
릭사엘:(시선을 네 얼굴에 고정한 채로 네 반응을 살피며, 유두를 느릿느릿 핥고 빨아들인다. 무릎을 세워 하반신이 닿지 않게 했음에도 허리 아래에서 뜨겁게 달아오른 존재감이 느껴진다. 젖꼭지를 희롱하다가 입술을 떼자, 촉촉하게 젖은 돌기가 반질거린다.) 유스텐, 다 벗겨주길 원해?
유스텐:(가쁘게 숨을 내쉬며 멍하니 당신을 올려다본다.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정적이 흐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릭사엘:(시선을 네 하반신으로 옮긴 뒤 가운을 완전히 벗겨낸다. 붉게 달아오른 끄트머리를 비죽 내놓고 빳빳하게 부푼 성기가 보이자, 손을 뻗어 기둥을 쥐고 엄지로 첨단을 문지른다. 솟아 있던 맑은 점액이 귀두와 손가락 사이를 잇다가 끊어지고, 다시 이어진다) 이런 건?
유스텐:읏... (잔뜩 움츠리다가 눈썹을 찌푸린다) 그런 거 물어보지 말아요. (네 옷깃을 붙들고 제게로 당겨 입을 맞추고는 귀까지 빨개진 채로 고개를 돌리며) ...물어보지 말고 계속 해줘요.
릭사엘:...그래, 알았어. (첨단을 엄지로 꾹꾹 누르고 요도 입구를 톡톡 두드리다가, 기둥을 부드럽게 감싸쥐고 위아래로 흔들기 시작한다. 바짝 선 네 성기의 포피를 밀어 젖혔다가 다시 덮기를 반복하는 와중에도 손바닥 너머로 뜨겁게 맥동하는 혈관의 감촉이 느껴진다)
유스텐:(달아오른 부분이 한껏 주물러지고 흔들리자 어쩔 줄 모르고 발가락이 움츠러든다. 살짝 젖은 눈으로 당신에게 애원하듯 끊임없이 이름을 부른다) 앗...! 흐으... 릭사엘, 릭사엘...
릭사엘:(흐느끼듯 불러지는 이름에 묘한 기분에 젖은 채로) ...그래. 부르고 싶은 만큼 불러. (네 턱끝에 키스하곤, 얼굴을 네 하반신까지 옮긴다.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성기가 얼굴 언저리에서 퉁, 꺼떡거린다. 살짝 비릿한 냄새가 나는 듯하다. 잠시 네 허락을 구하듯 얼굴을 마주보다가, 이내 입술을 벌려 네 귀두를 머금고 혀로 핥짝인다)
유스텐:으응... 아, 리, 릭사엘, 거긴, .... (사랑하지 않으면서, 저를 헷갈리도록 이렇게 다정하게 구는 당신이 미워진다. 이상한 사람. 아니... 이상한 건...) ... ( 분명 그의 행위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가슴이 아려와서 눈썹이 움찔거리다가 입을 다물고 눈가가 축축하게 젖어든다.)
릭사엘:(네 귀두를 촘촘히 빨아들이다가, 기둥까지 머금어 길게 핥아내린다. 펄떡거리며 뛰는 맥박에서 어쩐지 옅은 연민이 든다. 그러다 뒤늦게 네 신음이 축축해진 것을 눈치채고 천천히 입술을 떼며) ...싫었나? 부드럽게 한다고 했는데.
유스텐:흐읏, (입술이 잔잔히 떨리더니 눈가가 눈물로 가득찬다. 흘러내리지 않도록, 당신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도망치듯 고개를 돌린 채로 눈만 깜빡인다.) ... 아니, 아니에요. 싫지 않아요.
릭사엘:(애처로워보이는 네 표정에, 네가 싫어하는 것인지 좋아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입술을 슬며시 핥아 적신다. 그러다 이내 네 말에 따라 다시금 기둥을 흔들며) 원하는 만큼 해줄 테니, 울지 마라.
유스텐:응, 응... ( 아래를 빳빳이 세우고 네 손길에 모든 걸 맡긴다. 결국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네 두 뺨을 붙잡고 애틋한 얼굴을 하며) 키스해줘요, 릭사엘.
릭사엘:(네 말에 토달지 않고 몸을 네 위로 끌어올려 다정하게 입술을 덮고 가르고 헤집으며, 손에 잡힌 네 것을 빠르게 마찰한다. 촉촉하면서도 부드러운 혀가 섞이고 점막에 간지러움이 번지자 호흡이 슬쩍 달뜬다) 후... (숨을 고르려 잠시 입술을 뗐다가, 떨어진 것이 아쉽다는 듯 다시금 네 안을 파고든다)
유스텐:(숨이 차오르다가 턱 막힐 것만 같다. 어쩌면 나는 , 줄곧 이것을 바라 왔던 게 아닐까.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적어도 시간이라도 이 순간만큼은 느리게 흘러갔으면 싶었다. 이 다음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제 감정이 어떻게 될지, 눈앞의 이남자의 감정도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 차라리 계속 이대로...) 하아, 읏, 릭사엘, 나... 나... (바램과는 다르게 네 손길과 키스로 전신이 데워져 곧 절정이 다가옴을 직감한다.)
릭사엘:(상냥하게 입술을 베어물었다 떼고, 연신 짧은 키스를 입술에 누르다가 귓가로 입술을 가져다 붙이며) ...가도 돼. (말을 하자마자 네 귓불을 잘근 씹고, 귀 안쪽으로 혀를 넣어 물컹하게 비빈다)
유스텐:(귓가를 간지럽히도록 나직한 속삭임에 결국 슬픔과 쾌락이 뒤섞인 표정을 하고 눈앞의 너를 바라보며 계속해서 이름을 불러댄다.) 힉, 으응... 릭사엘, 릭사엘, 아, 흐읏! (어깨를 흠칫 들어올리더니 이내 툭, 투둑 하고 갈라진 틈에서 백탁액이 사출된다.)
릭사엘:(손바닥을 둥글게 오므려 툭, 툭 쏟아지는 네 정액을 받아내고 네 뺨에 상냥하게 입술을 맞춘다. 슬쩍 올려다본 얼굴에 쾌락과 슬픔이 한데 고여 있는 것이 어쩐지 신경이 쓰여서, 뺨에 내리던 입맞춤을 입술까지 옮긴다.) ...왜 이렇게 많이 울었어. (다정하게 입술과 코끝에 뽀뽀한다)
유스텐:(내가 어떻게 감히 당신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입술이 움찔거리다가 네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돌리며) ... 그냥요.
