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메리 크리스마스

  

 




41

메리 크리스마스


쿨쿨...
모닥불 피어오르는 소리가 잔잔하게 피어오릅니다.
타닥거리며 불꽃이 장작을 쪼개는 소리,
창밖에 몸을 비비는 눈송이의 소리,
당신의 몸을 부드럽게 뒤에서 끌어안고 잠든
릭사엘의 숨소리가 한데 섞여
침실에 차분한 고요함을 채우고 있네요.
볼록 올라온 배 아래에서는 아이들도 잠을 자는지
아주 얌전하게 늘어져 있습니다.
아주 평화로운 크리스마스입니다.
신전 내부에서 간혹 들리던 발걸음 소리도,
멀리서 울려퍼지던 소란도 없는
단 둘만의 크리스마스.
릭사엘:(부스스 먼저 잠에서 깨어나, 네 부드러운 가슴팍과 볼록 올라온 배를 부드럽게 쓸며 귓가에 뽀뽀하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볍게 씻고, 아침 준비하고... 새벽에 사제들이 날랐을 짐도 정리하고. 바쁘게 움직여야지)
유스텐:(쿨...) 흠냐...
(늘어지게 자다가 갑자기 저를 감싸던 온기가 떨어져 나가자 숨을 턱 멈춘다) ...우으...?
릭사엘:(네가 깰 기미를 보이자, 슬쩍 다가가 부드럽게 어깨를 품에 안는다. 그리고는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며) 쉿, 조금 더 자자 여보. 금방 다녀올게. 사랑해.
유스텐:(눈도 제대로 못 뜨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우응... 어디 가요...?
나도 같이 갈래...
릭사엘:아니야, 우리 여보 많이 졸려 보이는데. 짐 정리하고 아침 준비만 한 뒤에 바로 올게. (사랑스러워... 쪽쪽거리며 네 이마를 다정하게 쓸어넘겨준다) 100까지만 숫자 세고 있어, 내 사랑. 알겠지?
유스텐:100...?
너무 큰데...
릭사엘:(피식 웃으며) 그래? 그럼 50.
유스텐:(크게 끄덕끄덕) 응... 알았어요...
1...
2...
...
(움찔) ...3...
릭사엘:(네가 숫자를 세는 걸 바라보다가, 입술에 살며시 뽀뽀를 하고 방을 나선다)
유스텐:(기분 좋게 입꼬리를 끌어당기다가) ...
'몇까지 셌더라...'
...
5...?
기분 좋은 입맞춤의 여운 속에서 느릿하게 숫자를 헤아리는 동안,
방 안에는 다시금 아늑한 침묵이 내려앉습니다.
잠결에 더듬거리며 내뱉는 목소리는 갈수록 작아지고,
단어와 단어 사이의 공백은 눈송이가 쌓이듯 한없이 길어집니다.
당신은 결국 50까지 다 세지 못한 채,
다시 한 번 깊고 달콤한 꿈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신전의 소란스러움도, 교주로서의 무게도 내려놓은 릭사엘이
오직 당신만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부드러운 발소리가
문 너머로 아스라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창밖에는 밤새 내린 눈이 하얗게 쌓여 가고,
벽난로의 장작은 여전히 타닥거리며 방안을 데우고 있습니다.
릭사엘이 약속한 '50까지 숫자를 세면 오겠다는 시간'은
당신에게 그저 찰나의 달콤한 아침잠으로 흘러갈 뿐입니다.
그렇게 얼마나 쿨쿨 곤히 자고 있었을까요,
배에서 아이들이 툭툭 차는 감각에 당신의 눈은
조용히 뜨입니다.
지금 시간이 몇 시죠?
슬쩍 일어나 시계를 살펴보면,
벌써 오전 10시가 다 되어갑니다.
어제 너무 피곤했었던가요?
유스텐:(눈을 크게 뜨며) 언제 시간이 이렇게...!
(침대에서 한 발씩 다리를 빼고 천천히 일어나 거실로 향한다) 릭스...?
조심스럽게 거실로 내려가보면,
거실에는 아무도 없고 부엌 쪽에서
고소한 빵 냄새와 따뜻한 수프 향이
아주 미세하게 풍겨옵니다.
반짝거리는 장식들을 매단 전나무 크리스마스 트리가
상냥하게 당신만을 반기고 있네요.
유스텐:
듣기
기준치:60/30/12
굴림:64
판정결과:실패
릭사엘은 어디로 간 거지?
유스텐:'식사 준비를 하는 중인가? 아직도?' (주방으로 향한다)
당신이 주방쪽으로 다가가 기웃기웃거리며 살펴보면
부엌에는 따뜻한 김이 오르는 수프 든 냄비 솥과 살짝 식어가는 빵이 보이고
릭사엘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 어라...?
릭사엘이 정말 어디로 간 거죠?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금 안절부절하고 있으면,
창문 너머 저택 뒤편에서 희미하지만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옵니다.
맑고 차가운 겨울 공기를 가르며
둔탁하게 장작이 쪼개지는 소리가 이어집니다.
부엌 옆 뒷문으로 향하는 창문을 살짝 닦아내고 밖을 내다보면,
밤새 소복하게 내린 하얀 눈밭 위에서
홀로 도끼를 든 채 땀을 흘리고 있는 릭사엘이 보입니다.
