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 10 왜... 왜 자꾸 유혹해...!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체온입니다.
당신의 등 뒤로 단단하게 받쳐진 온기와,
허리를 감싸고 있는 팔의 무게가
잠에서 완전히 빠져나오기 전에 이미 현실을 알려줍니다.
릭사엘의 품입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그의 가슴이 천천히 오르내리는 감각이
당신의 등으로 그대로 전해집니다.
너무 가깝지도, 답답하지도 않은 거리입니다.
당신은 눈만 조용히 깜빡입니다.
아직 몸을 움직일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이대로 조금 더 누워 있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듭니다.
릭사엘의 숨결이
당신의 머리 위에서 고르게 이어집니다.
깨어난 기색은 없습니다.
잠든 사람 특유의 힘 빠진 무게가
팔과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창밖에서 아직 이른 시간의 소음과
아침 햇살에 일광욕을 하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네요.
유스텐:'씻지도 않고 깜빡 잠들어버렸네...'
'릭스는 자는 것 같고... ...궁금한데.' (낑낑거리며 릭사엘을 깨우지 않으려 조심조심 몸을 돌린다)
당신이 조심조심 몸을 틀어
릭사엘의 상태를 확인하면
릭사엘은 아직 깊이 잠들어 있습니다.
부드러운 곱슬 머리칼은 베개 위에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있고,
햇살을 머금은 남색 속눈썹이 결결이 별빛처럼 반짝입니다.
이마의 선은 티끌 하나 없이 매끄럽고,
잠든 얼굴은 천사처럼 부드럽네요.
불그스름한 입술이 유난히 또렷합니다.
눈을 뜨고 있을 때는 민망해서 잘 보지도 못했던 곳이
지금은 새근새근 내쉬는 릭사엘의 숨소리에 맞춰
고요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광대뼈로 이어지는 갸름한 턱선과 콧대가 정제되어 있어서
새삼 살아있는 사람이 많은지 의심하게 될 정도입니다.
유스텐:'새삼...어마무시하게 잘생겼네... 얘가 날 좋아한다고??'
'남들이 우릴 보면 내쪽이 돈이 많은 줄 착각하는 거 아니야? ...물론 행색을 보면 누가 봐도 릭스 쪽이 부잣집 도련님이지만.'
... '뭔가 잊어버린 것 같은데... 얘 얼굴 보니까 다른 게 생각이 안 나네.'
유스텐:
지능
기준치:55/27/11
굴림:10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
헉 그러고보니
아르바이트 못 간다는 말을 전달을 안 했습니다.
유스텐:'이럴수가... 어제 너무 정신없었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휴대폰... 휴대폰은 어디 있지?' (두리번두리번)
유스텐:
관찰력
기준치:55/27/11
굴림:73
판정결과:실패
황급히 주머니를 뒤져보지만 원래 휴대폰이 있던 자리에
휴대폰이 온데간데 없습니다.
릭사엘이 자는 동안 어디 대신 놓아두었나 싶어 둘러보아도
낯선 방이라 그런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유스텐:'일어나서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릭스도 같이 깨면 어쩌지?'
릭사엘:(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에 작은 신음을 끙 흘리며 파르르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눈을 뜨자마자 햇살에 가득 젖은 네가 보이자 이게 꿈인가 싶어 웃음이 화사하게 기어나온다) 자기야... (폭삭 끌어안는다)
유스텐:(눈을 크게 뜬 채 깜빡 깜빡...) '뭐지? 내가 뭘 본 거야?'
(심장이 주책맞게 뛰다 못해 온몸이 뻣뻣해져서 입술만 빠끔거린다) ...나 때문에 깬 것 같은데 더 자.
릭사엘:으응... (비몽사몽으로 나른한 신음을 뱉어내며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네 얼굴을 붙잡고 코끝에 쪽 뽀뽀한다) 자기 좋아...
유스텐:'진짜 사람 설레게 하는 거 잘하네...' ...나 씻고 올래. 엄청 꼬질꼬질할 것 같아.
릭사엘:(비몽사몽으로 눈을 깜빡이다가 가버린다는 네 말에 그제야 눈이 퍼뜩 뜨인다) 으, 응? 어디 간다고?
유스텐:욕실...
너는 반짝반짝한데 나는 꼬질꼬질하잖아.
릭사엘:아. 욕실... (놀랐던 가슴을 진정하고 네 머리카락을 다시 곱게 쓸어넘긴다. 부스스 흐트러진 네 머리카락이 귀여워서 히죽 웃음이 샌다) 자기는... 꼬질꼬질해도 예뻐.
유스텐:그치만 창피해... 어제 안 씻고 자기도 했고...
(눈을 꾹 감고 네 품안으로 얼굴을 숨긴다) 보지마...
릭사엘:(그런 네가 사랑스러워 피식 웃으며) 걱정 마, 세상에서 제일 예뻐. 내 보물이야. (네 정수리가 반질거리든 말든 귀엽기 짝이 없어서 정수리에 쪽쪽 계속 뽀뽀한다)
유스텐:(꿍얼) 씻을래...씻으러 가게 해줘어...
릭사엘:어딜 가. 내 거라며. (아침부터 마주보는 네 얼굴이 너무 깜찍하고 귀여워서 네 몸을 붙들고 작게 몸을 흔든다)
유스텐:우으으... 네 거 지금 더러워졌다니까...
릭사엘:(네 머리카락에 고개를 뭍고 옅게 숨을 들이키며) 너무 예뻐. 너무 깜찍해. 너무 귀여워.
유스텐:(네 품에서 바둥거리며) 나 머리 안 감았다니까-
릭사엘:그래도 예뻐. 떡졌어도 좋아.
꼬물거리는 것도 사랑스러워...
유스텐:난 떡진 거 싫어...
넌 왜 나랑 같이 잤는데도 깨끗한 거야?
릭사엘:(슬쩍 나른하게 웃으며) 새벽에 잠깐 일어나서 씻고 주방 정리하고 아침 준비 해뒀어.
자기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도 저기 (침대 옆 협탁을 가리킨다) 두고, 얼굴도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그리고... 자기 자다가 불편할 것 같아서 바지만 잠옷 갈아입혔어.
유스텐:깨워주지... 새벽부터 고생했네.
그럼 더 자야하는 거 아니야?
아 맞다. 나 휴대폰 좀.
... ... 근데 혹시 봤어?
릭사엘:음... 조금만 있다 일어날까 싶긴 해.
자기 휴대폰? 여기. (협탁에서 네 휴대폰을 집어 건넨다)
유스텐:고마워. (휴대폰을 받으며) ... 혹시 속옷 봤어?
릭사엘:응? 그건 갑자기 왜?
유스텐:그걸 다 봤어?!
릭사엘:... 보면 안 됐던 거야?
유스텐:으으... 이미 사귀기 전부터 네가 내 속옷 다 서랍에 넣은 거 봤을 때부터 눈치챘지만... 그래도 부끄러워!
릭사엘:왜 부끄러워하고 그래. 내가 자기 속옷 봐서?
유스텐:응... 좀 낡아서...
릭사엘:...아- 그게 문제였구나. 괜찮아, 자세히 안 봤어.
그러고보니 자기 옷 다 낡긴 했지. 하루 날 잡아서 새 옷 사러 가자.
유스텐:새 옷?! '아직 새 옷 살 여유는 안 되는데...'
릭사엘:자기 집들이 기념으로 내가 가구랑 옷 사줄게. 내일 백화점 가자.
유스텐:가구까지??! 그, 그건 엄청 돈이 많이 들잖아.
릭사엘:그래도 직접 가구를 들여야 자기 방 같은 느낌이 들지. (네 몸을 슬며시 껴안으며) 여기서 오래 살 거잖아. 응?
유스텐:그건...그렇지.
그럼 이건 신혼집을 미리 맞추는 건가?
릭사엘:신혼집... (네 말에 조금 뺨이 붉어지며) 그렇게 생각해도 되지. 나중에 결혼하고 방 합치게 됐을 때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사- (까지 얘기하다가 결혼 후 생각에 생각이 미쳐 잠시 헛기침한다)
큼흠. 어쨌든 필요하니까. 사러가자.
유스텐:(끄덕) 알았어.
의외네. 난 네가 빨리 방 합치자고 말할 줄 알았는데.
릭사엘:...?? 어? 어?
(어버버거리며 입술을 다물지 못한다. 그러니까... 같이 살 생각부터 했...다고? 아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건지 아니면 네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자체의 나열인지, 혹은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유스텐:나랑 있는 건 좋아도, 방은 따로 쓰고 싶구나.
릭사엘:...그런 게 아니라, 아직은 네가 불편해 할까 싶어서. 나야 당연히... (같이 쓰고 싶지)
유스텐:항상 혼자 살았으니까 어색하긴 하지?
근데 어차피 합칠 거면 안 익숙해도 그냥 합치는 게 효율적이지 않나 해서. 합치고 나면 방 하나는 안 쓰게 되는 거잖아.
가만... 근데 합칠 방이 있어? 네 방 들어가기엔 이미 가구들이 있잖아.
릭사엘:음... 내 방에서 합치기엔 조금 작을 테니까, 부모님 방의 물건을 영국에 있는 본 성으로 보내고 거길 쓰는 편이 나을 거야.
별채도 있긴 하지만, 거긴 주로 버틀러 하우스라 본채랑 거리가 멀어서 왔다갔다 하기 불편할 거고.
유스텐:별채까지 있었어??
릭사엘:(끄덕)
유스텐:...연인한테 이런 말 꺼내기 좀 그런데, 대체 돈이 얼마나 있는 거야?
들어보면 평생 놀고 먹어도 문제 생기지 않을 것 같아.
릭사엘:도박으로 탕진하는 게 아니면 문제 없긴 해. 총 재산... 신탁 관리인이 맡아서 정확한 액수는 아니지만 대략 2000만 달러 정도로 알고 있어.
유스텐:이...이천만 달러?!
너 진짜 나랑 결혼할 생각이야? 내가 벨손드 사람이 꼬박꼬박 모아온(?) 재산을 다 탕진하면 어쩌려고...
릭사엘:자기 씀씀이 보면 그런 걱정은 전혀 안 들어.
유스텐:... 그, 사람이 갑자기 돈에 눈이 멀어서 사치에 빠질 수도 있,잖아.
릭사엘:음. 그러려나...
그렇다면 미리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유스텐:뭔데?
릭사엘:잠시만. (협탁에서 제 휴대폰을 들어올리더니 슥슥 뱅킹을 열어 송금한다)
유스텐:??
뭐해?
릭사엘:자기 계좌로 2만 달러만 보냈어.
유스텐:뭐???!
(어버버) 아, 아니 왜, 대체... 내 계좌는 또 어떻게 안 거야?
릭사엘:당연히 알지. 장학 재단 설득해서 지원을 요청하는데 자기 계좌도 몰라서 되겠어?
유스텐:그, 그러네...
혹시 이거 무이자 대출이야?
릭사엘:아니.
유스텐:그, 그러면? 설마...
아냐. 안돼.
릭사엘:한 달 줄게. 다 쓰고 와.
유스텐:나한테 지금 사치부리고 오라는 말이야??!
릭사엘:(끄덕)
유스텐:이걸 어떻게 한 달 내로 다 써?! 신종 벌칙이야?
릭사엘:옷 좋은 걸로 봄-여름-가을-겨울 다 사고, 휴대폰도 바꾸고, 태블릿도 사고, 컴퓨터도 사고, 가방이나 시계도 사고, 여행지도 결제하면 되지 않을까.
유스텐:너무 어려운 과제야...
릭사엘:자기는 생필품이나 남들이 당연하게 써보던 걸 가져본 기억이 없으니까, 삶에 여유가 생겼을 때의 본인 소비 패턴을 전혀 모르잖아.
생활에 필요한 게 일단 다 충족 되었을 때에 무얼 갖고 싶은지 생각해보면, 자기가 정말로 뭘 원하는지 알 수 있을 거야.
유스텐:그래도... 이건 너무 많은 돈인걸.
혹시 미션에 실패하면 어떻게 돼...?
쓴 만큼 (훌쩍) 돌려줘야 해?
릭사엘:...? 아니.
선물이지, 당연히.
자기 바보야?
유스텐:선물로 누가 이만큼 줘...
릭사엘:나랑 결혼하면 내 재산이 자기 것도 되는데 뭐.
(쓰담쓰담) 가장 먼저 사고 싶었던 거 있어?
유스텐:갑자기 너무 큰 돈이 생겨서 생각이 안 나...
릭사엘:그러면 옷부터 사는 게 정석이지.
자기는 얼굴색이 밝아서 환한 색 옷이 잘 어울릴 거야. (쪽) 내일 백화점 가서 옷 장만하고 옷장 채우자. 가구는 조금 미루고.
유스텐:(멍...) '꿈인가? 사실 이거 다 꿈인가?' 어어...
릭사엘:곧 홈커밍이니까 댄스 파티에서 입을 옷도 한 벌 장만하자. 예쁜 걸로. (보듬보듬)
아. 속옷도 새로 살래?
유스텐:그, 그렇게까지? 댄스 파티 파트너도 없는데?
릭사엘:친구끼리도 가잖아. 나 혼자 보낼 거야?
유스텐:나랑 같이 가?
릭사엘:내 사랑이랑 안 가면 거길 누구랑 가.
유스텐:너 스쿼드 있지 않아?
릭사엘:있지. 있는데, 홈커밍 로열 리스트에서 빠질 거면 이번에는 안 다녀도 괜찮아.
학생회장 신분이라 행사 매니징 총괄만으로도 바빴던 건 맞고. 애들도 이해하겠지.
유스텐:애들이 아쉬워할 것 같은데...
릭사엘:내가 가면, 자기는 안 아쉽고?
유스텐:... 작년에도 혼자 잘만 다녔는걸.
릭사엘:올해는 다르잖아.
유스텐:스쿼드도 홈커밍 주인공이 되는 것도 네게 의미있는 것들이라 생각했어.
릭사엘:싫지는 않지. 하지만 내가 원해서 하는 일들이 아니야.
유스텐:그런 것들보다 내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야?
릭사엘:말하면 입 아프지. (쪽)
유스텐:... 다른 애들이 이상하게 봐도 난 몰라.
릭사엘:걱정 마. 원래 학생회장은 바쁜 직함이라 내가 제대로 참석을 못 해도 이해할 거야.
학생회 임원들이랑 행사 감독하고 조율하러 먼저 가 있다가, 자기 오면 슬쩍 빠져나올게.
유스텐:응... (남들의 시선,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게 보일지 같은 것들이 걱정되는 한편, 올해는 혼자 다니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에 약간의 기대감이 든다. 그 기분이 싫지 않아, 말없이 네 품에 조금 더 파고든다)
릭사엘:우리 자기 응석꾸러기가 됐네. (이번에는 싫다고 안 하는 네가 사랑스러워 사르르 웃으며 너를 꼭 붙들고 귓가에 쪽쪽 뽀뽀한다.)