릭사엘:(네 심상치 않은 반응에, 티슈에 닦으려던 손을 이불 끝자락에 문질러 닦고는 두 손으로 네 뺨을 그러쥐어 시선을 마주하게 한다) 계속 시선을 피하는군. 나랑 방금 한 걸 후회하나?
유스텐:(여전히 네 시선을 피한 채로) ...후회하지 않아요.
릭사엘:그러면... 그저 내가 밉나?
유스텐:(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다가 눈을 내리깔고 다시 다문다. 그저 조용히 고개를 도리질친다)
릭사엘:(아니라고 말하는 네 고개를 손바닥으로 쥐고, 숨결이 섞일 듯 가까운 거리에서 너를 내려다보며) ...이해하려 노력을 하는데도 널 이해하는 건 정말 어렵구나.
유스텐:(네 말에 가슴이 쑤셔서 목이 잠긴 것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 말했잖아요. 우리는 아마 평생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릭사엘:...그래도 노력은 해야 하는 거니까.
유스텐:(일부러 네게 마음에도 없는, 모진 말을 내뱉는다. 모진 말을 뱉는 건 자신인데, 어째선지 제 가슴이 쿡쿡 찔리는 것 같다) 굳이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내가 당신을 미워하길 바라잖아요.
내게 이기적으로 굴어요.
릭사엘:...그래도 할 수 있는 게 노력뿐이라면, 그거라도 해야지.
유스텐:하하... 당신도 참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네요. 미워하라면서, 왜 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건지...
릭사엘:...너는 날 미워해도 되지만, 난 널 미워할 수 없을 테니까.
유스텐:... 왜요?
릭사엘:나에겐 너를 이곳에 데려온 책임이, 내 신부를 지킬 책임이 있다.
유스텐:(약간의 희망이 사그라들고 허무한 듯 비릿하게 웃는다) ...그래요.
릭사엘:(체념한 듯한 네 목소리를 듣고는, 어렵사리 네 입술에 살짝 입맞추며) 혹, 너는 그걸로는, 부족한가?
유스텐:내 꿈... 기억해요?
릭사엘:정상적인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싶다고 했던, 그거 말인가?
유스텐:그래요. ... 내가 그런 삶을 원하면, 당신은 들어줄 수 있나요?
릭사엘:...
유스텐:(대답없는 너를 보며) ...아니, 그냥 대답하지 말아요.
릭사엘:(네가 말하는 '정상적'이라는 단어의 범주 안에 자신이 속할 수 없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너무도 잘 알아서 입을 다물다가) ...상냥하게 대하고 아껴주겠다는 약속으로는 부족한 건가?
유스텐:또 책임감 때문에 하려는 거라면 애써 나와 약속하려 하지 말아요.
...더이상 당신을 원망하겠다고 하지는 않을게요. 그러니까 억지로 하지 마요.
릭사엘:...억지로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가 해주고 싶어서 한 거지.
유스텐:... (작게 중얼거리며) 미워하라고 할 거면 잘해주지나 말지...
릭사엘:네가 날 미워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건 아니니까. (까지 말하고 잘못 말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네 마음 편한 쪽으로 해. 내가 바라는 건 그뿐이다.
유스텐:그래요...
릭사엘:솔직히... 대화를 하면서 약간은 친밀감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던 것 같군. 그만 일어나라. 상태 갈무리하는 걸 도와주고 방으로 돌려보내줄 테니. 오늘은 의식을 거행하지 않아도 좋다. 몸 상태도 안 좋을 텐데 그냥 쉬도록.
유스텐:(네 말에 말을 모질게 한 제 자신이 미워져 주먹을 꽉 쥔다. 단호한 어투로 ) ... 싫어요.
날 혼자 두지 않겠다고 했잖아요.
릭사엘:...정말이지, 말을 순순히 듣는 법이 없네.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흐트러진 네 가운을 곱게 매어주며) 오늘은 그대가 의식을 하지 않으니, 내가 예배당으로 내려가 다른 의식을 거행해야 해.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닐 테니 방에 있어라.
유스텐:(막무가내로 고개를 저으며) 싫어, 싫어요. 곁에 있어줘요. 오늘만이라도...
릭사엘:(네 말에 잠시 고민하듯 입을 다물었다가, 시선을 슬쩍 피하며) 교인들을 헛걸음하게 했다가는 교단의 위상이 추락할 수 있다. 두 시간 정도만 혼자 있도록.
유스텐:(불안한 얼굴을 하고 애처롭게 당신을 바라보며) 싫다고요! 혼자 두지 않겠다고 했잖아요. 약속했잖아...
날 데려가줘요, 릭사엘. 여기 혼자 두고 가지 말아줘요...
릭사엘:... (새벽에 대체 무슨 꿈을 꾸었길래 어리광이 심해진 건지... 아니지. 사실 예상 가는 것은 있다. 신께서 이 아이에게 모습을 드러내신 거겠지. 순간적으로 신의 육신을 처음 조우했을 때가 떠올라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며) ...알겠다. 눈을 가려줄 테니, 가만히 앉아만 있도록.
유스텐:그럴게요. (두 팔로 너를 안고 네 품안에서 어리광부리듯 이마를 비빈다)
릭사엘:(복잡한 심경으로 네 정수리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릭사엘은 당신을 끌어안은 채로
가볍게 방 안에 놓인 설렁줄을 당깁니다.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제가 둘 들어와
릭사엘의 환복을 돕습니다.
당신의 제례복과는 색부터 다른 검은 비단이
릭사엘의 몸을 덮습니다.
교주임을 증명하듯, 제례복에 놓은 팔각성의 금실 자수는
더욱 크고 선명하며 화려한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제들이 그의 몸을 스칠 때마다
청명한 소리를 내는 청은색 방울이
그의 허리에 달립니다.
흐트러진 릭사엘의 곱슬 머리카락까지 단정하게 빗고
화려한 금실 관을 씌운 사제들이
이내 두 걸음 뒤로 물러나
흰 사제복을 건넵니다.
릭사엘은 그 사제복을 받아들고 사제들을 물립니다.
곧 조용한 벨벳 마감음과 함께 문이 닫힙니다.
릭사엘:(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너를 향해) 이리 와라. 옷을 갈아입혀줄 테니.
유스텐:(고개를 끄덕이며 네게 다가간다. 이제는 네 손길이 익숙해진 듯 가만히 팔을 벌리고 선다)
릭사엘:(천천히 네 팔에 비단천을 꿰어넣으며 부드럽게 매무새를 다듬어준다) 이제는 익숙한가?
유스텐:네. ...당신은 내게 어떤 의도도 품고 있지 않으니까요.