당신이 곤히 잠든 사이에 장작을 다 팰 심산이었던지
이미 다 패고 남은 장작이 옆에 산더미같이 쌓여 있네요.
활동 때문에 더운 것인지 겉옷을 다 벗어 옆에 두고
가볍게 면으로 된 상의 한 장만 걸친 상체에서 흐르는 땀이
어쩐지... 아주 묘하게 느껴집니다.
유스텐:(깜짝 놀라서 잠옷 차림에 외투만 급하게 걸치고 나간다) 릭스!
릭사엘:(열심히 장작을 패다가, 땀을 닦으며 너를 돌아본다) 어, 여보. 벌써 일어났어? 더 자지.
유스텐:'교주님이... 이런 잡일을 한다고?' (눈은 즐겁지만 이런 걸 시켜도 되나 싶은 생각에 눈을 크게 깜빡인다) ...
릭사엘:? 왜 그런 표정이야. 많이 추워? (슬며시 다가가, 네 대충 걸친 외투 자락을 꼼꼼히 여며준다)
유스텐:왜 갑자기 장작을 패는 거예요??
릭사엘:아, 장작 비축분이 일주일 치는 못 될 것 같기에. 그대 자는 사이에 충분히 해두려고 했지.
유스텐:그래도...! (안절부절) 사제분들께 부탁하지 않고 왜 직접 하는 거예요?
릭사엘:사제들은 짐만 옮겨두고 이미 새벽에 다 떠난지라.
말했잖아,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은 우리 둘만 있을 거라고.
(슬쩍 다 패고 남은 장작을 바라보며) 장작 양은 충분할 것 같으니, 이만 들어갈까. 그대 아침 먹여야지. (네가 혹여 추울까봐 부드럽게 몸을 감싸고, 제 외투를 챙겨든다)
유스텐:... (꿀꺽) '원래도 몸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모습도 신선해서 눈을 못 떼겠네...'
(도리도리도리) '남편을 대체 무슨 눈으로 보는 거야? 그저 순수하게 일하는 건데.'
릭사엘:(갑자기 조용해지더니 고개를 좌우로 도리도리 돌리는 너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그리 해, 내 사랑?
유스텐:(눈치...) 아무것도...
릭사엘:정말? 분명 무슨 생각을 한 것 같다만. 얘기를 안 하는 걸 보니, 또 성적인 내용이야?
유스텐:"또"라니...!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무슨 허구언 날 성적인 내용만 떠올리는 사람 같잖아요!
릭사엘:아니야? 난 그대가 혈기왕성한 게 무척 귀엽고 좋은데.
유스텐:...
(툴툴거리며 고개를 돌린다) 남편이 야하게 생겼는데 그럼 어떡해요?
나도 원래 그런 밝히는 사람이 아니란 말예요.
릭사엘:알아, 그래서 더 좋지. 내 사랑이 내게만 그런 생각을 품어준다는데. (옆으로 돌아간 네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이 귀여워, 턱끝에 살며시 뽀뽀한다)
유스텐:(꿍시렁) ...왜 장작 패는 것까지 야해가지고...
옷을 더 껴입었어야죠!
릭사엘:(...?) 내가 사과해야 하는 부분이야?
유스텐:(끄덕!) 그것 때문에 내가 야한 생각을 한 거니까!
릭사엘:(작게 피식피식 웃으며) 마음에는 들었나 보네. 야한 생각까지 하고.
유스텐:(스스로 팔짱을 끼며) 교주복이 펑퍼짐한 옷이라 다행이지...
교단 내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면 분명 나만 불경한 생각을 하지 않을 거라구요.
릭사엘:그래서 이젠 그대만 보잖아. (귀여워 죽겠군... 쪽쪽)
아침 식사가 늦었으니 들어가서 식사 들자. 우리 애들은 밥 때가 늦으면 배고프다고 성화라며.
유스텐:...아까도 발로 계속 차서 깼어요.
새삼 둘만 있다는 게 실감이 나요.
교주님이 이런 잡일을 남 안 시키고 혼자서 하는 걸 보게 될 줄은...
릭사엘:가끔은 새삼스러운 것도 좋지. 그대와 함께면 난 뭐든 좋은걸.
그리고, 전에 얘기하기를 내가 땀 흘리는 게 궁금하다지 않았어?
유스텐:응, 그랬었죠.
... 옷 한 장만 걸친 건데 왜 이렇게 민망해지는 건지.
릭사엘:아직도? 늘 같이 씻고 같이 옷을 입고, (네 배를 슬쩍 어루만지며) 애들도 곧 태어날 텐데.
유스텐:그러는 당신도 맨날 나보고 야하다고 그러잖아요.
애들도 있는데.
릭사엘:(피식) 이런, 역공을 당했네.
유스텐:그러니까- 나나 당신이나 똑같은 거죠.
릭사엘:어쩌겠어, 천생연분인 거지.
유스텐:...
(슬쩍) 안아봐도 돼요?
릭사엘:물론. (쓰담쓰담)
유스텐:(사심 가득하게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는다)
릭사엘:(사랑스럽긴...)
유스텐:(부비적) 하아... 자꾸 외적인 부분만 떠들면 안되는데...
이러면 남들이랑 다를 게 없잖아요...
당신이 잊어버렸으니까 다시 하는 말이지만, 난 당신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던 건 아니거든요?!
릭사엘:그 얘기는 해줬었지, 기억해.