유스텐:(뺨을 붉히며 툴툴거린다) 난 분명 경고했는데 네가 나랑 다니겠다고 응석부린 거지.
릭사엘:(끄덕끄덕) 응, 자기 말이 다 맞아. 내가 자기랑 가고 싶어서 떼 썼어. (사랑스러워... 쪽쪽)
유스텐:(민망해서 입술을 움찔거리다가) 이제 씻으러 가게 해줘. ... 데이트하러 나갈 건데 계속 꼬질할 수는 없잖아.
릭사엘:(쓰담쓰담... 꼬질한 것도 예쁜데 말이지) 알았어. 씻고 와. 난 그동안 아침 만들게.
유스텐:응. '아, 일어나는 김에 지금 알바처에 연락도 해야겠다.' (침대에 앉아 세차장 매니저에게 문자를 보낸다)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은 채 고민고민하며 문자 앱을 열고
"오늘부터 사정상 출근이 어려워졌습니다. 뒤늦게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하고 툭 문자를 보낸 뒤 심호흡을 하자
곧 답장이 도착합니다.
"알았다 근무 시간 정산해서 보내."
...이게 끝인가.
어차피 못 가니까 이렇게 심플한 마무리가 좋기는 한데
걱정했던 것보다 별일 없네요.
모르겠다... 일단은 좀 씻읍시다.
.
.
.
따뜻한 물에 나른하게 몸을 흠뻑 적셨다가
머리를 꼼꼼히 말리고 잠옷을 입고 거실로 내려오자
따뜻한 냄새가 당신을 반깁니다.
이건... 오믈렛과 해시브라운, 소시지의 냄새입니다.
부엌에 슬며시 들어서면 앞치마를 두른 릭사엘이
열심히 프라이팬 위에서 뒤집개를 들고 요리를 하고 있네요
식탁 위에는 릭사엘이 이미 준비해둔 음식이 몇 가지 보입니다.
어니언요거트 소스를 뿌린 연어 샐러드와
쫄깃한 사워도우 빵 옆에 허니 버터와 베리 콩포트가 놓여 있네요.
그리고 음료로는, 뭔지 모를 초록색 우유가 보입니다.
릭사엘:(요리를 하다가 가까워지는 네 발소리에 슬며시 뒤를 돌아보다가, 어깨가 헐렁 내려앉은 네 잠옷 차림을 보고 절로 웃음을 터뜨린다)
유스텐:(고개를 숙여 자신의 차림을 요리조리 살펴보고는) ...왜 웃어. 나 어디 이상해?
릭사엘:(작게 키득거리며) 헐렁해서 귀여워. 포대기에 싸인 아기 같아.
유스텐:아기는 무슨... (툴툴거리며 옷깃을 앞으로 모아 잡아당겨 헐렁하지 않도록 한다)
릭사엘:(귀여워... 마침 요리도 다 끝난 터라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네게 폭 다가가 끌어안는다) 내가 자기 안 낳아서 다행이다.
유스텐:? 그건 무슨 소리야?
릭사엘:아닌가. 역시 내가 낳았어야 했나... (중얼중얼)
유스텐:너 임신할 수 있어?
릭사엘:물론 아니지. (귀여워 죽겠어. 너를 꼭 껴안고 부둥부둥한다)
유스텐:(쫑알) 네가 낳으려면 한 명 더 있어야하는 건 알아?
릭사엘:(키득키득) 알기는 하지. 진짜 내가 낳았으면 이렇게 못 지냈을 거라는 것도.
그냥, 자기가 갓 태어난 아기였을 때부터 지금 이렇게 큰 모습까지 전부 보고 싶어서.
유스텐:음... (곰곰) 찾아보면 하나쯤은 있을 것 같은데.
아기 때는 없겠지만
사진 말이야.
릭사엘:...응. (어릴 때 네 모습을 상상하자 두근두근 심장이 뛴다)
앉아 있어. 음식 식겠다.
유스텐:알았어. (이젠 익숙하게 자리 자리를 찾아 앉는다)
식탁 의자에 앉아 따뜻한 김이 솔솔 오르는 식탁을 보고 있으면
곧 릭사엘이 웃는 얼굴로 갓 요리한 접시를 내려놓습니다.
따뜻한 오믈렛과 해시브라운, 소시지, 베이크드빈즈가 놓여 있습니다.
전형적인 잉글리쉬브랙퍼스트 접시이네요.
유스텐:아침부터 뭐가 많네. 무리한 거 아니야?
릭사엘:괜찮아. 굽기만 했는데 뭐.
유스텐:매 끼마다 잘 차려주니까 걱정돼.
릭사엘:내가 혼자 산 기간이 얼마인데. 이 정도는 쉽지. (손을 뻗어 살짝 물기가 남은 네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먹자. 배고프다.
유스텐:응... '잠도 별로 못 자는 것 같은데...'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달각달각 썰어내 해시브라운부터 입에 넣자
바삭한 겉과 함께 부드러운 감자 알갱이가 산뜻하게 통통 튑니다.
오믈렛도 소시지도, 따뜻하고 촉촉합니다.
유스텐:(눈치...) '콩도 먹어야겠지? 기껏 차려줬는데.'
릭사엘:(네가 접시를 노려보는 모습을 보고는 슬며시 웃으며 네 앞에 멜론청으로 만든 우유를 내밀어준다) 이것도 마셔봐.
유스텐:(좌우로 고개를 왔다갔다 하며 처음 보는 색의 우유를 탐색한다) ? 이게 뭐야?
릭사엘:새벽에 멜론을 작은 큐브로 잘라서 설탕에 절여서 멜론청 만들었어. 지금처럼 우유에 섞어서 먹어도 돼고, 사이다에 섞어 마셔도 돼. 오늘은 우유.
유스텐:멜론으로 음료수를 만들 수도 있는 거였어? 그냥 먹는 게 아니라?
릭사엘:물론이지. 마셔봐. 맛있어.
유스텐:(초록색 음료수라니. 호기심이 발동하면서도 낯선 음료 색에 한참을 빤히 바라보다 작게 한 모금 마신다)
? '뭐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한 모금 더 들이킨다) '멜론인데 멜론이 아니야.'
이거 신기하다.
맛있어.
릭사엘:맛있어? 많이 먹어. 다 먹으면 또 줄게.
유스텐:(초롱초롱해져서는 초록빛 음료를 응시하며 벌컥벌컥 마신다) '반만 먹고 나머지는 이따 마셔야지.'
릭사엘:(신나서 꼴깍꼴깍 삼키는 너를 보고 자신도 가볍게 한잔 마신다. 급하게 했는데 맛있네...)
그러고보니 자기, 나 먹는 모습 구경한다고 하지 않았었어? 까맣게 잊고 있었네.
유스텐:어! (진짜 까맣게 잊고 있었다.)
(헛기침을 하며 최대한 점잖은 척을 하고 널 빤히 구경한다) 이제 먹어.
'근데 왜 구경한다고 했더라...'
릭사엘:(뚫어져라 바라보는 시선이 사랑스러워서 밥이 제대로 넘어갈 것 같지 않은데. 그래도 일단은...)
(우아하게 나이프를 들어 소시지를 가지런하게 썰고 너와 눈을 마주치며 한 입 톡 베어문다.)
유스텐:(빠안 - ) '귀여운가? 귀여운지는 모르겠고 뭔가... 신기한걸.'
너 진짜 도련님 같이 먹는다.
릭사엘:몸에 배서 더 편하게도 안 되더라고. 너무 신경쓰지 마.
(달큰하기 짝이 없는 너를 보고 웃으며 마저 식사를 이어간다)
유스텐:영국 귀족들은 정말로 포크에다 콩 하나씩 끼워서 먹어?
릭사엘:...? 누가 그래?
유스텐:유X브에서...
아니야?
릭사엘:(피식) 아니야.
유스텐:그럼 숟가락을 계란 깰 때만 쓰는 것도 아니야?!
릭사엘:아니야.
유스텐:그럴 수가...
릭사엘:유X브에 나오는 건 다 과장된 이미지야. 식기를 더럽히지 않고 식기 부딪히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 어느 정도는 다 용인돼.
유스텐:(마지막 희망을 걸듯이) 그럼 바나나도...?
바나나도 손으로 까서 먹어...?
릭사엘:음? 그렇지.
유스텐:(충격을 받고는 식탁 위에 이마를 엎는다) 안 돼......
릭사엘:(식기를 내려놓고 검지 끝으로 네 머리를 콕콕 두드리며)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어떻게 바나나를 손으로 안 까겠어.
유스텐:'혹시 쓸 데가 있을까 해서 미리 공부했는데... 다 과장이라고...?' 그치만 귀족이잖아.
릭사엘:접시에 손질 끝나고 캐러맬 소스 뿌려져 나오는 바나나야 포크로 먹지. 생바나나 가지고 식기로 먹겠다고 씨름하진 않아. 게다가 나는 주방 출입하잖아.
유스텐:그러네...
릭사엘:요즘은 귀족이어도 별다를 게 없어. 가문이 좀 알려져 있거나, 왕실에 연이 있거나 하는 걸 제외하면 재산 넉넉한 부유층 같은 느낌이지.
유스텐:너는 어느 쪽인데?
릭사엘:나?
전부 다...긴 하지.
유스텐:...
릭사엘:그래도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니까, 여기선 그냥 부잣집 도련님인 걸로 생각해.
유스텐:와... 방금... 자기 입으로 별다를 게 없다고 해놓고...
릭사엘:음...
별로야?
유스텐:별로인 건 아니고 신기해.
그리고 내가 별로라고 할 게 뭐가 있어? 네가 귀족인 게 나한테 어떤 영향이 오는 것도 아닌데.
릭사엘:미국은 계급이 없어서 실감 안 나겠지만, 자기가 나랑 결혼해 영국에 가면 귀족처럼 대우받긴 할 테니까.
뭐... 시선이 그렇게 좋을진 모르겠어. 우리가 남자끼리라.
어차피 가지도 않을 거지만.
유스텐:벨손드 부인이 될 수 없는데 귀족대우를 해 준다고...? 의외네. 영국은 엄청 꽉 막힌 곳일 줄 알았는데.
릭사엘:공식석상에서는 귀족 부군이라고 불러주고 예우를 또렷이 하겠지만, 사석에서는 얘기가 나오겠지.
유스텐:생각만 해도 엄청 피곤하겠다.
그래서 안 가려고 하는 거야?
릭사엘:거기서는 내가 뭘 하든 위축되는 느낌이라. 고향이라 그립기도 하지만, 가고 싶지 않기도 해.
(네 먹다 만 접시를 보다가 연어 샐러드를 담아준다)
유스텐:아, 고마워. (포크에 연어 하나, 양심상 아주 작은 채소 하나를 콕 찍어 같이 먹는다) 의외네. 너 같은 사람도 위축되게 만드는 곳이라니.
릭사엘:나도 사람인데, 사람들 등쌀이 심한 곳에서 허리 꼿꼿하게 펴고만 다니긴 힘들지.
(연어를 훨씬 좋아하네... 네 앞에 연어를 가득 놓아주고, 본인은 채소만 담아 먹기 시작한다)
유스텐:영국은 생각보다 엄청 피곤한 곳이구나...
? 연어 싫어해?
릭사엘:자기가 좋아하잖아. 난 채소도 좋아해. 자기가 연어 많이 먹어.
유스텐:채소도 좋아하는 거지, 연어를 싫어하는 건 아니잖아.
(다시 연어를 덜어주며) 맛있는 걸 다 만들어줬는데, 만든 사람이 맛있는 걸 안 먹으면 어떡해?
릭사엘:네가 잘 먹는 게 내가 잘 먹는 것보다 값져. (네가 덜어주는 연어를 보다가 두세 점만 남기고 네 접시로 돌려보낸다)
유스텐:자꾸 이렇게 맛있는 걸 나 다 주면 너는 뭐 먹고 살아. 평생 맛없는 것만 먹고 살 거야?
릭사엘:아니. 난 나만 먹을 수 있는 맛있는 거 먹고 살 건데. (장난스럽게 너를 가리키며 웃는다)
유스텐:...?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눈썹을 들어올린다)
..
(3초 뒤에 뜻을 이해하고 얼굴을 붉힌다) 나는 배가 안 차잖아...
릭사엘:충분히 먹어보질 못해서 배가 차는지 안 차는지 모르겠어.
유스텐:ㅅ, 식사 자리에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진짜...
릭사엘:밥 먹는 얘기. (뻔뻔)
유스텐:네가 말하는 건 침대에서 먹는 거잖아...
릭사엘:밥을 식탁에서나 일어난 상태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생각도 편견 아닐까. (분위기가 편해서 아무렇게나 헛소리한다)
유스텐:(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 그 말은... 대체...
릭사엘:음?
유스텐:(말하면서 얼굴이 주전자처럼 펄펄 끓는다) 장소는...상관없다는...그런...
릭사엘:상관... 없기는 하지.
유스텐:(눈을 질끈 감았다 뜨더니) ... 밥 먹자...
릭사엘:그래.
목에 타서 벌컥벌컥 남은 멜론 우유부터 들이키고
어떻게 포크가 움직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꾸준히 접시를 비우고 있으면
릭사엘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사워도우 브레드 한 면에
달콤한 허니 버터를 발라 당신쪽으로 밀어줍니다.
유스텐:(의심의 눈초리로 널 보며 새침하게 빵을 덥썩 받아먹는다) '나랑 같은 동정이면서 왜 맨날 저렇게 여유로운 거지?'
당근 갉아먹는 토끼처럼 빵을 우물우물 씹자
달콤하고 녹진한 꿀과 섞인 상온 버터의 기름진 고소함이
입안에 확 번져듭니다.
우물우물
우물우물...
...맛있다.
유스텐:(냠냠) '아무렴 어때. 보나마나 놀리는 거겠지, 뭐.'
릭사엘:(네가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네 잔에 멜론청 한 스푼을 넣고 우유를 채워 섞어준다) 천천히 먹어, 내 사랑.
(그리고는 본인도 마저 식사를 이어간다)
유스텐:(끄덕-) '이따가 뭐 입고 나가지? 데이트는 처음이라 뭘 입어야 좋을지 모르겠네.' 넌 데이트 때 뭐 입을 거야?
릭사엘:밖에서 걸어야 하니까, 너무 격식있는 쪽보다는 캐주얼하게 입으려고.
유스텐:다행이네. (몇 번 우물거리더니) 난 격식있는 옷은 없거든.
데이트인데 드레스코드가 안 맞으면 그거 그냥 남이잖아.
릭사엘:내일이면 격식 있는 옷도 생길 거잖아. 입고, 기념으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가자.
유스텐:(눈을 크게 뜨며)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거긴 무지 비싸지 않아?
릭사엘:기념이니까 가야지.
유스텐:그치만 어제도 기념일, 엊그제도 기념일이라고 했잖아. 계속 맛있는 것만 먹었고.