릭사엘:...그렇지. (네 허리 벨트를 채우고 사제복의 깃을 다듬어준 뒤 베개에 짓이겨져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내린다)
유스텐:(신기하다는 듯 멍하니 네 차림을 구경한다. 문득 입맞추고 싶단 생각이 들은 건 왜일까. 고개를 들어 입을 맞추려다가 ... ... 고갤 들어올리는 것만으로는 힘겹다는 계산을 하고는 살짝 까치발을 들어 가볍게 입을 맞췄다 뗀다)
릭사엘:(가볍게 입술에 닿았다 떨어지는 촉감에 눈을 두어 번 감았다 뜨다가, 허리를 숙여 네 입술에 가볍게 자신도 입술을 눌렀다 뗀다) 사제복도 잘 어울리는구나.
유스텐:그런가요. ... 그러는 릭사엘도 잘 어울려요.
릭사엘:그런가. 고맙다. (네 뺨을 가볍게 감싸쥐고 뺨에 살짝 키스한 뒤, 손을 잡는다) 정오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바로 이동하지.
유스텐:(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맞잡은 손을 한 번 바라보다 네게 이끌린다)
릭사엘은 당신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깁니다.
묵직하고도 화려한 문이 복도를 향해 열립니다.
복도로 나오자 당신이 예배당으로 향할 때와 같이
수많은 사제들이 릭사엘을 향해 고개를 조아립니다.
릭사엘은 감흥 없는 표정으로 당신의 손에 깍지를 끼고
예배당으로 가는 걸음을 재촉합니다.
예배당까지 도달하는 길은
당신의 방에서 출발할 때보다 훨씬 짧습니다.
아마, 릭사엘이 예배를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겠죠.
당신이 릭사엘과 함께 예배당의 뒷문에 서면
검은 사제복을 입은 사제 둘이
예배당으로 향하는 문을 대신 열어줍니다.
예배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못 다른 분위기의 내부가 당신을 반깁니다.
당신이 의식을 진행했을 때는 그래도 사방이
환한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면
지금은 모두 암막 커튼이 쳐져
아주 가느다란 햇빛만이 들어오고
붉게 타오르는 양초의 촛불이 도리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예배당을 채운 수많은 신도들이 릭사엘의 등장에 맞추어
정신없이 기도문과 외침을 쏟아냅니다.
그들이 쏟아내는 광증에 귀가 먹먹해져 옵니다.
릭사엘은 그런 그들의 앞에 놓인 단상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깁니다.
당신이 스프레더 바에 묶이던 단상의 가운데 자리에는
흉측한 고문 기구 대신 왕좌처럼 화려한 의자가 둘 놓여 있습니다.
릭사엘은 그 의자 중 가운데 것에 거침없이 다가가
자신의 몸을 앉히고
당신의 몸을 끌어당깁니다.
릭사엘:(품에서 흰 천을 꺼내어 네 머리에 덮어주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천을 벗지 마라. 알겠지.
유스텐:(끄덕이며) ...알겠어요.
당신이 릭사엘의 손길에 따라 가만히 천을 덮어쓰면
뒤에서 사제의 것으로 보이는 발걸음이 다가와
당신의 몸을 이끌고, 차가운 금속 프레임의 의자에 앉힙니다.
당신은 천천히 숨을 들이킵니다.
시야가 닫힌 탓인지, 감각이 하나둘씩 살아나듯 날카로워집니다.
릭사엘:(왕의 홀을 사제에게 건네 받고, 홀의 밑면으로 바닥을 쿵 내리찧으며) 신의 부름을 받은 나의 신도들이여. 그대들에게 영광을.
그 말과 동시에 우레와 같은 기도가 터져 나옵니다.
"포르타 라샤토그!"
"포르타 라샤토그!"
"포르타 라샤토그!"
여전히 의미를 알 수 없는 낱말 속에서
어두운 안개처럼 자욱한 사제의 목소리가
의식을 알리듯 종을 흔듭니다.
천천히 음습한 냄새가 피어오릅니다.
이전에 맡지 못한 향입니다.
철이 썩은듯한, 축축하게 끈적이는 선혈의 내음.
거기에 타버린 뼈와 땀,
미묘하게 부패한 장기조직의 냄새까지 겹쳐 납니다.
뚜벅, 뚜벅.
사제들이 둥글게 당신과 릭사엘이 있는 자리를 둘러싸고
한 방향으로 걷는 듯한 소리가 들립니다.
당신은 숨을 죽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움츠러들어있을 찰나,
큰 손이 당신의 손등을 감아쥡니다.
유스텐:(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잔뜩 긴장할 때쯤, 제 손등 위로 손이 겹쳐지자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낀다. 릭사엘이 있을 것 같은 방향을 예상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릭사엘?
당신의 손등을 감싸쥔 손이
대답 대신 당신의 손등을 가볍게 꾹 감쌌다가 힘을 풉니다.
당신이 안도감을 느끼기 무섭게
형언할 수 없이 기괴하고도 불경한 언어가
사제들의 입에서 흘러나옵니다.
유스텐:
크툴루 신화
기준치:1/0/0
굴림:81
판정결과:실패
어떠한 시선이 당신을 꿰뚫는 듯
뒷목을 찌릅니다.
앞을 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예배당 안의 공기가 짙고 묵직해진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곧 의식의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당신의 손을 덮고 있던 체온이 떨어져 나갑니다.
가볍게 휙, 휙,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납니다.
당신이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려는 찰나
스릉- 하는 소리와 함께
보이지 않는 빛이 천 아래를 파고드는 듯
번뜩 눈앞을 물들입니다.
유스텐:'대체 뭘 하는 거지?' (두려움에 기가 눌리면서도 호기심이 생겨 예민해진 감각을 쫑긋 세워본다)
그 순간,
뿌득, 으득,
칼이 뼈를 가를 때나 날 법한
건조한 파열음이 들려옵니다.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피부를 가르고,
관절을 긁고, 골막을 밀어내는 소리.
하지만 비명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목소리 없는 사방에서 마치
이계로 끌려온 듯한 웅성거림이 들려옵니다.
산 자의 몸을 가르는 것인지
죽은 자의 몸을 가르는 것인지
그 무엇도 알 수 없습니다.
뚝, 뚝.
액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뼈를 찢고 갈라내는 소리는
그에 멈추지 않고 계속 들여옵니다.
들리고,
들리고,
들리고,
들리고,
들리고,
들리고,
들리고,
들리고,
들리고,
들리고,
들리고,
들리고,
들리고,
들리고,
들립니다.