(귀여워라... 쓰담쓰담) 일주일도 못 가서 사랑했다며.
유스텐:그건...
당신이 다정해서...
얼굴이 아니라!
릭사엘:알지, 그만 얘기해도 돼. (여전히 피식피식 웃으며) 이젠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좋아하는 거 알아.
유스텐:그래도 가끔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는 해요.
당신 외적인 부분 때문에 모든 걸 좋게 보려고 했던 건 아닌지...
으음- 당분간 눈을 감고 있어야 하나?
그냥... 당신이 섭섭할까봐 걱정돼서 그래요.
내가 하는 말은 전부 당신도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남들에게 질리도록 들었던 말이기도 하고...
릭사엘:그대가 말해주는 건 다 새로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대니까. (쪽)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나도 어느 정도는 마찬가지 아닌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예쁜 신부를 뒀는데.
유스텐:(민망해서 눈을 반으로 좁힌다) ... 그 말은 여전히 인정 못 하겠어요.
평범한 20대 성인 남자가 어디가 예쁘다는 건지...
릭사엘: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다.
유스텐:밖에 나가면 진짜로 예쁘고 귀여운 연예인들이 가득한데.
릭사엘:내 취향은 그대래도.
유스텐:당신은 바깥에서 잠깐 활동할 때도 유명한 사람을 많이 만났었다 했잖아요.
정말 혹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릭사엘:없었어.
그러니까 더욱 기적인 거지, 그대가 내게 와준 게. (쪽)
사랑 같은 것도 모르고, 관심도 없었던 내게, 그대가 소중한 존재가 되어줬잖아.
유스텐:(눈을 데구르르 굴리며) 나는... 특별히 뭘 한 적이 없는데...
처음엔 화만 잔뜩 내고, 완전 악만 썼는데도요?
당신이 기억을 잃었을 때도 그렇고.
릭사엘:흠, 그대라면 화내고 악쓰는 모습도 사랑스러웠을 텐데 그런 게 소용이 있나?
유스텐:... 당신 사실은 화내는 사람이 취향이었던 건?!
당신 얼굴에 대고 화내는 사람은 딱히 없었을 거잖아요.
릭사엘:그건 그렇지. (순순히 인정한다)
그래도 화내는 사람이 취향, 인 건 아닐 거야. 오히려 난 그대가 귀엽게 구는 게 훨씬 좋아서.
지금처럼. (네 조금 까치집된 머리카락을 곱게 쓸어내리며 정돈해준다)
유스텐:이상하네... 처음부터 귀엽진 않았는데 어떻게 좋아한 거지?
아니, 아직 내가 귀엽다는 생각도 안 들어요.
릭사엘:그럴 수가, 말도 안 돼.
내 사랑은 앞으로 자기객관화 능력을 키우는 게 좋겠어.
유스텐:당신이 할 ㅁ...
'아니지, 이 사람은 진짜로 자기가 잘난 건 알잖아.' ...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난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릭사엘:하지만 온몸이 귀여움 덩어리인 건 모르고 있잖아.
유스텐:그럼 당신은 본인이 온몸이 잘생김 덩어리인 걸 알고 있어요?
릭사엘:알지, 잘생긴 건. (순순히 대답함)
이 정도는 되어야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신부의 짝이 된다는 것도 알고.
유스텐:... '어디까지 하나 보자.' 그럼 자기 어필을 해봐요.
릭사엘:알았어, 안에 들어가서. (밖이 슬슬 추워지기 시작하는 듯해, 결국은 너를 품에 가지런히 안아든다)
릭사엘은 당신을 품에 단단히 안아 들고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등진 채 저택 안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문이 닫히고 벽난로의 온기가 온몸을 감싸자,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낮게 숨을 내쉬네요.
그는 당신을 식탁 의자에 조심스레 내려놓고도
이불을 덮어주듯 겉옷을 매만져 주고는,
일단 아침 식사를 먹여야겠는지 가스레인지에 불부터 올립니다.
릭사엘:(수프가 든 냄비를 국자로 가볍게 휘저으며) 그나저나, 오늘은 뭘할 건지 생각해봤어, 여보?
유스텐:(고개를 저으며) 아직요.
아! 우리 선물 교환!
내 선물을 아직 안 받았잖아요!
릭사엘:...음? 선물이 있었어?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유스텐:당연하죠! 당신한테 있어서 처음으로 제대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인데!
릭사엘:(선물... 정말로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네가 신경써줬다는 게 가슴 뭉클해서 작게 웃는다) ...고마워, 내 사랑. 새삼스럽지만, 난 참 결혼을 잘했단 말이지. (따뜻하게 데워진 수프를 그릇에 옮겨 담고, 부드러운 밀빵도 바구니에 옮겨담아 식탁으로 건너온다)
(식탁에 가볍게 상을 차리고는, 잼과 버터가 든 그릇도 올려놓으며 맞은 편에 앉는다) 아침을 서둘러 먹어야겠어. 그대가 준 선물이 궁금해졌거든.
유스텐:하하, 너무 급하게 먹진 말아요. 선물이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
아침부터 엄청 많이 차렸네요?
릭사엘:(살짝 머쓱해하며) 가볍게만 차렸어. 음, 조금 부족한가? 점심은 더 신경써서 차려줄게. 먹고 싶은 거 있어, 내 사랑?