릭사엘:그렇다고 일부러 맛없는 거 먹고 싶어?
유스텐:"일부러"는... 싫긴 하지.
릭사엘:그럼 얘기 끝난 거지?
유스텐:으응... '뭐지?' 어떻게 매일 맛있는 것만 먹을 수 있어?
넌 태어나서 지금까지 매일 맛있는 것만 먹었어?
릭사엘:(피식) 아니. 그럴 리가. 즉석식품도 냉동식품도 먹어봤지.
안 구운 식빵만 도시락 챙겨서 학교 간 적도 있고.
유스텐:의외야... '식빵 달랑 한 장을 점심으로 먹는 귀족이자 학생회장...? 이게 한 문장이 될 수 있나?'
릭사엘:그렇게까지 의외야?
유스텐:솔직히... (끄덕)
매일 고급 요리만 먹고 저렴한 냉동 식품 같은 건 싫어할 것 같아.
릭사엘:싫어하지만, 필요할 때는 먹었지.
유스텐:필요할 때...?
릭사엘:바쁠 때나 피곤할 때.
밖에 나가 음식을 사오기도 귀찮을 때.
유스텐:너도 그럴 때가 있구나...
(쿡쿡 웃으며) 사귀기 전에는 엄청 멀게 느껴졌는데, 얘기 들으니까 인간미 있어.
릭사엘:거 봐, 사람 사는 거 거기서 거기라고 했잖아.
유스텐:그건 그렇지만 너는 좀... 뭐랄까.
나랑 다른 세계 사람 같았어서.
릭사엘:지금은 어떻게 생각해?
유스텐:(눈을 데구르르 굴리며) 같은 세계에 있는 것 같기는... 해.
누구보다 가까이서 보고 있고, 남들은 모르는 걸 아니까?
(슬쩍) 솔직히 내가 좋다는 건 아직까지도 현실감이 없어.
릭사엘:그럼, 어떻게 증명해야 좋겠어?
유스텐:글쎄, 시간이 좀 지나면 익숙해지지 않을까?
가끔 꿈인가 싶거든.
릭사엘:이런. 난 빨리 증명하고 싶은데.
유스텐:(고개를 저으며)나도 딱히 좋은 방법은 안 떠오르네.
솔직히 너랑 내가 좀 뜬금없는 조합이긴 하잖아?
남들도 납득할 정도라면 몰라도.
릭사엘:뜬금 없다고 생각하니까 뜬금 없게 느껴질 수도 있는 거 아냐?
난 우리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유스텐:어떤 점이?
릭사엘:콕 집어 말하긴 어려운데. 음- 생각 좀 해보고 저녁에 대답해도 돼?
유스텐:응. 너 편한대로?
... 내 생각에는 네 꼬질꼬질한 모습을 내가 아직 못 봐서도 이유가 될 것 같아.
넌 맨날 깔끔한 상태잖아. 학교에서든 밖에서든 집에서든.
릭사엘:...그럼 오늘은 집에 와서 씻지 말고 자?
유스텐:그, 그렇게까지? 찝찝하지 않겠어?
릭사엘:찝찝하긴 해...
유스텐:아냐... 무리하지 마.
릭사엘:으응, 고마워.
유스텐:'평생 꼬질한 모습은 못 보겠군.' 슬슬 치울까. 이번엔 내가 할게. 너 잠도 별로 못 잤잖아.
릭사엘:다 먹었어?
유스텐:응. 너는?
릭사엘:나도 마침 다 먹었어. 그럼 정리 부탁해도 될까. 나 할 일이 있어서.
유스텐:'오늘은 의외로 순순히 맡기네.' 그럼 여긴 나한테 맡기고 할 일 하고 있어. 다 치우면 올라갈게.
릭사엘:나도 주방에 있을 거야. 자기가 설거지만 도와줘.
우리 데이트 가서 먹을 음식 만드려고, 나.
유스텐:아, 맞다. 가서 먹을 걸 생각 안 하고 있었어.
릭사엘:샌드위치 만들고, 간식은 쿠키 구울까? 반죽은 미리 만들어뒀어. 팬닝해서 굽기만 하면 돼.
유스텐:쿠키 괜찮지.
릭사엘:응, 잠시만.
당신이 빈 접시와 식기를 챙겨 싱크대에 가져오고
쏟아지는 물줄기에 설거지를 시작하면
릭사엘은 잠시 냉장고를 뒤적이다가
스테인리스 보울에 넣어둔 쿠키 반죽과
조그만 타르트쉘을 가지고 조리대로 옵니다.
릭사엘:자기 간식 들어갈 배 남아 있어?
유스텐:당연하지.
릭사엘:좋아.
쏴아아- 쏟아지는 물줄기가
간지럽게 손등을 탑니다.
유스텐:
손놀림
기준치:60/30/12
굴림:51
판정결과:보통 성공
뽀득뽀득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설거지를 하며 릭사엘을 힐끗 바라보면
어느샌가 앞치마를 다시 걸친 릭사엘이
팔을 걷어붙이고 가볍게 반죽을 치댑니다.
...오.
근육이 꽤 있네요...
공부만 할 것 같은 인상이라 몰랐습니다.
유스텐:(힐끔힐끔) '학교에서 공부하거나 학생회 활동하는 거 외에는 항상 나랑 있었는데, 운동을 언제 하는 거지? 단백질 식단이라도 하는 건가? 새삼 진짜 말도 안 되네... 무슨 하이틴 영화에 나오는 남자주인공보다도 더하잖아, 이건...'
릭사엘을 바라보느라 설거지 하는 손이 느려지면
릭사엘은 조리대에 가볍게 밀가루를 뿌리고는
반죽을 밀대로 얇게 밀다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릭사엘:왜 그렇게 보고 있어?
유스텐:(무슨 나쁜 짓을 들킨 것마냥 어깨를 화들짝 들어올린다) ...
(시선을 피하며) 아니, 뭐... 그냥.
릭사엘:설거지는 거의 다 했어?
유스텐:어어... 다 해가.
릭사엘:응, 하고 있어. (유스가 무슨 쿠키 모양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네. 일단은 계란을 까고 노른자를 분리해 가볍게 푼다)
유스텐:(흘긋흘긋거리다 혼자 찔려서 식은땀을 흘린다) '아, 왜 자꾸 보게 되지? ... 나 설마, 얼굴에 이어서 몸도 보는 사람이었던 건가?' 그치만 수영 수업 때나 풋볼하는 애들 볼 땐 아무 생각도 안 들었는데. 역시 기승전 얼굴이 문제인 건가?'
(도리도리) '설거지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저쪽은 그냥 순수하게 체력 기르려고 운동했을텐데 내가 불순하게 보면 어쩌자는 거야? 이것도 실례일 수 있다고. ...불순? 내가?'
'그냥 생각을 비우자. 내 옆에 있는 건... 뭐라 하지? 아, 그래. 콩이다...콩이야... 쿠키를 만드는 콩이야...'
정신수양을 하고 후다다닥 설거지를 마칠 쯤이면
릭사엘은 천천히 오븐 온도를 예열하고는
냉장고에서 휘핑해둔 생크림을 가지고 돌아옵니다.
그리고는 조리대 옆에 팬을 올려두고는
찬장에서 무언가를 꺼냅니다.
저건... 쿠키 커터입니다만.
모양새가 상당히 다양하네요.
동그란 주름틀, 네모난 주름틀 정도면 말도 다했죠.
별 모양에 토끼 모양에 구름 모양 커터까지 들어 있습니다.
유스텐:(또 힐끔거리다가) ...? 단 거 안 좋아한다지 않았어? 베이킹용 틀이 되게 다양하게 있네.
릭사엘:어머님이 좋아하셨던 건데, 그대로 쓰고 있어. 어떤 모양이 좋아?
아, 설거지 다 했으면 자기가 쿠키반죽 틀에 찍어줘도 되고.
유스텐:(호기심에 저도 모르게 눈을 반짝이며) 진짜 해도 돼?
릭사엘:당연하지. (한 발자국 물러나 자리를 내준다)
유스텐:(후다닥 마지막 남은 설거지 거리까지 해치우고는 밑에 걸려있는 수건으로 손을 닦는다. 설레는 티가 팍팍 나는 걸음으로 네가 내어 준 자리에 서서 틀을 천천히 구경한다. 들뜬 목소리로) 이런 거는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잘할 수 있을까? 반죽이 혹시 갈라지고 그럴까?
릭사엘:망치면 다시 반죽해서 밀대로 밀면 되지. 편하게 해.
쿠키 커터를 좀 더 자세히 바라보면
원형, 사각형, 하트 모양, 별 모양,
토끼 모양, 곰돌이 모양, 구름 모양, 꽃 모양
다양하게도 있습니다.
어떤 걸로 찍을까요?
유스텐:망쳐도 괜찮구나... 큰일날 줄 알았는데.
이거 하나씩 다 찍어봐도 되는 거야?
릭사엘:물론이지.
유스텐:'뭐부터 고르지?' (아이처럼 한참을 고민하다 토끼 모양을 고른다)
릭사엘:(계란물을 섞고 있다가 네가 고르는 틀 모양을 보고 웃는다) 자기가 틀 찍고 팬으로 옮겨주면 내가 계란물 바르고 포크로 모양 낼게.
유스텐:응! (의지 가득하게 대답하고는 그 기세와는 반대로 손을 바들바들 떨며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반죽 위로 틀을 눌러본다)
당신이 스테인리스 틀을 가져가 꾹 누르면
유스텐:
손놀림
기준치:60/30/12
굴림:25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반죽 안으로 틀이 푹신말랑하게 들어갑니다.
곧 천천히 틀을 떼어내자 당신이 고른 토끼 모양이
반죽에 쏙 들어가 있네요.
유스텐:(눈을 크게 뜬 채 감탄하며) 우와 -
릭사엘:(귀여워...) 적당히 듬성듬성 찍고, 반죽에 쿠키 틀 찍어넣을 자리가 없으면 다시 밀대로 밀어서 편평하게 만들어줄게. 찍고 있어.
유스텐:느낌 되게 신기하다 이거!
릭사엘:기분 좋아?
(피식) 귀엽다니까...
유스텐:(반죽에서 눈을 못 떼고 대답한다) 재밌어!
릭사엘:(어떡하지, 너무 귀엽다...)
유스텐:(네 속은 모르고 토끼 모양 틀을 내려놓고 별 모양을 가져와 꾹 눌러본다)
릭사엘:(네가 즐겁게 쿠키 반죽을 다루는 걸 보다가, 냉장고에서 딸기와 블루베리를 가져와 씻는다)
유스텐:
손놀림
기준치:60/30/12
굴림:35
판정결과:보통 성공
마찬가지로 쿠키 틀을 푹 찍었다가 톡 떼어내자
별 모양이 예쁘게도 콕 찍힙니다.
싱글벙글 웃음이 새어나옵니다.
릭사엘:(면으로 된 키친 타월을 깔고 딸기와 블루베리에서 물기를 없애다가 힐끔 너를 보며) 자기 예쁘게 잘 찍네.
유스텐:(널 향해 웃으며) 진짜? 나 잘하고 있어?
릭사엘:응, 엄청 잘해.
유스텐:(네 말에 자신감이 붙어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양손에 구름 모양, 하트 모양을 들어 찍어본다)
유스텐:
손놀림
기준치:60/30/12
굴림:23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당신이 쿠키 틀을 찍을 때마다 예쁜 모양이
쏙쏙 잘 새겨집니다.
이제 요령이 붙었는지 어렵지도 않네요.
콧노래를 부르며 자신만만하게 쿠키 커터를 찍다보면
어느새 반죽 한 판이 당신이 찍어낸 모양들로 가득 찹니다.
릭사엘:(물기 없애고 손질한 딸기를 도마에 얇게 저며내다 말고는) 다 찍었어?
유스텐:(아쉬운 목소리로) 응...
릭사엘:(잠시 네 쪽으로 다가가 틀에 찍혀진 반죽 바깥쪽을 들어올리고, 네가 각양각색으로 찍어낸 쿠키 반죽을 틀에 올린 뒤, 남은 반죽을 다시 밀대로 얇게 밀어낸다) 자, 더 해줘.
유스텐:어! 새로 생겼어.
릭사엘:(귀여워...) 자기 쿠키 틀 찍는 거 잘하네. 앞으로는 자기한테만 맡겨야겠다. 자기가 잘하니까.
(재밌어 하니까 유스가 하게 해줘야지. 앞으로는 쿠키 자주 구워야겠다)
유스텐:나 의외로 베이킹에 재능있는 걸까?
릭사엘:그럴지도. (귀여워...)
다음에는 반죽도 같이 할래?
유스텐:반죽 만드는 것도 재밌는 거야?
릭사엘:재밌기도 한데, 처음부터 만들면 다 만들어졌을 때 더 뿌듯해.
유스텐:그래?
그럼 나중에 가르쳐줄 수 있어?
릭사엘:저녁에 케이크 구울 건데, 그럼 그때 같이 할까?
유스텐:케이크는 쿠키보다 큰 거잖아. 내가 망쳐버리면 어떡해...?
릭사엘:걱정은. 괜찮아, 같이 할 거잖아. (귀여워 죽겠어... 손을 살며시 닦고는 네 몸을 끌어안아 정수리에 쪽 뽀뽀한다)
유스텐:(고개를 들어 널 올려다보며) 혹시 내가 망치거나 태워버리면 쫓아내는 거 아니지...?
릭사엘:이렇게 예쁜데 어딜 보내. (뺨에 쪽 뽀뽀한다)
집 태워먹어도 안 쫓아낼 거야.
유스텐:약속한 거야.
지금은 이거 더 찍을래.
릭사엘:응, 부탁할게. (진중해보이는 네 모습이 도리어 귀여워서 입술에 짧게 뽀뽀하고 딸기 손질하던 자리로 돌아간다)
유스텐:(다시 반죽에 틀 찍어내는 데에 집중한다) 신기해. 찍어도 찍어도 계속 나오다니...
마법 같아...
릭사엘:(네가 중얼거리는 말이 귀여워서 소리 내지 않고 웃으며 예쁘게 썰어낸 딸기를 모아 생크림과 가볍게 섞는다)
쿠키에 틀을 몇 번을 찍어내고 다시 밀대로 밀어냈을까
어느덧 쿠키 반죽은 팬 위로 다 사라지고
릭사엘이 조리대를 정리한 뒤 팬을 중앙에 놓아줍니다.
그리고는 실리콘 브러쉬로 당신이 찍어낸 쿠키 반죽 위로
계란 노른자 풀어낸 물을 가볍게 발라주고는
당신의 손에 포크를 쥐여주네요.
릭사엘:모양도 자기가 낼래? 이렇게. (쿠키 표면을 포크로 살며시 그어서 모양 내는 법을 알려준다)
유스텐:와... 순식간에 예쁜 무늬가 됐어!