뚝뚝 떨어지던 액체의 소리가
줄기를 이루기라도 한듯 주르륵 쏟아지는 소리로 변합니다.
유스텐:........ (호기심이 점차 사그라들고 그 자리에 공포감이 들어찬다. 정확히 뭘 하는진 모르지만, 지금 여기서 흰 천을 걷어내면 안 된다는 걸 어렴풋이 눈치챈다.)
피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피부 위를 어떤 기묘한 열기가 훑고 지나갑니다.
불도 아니고, 손도 아니며,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도 않는 열기.
마치 얼어붙은 신의 피에서 흘러나온 듯한 온기입니다.
바닥에 콸콸 쏟아지던 찐득한 물소리가
이윽고 유리 찰랑대는 소리로 바뀝니다.
당신은 공포에 휩싸여
고개를 푹 수그립니다.
그와 동시에 당신의 머리 위를 덮고 있던 천이
하릴없이 바닥으로 툭 떨어져내립니다.
참혹한 풍경이 눈앞에 담깁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예배당의 단상 위를 짙게 물들인 붉은색.
그리고 그 끈적하고도 불결한 물결의 파장.
당신은 본능적으로 다시 천을 덮으려
눈을 뜨고 손을 뻗습니다.
그러려던 찰나,
피범벅이 된 채 거대한 유리병을 채우는 두 손이 보입니다.
손가락과 손목과 팔목과 어깨의 모든 관절마디가 으스러지고 깨지고 비틀린
릭사엘이 그 병에 피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유스텐:(심장이 미친듯이 쿵쾅거린다. 등줄기가 싸늘하다. 믿을 수 없어서, 지금 보이는 모든 광경들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은 채 충격에 빠져 멍하니 릭사엘을 바라본다.) 아, 아아... (이건,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다. 당장 릭사엘을 말려야만 한다. 말려야 하는데... 그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린다)
당신이 입술을 떨며 정면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으면
이윽고 찢긴 피부와 근육 조직에서 터진 피를 모아낸 사제가
검붉은 피를 작은 유리잔에 나누어 담습니다.
당신의 주변을 둥글게 감싸며 걷고 있던 사제들이
일제히 행렬을 서고 그 유리잔을 받아
신도들이 앉은 좌석으로 나아갑니다.
가장 맨 앞줄에 앉은 교인들이 먼저 잔을 받고
황홀경에 취한 표정으로 피를 꿀꺽 삼키고,
그리고 그 다음 줄이,
그리고 그 다음 줄이,
그리고 그 다음 줄이,
그리고 그 다음 줄이,
그리고 그 다음 줄이,
그리고 그 다음 줄이,
그리고 그 다음 줄이,
그리고 그 다음 줄이,
그리고 그 다음 줄이 피를 삼킵니다.
릭사엘은 그 광경을 무감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뒤로 고개를 돌립니다.
천이 떨어진 당신과 눈이 마주칩니다.
릭사엘:...유스.
릭사엘은 당신의 얼굴을 덮어야 할 천의 행방을 찾아
바닥을 내려다보고는 손을 뻗으려 하지만
찢기고 비틀리고 조각난 제 팔의 상태를 눈치챘는지
그저 팔을 등 뒤로 숨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가 주륵주륵 흘러내리는 소리만은
감출 수 없도록 선명하게 들려옵니다.
유스텐:(압도적인 두려움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이상하게도 평소에 잘만 나오던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단지 숨이 막혀서, 모든 감각이 외면하고 싶어도 너무 선명해서, 그 모든 광경을 입술을 떨며 바라본다) 릭사엘...
릭사엘:(말 없이 시선을 피하고 옆에 있던 사제 하나에게 턱짓하며) 신부의 얼굴을 가려라.
사제2:예, 교주님.
당신이 흔들리는 눈을 하고 있으면
사제가 태연하게 걸어와 바닥에 떨어진 천을 줍고
그 천을 당신의 머리 위에 덮어줍니다.
시야가 다시금 가려집니다.
머리가 아파오고 숨이 헐떡거립니다.
당신이 겨우 호흡을 진정시키는 사이
예배당 곳곳을 맴돌던 발걸음이 모두
단상 위로 다시 올라옵니다.
다시금 유리잔에 액체 채워지는 소리가 납니다.
대체 이 짓을 몇 번을 반복하려나
두려움이 밀려오려는 찰나
한 발걸음이 당신의 앞에 섭니다.
그리고 당신의 손을 끌어와 모으게 한 뒤
서늘한 잔 하나를 내밉니다.
유리잔입니다.
유스텐:이건... (굳이 마셔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잔에 들은 것이 릭사엘의 피라는 것을. 굳은 얼굴을 하고 그저 잔을 바라보기만 한다) '마시고 싶지 않아.'
주변에서는 거침없이 피를 마시고
황홀경에 취한 사람들의 신음이 들려옵니다.
꿀꺽꿀꺽 목울대를 넘어가는 액체의 소리가
점차 잦아듭니다.
당신이 잔을 그저 들고 가만히 버티고 있자
당신의 등 뒤로 누군가가 다가와 속삭입니다.
사제2:마시지 않으시면 의식은 끝나지 않습니다. 신의 배필이시여.
유스텐:(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로 도리질치며) 시, 싫어요. 이걸 어떻게... '미쳤어, 미쳤다고... 하지만...'
사제2:의식이 끝나야 라샤토그 님께서 치료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유스텐:... 으, 흐윽... (심리적 거부감이 들어 천천히 잔을 들어올리는 손이 쉴새없이 떨린다.) '내가 마시지 않으면, 릭사엘은...'
아, 아아.......흑 (고개를 뒤로 젖히고 유리잔에 든 액체를 한번에 들이킨다.)
당신은 잔을 입술에 대고 결국은 액체를 삼킵니다.
입 안을 맴도는 끈적한 액체가 번집니다.
짙은 향기가 밀려옵니다.
피 냄새도, 포도주의 냄새도 아닙니다.
마치 먼 옛날 잊힌 신전의 돌 바닥에서 피어난 버섯균사처럼
묘하게 달고, 섬뜩하게 삭은 냄새입니다.
액체는 타닌이 풍부한 적포도주처럼 씁쓸하게 들어오더니,
곧 혀 아래서 녹아내리는 듯한 단맛으로 번집니다.
식도는 붉게 달아오릅니다.
마치 존재했던 과거와 존재하지 않을 미래가 동시에 스쳐 지나가는
기시감과 동시에
아득한 황홀경이 눈앞을 덮칩니다.
당신은 액체를 모두 들이키고
눈물을 뺨에 머금은 채 작게 구역질합니다.