유스텐:부족하긴요~ 이 정도면 만찬인데!
점심은- (씩 웃으며) 저번에 만들어준 스튜 또 먹고 싶다고 하면 만들어 줄 거예요?
릭사엘:(피식) 과거에 여행갔을 때 먹은 스튜가 아주 맛있었나 보네. 좋아, 그걸로 만들어줄게.
유스텐:신난다- 얼른 점심 시간이 왔으면 좋겠어요.
일단 이것부터 먹고! (빵에다 잼을 발라 냠냠 먹는다)
릭사엘:(귀여워라...) 천천히 먹어. 아, 마실 것도 줄까. 우유랑 주스가 있던데.
어떤 게 좋아, 여보?
유스텐:무슨 주스가 있어요?
릭사엘:사과, 청포도, 레몬, 구아바. 이렇게 있더라고.
유스텐:첫 끼니까- 사과 주스 마시고 싶어요.
릭사엘:알았어, 잠시만. (몸을 일으키다 말고 네 말랑한 뺨에 뽀뽀하고는, 금세 일어나 냉장고에서 사과주스를 꺼내 유리잔에 담아온다)
(네게 사과주스를 건네주며, 눈이 내리는 창밖을 슬쩍 내다보며) 식사 마치고 크리스마스 선물 열어본 뒤에, 밖에 잠시 나가겠어? 산책도 좋고 눈사람을 만들어도 좋고.
성역에서는 못하는 것들이 많으니, 이것저것 하고 싶어. 그대와.
유스텐:(맑게 웃으며) 눈사람! 너무 좋아요.
도시에선 눈이 금방 더러워지고 녹아버려서 만들 기회가 없었거든요...
여긴 외진 곳이니까 눈도 깨끗해서 만들기 좋을 것 같아요.
릭사엘:귀엽긴) 아무래도. 내가 영국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랑 풍경이 똑같을 정도로 시골이니, 환경 공해는 없다시피 하지.
좋아, 눈사람은 몇 개?
유스텐:응? 몇 개라니.
한 개 만드는 거 아니었어요?
릭사엘:한 개만? 그래도 되고.
난 두 개나 네 개도 괜찮을 것 같았던지라.
유스텐:그럼 엄청나게 힘이 많이 들텐데...
눈사람 어떻게 만드는 건지 알죠...?
커다란 머리를 위에 올려야 한다구요.
릭사엘:(피식) 알지. 나 원래 지방 사람이잖아.
전부 다 크게 말고, 가족처럼 옹기종기 세워둘까 싶었어.
유스텐:아! 그거 좋겠네요.
귀엽겠다...
(팔을 괴며 싱글벙글 웃는다) 근데 당신, 이 일주일 간의 휴일을 되게 기대하고 있었나 봐요?
성역에서 못하는 게 많으니 이것저것 하고 싶다고 하는 걸 보면.
릭사엘:(작게 웃음을 흘리며) 당연하지. 그대와 단 둘이 오붓하게 붙어만 있는 경험이 흔치 않잖아.
신전에서의 삶도 안락해 좋지만, 주변 보는 눈이 따라붙어 품위를 따지기도 해야 하고.
유스텐:하아- 매력적인 교주님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네요.
나도 나중엔 당신 따라서 품위를 유지해야되는 거겠죠?
난 귀여운 남편 릭사엘이 더 좋은데...
릭사엘:(피식피식) 그대 앞에선 언제든 남편 노릇을 하잖아. 그래도 아쉬워?
유스텐:(끄덕) 아이들 낳고 슬슬 방 밖에서 활동하게 되면, 당신이 품위 유지를 하는 모습밖에 못 볼테니까요.
릭사엘:흠... 그러려나. 난 노력을 해도 그대를 보면 지금처럼 계속 웃음이 날 것 같은데.
유스텐:그래요? 음..
(제법 진지한 얼굴로) 그럼 내가 방 밖으로 나가면 당신이 곤란해지는 거 아니에요?
교주님이 쌓아 올린 멋지고 근엄하고 군주적인 품위가...!
나 때문에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릭사엘:(귀엽긴... 걱정꾸러기라니까) 애들 유모차에 끌고 나갈 때부턴 필연적으로 무너질 거라고 예상 중이었는데.
유스텐:아. 그러네요...
(상상중) 결혼도 안 했을 것 같이 생긴 교주님이 유모차를 쌍으로 몰고 다닌다고 상상하니까...
(눈이 감길 정도로 찡그리고 웃는다) 귀엽고 웃겨 죽겠어요!
릭사엘:그대랑 손도 잡고 애들이랑 산책 나가고 싶었는데, 이것 참. 나만 기대한 거야?
(엄청 환하게 웃네, 사랑스러워라)
유스텐:물론 나도 기대하고 있었죠!
나야말로 당신이 곤란할까봐 티를 안 냈던 거라구요. (으쓱)
릭사엘:다행이네. 난 애들 데리고 호수도 산책하고, 피크닉도 나가고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싶었던지라.
유스텐:당신은 항상 바쁜데 시간 낼 수 있어요?
...생각해 보면, 교단은 엄청 큰데 신전 내부에서 활동하는 사제 분들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보통은 회장님이 이렇게까지 바쁘진 않단 말예요.
...당신은 회장님이 아니라 교주님이지만.
어쨌든요!