릭사엘:자기가 솜씨 있으니까 나머지는 해줄래?
유스텐:응!! (상체까지 숙일 정도로 초집중해서 모양을 내보려 한다)
유스텐:
손놀림
기준치:60/30/12
굴림:95
판정결과:실패
어라? 이게 아닌가?
포크에 힘을 너무 많이 주었던 탓일까요.
모양이 생기다 말고 포크가 반죽 안을 긁어내버렸습니다.
유스텐:(삐질...) 리, 릭스... 혹시 망쳐버린 쿠키는 어떻게 살려내...?
릭사엘:(슬쩍 네가 푹 찍어낸 쿠키를 보고는) 그거? 살려내는 거 쉬워. 구워낸 다음 알려줄게. 나머지도 해줘.
유스텐:알았어... (처음부터 실패해서인지 잔뜩 기가 죽어버린다)
유스텐:
손놀림
기준치:60/30/12
굴림:13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어라?
풀이 죽어서 포크에서 힘을 뺐을 뿐인데
모양이 전보다 더 예쁘게 나옵니다.
아하, 이렇게 하는 거군요.
다행히 쉽네요!
당신이 집중해 포크로 쿠키 위에 슥삭슥삭 모양을 내면
곧 예쁜 모양으로 가득찬 쿠키가 팬에 가득 찹니다.
이제 이대로 구워내기만 하면 되겠네요.
당신이 모양 내기를 마치자 타이밍 좋게 릭사엘이 다가와
당신이 집중해 만든 쿠키 반죽을 들어올리고
미리 예열한 오븐에 밀어 넣습니다.
공기 중으로 오븐 내부의 따뜻한 공기가 슬며시 올라와
머리카락을 잔잔히 흔들었다가 흩어집니다.
릭사엘:(오븐 내부를 살며시 살펴보며) 이대로 12분에서 15분 정도 구울 거야. 조금만 있으면 맛있는 냄새 날 거야.
유스텐:(오븐 안에 있는 쿠키를 구경하다 널 바라본다) 정말?
릭사엘:응, 정말. (쓰담쓰담)
유스텐:생각보다 오래 안 걸리는구나...
릭사엘:우리 애기 열심히 하느라 고생했네. 입 벌려 봐.
유스텐:애기 아니라니까... (아-)
릭사엘:(피식 웃으며 네 입에 방금 만든 딸기 생크림 미니 타르트를 쏙 집어 넣는다)
유스텐:으어? (눈썹을 들어올리며 뭔지도 모르고 반사적으로 우물거린다.) 맛있어... 이건 언제 만든 거야?
릭사엘:자기가 쿠키 틀 찍어내고 모양 내는 사이에.
유스텐:그래? (냠냠) 이게 우리 데이트 때 먹을 간식이야?
릭사엘:이건 크림이 오픈 형식으로 있어서 챙겨가긴 조금 불편할 거야. 데이트 때는 자기가 구운 쿠키 가져가자.
유스텐:아쉽다...
릭사엘:가져가고 싶어?
음- 그러면... (살며시 몸을 일으켜 찬장에서 작은 케이크 박스를 꺼낸다) 몇 개만 챙겨 갈까?
유스텐:좋아!
릭사엘:(네 힘찬 대답 소리에 잔잔하게 웃으며 딸기 타르트를 박스에 넣고, 곧 잔잔하게 웃으며 블루베리 타르트도 하나 집어 넣는다) 이제 샌드위치 만들게. 점심 아직 안 만들었잖아.
유스텐:아. 그러네...
나는 뭐 또 도울 거 없어?
릭사엘:음, 그럼 빵 반으로 갈라줄래? 난 속재료 다듬을게. (새벽에 미리 꺼내어 해동해둔 베이글을 네 앞으로 내민다)
유스텐:(베이글을 받으며 끄덕인다) 알았어.
유스텐:
손놀림
기준치:60/30/12
굴림:17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릭사엘이 건네준 빵칼로 조심조심 측면을 반으로 갈라내자
깔끔하게 베이글이 두 조각으로 나뉩니다.
전문점 못지 않은 솜씨네요!
유스텐:'해냈다...!' 릭스, 이거봐!
(자른 베이글을 양손에 들어올리며) 나 좀 잘한 것 같지 않아?
릭사엘:와...! 그러네. 엄청 잘 잘랐다. 나보다 훨씬 잘해.
(귀여워...)
(어떡하지? 귀여워 귀여워 귀여워)
유스텐:이런 건 처음 잘라봐서 잘못 자를까봐 걱정했는데... (활짝 웃으며) 괜한 걱정이었나봐.
릭사엘:(네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보자 옅게 속이 울렁거린다. 너무 사랑스러워...)
(잠시 진정하고 네 앞으로 베이글 두 개를 더 내밀며) 이것도 마저 잘라줄 수 있을까?
유스텐:(신나게 받으며) 맡겨만 줘!
신이 나서인지 빵칼이 슥삭슥삭 잘도 잘립니다.
이번 것도, 다음 것도 완벽합니다.
어떡하지, 나.
베이킹에 재능 있구나.
유스텐:(뜻밖의 재능을 발견해 심장이 두근두근거린다) 다 잘랐어.
이거 또 있어?
릭사엘:응? 더 있긴 해. 왜?
유스텐:어... 더 안 필요해?
릭사엘:자기가 점심에 샌드위치 많이 먹을 거라고 하면 더 잘라도 되긴 해.
유스텐:쿠키 먹고 싶은데...
그럼 안 자를래.
릭사엘:(피싯피식 웃으며) 응, 다음에 빵 자를 일 있으면 또 부탁해도 될까? 자기가 워낙 잘해서.
유스텐:좋아. 컷팅천재 유스텐이라고 해줘.
릭사엘:(귀여워) 응, 컷팅 천재 유스텐.
조리대 위에 빵을 가만히 올려두면
곧 릭사엘이 슬라이스 햄과 프로슈토 햄,
슬라이스 치즈와 토마토, 로메인을 가져와
샌드위치 속을 빼곡히 채웁니다.
첫 번째 것은 프로슈토 햄에 메론청, 그릭 요거트를 채우고
두 번째 것은 슬라이스 햄을 가득 넣고 버터를 넣은 뒤
바질 페스토를 채우네요.
그리고 마지막 것은 잠시 고민하더니 크림치즈에 으깬 블루베리를 섞어
가볍게 발라 덮습니다.
릭사엘이 하는 양을 가만 구경하고 있으면
부엌 가득 달콤고소한 따뜻한 냄새가 퍼집니다.
당신이 만든 쿠키가 구워지고 있네요.
오븐 안에 든 쿠키를 구경하면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는 예쁜 쿠키들이 보입니다.
유스텐:(아예 오븐 앞에 자리잡아서 쿠키가 구워지는 모습을 빤히 바라본다)
릭사엘:(귀여워... 네가 혹여 다리가 아플까 싶어 의자를 끌어당겨 앉히고, 차분히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준다)
자기 오늘 데이트 가서 하고 싶은 거 있어?
유스텐:음... 공원에 보트 말고 정확히 뭐가 있는지 몰라서...
일단 자기가 좋아하는 것부터 해야지. 보트도 어쨌든 뭐... 물 위에 뜨는 거니까 나룻배라고 칠 수 있지 않을까?
릭사엘:(자... 자기라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네 호칭에 머리가 살짝 멍해진다) 그, 그렇고 말고.
아... 우, 리 데이트 처음이니까 사진기 챙겨갈까?
유스텐:어... (입술을 달싹이다가) 사진 찍고 싶어?
릭사엘:(붉게 물든 얼굴로 끄덕거린다) 응...
유스텐:'이걸 거절하기도 좀 그렇고...' (슬쩍 웃으며) 그럼 가져가자.
릭사엘:(너를 작게 끌어안으며 배시시 웃는다) ...좋아.
릭사엘의 따뜻한 품에 작게 안겨 오븐을 바라보고 있으면
곧 팅- 소리와 함께 오븐이 꺼집니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불 꺼진 오븐 속을 바라보고 있으면
곧 릭사엘이 오븐용 장갑을 끼고 안에 든 팬을 밖으로 꺼냅니다.
노릇노릇 군침 도는 김이 오르는 바삭한 쿠키가
황금빛으로 반짝이며 당신에게 자태를 뽐냅니다.
당신이 침을 꼴깍 삼키고 구경하고 있으면
릭사엘은 뜨거운 팬에서 쿠키를 하나씩 집게로 들어
식힘망에 하나씩 올립니다.
바삭하게 구워진 쿠키에서 김이 오를 때마다
심장이 콩닥콩닥거립니다.
유스텐:엄청 맛있는 냄새가 나.
릭사엘:조금 식히면 바로 먹어도 돼.
유스텐:'언제 식지...' 갓 구운 쿠키는 어떤 맛이야?
릭사엘:달콤하고 따뜻하고 부드럽고 폭신해. 입 천장 데지 않을 정도기만 하면 먹어도 되는데, 잠시만.
(오븐 장갑을 벗고 식힘망에 놓은 쿠키를 쭉 살펴보다가, 네가 만들다 실수한 쿠키 하나를 집어 올려 입으로 호호 식혀준다)
망친 쿠키 수습하는 법, 이제 알려줄게.
유스텐:먹어서 없애는 게 방법이야?
릭사엘:정답.
(살짝 따뜻할 정도까지 꼼꼼히 식힌 뒤 네 입가로 내밀며) 아- 해봐.
유스텐:으, 응? 내가 먹을 수 있어.
릭사엘:얼른. 아.
유스텐:(어색하게 입을 벌리며) ㅇ, 아...
매끈하고 옅은 황금빛 가장자리가 빛나는 것을 보며
당신이 민망하게 입술을 열면
당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이 웃음을 머금고
곧 쿠키 한 점을 쏙 넣어줍니다.
입술을 닫고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작게 바스락! 소리가 납니다.
겉은 부서짐에 따라
곧 안쪽의 부드러운 결이 혀에 닿습니다.
버터 맛이 먼저 퍼지고,
설탕의 단맛은 늦게 따라옵니다.
과하지 않고, 남기지도 않습니다.
꿀꺽, 고소하게 삼키고 나자
아주 옅은 버터향이 입안을 촉촉하게 채웁니다.
아주 정겹고도 그리운, 따뜻한 맛이 납니다.
릭사엘:어때? 맛있어?
자기가 만든 거야.
유스텐:... 맛있어.
갓 구운 걸 몸도 알 수 있는 걸까?
이거 되게 신기하다...
몸이 따뜻해지는 맛이야.
릭사엘:실수했어도 여전히 맛있지?
유스텐:응...
릭사엘:(네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준다)
유스텐:너는 안 먹어?
릭사엘:자기 보고 있잖아.
정 먹이고 싶으면 자기가 먹여줄래? (입술을 가볍게 열었다 닫는다)
유스텐:내가...?
이거 많이 안 뜨거워?
릭사엘:손으로 집기엔 조금 뜨겁긴 해. 조금 이따가.
(너를 부드럽게 뒤에서 끌어안고 네 어깨 위에 뺨을 비빈다)
유스텐:(힐끔) 맛있는 거 먹은 건 난데 네가 더 기분 좋아보여.
릭사엘:싫어?
유스텐:안 싫지...
릭사엘:(네 체온마저 사랑스러워 허리를 가볍게 끌어당기며) ...너무 좋아, 유스.
유스텐:... 기분 이상해.
릭사엘:... 내 사랑이, 이상해?
유스텐:아니, 그런 게 아니라... 너를 쭉 지켜본 건 아니지만, 학교에서 본 모습이랑 지금이랑 너무 달라서.
학교에서는 되게 무뚝뚝하고 공부 잘하고... 웃는 걸 잘 못 본 것 같은데 지금은 너무 행복해보여서...
난 그렇게 재미있는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
릭사엘:그러게... 보고 또 봐도 귀엽고 사랑스럽고... 지켜주고 싶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자꾸 웃게 되네.
나한테 무슨 짓 했어?
유스텐:어? 어어... '뭐라고 대답하지?'
ㅂ, 밥을 먹었지?
릭사엘:그리고 또?
유스텐:난 그냥 밥 먹었는데 네가 반했고, 또...
아르바이트...했지?
릭사엘:또?
유스텐:어...
잤...지?
릭사엘:또?
유스텐:또?
릭사엘:(끄덕)
유스텐:어... '이제 생각나는 게 없는데.'
너네 집에서 밥 먹고 잤지...?
릭사엘:또?
유스텐:이제 우리 집인가? 모르겠다.
릭사엘:우리 집. (단호하게 정정하고는) 또?
유스텐:'냅다 공동 소유주로 만들어버리네...' 또...
같이 장 봤어.
릭사엘:(피식 웃으며) 또.
유스텐:음... (손을 꼼지락거리며) 너한테 별로 착하게 굴진 않았어...
릭사엘:... 오해야. 자긴 나한테 그런 적 없어.
유스텐:네 말대로 틱틱거리기도 하고... 연인처럼 다정하게 말하지도 않은 건 사실인걸...
릭사엘:(너를 조금 더 끌어당겨 배 위를 부드럽게 덮으며) 그리고 나한테 뛰어오겠다고, 기다리라고 했잖아.
그거면 된 거야.
유스텐:(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며 몸을 움츠린다) 그치만... 그렇게 말해놓고 너 울렸잖아, 내가.
릭사엘:내가 잘못했으니까 따끔하게 혼내야지. 자기는 잘못 없어. (네 뺨에 가볍게 입술을 대었다 떼며) 그게 신경 쓰였어?
유스텐:... (머뭇거리다 널 마주보며) 응...
내가 별로 좋은 연인은 아닌 것 같아.
릭사엘:(살며시 웃으며) 난 자기가 나 보고 한 번 웃어주기만 하면 다 까먹어.
유스텐:...?
너 전교권이잖아.
릭사엘:그거랑은 다르지.
유스텐:(알쏭달쏭...) 머리가 좋은데 나 때문에 울었던 일을 까먹을 수 있다고...?
릭사엘:자기가 말해주기 전까진 계속 잊고 있었는걸.
유스텐:음... 말하니까 어때? 다시 서운해?
릭사엘:아니. 이런 걸 신경쓰는 게 하찮고 귀여워.
유스텐:하찮다니 무슨 뜻이야, 그거...
릭사엘:말했잖아, 내가 널 미워할 일은 없다고.
꿍얼거리는 것도 귀여워.
유스텐:... 사랑은 너처럼 똑똑한 사람도 이상하게 만드는구나.
릭사엘:이상한 게 아니라 정상이지. 병마저 앓게 만든 첫사랑이랑 같이 살고 사귀는데, 이보다 더 정상인 게 가능해?
유스텐:... 병마저 앓았다니까 책임져야 할 것 같아.
릭사엘:그럼 자기가 청혼해줄 거야?
유스텐:(삐질...) 어... 해달라고?
릭사엘:...싫구나. (시무룩) 알았어.
유스텐:아, 아니야... 해줄게. 하, 할게...