입 안에 피처럼 차가운 여운이 남습니다.
놀랍게도 끝맛은 슬픔과 맞닿아 있습니다.
마치 이것이, 초월한 존재의 피를 마신 자가 감당해야 할
끝없는 앎의 괴로움이라는 것처럼.
당신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잔을 바닥에 툭 떨구자
파스슥, 유리 금가는 소리가 번집니다.
곧, 그 사이를 가르고 릭사엘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릭사엘:(묵직하게 바닥을 기는 목소리로) 심연이 응답하여 이 날, 그대들은 그분의 살이 되었다. 다음 피를 기다려라. 그것이 너희 중에서 흐를지어니.
탁!
거칠게 홀의 밑바닥이 단상을 찧는 소리와 함께
뇌를 두드리는 종소리가 울려옵니다.
사방이 급격히 부산스러워집니다.
의식의 종료를 알리는 듯
경건하던 주변의 발걸음이
일상의 발소리로 변모합니다.
당신은 천천히 눈을 감고 누군가가 천을 거두어줄 때까지
가만히 앉아 기다립니다.
주변을 채우던 발걸음이 하나둘씩 예배당에서 사라집니다.
당신이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얼마나 베일 아래 가리고 있었을까
곧 다정한 손길이 당신의 정수리를 쓰다듬고
천을 위로 들어올립니다.
릭사엘:(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네 안색을 살피며) ...괜찮나?
유스텐:으, 으으...흑... (당신의 얼굴이 보이자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더욱 더 눈물을 흘린다. 솜방망이 같은 주먹으로 어깨를 툭 치며) 지금 나한테 괜찮냐고 할 때냐고요...
릭사엘:...괜찮다. 그보다는 네가 걱정이구나. 놀랄 것이 뻔해 덮고 있으라고 한 것인데. (가지런한 손으로 네 눈가의 눈물을 닦아준다)
유스텐:뭐가, 끅... 괜찮아요, 당신 팔이... (계속해서 딸꾹질이 나와 제대로 말을 못 하고 울먹인다)
릭사엘:(네 앞으로 하얀 손을 내밀어 돌리며) 치료는 다 했다. 확인해봐도 좋아.
유스텐:(네 팔을 더듬으며) ... '진짜 말끔하게 나았잖아.' 그래도 고통은 느껴지는 거잖아요.
릭사엘:그렇지. 그래도 익숙한 일이다. 괘념치 마.
유스텐:이게 익숙한 일이라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며)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릭사엘:어쩔 수 없지. 이게 내가 져야 할 책임이라는 것이니.
(너를 끌어당겨 일으키고 품에 안으며) 지쳤을 테니 방으로 돌아가지. 같이 쉬면 좋겠군.
유스텐:(뭔가 더 말하려다가 어쩐지 당신이 더 지쳐보여서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요. 같이 가요.
릭사엘은 당신을 안심시키려는 듯 등을 토닥이고는
이내 당신의 손에 깍지를 낍니다.
길고 길었던 의식의 예배당을 뒤로 하고
당신은 눈물을 그곳에 남기고 나옵니다.
.
.
.
묵직한 문이 열리고
당신은 릭사엘의 방 안으로 들어섭니다.
이제는 익숙한 향기가 납니다.
섬뜩하고도 지옥 같았던 예배당의 장면이
아직도 눈앞을 스쳐지나가지만
당신을 잡은 손은 그 기억을 밀어내려는 듯
따뜻하게 힘을 더 줍니다.
릭사엘:(방의 문을 닫고 네 앞에 마주 선 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천을 덮고 있어서 그런가. 머리가 조금 엉망이 됐군.
유스텐:나 말고 당신이나 살피라고요...
릭사엘:괜찮대도.
(천천히 네 사제복에 손을 뻗어 장신구를 덜어낸다)
유스텐:...릭사엘.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죠?
(네 한 쪽 뺨을 쓸어내리며) 당신이 신에게 원하는 게 대체 뭐길래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거예요...
릭사엘:이유라니?
아.
(이해했다는 듯 짧게 내뱉고는) ...믿지 않을 것 같은데.
유스텐:말해봐요. ... 나는 어쨌든 당신의 신부잖아요.
릭사엘:그대는 싫어할 수도 있다.
유스텐:대체 뭐길래...
릭사엘: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는데... 음.
내 목표는 신이 하사하는 주술을 받아 인류에게서 살육욕과 폭력성을 제거하는 거다.
유스텐:(전혀 생각지도 못 한 대답에 눈을 두어번 깜빡이다가) 왜 내가 싫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릭사엘:그대와 같은 이단의 인간들은 모두 육식을 즐기니까.
유스텐:... 그럼 어쩌다 그걸 원하게 됐어요?
릭사엘:글쎄... 입에 담기엔 간지러운 말이군.
유스텐:간지러운...말?
당신한테 그런 게 있어요?
릭사엘:...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유스텐:어... 인간을 이해해보려 하는 로봇?
릭사엘:너무하군.
유스텐:릭사엘이 너무 딱딱한 거예요.
릭사엘:그렇긴 하지. (순순히 수긍한다)
유스텐:그래서, 간지러운 말이 뭔데요?
릭사엘:나는 전쟁이 없는 세계를 원해.
인간을 신의 품에 그렇게 돌려보내면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 어불성설임은 알고 있다.
유스텐:... 잘 아네요.
릭사엘:대를 위한 소의 희생 같은 개념인 거지.
유스텐:희생된 사람들은 희생되고 싶었던 게 아니잖아요...
릭사엘:그렇지.
하지만 내겐 내 사람들에 대한 강한 책임이 있다. 외부의 이단들은 그들에 비하면 내게 중요치 않다는 건, 말 안 해도 알겠지.
인류에게서 그 두 가지 감정을 제거하고 나면, 더 이상 내 사람들을 개죽음으로 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신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살육의 잔치로부터 인류가 종 노릇을 멈추고 독립할 수도 있게 되겠지.
유스텐:완전히 이해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라서 뭐라 하지도 못하겠네요.
...릭사엘. 그러면 당신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나요.
릭사엘:...무슨 책임을 말하는 거지.
유스텐:당신이 이렇게까지 희생해야만 하는 일인가요? 모두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릭사엘:희생이라... 내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였는지 안다면 그런 소리는 하지 못할 텐데.
유스텐:...
당신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에요.
릭사엘:그럴지도.
유스텐:확실히 당신은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죠.
그래도 당신이 희생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잖아요.
아, (스스로 하는 말이 굉장히 모순적임을 깨닫고 복잡한 듯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모르겠다. 그냥 안기나 해요.