릭사엘:전에도 말했지만, 신전엔 인력난이 항상 있었어. 나는 설문조사를 따로 시행시키지 않았지만, 인력이 워낙 부족한 환경이다보니 개인당 업무과중치가 있으리라 예측되어서가 아니겠냐는 얘기는 들었지.
게다가 보통 교주라는 위치에 있어도 신전 업무를 맡지, 공동체 업무까지 맡아보는 경우는 드무니까.
유스텐:(삐죽) 솔직히 걱정돼요...
평생 놀고 먹을 수 있는 재산도, 물질적인 소장품도 다 가졌는데도 그걸 즐길 만큼의 여유도 없잖아요.
전에는 나만 재우고 몰래 나와서 야근까지 하고... (꿍시렁)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인 건 알지만 사제가 되는 방법의 장벽이 너무 큰 것 같아요.
자원하는 사람도 부족한 거예요?
릭사엘:우리 교단의 신도들은 대부분 광신도인지라 신께 봉사하고 싶어하는 이는 많지만, 내가 선정을 까다롭게 하지.
우리 교단은 역사적으로 핍박받거나 전쟁을 치른 사례가 많아서, 내가 아무나 신전에 사제로 들이지 않아.
사제 선출 과정은 크게 2차로 이루어지는데, 1차는 자원자들 중 내 꿈에 등장해서 '혀'를 부여받을 것, 2차는 3년 간 주술적 침묵 수행과 혀의 맹세를 통과할 것. 이렇게 통과 의례가 정해져 있지. 보통은 침묵 수행에서 많이들 떨어지곤 해.
유스텐:(눈을 좁히며) 으으... 너무 빡세잖아요...
왜 3년이에요?
꿈에 나오는 것까지도 엄청 어려울 것 같은데!
난 수다스러운 편은 아니지만 하루라도 말을 못하게 된다면 너무 답답할 것 같아요.
릭사엘:음... 너무 빡센가?
(정상 인간들과 시간 개념이 조금 다름)
유스텐:오늘부터 3년 동안 말하지 말라고 하면 할 수 있어요?!
나한테도 말하면 안돼요.
릭사엘:...그건, 어렵겠는데.
그대에겐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은걸.
유스텐:그치만 사제 조건이 그거니까 교주님도 공평하게 겪어봐야죠.
'진짜로 3년 동안 말 못하게 할 생각은 없지만.'
릭사엘:난 예배와 세례와 의식을 집전해야 하니, 애초에 무리잖아.
견습 사제들은 사제들이 시키는 업무만 묵묵히 하면 될 일이고.
유스텐:그래도... '맞는 말이라 반박을 못하겠다.'
그럼 내가 대신 견습 사제 체험할래요!
릭사엘:...굳이 체험까지? (아리송...)
유스텐:불쌍한(?) 견습 사제분들을 위해서 나라도 직접 체험해야죠!
릭사엘:그럼 그대와 나의 일주일 휴가는...?
유스텐:...
이, 일주일 뒤에!
시작할 거예요!
릭사엘:일주일 뒤에 신전으로 돌아가면, 견습 사제들 면접 보기로 했잖아 여보.
유스텐:...
그, 그러면!
언제 하지...?
(삐질...)
어쨌든 너무 길어요 3년은!
릭사엘:으음... 그렇구나.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
그럼 그대에겐 다른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
신전을 향한 충성심을 확인할 다른 방법.
유스텐:음... 충성심이라...
아니면 차라리... 지정된 곳에서 공부를 하며 묵언수행 기간을 조금만 줄이는 건요?
당장은 좋은 해결법은 안 떠올라요...
그치만 인력난이 너무 심한 건 맞으니까 어느 정도 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기존 사제분들의 의견을 물어보는 건 어때요?
릭사엘:기존 사제들은 이 사실을 달가워하진 않을 거야.
유스텐:그렇죠. 그분들은 정당하게 그 규칙을 지키며 들어왔는데, 갑자기 조건이 완화되면 싫어할테니까...
릭사엘:그 고생을 하고 신전에 들어왔는데, 신규들에게 편의를 봐주자는 뜻으로 보여질 테니.
유스텐:으음....
그래도 사제분들은 인간이잖아요...
릭사엘:아니면, 수습 사제들에게 선택지를 늘려주는 방법도 나쁘지 않지.
유스텐:예를 들면요?
릭사엘:3년 간 침묵 수행을 하는 대신 지금처럼 외출을 막지 않는다, 2년의 수행을 하는 대신 외출을 제한한다.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식으로.
유스텐:아, 좋네요.
음... 근데 지금의 사제 분들이 납득할까요?
원래 있던 규칙을 바꾸는 건 꽤 까다로운 일인 것 같아요...
릭사엘:아무래도. 그래도 그대가 말했던 연차 시스템 구축을 위해 방안을 모색 중이니, 이 정도면 반발이 크진 않을 거야.
유스텐:군주 어렵다... (축 늘어짐)
난 학교에서도 회장 같은 건 해 볼 생각도 안 했었거든요.
릭사엘:여기선 지도자니까 적응 해야지. (축 늘어진 네가 귀여워, 가까이 다가가 보듬어 안는다)
그대 덕분에 나도 많은 고민을 하게 됐으니, 그대 공이 커. 도와줘서 고마워, 내 사랑.
유스텐:정말요? 내가 도움이 됐어요?