릭사엘:...아니야. 원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 그런 걸 어떻게 받아.
유스텐:누가 원하지 않는다고 했어... 너도 참...
릭사엘:... ...
(여기서 날 좋아하긴 하냐고 말하면... 안 되겠지. 너한테도 상처고 나한테고 상처고)
유스텐:(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가) ... ...
반지는 없어도 괜찮아?
릭사엘:...응. (어차피 너도 진심으로 묻는 얘기는 아니겠지. 정말로 없어도 괜찮겠지만... )
유스텐:으음... (입을 다문 채 입술을 왔다갔다하다) 손... 내밀어줄 수 있어?
릭사엘:(뭘 하려는지 모르지만 일단 달라기에 내민다) ... 손은 왜?
유스텐:(네 손을 제 손바닥 위에 살포시 얹고는 잠시 입술을 말아넣는다. 슬슬 정적이 어색해려 할 때쯤 입을 열고 자신없는 목소리로) ... 내가,
남들 다 주는 반지도, 그에 비슷한 것도 못 줘서... 당장은 줄 수 있는 게 "내 시간" 밖에 없어.
난 딱히 매력도 없고... 너한테 반지도 저렴한 것조차도 줄 수 있을 정도로 재산이 있지도 않고, ... 너만큼 잘해주지 않은 거 알아. 음... 이렇게 말하니까 너무 양심에 찔린다, 하하...
그래도 너랑 살면 재밌을 , 것... 같아. 아직 네 마음만큼은, ...네가 좋아할만큼을 주진 못하는 것 같고... 어...
(네 손을 살짝 만지작거리며 머뭇거리다, 제게로 당겨 네 약지 부분에 짧게 입을 맞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너와 눈을 마주친다) 그래도 괜찮으면... 음... 같이... 시간을 보내는... '너, 너무 민망해서 죽을 것 같아...!!!!'
릭사엘:(네 입술이 닿은 손가락을 가늘게 떨며 잠시 생각이 멈춘 듯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 그러니까... 이거 청혼이야?
유스텐:음... 그렇, 지...?
이렇게 하는 게 아니야...?
혹시 마음에 안 들면... 나중에 다시 할게.
공부해서 올게...
릭사엘:이렇게 진심인데... 엉망진창인 청혼은 처음 봐.
유스텐:...
별로였구나. (침울)
릭사엘:날 안 싫어하는 건 이제 알겠어.
그런데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전혀 모르겠어.
유스텐:...미안. 이해해.
릭사엘:딸기 한 알 만큼인지, 이 쿠키 하나 만큼인지.
넌 가끔 보면 꼭... 내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괜찮다는 것 같아.
유스텐:...
그 말은 조금 상처야.
릭사엘:넌... 얘기 안 하잖아.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아는데도 울컥 울음이 먼저 기어나온다) 나를 향한 네 마음은, 자발적으로 좋아한다는 말 한 번 안 해줄 만큼인 거잖아. 그 정도인 거잖아...
유스텐:... 너는,
날 기다릴 수 있다고 하면서도 가끔 보면 내가 빨리 답을 찾길 바라는 것 같아.
... (고개를 푹 숙이며) 나는 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데.
내가 그런 감정을 느낄 여유가 그동안 없었다는 것도, 그만큼 모르는 부분도, 너를 바라보기 시작한 기간도 전부 다 너에 비해서 한참 모자란데.
(눈물방울을 툭 흘리며) ... 이제서야 널 제대로 깨닫기 시작한 것 같았는데, 너는 내 속도가 답답했던 거지.
릭사엘:... ...
유스텐:이제서야 좀, (흩어질 것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 살고 싶었는데.
릭사엘:(들려오는 목소리에 입술을 정처 없이 떨며) ... ... 무슨, 소리야. 그게.
(네 몸을 꽉 붙잡아 안으며) 무슨 소리냐고 묻잖아.
유스텐:...
... 왜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무리해서 하냐고 했었지.
죽으려고 했어. 졸업하면.
릭사엘:(믿기지 않는 소리를 들어 손끝을 파르르 떨며) ... 네가, 왜 죽어.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유스텐:너도 내 인생이 어땠는지 대충 알잖아. 안 그래? 부모도 없고, 목표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내 인생은.
지금 자살해봤자 안 그래도 무시하던 애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비뚜름하게 눈물을 매단 채 웃으며) 동정하거나 개미 한 마리 죽은 것 정도라고 생각하겠지.
마지막까지 그딴 취급받고 싶지 않아서 졸업하면, 완전히 성인이 되어서 아무도 나 같은 걸 존재도 모를 때면... 그간 모아둔 돈을 그나마 하루만이라도 걱정없이 전부 털고 나서 죽으려고 했어.
내가 널 마음에 들이는 게 쉬웠을 거라 생각해?
릭사엘:(갑자기 차가운 시체가 되어버린 네 모습이 제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해서 다급하게 네 두 팔을 꽉 붙잡고 눈물이 흐르다 만 고개를 황급히 가로젓는다) ... 안, 안... (숨이 덜컥 막혀서 끅끅거린다)
(한참이나 혀가 굳은 채 불규칙적으로 헐떡이다가 이윽고 막힌 둑 터지듯 중얼거린다) 안, 안 돼... 끅, 그러면... 안 돼...
유스텐:... (자신은 눈물조차도, 딱히 슬프다는 감정도 안 드는데 저 대신 우는 네 모습을 보자 가슴이 쿡쿡 쑤시다 못해 수면 아래로 잠기는 것 같다. ...불편해. 분명 아까까지 분위기 좋았었는데. )
(답답한 숨을 내쉬고 너를 어떻게든 위로하고 싶어 안아준다. 그러면서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당장 여기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숨듯이 고개를 숙인다) ... 미안해, 릭스.
또 나 때문에 분위기가 안 좋아진 것 같네...
미안, 그냥 ... 전부 다 미안해.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서 미안해.
... 너한테 이런 얘기까지 꺼내면 안 됐었어.
릭사엘:(눈물 범벅이 된 채로 털썩 주저앉으며 너를 지푸라기 붙잡듯 매달린다) 아냐, ㄴ, 나... 나 잘못했어. 아냐, 내가... 흑, ㅈ, 잘못했어... 내가, ㄴ가... 내가 나빴어. 날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랑 지내면, 흡... 재미는 좀 있겠다 정도의 말로 들려서, ㄱ래서... 속상해서 그랬어. 내가 잘못, (헛숨을 토한다), 했어, 그런 생각 마... 끕...
유스텐:... (그런 너를 괴롭게 내려다보다 무릎을 꿇고 너와 눈높이를 맞춘다. 자신보다 더 눈물 젖은 눈가와 뺨을 더할나위 없이 다정하게 쓸어주며) 아니야, 릭스.
네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어.
그렇게 슬픈 표정 짓지 마.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야.
릭사엘:(거세게 도리질치며 울먹거린다)
유스텐:오히려 내가 네게 미안하지. 매번 너를 울리니까.
좋은 연인도 못 되고, 하물며 좋은 배우자도 못 되겠지, 난.
릭사엘:(제대로 단어도 안 되는 앓는 소리를 흘리다가 간신히 너를 끌어안고는) 끅, 나빠도 돼... 그러니까 안 돼, 그냥 나쁜 채로 살아.
유스텐:잘못한 건 난데, 왜 네가 울어...
... 너만큼 과분한 사람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는 일은 아마 다음 기회에라도 가능성조차 없을 거야.
릭사엘:(네 그 말이 이별 선언이라도 될까봐 다급히 더 끌어안으며 헐떡인다) ㅇ, ... 보내지 마, 가지 마.
내가 잘못했는데 왜 네가 감정을 덮어써... (흐느끼며) 그러면, 그런 건 안 돼.
(바싹바싹 마른 입술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애원하듯) 내가, 내가 잠깐 멋대로 오인한 거야, 청혼 같은 거 나중에 해달라는 뜻으로 장난 쳤을 뿐인데 바로 해서 당황하고... 네가 날 어서 좋아해주길 바라는 마음은 있었지만 부추길 생각은 없었는데 날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럴 마음도 딱히 없다고 쐐기를 박는 것 같아서... 그래서... (공허한 숨만 들이쉬고 내쉬며 눈물만 하염없이 줄줄 흘린다)
유스텐:'나를 그리 오래 알지도 않았으면서, 왜 이렇게 슬퍼하는 거지? 난 죽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고작 나 하나 죽는 걸로 이렇게까지 슬퍼한 적은 없었는데. 잊지 못할 정도로 매력적이지도, 사귀는 내내 잘해주지도 않은 사람을 왜 이렇게...' ...
릭사엘:(눈물범벅인 채 본인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르고) 흑... 사랑해, 난... 난 널 정말 사랑한단 말이야 유스. 네가, 끅, 없으면 안 된단 말이야.
유스텐:...
내가 죽는 게 그렇게 슬퍼?
넌 나를 잘 모르잖아.
릭사엘:(일 초도 고민하지 않고 다급하게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인다)
유스텐:이건 내 유일한 목표였는걸.
릭사엘:(고개를 급하게 도리질친다)
유스텐:... 내가 죽지 않으면 그만큼의 가치있는 삶이 남아있을까.
릭사엘:흣, 그거ㅅ.... 그것도 살아봐야 알잖아. (네 옷자락을 꼭 붙들고) 나 혼자 두고 가버리지 마.
유스텐:... (옷자락을 붙든 손을 떼어 소중하게 감싸쥔다) 안 죽을 거야. 그러니까 울지마...
자리를 좀 옮길까? 여긴 너무 불편하고 딱딱하잖아, 응?
릭사엘:(네 안 죽을 거라는 말을 듣자 그제서야 펑펑 울던 눈이 둥그렇게 뜨이고, 그나마 손끝에 남아 있던 힘이 쑥 빠져나간다) 진짜...?
진짜... 나 버리고 안 가는 거지...? 안 죽, 는 거지?
유스텐:그렇다니까.
(네 손을 잡아 천천히 일어나도록 유도하며) 일단 좀 앉자. 소파로 갈래?
릭사엘:으, 응... (혹여나 네게 제 체중이 실려 무거울까봐 얼마 없는 힘으로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유스텐:(조심조심 한발짝씩 너를 소파로 데려가 앉히고 자신도 옆에 앉는다. 급한대로 소매로 네 푹 젖은 얼굴을 닦아주며) 많이 울었네...
릭사엘:(그제서야 펑펑 눈물 적신 얼굴이 민망해 제 얼굴을 소매로 함께 닦아내며) ...미안해. 내가 울어서 당황스러웠지.
유스텐:(피식 웃으며 가벼운 투로) 당황스럽다기보단 신선했어.
평생 꼬질꼬질한 모습은 못 볼 줄 알았는데.
너 지금 딱 알맞게 꼬질꼬질해.
릭사엘:... 씻고 오라는 뜻이지?
유스텐:하하, 그런 뜻 아니야...
아침에 네가 말한 것처럼 귀엽다는 뜻이지.
근데 앞으론 못 보겠다. 너 이렇게 우는 거 보니까 마음이 안 좋아.
릭사엘:(네가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인 걸 아는데도 제가 더 크게 반응해버려 짐을 지웠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고개를 푹 숙이며) ...미안해. 자꾸 못난 모습 보여서.
유스텐:못나기는. 따지면 내가 더 못났지.
딱 잘라서 싫다고 안 하지만, 좋다라는 말도 안 하니까...
그리고,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냐? 난 너 학교에서만 볼 땐 속에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라도 들어있나 잠깐 의심했었다니까?
릭사엘:알아... (살짝 코를 훌쩍이며) ...그래서 나 만날 때마다 깍듯하게 존댓말 썼잖아, 너.
유스텐:(큭큭 웃으며) 그랬었지. 솔직히 다가가기 힘든 이미지기도 했잖아.
릭사엘:그래서... 거리 지켜줬잖아.
유스텐:참나- 지켜주는 거였어? 너도 다른 애들이랑 똑같은 줄 알았지, 난.
릭사엘:날 어려워 할 거라고 생각해서...
유스텐:항상 거리를 지키니까 좁혀지지도 않고 그대로인데 어떻게 가까워지려고 했어? 너도 참... 진짜 평생 짝사랑이라도 하려고 했던 건지.
릭사엘:...
그것도 각오하고 있었지.
유스텐:(피식) 진짜 그랬으면 평생 후회했을 것처럼 굴던데.
릭사엘:어쩔 수 없잖아. 가까이 손 뻗을 곳에 있으니까 더 못 참겠는데.
유스텐:... 욕심쟁이네.
... (흘긋) 있잖아.
릭사엘:응, 유스...
유스텐:죽으려고 했던 건 맞아. 협박 같은 게 아니라.
릭사엘:...알아, 네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 안 하는 사람이라는 거.
늘 검열하고 있잖아.
유스텐:... 티 났어?
릭사엘:...난 너만 보니까, 모를 수가 없지.
유스텐:아무도 모를 줄 알았는데.
하여튼... 돈 모아서 죽기 전날에 탈탈 탕진할 생각으로 알바뛰며 살았는데 갑자기 네가 뜬금없이 고백한 거야.
네가 고백할 거라는 건 내 남은 인생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건데.
매일매일 재미없고, 학교 - 아르바이트 - 잠이 반복되면서 돈은 좆도 안 모이는 챗바퀴 같은 삶에서 갑자기 나타나서, 내가 그 학생회실에서 고백 받은 이후로 얼마나 심란했는지 알아?
릭사엘:...그래서 내가 준 도시락도 안 먹었어?
유스텐:... 그때는 나도 널 몰랐으니까, 멋대로 너도 남들과 같은 사람일 거라 판단해서 그랬어.
릭사엘:나는... 너한테 반한 날부터 너 줄 도시락까지 싸서 다녔어.
처음엔 '저렇게 먹는 걸 좋아하니까 챙겨주면 좋아하겠지'란 생각이었어. 좋아한다는 걸 자각한 상태도 아니고, 전해줄 생각도 못하면서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거 너한테 못 준 내내 학생회 임원들한테 먹으라고 그냥 줬었단 얘기 했었나... 애들이 요즘 왜 도시락 안 싸오냐고 애정이 떨어졌냐 뭐냐 했는데.
유스텐:전에 네가 준 도시락 돌려주려고 학생회실 갔을 때, 걔네가 서운하다고 하던데?
난 그게 뭔 소린가 했지.
원래 걔네 주려던 걸 나한테 짬처리한 건가 하고.
릭사엘:...반대야. 짬처리는 걔네가 했지.
유스텐:그거 맞아? 그 도시락이 내 건줄도 모르고 몇 개월 넘게 있었는데.
릭사엘:괜찮아. (남은 눈물을 말끔히 지워내며 도로 뻔뻔한 표정으로) 앞으로 몇 년은 자기만 먹을 테니까. 자기가 이겨.
유스텐:다시 헛소리하는 릭스로 돌아왔네.