릭사엘:(슬쩍 당겨지려는 입꼬리를 내리며) ...그래. (너를 품에 안고 가만히 숨을 죽인다)
유스텐:(궁시렁거리며 너를 마주안고 등을 토닥여준다) 하, 진짜... '미워하고 싶어도 마음 놓고 미워하지도 못하게 한다니까. 내가 미쳤나...'
릭사엘:(등을 토닥이는 손길에 잠시 멈칫하다가 네 등을 마주 토닥인다) 궁금한 건 더 없나?
유스텐:지금은 없어요. (한숨을 푹 내쉬며 작게 중얼거린다) ... 에휴, 바보 같아, 진짜.
릭사엘:바보라니. 실례다.
유스텐:귀가 많이 밝으시네요.
릭사엘:아무래도 그렇지.
유스텐:앞으로 속으로 생각해야겠다.
릭사엘:그건 좀 싫은데.
유스텐:왜요, 궁금해요?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릭사엘:응.
유스텐:'말해봤자 좋을 거 없을 것 같은데.' (옅게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런 투로) ... 알려주기 싫은데.
릭사엘:왜 알려주기가 싫지? 내가 그대의 남편인데.
유스텐:너무 많이 알면 다칠 수도 있거든요.
드라마나 영화 같은데서 못 봤어요? (등장인물의 말투를 따라하며) "넌 너무 많은 걸 알았어, 죽어줘야겠어." 하잖아요.
릭사엘:나를 죽일 건가?
유스텐:(어딘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아니.
릭사엘:그럼 됐다. (네 턱을 들어올려 입술에 짧게 키스한다)
유스텐:(작게 웃음소릴 내며) ... 이번엔 키스해달라고 안 했는데.
릭사엘:...그렇군. 미안하다.
유스텐:(바로 사과하는 모습에 재밌다는 듯 소리없이 웃다가 까치발을 살짝 들어 네 입술에 쪽- 소리나도록 입을 맞췄다 뗀다) 싫다고는 안 했어요.
릭사엘:...그럼 다행이군. (잘 웃네...)
유스텐:...릭사엘.
릭사엘:그래, 유스텐.
유스텐:가끔씩... (머뭇거리다가) ... 릭스라고 불러도 돼요?
릭사엘:그대 편한대로.
처음부터 호칭은 편한대로 하라고 했지 않았나.
유스텐:그때는 당신을 몰랐는걸요.
(가슴이 간질간질거린다. 속눈썹을 내리깐 채로 중얼거린다) 릭스...
릭사엘:그래, 유스.
유스텐:하하, 하하하...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혼자 웃다가) 릭스, 릭스...
릭사엘:(네가 즐겁게 웃는 이유를 알지 못해서) 그 호칭에 웃긴 점이라도 있나? 요즘 신조어라도 되나?
유스텐:... 비밀이에요.
릭사엘:(나중에 사람을 시켜 알아보게 해야겠군) 그래.
유스텐:그나저나... 씻으러 가지 않아도 돼요? 당신 옷이...
릭사엘:내 제례복은 피로 물들 때가 많아, 한 번 사용하고 버린다. 걱정하지 마라. 그래도 씻기는 해야겠군.
유스텐:(피로 물들 때가 많다는 말에 가슴이 아려온다. 그늘진 얼굴로 가만 있다가) ... 응, 어서 씻으러 가요.
릭사엘:그래.
.
.
.
욕탕에 도착하자 이제는 익숙한 듯
릭사엘이 당신의 옷을 먼저 벗기고
본인의 피로 물든 제례복도 벗어냅니다.
뜨끈한 김이 여느 때와 같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릭사엘은 덤덤히 당신의 손을 잡고
탕 안으로 데려가 앉힙니다.
부드러운 수면에 파문이 입니다.
릭사엘:(네 몸을 꼼꼼히 문질러 씻기며) 그러고보니 식사는 대체 언제 할 생각이지. 몸이 말랐다.
유스텐:(너무 많은 일을 겪었던 탓에 정말로 까맣게 잊었다는 듯) 아.
릭사엘: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말해봐라. 목욕이 끝나면 상을 차리라고 명하지.
유스텐:먹고 싶은 음식... (그동안 빠듯하게 살아와서 생존을 위해서 먹은 일이 다수라 한참을 고민한다)
릭사엘:(네 가정사와 자라온 환경을 생각하다가) ...평소 먹어보고 싶었던 음식도 괜찮다.
유스텐:... (작은 목소리로) ...프 웰링턴.
비프 웰링턴 먹어보고 싶어요. ...언젠가 TV에서 선전하는 걸 봤는데, 맛있어보여서. (한 번도 못 먹어봤다고 고백한 게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인다.)
릭사엘:(육식을 좋아하긴 하나보군) 그래. 조금 이따 주방장에게 이르지. (네 마른 등을 꼼꼼히 문지른다)
유스텐:... 고마워요.
릭사엘:뭘 그런 걸로. 그대는 내 신부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 요구해.
유스텐:(고개를 저으며) 아니에요, 나는 여기 사람도 아닌걸요.
릭사엘:내 신부이면서 이곳 사람이 아니라니. 말이 안 되지 않나.
유스텐:언제는 이단이라고 하셨으면서.
릭사엘:이단이지만, 이제는 이곳 사람이지.
유스텐:그게 뭐야... 하하
릭사엘:내 말에 논리적 허점이 있나?
유스텐:이단이랑 이곳 사람이라는 말이 공존하는 게 웃겨서요.
릭사엘:그런가. 그럴지도. 하지만 그 둘을 확실할 구분할 필요는 딱히 없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드는데, 아닌가?
유스텐:그런가. ... 평생 여기서 살아야 하니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릭사엘:그렇지. 그것이 신의 뜻이니.
유스텐:제가 여기 오게 된 것도 신의 뜻일까요?
릭사엘:그렇겠지.
그리고 어쩌면, 난 신의 선택이 틀리진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드는구나.
유스텐:(무릎에 고개를 기댄 채로 당신을 올려다본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릭사엘:그대에겐 자꾸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게 되어서.
유스텐:... 신기하네요.
(고개를 돌려 잔물결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내가 신의 신부로 찍히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릭사엘:세상에 없었겠지.
유스텐:역시 그렇겠죠? 당신과 이렇게 얘기할 일도 없었을 거고.
릭사엘:아직도 죽는 게 나았을 거라고 생각하나?
유스텐:...
(쉽사리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분명 그렇게나 죽고 싶었는데.) ... 여전히 의식은 무섭고 싫어요.
릭사엘:그럴 수 있지. 이단의 가치관과는 많이 상충되니.