릭사엘:물론이지.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된 그대의 견해는 신선한 게 많아. 덕분에 시야가 트였지.
(쓰담쓰담)
유스텐:다행이다...
줄곧 신경 쓰였거든요.
남들은 성역 근처에 닿기도 어려운데, 나는 그저 신이 선택했다고 당신 옆에 있으니까요.
실질적으로 뭔가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의식...도...
릭사엘:신께서 선택한 게 더 대단하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의식은, 괜찮아. 그대에게 원래 약속했던 것도 일주일이었고.
(잠시 조용해졌다가) 그렇게 마음 불편해할 것 없어. 나도 그대가 날 대신하는 건 원치 않으니까.
유스텐:(고개를 숙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그치만... 교주님이 인정한다고 해도 누군가는 부당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밖에서 내가 그동안 했던 일들이 여기 성역에선 딱히 쓸모가 없더라고요...
릭사엘:환경이 달라서 그래. 그대는 열심히 살던 사람이니, 적응 마치고 새로이 할 것을 찾으면 뭐든 할 수 있어.
유스텐:계산이 능한 것도 아니고 당신처럼 특출난 능력이 있지도 않은데 신부의 품위를 유지하면서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릭사엘:(잠시 고민해보며) 그대는 미적 감각이 좋으니 신전에서 여는 의례 행사나 조경 환경 조성을 도와줘도 되고, 전에 이야기했던 디자인 공부를 한다면 포스터 같은 업무도 맡길 수 있지 않을까 해. 목소리도 어여쁘니, 아니면 성가대를 맡겨도 괜찮을 테고. 상대적으로 교인들이 그대를 친근하게 여기니, 이전에 부탁했던 시찰 업무를 해도 좋겠지.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야, 그대라면.
물론, 그러기 전에 신변 안전을 위해 주술을 공부해둘 것을 부탁하고 싶지만.
유스텐:(눈을 크게 뜨며)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렇게나 많다고요?
난 딱히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성가대라니... (민망해서 입술을 움찔거린다)
(급하게 두 손을 휘저으며) 하기 싫다는 건 아니에요!
그냥... 나보다 당신이 내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것 같아서... 뭐라고 해야 좋을지...
릭사엘:거 봐, 내 사랑은 자기객관화에 둔하다니까. (네 말랑하고 보송보송한 뺨을 양손으로 붙잡고 부드럽게 조물거린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걸로 보여?
유스텐:(도리도리...)
음... 내가 정말 그 정도로 잘 할 수 있을까요?
릭사엘:못 하면,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우리에겐 시간이 많잖아. 다시 해볼 기회도.
내가 아는 그대는 포기라는 단어를 쉽게 입에 담는 사람이 아니니, 결국은 누구보다 잘하게 될 거야.
유스텐:응... 고마워요.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리며) 저, 몸을 회복하고 나면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
릭사엘:(사랑스러워... 웃음이 절로 입가를 비집고 나온다) 정말? 대단해 여보. 나도 응원할게.
유스텐:(끄덕!) 꼭 사제분들께 인정받을 거예요!
릭사엘:(네 귀여운 몸을 껴안고 부둥부둥해주며) 이미 인정은 받고 있는데, 여기서 더 인정 받으려면 정말 열심히 해야겠는걸?
유스텐:(무슨 소린지 못 알아들음) 당신한테만 인정 받은 건 반만 인정받은 거라구요...
릭사엘:그거 말고. 사제들이 이미 그대를 잘 따르잖아.
유스텐:어...?
그거야 당신 옆이니까 그런 거 아니었어요?
당신이 지시하기도 했고.
릭사엘:최근에 엘람도 내 보좌에서 쏙 빼가고, 추수감사절 때에는 예레미야를 방방 뛰게 만들었으면서?
유스텐:ㄱ, 그거는... 다 사정이 있어서...
예레미야 씨도 그냥 저희가 직접 준비한 선물을 받아서 감동한 거 아니었어요?
릭사엘:그 뒤로 사방팔방으로 '성배께서 나를 특별히 아끼신다'며 자랑을 하고 다녀서, 내가 입단속을 좀 시켰더랬지.
유스텐:네???
그걸 말하고 다녔다고요?
으으... 차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지...
릭사엘:식탁에 음식 두고 나갈 때부터 방방 뛰며 나갔잖아. (피식피식)
엘람과 샤를롯은 내게서 칠면조 장식을 받아놓고, 예레미야를 못내 부러운 눈으로 보던데.
차별은 무슨. 측근은 원래 정이 가는 거야.
유스텐:...???
그치만... 칠면조 장식은 어차피 당신이랑 나랑 함께 만든 건데 부러울 필요가 있어요?
릭사엘:엘람과 샤를롯에게는 내가 전달했고, 예레미야에게는 그대가 직접 전달했으니, 그게 손수 아낀다는 신호로 보여진 거겠지.
기분이 어때? 인기쟁이.
유스텐:이... 인기쟁이?? (얼떨떨)
(머리를 긁적이며)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요....
릭사엘:교단의 마스코트가 됐으면서, 새삼스럽게.
유스텐:왜 마스코트가 교주님이 아니고 나지...
릭사엘:그대가 상대적으로 더 친근하게 느껴져서 아닐까. 귀엽기도 하고. (코끝을 톡 두드린다)
요즘은 그대를 모티프로 한 흰 토끼 인형이,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더군.