릭사엘:...헛소리라니. 논리적으로 옳은 소리잖아.
유스텐:하하, 그런가?
(정면을 바라보며) ... 그 고백 이후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감정을 느꼈는지 몰라.
릭사엘:(툭)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는데?
유스텐: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생각하냐는 거야?
네가 한 고백?
릭사엘:(끄덕) ...
유스텐:지금은... 네가 그렇게 시작을 끊어줘서 다행이라 생각하지.
죽기 전에 내 인생에 재밌을만한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네가 자꾸 뭘 들이밀었잖아.
혼란스러웠어. 네가 아니었으면 평생 몰랐을 것들을 갑자기 접하니까.
포근한 침대, 따뜻한 아침식사, ...그리고 네 감정을 마주할 때마다 계속 혼란스러웠어.
살면서 가슴이 그렇게 간질거리고 뭐랄까.... (민망한 듯 입을 다물었다가 널 바라보며) 놀리면 안 돼.
뭐랄까... 솜사탕이 된 것 같았어.
유스텐:아르바이트를 기다려주는 것, 함께 저녁식사를 한 것, 끝나고 장을 같이 본 것들도... 솔직히 좋고 즐거웠어.
오늘 쿠키 만들고 빵 자른 것도... 사실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고 별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재밌는 건지...
... 릭스.
릭사엘:... 응, 유스.
유스텐:너랑 있으면 하루에 색이 덧입혀지는 것 같아. 항상 웃고 떠들기만 한 건 아니지만... 혼자였던 인생보다 더 많이 웃고, 새롭고...
그래서 계속... 자꾸만 살고 싶다는 쪽으로 기울어져.
웃기지... 널 제대로 보기 시작한지 2주조차 안 됐는데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다는 게...
아마도 난... 너 때문에 다시는 죽을 계획은 못 세우는 겁쟁이가 된 것 같아.
그리고 이젠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아.
릭스.
릭사엘:... 응 ...?
유스텐:좋아해.
네가 정말 좋아.
릭사엘:(그토록 듣고 싶어했던 말인데 벙쪄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는다)
유스텐:(고개를 기울이며 옅게 웃는다) ... 혹시 내가 너무 늦었어?
릭사엘:(네 질문을 듣고서도 3초는 멍하니 네 얼굴을 바라보다가 곧 이 상황이 재미있고 어이없고, 그러면서도 벅차오를 듯 기뻐서 너를 확 붙들어 껴안는다) 아... 아하하...! 아하하! 아- 바보잖아...
유스텐:(어리둥절...) 내가... 바보야?
릭사엘:(끄덕) ...내가 세상에서 만난 사람 중 제일 바보야. (헤실거리며 너를 꼭 껴안고 뺨을 비빈다) ...안 늦었어. 너무 빨리 와서 숨 차겠다 싶을 정돈데.
유스텐:네가 계속 기다리는 게 보였잖아.
(슬쩍) ...자꾸 엄청 맛있는 미끼 걸어놓고 유혹했잖아.
릭사엘:어떤 미끼?
아침밥?
유스텐:그거 포함, 이런저런 것들...?
릭사엘:정확히 뭔데 그래.
유스텐:전부 다? (곰곰이 생각하며 필터를 거치지 않고 중얼거린다) 맨날 맛있는 밥 주고, 무지 푹신한 잘 곳도 주고, 얼굴로 유혹하고, 목소리는 또 왜 그리 좋은 건지, 자꾸 네가 내 거라고 ... 다 줄 거라고, 너는 그저 끄덕이기만 하면 된다 그러고... 또 입술 닿는 것도... 막, 이런 저런 걸 궁금하게 했는걸.
자꾸 뽀뽀해서 간질거리게 했잖아...
나는 좋다 싫다 말도 안 했는데.
릭사엘:(갈수록 솔직해지는 발언에 소리까지 내서 웃다가 눈물을 살짝 머금는다) 아하하...! 그야 자기 좋아하는 거 눈에 보여서 그랬지.
유스텐:(툴툴) 그거 알면서 내 마음은 의심했어?
넌 내가 뭐, 아무나 뽀뽀하자고 하면 알았다고 하는 줄 알아?
다른 사람이 하자고 하는 건 상상만 해도 징그럽다고.
릭사엘:(쪽) 우리 자기, 나랑만 뽀뽀하는 게 좋아?
유스텐:... 좋아.
릭사엘:(쪽쪽) 이렇게 예뻐서 어떡하지... 나 심장 소리 들어볼래?
유스텐:갑자기? 빨리 뛰어?
릭사엘:응, 엄청. (너를 꼭 끌어안고 쉼없이 뽀뽀한다)
유스텐:들어볼래. (살짝 숙여 네 가슴께에 귀를 대고 심장소리를 들어본다)
릭사엘:(대뜸 가슴팍에 고개부터 얹는 네가 사랑스러워, 밀어내지 않고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넘겨준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어때?
유스텐:...엄청, 빨리 뛰어.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상체를 들어올리며) 혹시 구급차 불러야 하는 거야?
이러다 죽으면 어떡해?
안 돼, 죽으면.
릭사엘:아니. 내 앰뷸런스 여기 있잖아. (네 뺨을 붙잡고 입술에 쪽쪽거린다)
유스텐:(눈을 가늘게 뜨며) 내가 원인 제공자 같은데... 앰뷸런스가 아니라.
릭사엘:그래? 천국 같은데. (쪽쪽)
유스텐:... 이제 보니까 나보다 네가 뽀뽀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
릭사엘:좋지. 안 좋게 생겼나.
유스텐:이렇게 좋아하면서 학교에선 꽤 잘 참네.
릭사엘:필사적으로 참지. (쪽쪽)
유스텐:바보...
릭사엘:너무 예뻐, 너무 귀여워, 너무 소중해... (네 얼굴 곳곳에 빠짐없이 입술을 찍었다 뗀다)
유스텐:(체념한 반려동물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버티다가 상체를 뒤로 뺀다) 언제까지 할 거야아...
데이트하고 싶다며. 집에서 뽀뽀만 하고 싶은 걸로 바뀌었어?
릭사엘:(네 말에 그제서야 데이트 약속을 생각해내며) ...아, 맞다.
유스텐:(한숨을 푹 쉬고는 네 입술에 입을 맞췄다 뗀다) ... 뽀뽀는 거기 가서 마저 해.
릭사엘:이젠 밖에서 뽀뽀해도 돼?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유스텐:거긴 아는 사람 없으니까 괜찮을 것 같아서.
엄청 크고 넓기도 하고.
릭사엘:(소리 내어 웃어버리며) 아하하...! 아는 사람만 없으면 괜찮아?
유스텐:응. 다른 사람들은 우리 모르잖아.
릭사엘:널 어쩌면 좋니, 정말... (쪽쪽)
유스텐:그냥 뭐... 동성 커플이네- 하겠지.
너랑 난 키차이도 있으니 뒤에서 보면 잘 모르지 않을까?
... 내가 말했는데 자존심 상해.
릭사엘:(오구오구) 자기가 작은 게 아니라 내가 큰 거야.
유스텐:맞아. 네가 너무 큰 거야.
릭사엘:응, 응.
유스텐:나도 잘 먹고 잘 잤으면 키가 너만했을 거라고.
릭사엘:맞아, 그러니까 앞으로 잘 먹어서 나보다 커지자.
유스텐:...
너보다 큰 건 또 싫어.
릭사엘:... 그래?
유스텐:너보다 커지면 내가 고개 숙여야하잖아. 키스할 때.
그리고 안을 때도 지금이랑 다를 거고.
릭사엘:(귀여워...) 나도 자기가 내 품에 쏙 안기는 게 좋긴 해.
유스텐:네가 안을 때 엄청 좋은 냄새 나.
릭사엘:그래? 어떤데?
유스텐:시원한 풀냄새가 나.
나랑 같은 바디워시랑 샴푸 쓰는데 왜 나한텐 그런 냄새가 안 나지?
릭사엘:목욕할 때 허브 오일 풀어서 씻긴 해.
자기 이 집 온 첫 날에 내가 목욕물에 풀어줬었잖아. 기억 나?
유스텐:기억나. 근데 그때 너무 정신없었어서...
릭사엘:자기 목욕할 때 쓰라고 배쓰밤 선반에 몇 가지 사뒀는데, 그건 못 봤어?
유스텐:못 봤어...
특별한 날에만 쓰는 거 아니야?
릭사엘:(쓰담쓰담) 오늘 데이트하고 와서 씻으면서 써볼래?
자기 쓰고 싶은 날 쓰면 돼.
유스텐:그럼 이따 써볼래.
릭사엘:좋아.
그럼 이제 슬슬 나갈 준비할까? 이러다 저녁까지 여기 있겠어.
유스텐:그러자. 기껏 도시락도 열심히 준비했는데 안 나갈 순 없지.
릭사엘:응, 옷 입고 나오자. 챙길 거 챙기고.
나 사진기도 챙겨나올게.
유스텐:알았어. 옷 입고 거실로 나오면 되지?
릭사엘:응. 편한 걸로 입고 나와.
유스텐:(끄덕끄덕하고 2층으로 올라가려다 말고) ... 근데 데이트는 보통 뭘 챙겨야 해?
릭사엘:으음. 챙기고 싶은 거.
나도 잘 모르지. 데이트 자기랑 해본 게 단데.
유스텐:아, 그렇지 참...
그럼 알아서 해보지 뭐.
이따 봐.
릭사엘:이따 봐.
.
.
.
후줄근하게 늘어진 무채색 후드티에 청바지를 걸치고
거실로 나가보면 또 다시 부엌에서 달그락 소리가 울립니다.
당신보다 먼저 옷을 갈아입은 릭사엘이
찻주전자에 우린 홍차를 텀블러에 담고
따뜻하게 데운 우유와 연유를 넣고 있네요.
아무래도 오늘의 나들이 음료는 따뜻한 밀크티인가 봅니다.
케이블 무늬로 꼬인 네이비색 니트 아노락에
가벼운 진청바지를 입은 채로
깨끗한 신발을 신은 릭사엘을 보고 있자니
자신의 낡은 옷차림이 초라할까 걱정되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런 걸 신경쓰지 않을 사람인 걸 알지만.
릭사엘:(밀크티를 담아낸 텀블러 뚜껑을 닫고, 나들이용 음식 바구니에 차곡차곡 넣으며) 준비 다 했어?
유스텐:준비 됐, ...우, 우리 오늘 안 나가면 안 되겠지?
릭사엘:왜? 문제 있어?
유스텐:내 옷이 너무 ... 후줄근해.
너는 반짝반짝거리는데.
릭사엘:음. (잠시 데이트 동선을 떠올려내며 운전하며 가는 길에 도심 상가지가 있다는 걸 기억해낸다) 그래. 가는 길에 옷 사가자.
유스텐:그래도 돼...?
릭사엘:물론이지.
유스텐:으으... 근데 어쨌든 이걸 입고 나가야 하잖아. 나 혼자 다니는 거면 몰라도 너랑 다니면 엄청나게 낡은 게 티날 거고.
그냥 벗고 갈까?
릭사엘:나한테만 보여줘야지, 누굴 보여주려고.
유스텐:그치만 이거 입기 창피해졌어...
그럼 다 벗고 코트만 입었다가 피팅할 때 옷 입는 건?
릭사엘:...잠깐만이니까 괜찮을 거야. 자기 신경 쓰이면 내가 조금 떨어져서 걸을게.
유스텐:괜찮아...? 나랑 붙어있는 거 좋아하잖아.
릭사엘:아쉽긴 하지만 자기 기분 상태보다 중요한 건 아니야.
유스텐:그럼... 그럼... 다른 방법이 하나 더 있기는 해.
릭사엘:무슨 방법?
유스텐:네가 코트를 입으면 돼.
그리고 난 그 안에 들어가는 거야.
릭사엘:...?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 알았어.
어?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그래도 괜찮아?
유스텐:괜찮지 않을까? 겉으로 보면 네가 좀 뚱뚱해보일 수 있겠지만.
릭사엘:그건 상관 없긴 한데... 그러면 차라리 내가 혼자 중간에 나가서 옷을 사오는 게 낫지 않을까, 자기야.
유스텐:어...?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런 방법이 있었네...
릭사엘:(귀여워... 엉뚱해)
유스텐:그럼 네가 옷을 사오면 난 어디서 갈아입어? 차에서?
릭사엘:응, 차 끌고 잠깐 외진 곳으로 갈게.
유스텐:그거 정말...
정말 좋은 생각이다!
릭사엘:(... ... 뭐지? 뭐가 이렇게 귀여운 거야?)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네게 손을 뻗는다) 이제 신경쓰이는 거 더 없어?
유스텐:응. (주저없이 네 손을 덥썩 잡는다)
릭사엘:(머뭇거리지도 않고 저를 잡아오는 손에 심장이 자르르 떨린다) ...갈까?
유스텐:'빠진 거 없겠지?' (옷에 달린 주머니에 한번씩 손을 넣어보며 확인한다. 어차피 휴대폰 외에 특별한 소지품도, 가방도 없지만.)
없는... 것 같아!
릭사엘:(부드럽게 웃으며) 응, 나도 물건 다 챙겼어.
가실까요, 내 사랑?
유스텐:(우뚝) '영국식 에스코트는 이런 건가? 그럼 나도 장단 맞춰야겠지?'
'근데 릭스 어릴 때 미국으로 왔다 하지 않았나? 이건 언제 배운 거지?'
음... (어색하게 높고 콧소리 섞인 목소리로) 흠흠, 좋아요, 벨손드 씨.
릭사엘:(장난스럽게 굴었을 뿐인데 귀엽게 받아주네... 네 손을 부드럽게 쥐고 왈츠 스텝처럼 가볍게 현관을 나선다)
.
.
.
차는 주립공원 쪽으로 바로 향하지 않고,
중간에 작은 도심 상가지로 빠집니다.
주말이라 사람은 많지 않지만,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가게들에는 10월 초의 색이 먼저 걸려 있네요.
니트, 코트, 진열대 위에 올려진 머플러들.
릭사엘:(방향지시등을 켜고 적당한 자리에 주차하며) 잠시만 기다려. 금방 올게.
유스텐:(끄덕) 응... 기다릴게, 자기야.
릭사엘:(이젠 네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호칭에 심장이 덜그럭덜그럭 거린다) ...빨리 올게. 보고 싶으니까.
떨어지기 아쉬운 듯 당신의 얼굴을 진득하게 훑던 릭사엘이
당신의 뺨에 쪽 뽀뽀하고는 운전석에서 내립니다.
근처 아울렛으로 들어가는 걸음이 빠릅니다.
잠시 떨어지는 게 그렇게나 안타까운지.
차 안에는 히터가 약하게 돌아가고
당신이 안전벨트를 풀고 좌석에 몸을 묻으면
유리창에 비친 당신의 모습이 살짝 비칩니다.
...안절부절 못하는 얼굴입니다.