유스텐:자기 전에 한번씩 생각해요. 사실은 이 모든 게 꿈이 아닐까. 내가 기나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릭사엘:꿈이면 어떻게 하고 싶지? 깨고 싶나?
유스텐:... 글쎄요.
만약 이 꿈에서 깬다면, 당신은 잊기 힘들 것 같아요.
릭사엘:이 현실이 꿈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고맙겠군.
유스텐:릭사엘도 꿈을 꾸나요?
릭사엘:꾸지.
유스텐:무슨 꿈을 꿔요?
릭사엘:신께서 강림하는 꿈.
유스텐:그건... 별로 좋은 꿈은 아닌 것 같은데.
릭사엘:이제는 익숙해서, 좋고 싫고 할 것이 없다.
유스텐:꿈에서 당신은 주로 뭘 해요? 기도?
릭사엘:그렇지. 그것 말고는 할 것이 없으니.
유스텐:...기억에 남는 꿈 같은 건 없어요? 신이 나오는 거 빼고.
릭사엘:글쎄... 영국에서 살 때의 꿈이 기억에 남긴 하지.
유스텐:그건 좋은 꿈인가요?
릭사엘:좋고 나쁘고 할 것은 없다. 행복하면서도 절망적이었으니. 아마 잃어버린 기억의 파편이겠지.
유스텐:... 정말 야속하네요.
릭사엘:넌 보통 어떤 꿈을 꾸지?
유스텐:꿈을 자주 꾸는 편은 아니지만, 보통은 어릴 때 겪었던 일에 대한 꿈을 꿔요.
릭사엘:어릴 때?
유스텐:응. ... 지금 생각나는 건... 비가 아주아주 많이 오고 있었어요.
부모님이 수업을 참관할 수 있는 날이었고, ... 수업이 끝나고 다들 부모님과 대화를 나눌 때, 나만 혼자 의자에서 엎드려서 자는 척 했어요.
릭사엘:...좋은 꿈은 아니었겠군.
유스텐:... 하필 우산도 없어서, 그대로 비를 맞으면서 갔어요.
지금 와서는 아무렇지 않은데, 한번씩 그 꿈을 꾸게 되네요.
릭사엘:(네 목덜미를 문지르며) 지금은 아무렇지 않아도, 당시엔 많이 슬펐던 모양이지.
유스텐:(슬쩍 네 어깨 위에 기대며) 그럴지도 모르죠...
릭사엘:(젖은 손을 들어 네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네가 편안하게 기대도록 상체를 살짝 낮춘다)
유스텐:릭스는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있어요?
릭사엘:신의 현현과 조우하며 충격으로 대부분을 잊었다.
어릴 때 돌아가신 건 기억이 나지만, 정확한 정황이나 추억은 모르겠군.
부모님께서 내게 직접 승마를 가르쳐주시고, 생일 선물로 말 한 필을 주셨던 기억만 있다.
유스텐:아... 미안해요. 내가 괜한 걸 물어봤네요.
릭사엘:괜찮다. 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 내 기억 같지도 않으니.
유스텐:... 그럼 당신은 신과 마주할 때마다 기억을 잃는 건가요?
릭사엘:그건 아니다. 초반에만 그랬어.
유스텐:다행이네요. 지금은 안 그래서.
릭사엘:잊으면 좋겠다 싶은 기억도 많지만 말이야.
(어깨에 기대고 있는 네 고개를 살짝 들고, 팔을 비틀어 네 허리를 문지른다)
유스텐:(바람빠진 웃음소릴 흘리며) 간지러워요, 릭사엘.
릭사엘:그래도 깨끗이 씻어야지. (네 말은 아랑곳않고 복부를 꼼꼼히 문지른다)
유스텐:혼자 씻을 수 있는데, 당신은 매번 저를 어린아이처럼 대하네요.
릭사엘:어리잖니.
유스텐:안 어려요.
릭사엘:어려.
유스텐:... 그럼 당신 기준에서 어른은 몇 살인데요?
릭사엘:글쎄, 적어도 쉰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유스텐:하하, 너무 늙었잖아요.
릭사엘:중요한 건 유스 네가 어리다는 거지.
유스텐:어려서 싫어요?
릭사엘:아니.
유스텐:(등 뒤로 상체를 푹 기대며) 그럼 다행이고요.
릭사엘:(네 복부를 말끔히 문지르고는 아래로 손을 뻗어 허벅지 사이를 씻긴다)
유스텐:...리, 릭사엘, 아무리 그래도 여긴... (네 손목을 잡고 허벅지를 버둥거린다)
릭사엘:왜 그러지?
또 부끄럽다는 건가?
유스텐:네.
릭사엘:내 신부는 부끄러울 일도 많군.
유스텐:당신은 너무 아무렇지 않고요.
릭사엘:내 것을 내가 씻기는데 부끄러워야 하나?
유스텐:? 내가 당신 거예요?
릭사엘:(아무런 고민도 없이) 내 것이지.
유스텐:마치 당신은 내 거라는 것마냥 말하네요.
릭사엘:그럼 아닌가?
유스텐:당신이 아니라고 할 것 같았거든요.
형식상의 부부니까.
릭사엘:나를 정말 기계로만 여기는군, 너는.
유스텐:... 사랑해서 부부가 된 게 아닌 건 맞잖아요.
릭사엘:부부가 되는 것에 사랑이 꼭 필요한가? 부부가 된 후에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흔한데.
유스텐: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내가 꿈꾸는 삶에서의 부부는 사랑이 필요해요.
릭사엘:그럼 내가 사랑을 주기를 기대하나?
유스텐:...
어차피 절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그런 질문을 하시네요.
릭사엘: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실례인 건가?
유스텐: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당신은 누군가한테 사랑이란 감정을 줄 수 있나요?
릭사엘:글쎄, 그대가 정의하는 사랑이란 감정이 뭔지에 따라 다르겠지.
유스텐:(그저 말없이 미소짓다가 고개를 젓는다) ... 방금 말은 잊어버려요.
릭사엘:네가 원한다면 그리 하겠다.
유스텐:... 꽤 오래 씻은 것 같은데 슬슬 나갈까요?
릭사엘:그래. 그 편이 좋겠구나.
릭사엘은 천천히 당신의 몸을 탕 안에서 일으킵니다.
몸 표면을 타고 흐른 물줄기가 탕 안으로 톡, 톡 떨어집니다.
당신이 탕 밖으로 나오자 릭사엘이 익숙하게
가운과 수건을 들고 옵니다.