유스텐:(코끝을 두드리자 반사적으로 그쪽에 눈을 한데 모은다) 토끼...?
왜?!
릭사엘:누가 봐도 토끼인 거겠지.
(퍼뜨린 건 이 인간임)
유스텐:말도 안 돼...
릭사엘:말이 안 되기는.
유스텐:그럼 당신은 뭔데요?!
릭사엘:날 봉제인형의 모티프로 삼는 경우는 없는 듯하던데. 제법 어려운 인상이니, 난.
유스텐:불공평해... (뚱-)
설마! 당신도 그 인형 갖고 있어요?
릭사엘:...
집무실에.
유스텐:...
릭사엘:... (삐질)
유스텐:좋아요?
내가 마스코트가 돼서 인형이든 뭐든 쏟아지니까 좋냐구요-
릭사엘:... 내 사랑이 이곳저곳에서 예쁨 받는다는데... 싫진 않지.
나만 보고 싶으니 가까이 다가오는 건 조금 그렇다만.
...
화났어, 여보?
유스텐:화 안 났어요...
릭사엘:그럼, 기분이 안 좋아? (슬슬 안절부절해짐)
유스텐:(도리도리...) 기분 이상해요.
내가 그렇게 마스코트가 될만한 사람인가...?
딱히 호감을 줄만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사제 분들끼리 부러워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예레미야 씨에게 직접 카드를 전해준 이유는, 그저 그 시간에 예레미야 씨만 있어서 그랬을 뿐인데.
릭사엘:그대가 성역 내에서 인기가 많아진 논리적인 이유를 찾자면, 신전의 이미지 브랜딩과 우리 사이를 서술했다고 나돌던 연정 소설들... 때문이 아닐까 해.
물론 그대가 예레미야에게 카드를 직접 준 이유는 그게 다지만, 다른 이들은 그 사실을 모르니까.
유스텐:다들 생각보다 나를 좋아하는구나...
연정 소설은 나랑 전혀 안 닮았는데 그게 이유인 건 좀 열받아요!
릭사엘:(피식피식) 그럼 진짜로 경전을 내게 할까? 예레미야와 샤를롯은 아직까지 경전 작성의 꿈을 벼르고 있는 모양이던데.
유스텐:...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교과서처럼 접하게 된다는 건 여전히 부끄러워 죽을 것 같지만.
릭사엘:내 사랑은 부끄럼이 많단 말이지. 귀여워. (쪽쪽)
유스텐:콩깍지... (그러면서 가만히 뽀뽀를 받는다)
릭사엘:(사랑스러워 죽을 지경이다. 어떻게 보고 또 보아도 이렇게 예쁜지... 라며 팔불출 같은 생각을 하다가, 너를 껴안고 슬슬 자리에서 일어난다) 식사 마쳤으니, 이제 슬슬 선물 풀어보고 싶은데. 어디로 가면 될까?
유스텐:아! 트리 앞에서 기다릴래요?
착한 아이처럼!
릭사엘:트리? 알았어. (너를 안고 거실 트리 앞으로 향한 뒤 네 몸을 내려놓고, 떨어지기 아쉽다는 듯 네 머리통을 그러쥐고 부드럽게 이마에 입술을 찍는다) 다녀와, 여보. 얌전히 기다릴게.
유스텐:(까치발을 들어서 네 머리를 쓰담쓰담한다) 금방 올게요.
당신이 캐리어를 찾아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트리 앞에 선 릭사엘은 당신의 말대로 아주 얌전하고 착한 아이처럼
소파에 앉아 계단을 올라가는 당신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캐리어는 짐을 정리하기 위한 목적인지 당신의 방에 얌전히 놓여 있네요.
캐리어 지퍼를 열면, 당신이 신전에서부터 몰래 준비해 온
크리스마스 아이템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초록색과 빨간색이 화려하게 뒤섞인,
조금은 유치하지만 그래서 더 귀여운 커플용 어글리 스웨터,
그리고 폭신폭신한 털이 달린 붉은 산타 모자와
귀여운 사슴뿔이 달린 루돌프 모자,
그리고 당신이 리본과 포장지로 꽁꽁 싸매어둔,
조금은 삐뚤빼뚤하지만 정성들여 짠 뜨개 목도리.
당신이 한 손에는 모자들과 티셔츠를,
다른 한 손에는 소중하게 포장된 목도리를 품에 안고 거실로 돌아오자,
릭사엘의 눈은 커다랗게 부풀어 오릅니다.
그는 당신이 안고 온 화려한 색감의 옷가지들과 귀여운 모자들을 보며
짐짓 놀란 듯 피식 웃음을 터뜨리네요.
릭사엘:(슬며시 다가와 물건을 대신 들어주며) 이게 다 뭐야? 무척 많네.
유스텐:궁금해요? 전부 당신을 위해 준비한 거예요.
자, 일단은 이것부터 써요! (자신은 산타 모자를 쓰고 네게는 루돌프 모자를 씌워준다)
릭사엘:...? (얼떨결에 네 쪽으로 고개를 낮추어 반짝거리는 루돌프 모자를 머리에 쓴다)
유스텐:그리고... (주섬주섬 어글리 티셔츠를 꺼내서 건네준다) 이것도!
이건 커플로 된 거니까 나도 입을 거예요. (커플용 티셔츠를 입기 시작한다)
릭사엘:...? (이게 다 뭐지? 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네가 건네주니, 저도 주섬주섬 입기 시작한다)
유스텐:사이즈는 잘 맞아요?