릭사엘이 빨리 돌아오면 좋을 텐데...
.
.
.
아울렛 안은 넓은 복도와 함께 사람이 붐빕니다.
끊임없이 들리는 대화 소리와 매장마다 불규칙하게 섞인 음악 탓에
묘하게 소란스럽네요.
릭사엘은 그 사이를 다소 조급한 걸음으로 누비며
유리 너머로 보이는 마네킹들을 훑습니다.
첫 매장...
릭사엘:(컷도 좋고 원단도 나쁘지 않은데 색이 너무 어둡네)
두 번째 매장...
릭사엘:(실루엣은 괜찮은데, 이건 장식이 많네. 유스 주면 안 입겠어)
세 번째 매장...
릭사엘:(요즘 유행하는 디자인이긴 한데, 너무 도전적이야. 유스는 평범한 걸 좋아하니까 다른 곳으로...)
릭사엘은 둘러보는 옷마다 옷걸이를 한 번 밀어보고
디테일을 꼼꼼히 확인하며 조용히 고개를 젓습니다.
유스텐이 입을 만한 옷이 잘 보이지 않네요.
항상 무채색의 어두운 옷만 입고 다니니까
얼굴빛에 맞게 밝은 색감을 사다주고 싶은데...
편하다고 해서 흐트러져 보이지 않고,
단정하다고 해서 딱딱해 보이지도 않을 옷이 어디...
릭사엘:
기준치:50/25/10
굴림:59
판정결과:실패
통로를 한 바퀴 돌 즈음,
몇 번 시선이 붙잡힙니다.
눈에 띄는 외양과 고급 원단으로 차려입은 차림새 탓인지
아울렛 내부 명품 브랜드 직원들이 릭사엘이 매장을 둘러볼 때마다 달라붙습니다.
“혹시 찾으시는 스타일이 있으신가요?”
"고객님, 안녕하십니까. 여기 새로 들어온 라인인데요-"
붙잡고 원단과 핏, 브랜드 전통을 설명하려는 직원들을 헤치고
릭사엘은 끝까지 듣지 않은 채 계속 아울렛을 돕니다.
단순히 손님이 아니라 '고객'으로 분류하는
상담을 전제로 한 시선,
구매를 가정한 말투.
본인 입을 옷을 고르는 일이라면 결정이라도 쉽게 했을 텐데
그저 비싼 것만 내미는 직원들을 무시하는 건 정말이지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던 중, 평소에는 전혀 눈길 주지 않았던 브랜드가 눈에 띕니다.
귀여운 하트에 알파벳이 받치고 있는 형태 로고를 가진
사랑스러운 디자인의 니트, 가디건, 후드가 주력 상품인 매장입니다.
게다가 색감도 과하지 않아서 딱이네요.
릭사엘:(이거랑, 이거랑, 이거랑, 이거랑, 이거랑... 맞다, 바지도. 청바지, 면바지, 슬랙스...)
(...너무 많나?)
(아 신발. 유스 사이즈가 7.5에서 8 사이였지... 그럼 이거랑, 이거랑, 이거랑-)
(빨리 가서 보여줘야지. 급하게 카운터로 돌아간다)
카운터로 향하면 직원이 활짝 웃는 얼굴로 릭사엘을 반깁니다.
그리고는 릭사엘이 건네는 옷을 받아 능숙하고 빠르게 포장해
쇼핑백을 주렁주렁 내밀어줍니다.
릭사엘:(일단 이 정도면 괜찮겠지...?)
쇼핑백을 손에 들고 아울렛 출구로 나서면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유스텐이 생각납니다.
지루해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어서 가야겠죠.
.
.
.
한편...
유스텐, 당신은 따뜻한 히터 바람에
노곤노곤하게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릭사엘:(운전선 문을 달칵 열고 들어온다) 많이 기다렸어, 자기?
(열 댓 개는 되는 쇼핑백을 내밀며) 자, 여기.
유스텐:(꾸벅꾸벅 졸다 깜짝 놀라며) 힉, ...
...?
너 무슨... 가게 하나 털었어?
릭사엘:종류별로 몇 개만 샀어. 한 번 봐봐.
유스텐:"몇 개만" ...?
'어차피 옷은 사야 되긴 했으니 뭐... 적당히 세일 코너에서 털어온 거겠지?'
이렇게 많이 샀는데 돈은 괜찮았어?
릭사엘:괜찮아. (슬쩍 영수증을 뒤로 감춘다)
유스텐:그래? 고마워, 나중에 내가 꼭 보답할게.
(쇼핑백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상의만 살 줄 알았는데 바지랑 신발까지 샀어?
릭사엘:응, 당장 필요할 것 같아서.
유스텐:필요...하기는 하지.
자기 덕분에 내일 백화점 안 가도 되겠다.
릭사엘:몇 벌 안 되잖아. 지금 다 캐주얼 의류만 샀는걸.
내일 좀 더 포멀한 걸로 몇 벌 더 사자.
유스텐:아, 그렇지. 홈커밍 때 입을 거 사려면 어쨌든 가긴 가야되겠네.
근데 왜 다 밝은 색이야? 이 색밖에 없었어?
릭사엘:자기 밝은 색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유스텐:이런 색상은 잘 안 입어봤는데... 네가 고른 거라니까 잘 입을게.
많이 힘들었겠다. 솔직히 한 벌만 사고 금방 올 줄 알았거든.
릭사엘:자기 입히면 귀여울 것 같아서 고르다 보니 이것저것 샀어.
편하게 입어. 원단 좋은 거라 어디 거슬리지 않을 거야.
유스텐:(네 말을 듣고 쇼핑백에 들은 것 중 하나를 슬쩍 꺼내 만져본다) 우와... 진짜네. 까슬거리는 느낌이 전혀 없어.
세일 코너에서 이런 좋은 게 남아있었다고?
릭사엘:...? 세일 코너?
유스텐:응?
당연히 한데 모아두고 파는 세일코너에서 고른 거 아니었어?
릭사엘:예뻐서 사온 건데, 그렇게 보여?
유스텐:어... 그래 보이는 건 아니긴 하지? 엄청 예뻐.
릭사엘:다행이다. 그럼 됐어.
유스텐:왜 내가 갈 땐 이런 게 없었지?
네가 운이 좋은가봐!
릭사엘:(저렇게 눈 반짝거리는데 5000달러 계산하고 왔다는 얘기는 절대 못하겠다) 그...
...
...아니야. (네 손을 한 번 꼭 쥐며) 갈까?
유스텐:응! '새 옷 느낌 진짜 좋다.' (만지작만지작...)
다음에는 내가 자기 옷 골라줄게!
릭사엘:정말? 그거 영광인걸.
유스텐:내일 백화점 갈 때 골라주면 되겠다. '내가 샀을 때처럼 적당한 거 말고... 명품 이월 상품 코너에서 골라야지.'
릭사엘:기대할게. (네가 제 옷을 골라주며 들여다봐주는 상상을 하자 기분이 좋아서, 가볍게 라디오를 틀고 액셀을 밟는다)
.
.
.
차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점점 한산한 도로로 접어듭니다.
가로등 간격이 넓어지고, 창밖 풍경에서 상점 간판이 사라집니다.
대신 나무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고,
차창을 스치는 바람 소리만 일정하게 따라옵니다.
릭사엘은 말없이 운전대에 손을 얹고 있습니다.
속도를 줄이는 타이밍이 정확합니다.
급하지도, 망설이지도 않는 운전입니다.
당신은 조수석에 앉아,
한낮의 내리쬐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가을 하늘빛이 청명하고도 곱습니다.
릭사엘:거의 도착했어.
시선을 다시 내려 도로가 맞닿은 지면을 바라보면
릭사엘의 말이 끝나자마자 [Marsh Creek State Park]라 쓰인
표지판이 스쳐 지나갑니다.
공원 입구로 이어지는 길은 생각보다 조용합니다.
나무들이 차선을 감싸듯 비켜서 있고,
바람에 살랑거리는 잎사귀가 반짝반짝 빛납니다.
지잉- 가볍게 조수석 쪽 창문을 열자
호수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리는
물기 섞인 공기 냄새가 날아옵니다.
풀 내음이 고요하게 섞인 그 향기가
편안하고도 정취있게 느껴집니다.
곧 주차장이 보이고, 릭사엘은 가볍게 빈 자리에 차량을 댑니다.
멀찍이 몇 대의 차가 듬성듬성 주차되어 있습니다.
주말이라 그런지 적지만 나들이객이 있는 모양입니다.
릭사엘이 브레이크를 밟고 기어를 P에 넣은 뒤
엔진 시동을 끄자 주변의 정적이 바로 밀려듭니다.
갑자기 세상이 넓어진 듯한 착각이 드네요.
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풀잎 사이를 스치는 바람에
품에 가볍게 안겨 있는 나들이 점심 바구니까지
새삼 두근두근 가슴이 설레어옵니다.
릭사엘:주말이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사람이 많지는 않나 보네. (안전벨트를 풀어내고 상체를 기울여 네 안전벨트도 툭 풀어준다)
유스텐:그러게. 계획보다 좀 늦게 출발해서 주차할 곳도 없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냥 여기서 옷 갈아입어도 되겠다.
릭사엘:괜찮겠어? 담요라도 차 밖에 두르고 있을까?
유스텐:괜찮아. 밖에서 얼마나 안이 안 보이는지는 내가 직접 꼼꼼하게 확인까지 했는걸.
게다가 담요 두르면 그게 더 사람들 호기심 자극하지 않을까?
릭사엘:음... 확실히 맞는 얘기네.
(쇼핑백 안을 슬쩍 뒤적이며) 어떤 거 입을래? 이건 어때? (네 앞에 파란 하트와 꽈배기 두 줄이 들어간 하얀 울 스웨터를 내민다)
유스텐:으음- 평소 입던 거랑 너무 달라서...
이상해보이면 어쩌지?
릭사엘:귀여울 거야. 이상하면 얘기해줄게.
유스텐:알았어.
... 이상해도 입을게!
ㅈ, 자기가 고생해서 사준 거니까...
릭사엘:귀엽긴... (작게 중얼거린다)
바지는 청바지?
유스텐:응... 아니면 자기가 추천하고 싶은 거 있어?
릭사엘:그건 아니고, (쇼핑백에서 청바지 하나를 더 꺼내며) 자기가 입고 있는 것도 괜찮고, 방금 사온 이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유스텐:(네가 꺼낸 걸 받으며) '청바지가 거기서 거기 아닌가?' 응.
?? 뭐지?
청바지가 원래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는 거였어?
릭사엘:질 좋은 걸로 골랐으니까. 어서 입어 보고, 신발도 신자.
유스텐:'다음엔 나도 세일코너 갈 때 꼼꼼하게 발굴해봐야겠다.' 응.
뭐랄까... 기분 이상하네.
전신을 애인이 골라준 걸로 입었다고 생각하니까.
릭사엘:(피식) 내일도 골라줄 건데?
유스텐:내일도?!
(시무룩) 혹시 나 옷 못 입는 편이야?
반 년 동안 지켜봤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해줘.
릭사엘:못 입는 게 아니라, 어둡게 입길래.
자기는 얼굴이 예뻐서 밝은 게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자기가 옷 못 입는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유스텐:그래? 다행이다.
이런 거 말해줄 사람이 없었으니까... 옷도 후줄근한 거 입는데 못 입기까지 했으면 슬펐을 것 같거든.
...근데 내 얼굴이 예쁘게 생겼어?
릭사엘:...응, 보면 설렐 정도로.
유스텐:남자답게 생기지는 않았잖아...
릭사엘:그래서 고민이야?
유스텐:고민...까지는 아니고. 어차피 얼굴을 뜯어고칠 수는 없잖아.
릭사엘:고칠 방법이 있다 해도 싫어. 이 얼굴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얼굴이란 말이야. (쪽)
유스텐:내 얼굴이 딱히 매력있는지는 몰랐는데 영광이네.
(장난스런 목소리로) 교내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홈커밍 킹 유력 후보에, 남녀 가리지 않고 모두의 사랑을 한꺼번에 받는, 영국 왕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귀족. 릭사엘 벨손드의 첫사랑 자리를 차지했으니 말이야.
릭사엘:그렇게 말하니까 꼭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잖아.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깜찍한 유스텐 애쉬미어의 연인이란 호칭이 제일 좋은데, 난.
유스텐:하하, 그럼 그것도 포함해서.
릭사엘:좋아. (쪽쪽)
유스텐:그럼 이제 슬슬 옷 갈아입으려고 하는데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릭사엘:...나?
유스텐:(끄덕)
릭사엘:... 밖에... 나가있을까?
유스텐:...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지금 입은 옷 안에 뭐 더 없어.
보고 싶어?
릭사엘:... 그... (보고 싶기는 한데 지금 보면 안 될 것 같다. 내가 무슨 상상까지 해버릴지 몰라) ... 고개 돌리고 있을게.
유스텐:으응...
(네가 고개 돌리는 걸 확인하고는 천천히 상의부터 벗는다. 잠시 제 몸을 보며 갈비뼈를 만져본다. ) '내 몸에 대해 그동안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너무 볼품없게 말랐나? 근육은 좀 있는데.'
'헬스장을 끊을 수는 없으니 공원에서 러닝이라도 뛰어야 하나? 릭스 집에 운동기구는 없었던 것 같은데.' (릭사엘이 꺼내줬던 스웨터를 펼쳐본다)
유스텐:
관찰력
기준치:55/27/11
굴림:51
판정결과:보통 성공
스웨터 디자인이 귀엽고 앙증맞습니다.
이런 옷은 입어본 적이 없지만, 릭사엘의 취향 같으니
한 번 입어 볼까요.
옷에 먼지라도 묻을까 조금 걱정이지만...
그때 당신의 시야 끝에 무언가 달랑거립니다.
아직 떼지 않은 가격표네요.
[Amor Paris $420]
유스텐:히익...!! '미, 미친...! 사백이십달러?!!!' (혹시 이월상품일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고 스티커가 덧붙여진 흔적은 없나 살펴본다)
꼼꼼히 살펴봐도 다른 스티커는 없습니다.
스웨터 안쪽을 살펴보면 값비싼 브랜드임을 입증하듯
여러 장의 상품품질인증과 다개국어로 된
태그가 붙어있는 걸 빼고는요.
게다가 제조일자를 보면 이번 시즌 신상이네요.
릭사엘:(고개를 돌리고 있다가 네 숨 들이키는 소리에 놀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유스텐:이 , 이거... 세일 코너에서 산 게 아니야???
릭사엘:... ...
(한 발 늦게...) 가격표가 있었지 참...
(네 몸을 보지 않으려 애쓰며 손을 뻗어 가격표를 훅 뜯어낸다) 자기는 아무것도 못 본 거야.
오케이?
유스텐:다 봤는데 이걸 어떻게 못 봐...
릭사엘:이미 뜯었잖아. 춥겠다, 어서 입어.