릭사엘:(수건으로 네 몸을 닦아주고 머리의 물기도 털어 말려준다)
유스텐:혼자 할 수 있다니까...
릭사엘:(수건으로 네 젖은 머리카락을 꾹꾹 짜주며) 싫다고는 안 하면서.
유스텐:... (할말이 없어져서 입을 다물다가) 저도 말려줄게요.
릭사엘:네가? (눈을 깜빡이며 고민하다가 이내 네게 마른 수건 하나를 건네준다)
유스텐:매번 받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마른 수건을 받아들어 네 길게 뻗은 머리카락부터 부드럽게 꾹꾹 눌러준다)
릭사엘:(너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어색해 손을 들었다가, 그대로 다시 내려놓는다) 난 그대가 나를 오래도록 미워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유스텐:(머리카락 끝을 수건으로 비비다가 네 두피쪽을 마사지하듯 눌러준다) 그러게요. 누가 자꾸 미워하지도 못하게 하네.
릭사엘:나한텐 좋은 일이군.
유스텐:차라리 대놓고 나쁜 사람이었으면 좋았을텐데.
릭사엘:그러면 그대 삶이 가혹했겠지.
유스텐:그래도 마음 편히 미워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주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릭사엘:넌 참 이상한 사람이군.
유스텐:뭐가요?
릭사엘:잘해줘도 뭐라고 하는 것이.
유스텐:(피식) 당신도 만만치 않게 이상한 사람이에요.
릭사엘:너만 할까.
유스텐:그거 무슨 뜻이에요?
릭사엘:내 신부가 아주 이상한 사람이라는 뜻이지.
유스텐:그러는 제 남편은 아주아주 이상한 사람이고요.
릭사엘:...처음이군. 네가 날 남편으로 지칭한 건.
유스텐:(무의식중에 튀어나온 말임을 깨닫고 머리를 말려주던 손이 잠깐 멈칫한다) ... 별론가요.
릭사엘:아니. 좋다.
유스텐:매번 내킬대로, 마음대로 하라고 하시던 분이 처음으로 좋다고 하네요.
릭사엘:안 좋을 이유가 있나?
유스텐:음, 난 오히려 당신이 좋아하는 이유를 모르겠는걸요.
사랑하는 사람이 불러준 것도 아닌데.
릭사엘:별걸 다 복잡하게 생각하는구나. 좋다고 해도 뭐라고 하니.
유스텐:...그러게요.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지네.
릭사엘:(뒤돌아 수건으로 네 머리를 마저 말려주고, 네 몸에 보송한 가운을 끼워입힌다) 그만 가지.
유스텐:그래요.
릭사엘은 당신의 가운끈을 단단히 매어주고는
자연스럽게 손을 잡습니다.
하루 일과가 마무리되어갑니다.
.
.
.
당신은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릭사엘의 방 문을
기분좋게 열어젖힙니다.
아직도 입에서 살살 녹아내리던 비프 웰링턴의 식감이
남아 있는 듯합니다.
릭사엘이 당신의 어색한 나이프질 대신
대신 고기를 썰어준 일이나
당신이 비프 웰링턴을 탐미하는 사이
그가 샐러드와 빵만 먹었다는 사실은
그렇게 큰일이 아닐 겁니다.
릭사엘:(너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서 가만히 네 얼굴을 내려다보며) 오늘 밤도 여기서 잘 생각인가?
유스텐:(슬쩍 눈치를 보며) ... 안되나요?
릭사엘:안 될 것 없지.
유스텐:의외로 불편해하지 않네요.
릭사엘:내가 불편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나?
유스텐:네. 여긴 당신의 공간이니까요.
혼자 자는 게 좋을 수도 있고...
릭사엘:배우자에게 그걸 따져서 무엇해.
유스텐:(픽 - 하고 웃으며) 아까는 부부간에 사랑이 꼭 필요하냐느니,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흔하다고 하던 사람의 말이라곤 믿기 힘드네요.
릭사엘:그런가. 별로 상반되는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유스텐: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배우자라면, 사실상 타인이나 다름없으니까요.
릭사엘:이래서 연애 결혼의 시대란.
유스텐:하하, 늙은이 같은 말을 하네요.
릭사엘:그대에겐 늙은이가 맞겠지.
유스텐:... 내 꿈이 생각보다 소박하다고 했죠.
그런 것조차도 가져보지 못 했거든요, 나는.
사랑을 주는 법도, 사랑을 받는 법도 배운 적이 없어요.
그래서 음... (머뭇거린다)
말하기 좀 부끄러운데.
릭사엘:말해 봐라.
유스텐:내가 아는 사랑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것들이라서... 사실 그런 것들이 연출되고 과장된 부분이 많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런 낭만적인 사랑을 하고 싶었어요.
릭사엘:...그럴 수 있지. 그게 잘못된 일은 아닐 거다.
유스텐:(민망함에 밑입술을 머금다가) 좀 창피하네요, 어디서 이런 얘기 해본 적 없는데.
너무 비현실적인 꿈 같나요?
릭사엘:아니. 세상엔 분명 그런 영화 같은 관계도 있겠지.
꿈을 꾸는 게 잘못된 것도 아니고.
유스텐:...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릭사엘:(천천히 너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부드럽게 덮어준다) 침대 온도는 알맞나?
유스텐:좀 추운 것 같은데, (힐끔 쳐다본다)
릭사엘:그래? (천천히 이불 안을 더듬어보고는) 몸이 안 좋은가.
유스텐:... 같이 눕고 싶다고 하면, 거절할 거예요?
릭사엘:(네 말에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네 몸이 뉘여진 침대 옆에 몸을 눕힌다. 그리고 네 가슴 위를 가만히 토닥인다)
유스텐:(어리광부리듯 네 품에 파고들어가 네 체향을 한껏 들이킨다.)
릭사엘:...어리광이 많아졌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싫지는 않은 듯, 네 등으로 손을 뻗어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린다)
유스텐:(네 체향에 온몸의 긴장감이 풀리고, 자연스레 눈이 감긴다.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중얼거린다 ) 고마워요, 릭사엘.
릭사엘:(가만히 네 정수리에 입을 맞추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어서 자. 유스텐.
유스텐:(점점 졸음이 밀려오는지 웅얼거리듯 대답한다) 응... 릭스도 잘 자요. (이내 색색 거리며 잠에 들기 시작한다)
당신은 곧 달콤한 잠에 빠져듭니다.
릭사엘의 품에서 나는 시원한 풀 향기가
보드랍게 몸을 감싸안습니다.
창밖으로 투둑, 툭, 옅게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납니다.
당신은 비 오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꿈 없이 깊은 잠을 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