릭사엘:(이런 건 살면서 처음 입어본다...) 응, 넉넉한 것 같아.
유스텐:(활짝 웃으며 꼭 안아준다) 아, 귀여워. 잘 어울리네요.
릭사엘:정말? 이상...해 보이진 않고?
유스텐:응! 진짜 커플 같아요, 우리.
릭사엘:(귀엽긴...) 커플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커플이잖아. 그것도 부부고. 이제 부모도 될 건데. (깜찍한 스웨터를 입은 너를 내려다보다가 순간 벅차올라 꼭 껴안는다)
유스텐:당신이 스웨터 입고 안아주니까 따뜻해요.
좋다-
릭사엘:... (뺨이 발갛게 물든 채로 입술이 근질거려 참지 못하고 쪽쪽 양빰에 뽀뽀하며)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 유스.
유스텐:(답하듯 웃으며 쪽쪽 버드키스를 한다) 나도 사랑해요, 릭스.
그리고-
(등 뒤에 숨겨놨던 선물을 꺼내며) 이게 메인 선물이에요.
릭사엘:오... (딱지처럼 포장지가 꼬깃꼬깃한 데다 리본도 엉성하고 스티커도 덕지덕지 붙어 있는 선물을 받아들며, 열심히 포장한 것 같다는 생각에 귀여워 죽으려고 한다. 하여튼 너무 예쁘다니까... 수줍게 웃으며) 지금 풀어봐도 돼?
유스텐:(끄덕끄덕!) 응!
포장도 내가 했어요!
예쁘죠?
릭사엘:응, 세상에서 제일 예뻐. (피식피식 웃으며 소파에 앉더니, 슬슬 리본을 풀어본다. 대충 손에 쥐기로는 가볍고 푹신하니, 장갑이나 목도리려나. 엘람이 유스의 태교로 진행한다 했으니 그게 가능성 높아 보이는데)
(열심히 포장을 풀더니, 곧 드러나는 파란 뜨개 목도리를 발견하고는 손으로 들어올린다) 세상에, 여보 혼자 이걸 다 짰어? 대단해.
유스텐:(삐질...) 그게... 조금은 엘람 씨가 도와주시긴 했어요...
릭사엘:(폭신폭신한 촉감에 목도리를 꼭꼭 손으로 눌러보며) 그래도. 그대가 챙겨준 거잖아. 너무 기뻐. (수줍게 볼을 붉힌 채, 목에 차마 두르지 못하고 만지작거린다)
유스텐:정말요? 다행이다...
뜨개질은 처음이고 무늬도 만들려다 보니까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더라구요...
릭사엘:어쩐지, 정성이 많이 들어간 것 같았어. 무늬도 쉽지 않은 형태 같은데. 고생했네. 고마워, 여보...
네게 슬쩍 목도리를 내밀며) 그대가 내게 둘러주겠어? 지금 바로 두르고 싶은데.
유스텐:(활짝 웃으며) 응! 내가 해줄게요!
(목도리를 받아 까치발을 들고 휙휙 둘러준다) ... '나도 목도리 예쁘게 매는 법은 모르는데.'
릭사엘:(드물게 헤실거리며 네가 목도리를 둘러주는 동안 푹신하게 꾹꾹 누른다)
유스텐:음- '야매로 일단 묶어야겠다.' (엉성하게 툭툭 튀어나오도록 목도리를 묶어준다) ...
릭사엘:(그러거나 말거나 기분이 좋아서 계속 웃다가, 너를 꼭 끌어안고 가슴팍에 뺨을 비빈다) 어쩌지, 너무 행복한데. 꿈인가.
유스텐:하하, 무슨 소리예요- 당신도 참...
(꼭 마주 안아주며) 이렇게 리얼한 꿈도 있어요?
릭사엘:글쎄, 내 사랑이 워낙 달콤해서 말이지. (고개를 들어 네 앙증맞은 턱끝에 쪽쪽 뽀뽀한다)
유스텐:(뿌듯) 표정 보니까 진짜 마음에 들었나 봐요.
당신 지금 표정이 어떤지 알아요?
완전 바보처럼 웃고 있어요.
길거리에 나가면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보일 거예요.
릭사엘:당연하지. 여보가 고사리손 움직여가며 만들어준 선물인데. (계속 헤실거리며 만지작만지작)
유스텐:사이즈는 잘 맞아요? 실이 불편하지 않아요?
릭사엘:응, 딱 맞아... 아주 편안해. 고마워, 여보. (만지작만지작)
유스텐:(피식) 언제까지 만지작거릴 거예요?
릭사엘:ㅇ... 응? 아... 촉감이 좋길래. (계속 만지작)
유스텐:(일부러 삐진 척하고 눈을 가늘게 뜬 채 볼을 부풀린다) 지금 배우자 앞에 두고 다른 것만 만지는 거예요?
릭사엘:...?! 아, 아니지. 당연히. (그제야 손을 떼고 너를 부드럽게 안으며) 너무... 너무 기뻐서 그랬어. 다른 뜻이 아니라.
유스텐:(키득키득) 알아요. 장난 좀 쳐봤어요.
릭사엘:(네 웃는 소리에 부스스 마주 웃으며) 장난꾸러기. 고마워, 너무 완벽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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