유스텐:안 돼... 입었다가 올이라도 나가면 어떡해? 찢어져버리면 어떡해?!
릭사엘:또 사줄게.
유스텐:그건 안 돼!!!
릭사엘:그럼 버려?
유스텐:(바들바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을 거야. 다시 매장으로 가면...
릭사엘:(잠시 고민하다가 바지 뒷주머니에 접어 넣은 영수증을 꺼내 네 앞에서 세로로 쭉 찢는다)
입고 나가자. 데이트 해야지.
유스텐:(쿠궁 - 소리가 머리에서 울리고 입이 떡 벌어진다) 너- 너....
(찢어버린 영수증이 든 네 두 손을 붙잡아 제게 확 당긴다) 안 돼에에에... 마지막 희망이...
릭사엘:선물이잖아. 환불하는 게 어디 있어. 안 돼. 돌아가.
유스텐:(조각난 영수증을 잡으며) 그래도 잘 맞춰서 테이프로 붙이면 괜찮을지도 몰라...
릭사엘:...진짜 환불할 거야? 나 진짜 열심히 골라왔는데.
유스텐:그, 그치만... 이건 너무너무 비싼걸...
릭사엘:무리해서 산 거 아니야. 괜찮대도.
당신이 바들바들 떨며 어떻게든 영수증을 붙여보려 하면
그제서야 영수증에 계산 총액이 보입니다.
[Total $5410.20]
유스텐:(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크게 뜬 채 경악한다) 오, 오오오천 사백 달러????
릭사엘:(네가 영수증을 붙들고 놀라는 틈을 타 쇼핑백을 다 빼앗아들고 탁탁탁 가격표를 죄다 뜯는다)
유스텐:뭐뭐뭐하는 거야?? 안, 안 돼.
(충동적으로 몸을 내던져 매달리듯 네 허리를 꼭 붙잡는다)그러면 안 돼!!
릭사엘:(마지막 가격표까지 다 뜯어내고 네 손에 쇼핑백을 안겨주며, 대신 네 손에 붙들려 있던 영수증을 휙 채간다) 밖에 버리고 올게. 입고 나와.
유스텐:(잔뜩 절망하는 목소리로 손을 뻗는다) 안 돼에에에.... 내 환불 증거가...
릭사엘은 당신에게 버리고 온다는 말만 남기고
쏜살같이 주차장 인근 쓰레기통을 찾아 떠납니다 (...)
운전석 쪽 문이 닫히는 달칵 소리만 남자
당신만 덩그러니 차 안에 남습니다.
이를 어쩌죠.
어쩌겠어요... 입는 수밖에.
유스텐:나쁜 릭스...
그냥 원래 입던 걸 입을까? 으으... 저거 이제 환불도 못 하는데 역시 입어야 하나?
(스웨터를 흘긋거리며) ... 촉감이 엄청나게 좋긴 했지.
입으면 더 좋을까?
(주섬주섬 다시 스웨터를 들어올려 혹시라도 늘어날까 싶어 조심조심 입는다) '어차피 환불도 못하고, 선물이니까...! 그리고 궁금하기도 하고... 정말 입어보기만 하는 거야.'
당신이 꼼지락꼼지락 스웨터를 입어보면
가볍고 사뿐하고 보드라운 원단이 몸에 착 붙습니다.
이건... 이건.
구름 위에 누워 있는 것 같습니다.
겨드랑이나 목 부분이 불편하지도 않고
마치 안 입은 것처럼 산뜻합니다.
소매도 당신의 팔에 꼭 맞네요.
입자마자 얼마 되지도 않아 옷이
당신의 체온을 따라 뭉근하게 데워집니다.
값비싼 옷은 다르긴 다르군요...
벗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유스텐:(가르랑거리며 좌석 위에 몸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구름으로 옷을 만들면 이런 느낌이려나? 엄청 폭닥폭닥하다...
약하게 실내를 데우는 히터 바람에
몽글몽글 따뜻하고 부드러운데다 색까지 예쁜 옷이 합쳐지니
굳이 나들이로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유스텐:품질 좋은 옷은 이런 거구나... 으으... 이런 귀한 것에 익숙해져버려... 안 돼... (눈을 감고 스웨터를 만지작거리며 혼자서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한다)
(힐끔) 바지도... 입으면 이런 느낌일까?
(널부러진 청바지를 다시 줏어 한참을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은 데이트니까... 릭스가 입으라고 준 거니까...! 오늘만... 오늘만 입자.
(원래 입고 있던 바지를 벗으며) 오늘만 입고 옷장에 영원히 봉인하는 거야. 때가 타면 안 되니까... '먼지 낄 수 있으니 유리 보관함이라도 구해야 하나?'
별의별 생각을 하며 새 바지를 입으면
청 재질인지라 상의만큼 부드럽지는 않지만
이 옷도 몸에 착 감깁니다.
접히는 옷 솔기라든가 바늘땀이 없네요.
게다가 뻣뻣하지 않아서 움직임이기도 용이해보입니다.
도로 벗어서 원래 옷으로 갈아입기 아쉬울 정돕니다.
당신이 새 옷 자락 여기저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곧 어딘가에서 영수증을 처분한
릭사엘이 돌아옵니다.
릭사엘:(조수석 문을 달칵 열고 들여다보며) 다 입었네. 어때?
유스텐:(스스로를 끌어안고) 무지 좋아...
릭사엘: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자기 지금 정말 예쁘고 잘 어울려.
(쇼핑백을 뒤적여 올화이트 컬러의 스니커즈를 꺼내며) 신발도 마저 갈아 신고 산책하러 가자. 밖에 날씨 좋아.
유스텐:(흠칫하며 그제서야 자신이 주책맞게 좋아했다는 걸 깨닫는다. 헛기침을 하고 새침하게 신발을 받는다) ...이번만이야.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릭사엘:오늘도 특별하고 내일도 특별하고 매일매일 특별한 날이래도. (네 몸을 살짝 틀어 바깥쪽으로 향하게 하고, 바닥에 가볍게 무릎을 대고 앉아 네 낡은 신발을 벗긴다)
유스텐:... (신발 신겨주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툭 던진다) 너 진짜 왕자님 같아.
릭사엘:(네 낡은 신발을 벗기고 새 신발을 가지런히 건네받아 신기며) 내가 왕자님이면 자기는?
유스텐:나?
나는... 지금 상황으로 치면 신데렐라 아닐까?
스스로를 신데렐라라고 칭하려니까 이상하네.
릭사엘:신데렐라는 공주잖아. 자기는 남자니까 왕자님 해.
최고 통치자가 더 좋으면 왕도 괜찮겠다.
유스텐:그치만 왕실에서 왕자가 왕자랑 사귀는 이야기는 없잖아.
난 왕자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사람도 아니고...
릭사엘:안 어울린다고 누가 그래. 내가 보기엔 잘 어울려. (네 발에 신발을 곱게 신기고 상체를 일으킨다) 사이즈 잘 맞네. 이제 슬슬 걸을까? 언제까지 차에 있을 순 없잖아.
유스텐:그건 그래. 하아... 옷도 엄청 푹신한데 히터까지 트니까 자꾸 나른해지는 기분이야.
릭사엘:귀엽긴. 너무 나른하면 등에 업힐래? 조심조심 날라줄게.
유스텐:ㄷ, 됐어... 사람들이 다 쳐다볼 거 아냐.
... (머뭇거리며 네 눈치를 보다 뺨에 쪽- 소리가 나게 뽀뽀하고 순식간에 거리를 둔다) ...고마워. 이렇게 좋은 걸 많이 줘서.
그, 그럼 이제 진짜로 나갈까?
릭사엘:(네 입술이 닿았다 떨어지는 순간 입꼬리가 주체 못하고 솟아오른다. 등에 업고 다녀도 귀여웠을 텐데... 속으로 조금 아쉬워하며 조수석 문을 활짝 열어준다) 응, 가자.
유스텐:(네 손을 잡아 한 발짝씩 땅바닥을 딛는다) 와... 신발이 생각보다 되게 가볍다.
릭사엘:다행이다. 나도 내가 골라온 옷이 자기한테 잘 어울려서 뿌듯해.
유스텐:(탁 탁 소리를 내며 새 신발이 어색한 듯 제자리걸음을 해본다) 근데 내 사이즈는 어떻게 안 거야?
릭사엘:(차에서 점심 바구니와 가벼운 플란넬 담요를 챙겨 손에 들고는, 다른 손으로 네 손을 잡으며) 전에 자기 신발 세탁해줄 때 봤어.
유스텐:그걸 보고 기억했다고?? 아니, 그전에 세탁까지 했었어? 어쩐지 깨끗하더라니.
릭사엘:(종알종알 말이 많아진 네가 귀여워서 그저 웃으며 가볍게 너를 산책로로 이끈다)
산책로 입구를 지나자, 한낮의 호수 공원의 시야가 한꺼번에 열립니다.
햇빛은 과하지 않게 쏟아지고,
나무 잎 사이로 부서진 빛이 길 위에 점점이 떨어져 있네요.
아스팔트가 아닌, 단단히 다져진 흙길이 발밑에서 조용히 반응합니다.
걸음을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새 신발의 감촉을 확인하듯 발끝에 조금씩 힘이 들어갑니다.
가볍게, 거의 튕기듯 움직이는 걸음에
저도 모르게 시선이 아래로 떨어집니다.
릭사엘은 그런 당신에게 보폭을 맞춰 걷습니다.
맞잡은 손을 가볍게 살랑살랑 흔들며 걸으면
산책로를 가득 물들인 초록의 향기와 조금씩 물들어가는 단풍이 보이네요.
옅게 일렁이는 호수의 물결 위로 햇빛이 별빛처럼 잔잔히 부서집니다.
사람 소리가 벅차지 않은 곳입니다.
간간이 떨어지는 낙엽을 맞으며 걷다 보면
완만하게 이어지는 산책로 곳곳에 벤치가 놓여 있습니다.
그늘과 햇볕이 번갈아 나타나는 구간에
걸음을 늦추기 좋은 타이밍이 운 좋게 생겨나면
무심코 시선이 릭사엘에게 훅 쏠립니다.
그는 신이 난 당신을 바라보면서도 시선이 마주칠라 하면
조금씩 머쓱하게 주변 광경을 둘러보네요.
이제는 릭사엘의 저런 행동이
설렘을 감당하지 못해서라는 걸 어느 정도는 압니다.
유스텐:'귀여워...' 손에 들고 있는 거는 안 무거워? 내가 하나 들을게. 이것저것 많이 싸와서 무거울 것 같아.
릭사엘:(너를 돌아보며 수줍게 웃는다) 하나도 안 무거워. 자기 신발이 불편하진 않아? 새 신발이라 조금 걱정되네.
유스텐:(도리도리) 으응, 가벼워서 편하고 좋아.
... 그래서 , 어때? 첫 데이트 시작인데.
넌 여기저기 많이 다녀봤을 것 같아. 그럼 이런 곳은 익숙하려나...
릭사엘:웬만하면 집 근처나 학교 근처를 벗어나지 않아서, 나도 이런 곳은 오랜만에 와 봐.
지금 심장이, 엄청 뛰어.
유스텐:엄청 뛴다고? 아직 공원은 제대로 보지도 않았는데?
릭사엘:...자기랑 와서, 벌써부터 좋아.
유스텐:하하, 너 지금 엄청 뚝딱거리는 거 티나는 거 알아?
릭사엘:... (같이 마주잡은 네 손에서 살며시 꼼지락거리며) 그렇게 티나?
유스텐:그렇다니까 -
(두리번두리번) '아직 초입이라 그런가 사람은 잘 안 보이네.'
(발끝을 들어올려 네 뺨에 가볍게 뽀뽀하고는 씩 웃는다) 사실 나도 좋아. 이렇게 제대로 쉬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
릭사엘:(뺨에 가볍게 떨어지는 입술의 촉감에, 물에 닿아 녹아버리는 솜사탕처럼 가슴이 말랑해지는 기분에 너를 슬쩍 끌어안으며) 이런 데 데이트 자주 올까? 놀이공원도 가고, 바다 보러도 가고.
유스텐:그럴 수 있을까? 또 이럴 기회가 있을까??
릭사엘:물론이지. 나랑 여기저기 가자. (쪽) 자기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시간 뺄 수 있어.
유스텐:너무 재밌겠다!
근데 으음... 그만큼 아르바이트 시간을 뺄 수 있을지 모르겠네.
릭사엘:내가 자기 스케줄에 최대한 맞춰볼게. 천천히 생각해보자. (아, 사랑스러워... 충동적으로 또 네 동그란 정수리에 쪽 뽀뽀하고는 싱긋 웃는다)
그보다 배고프진 않아? 점심 시간이 조금 지났잖아. 이 근처에 피크닉 구역 있대.
유스텐:출출하긴 해. 아까 우리 둘 다 펑펑 울어서 그런가?
피크닉 구역?!
돗자리 안 가져오지 않았어?
릭사엘:그래서 혹시 몰라 담요 챙겨왔잖아.
유스텐:아! 돗자리 대용으로 가져온 거였구나.
너는? 배고파?
릭사엘:조금 출출하긴 해.
먹으러 가자.
유스텐:좋아!
산책길을 쭉 따라가다 보면
잔디가 넓게 펼쳐진 피크닉 구역이 보입니다.
그늘진 나무 아래에 몇몇 사람들이 간혹 피크닉을 즐기고 있긴 하지만
부지가 넓어서 멀기도 하고 신경쓸 정도로 많지도 않네요.
당신이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바구니를 맡아 들고 있으면
릭사엘은 챙겨온 두툼한 플란넬 담요를 잔디 위에 가지런히 펼칩니다.
산뜻한 베이지색 체크 무늬가 예쁘네요.
릭사엘:(네게 바구니를 건네 받아 근처에 내려놓고, 네가 풀밭의 돌부리에 다치치 앉도록 먼저 조심스럽게 앉힌다) 날씨 좋아서 좋다.
유스텐:(햇살을 구경하며 발을 쭉 뻗는다) 그러게- 좀 급하게 정해서 날씨가 어떤지 알아보지도 않고 온 건데.
릭사엘:(네 옆자리에 앉아 네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주며 웃는다) 자기 햇살에 취한 토끼 같아.
유스텐:(흘긋) 어딜 봐서 내가 토끼 같다는 거야? 난 토끼만큼 작지도 않고, 풀만 먹고 살지도 않는데.
릭사엘:작고 귀엽고 앙칼지고 툴툴거리고, 맛있는 거 주면 행복한 표정을 지어.
(조심스럽게 바구니를 열어 안을 살펴보며) 샌드위치 어떤 것부터 먹을래?
유스텐:(꿍얼) 내가 어딜 봐서 귀엽고 앙칼지고 어쩌고... 흥...
(꿍얼) 그러는 너는 동물로 치면...! (빤히 훑어보더니) ... '늠름한 동물밖에 안 떠오르잖아.' ... 비, 비버! 넌 비버 닮았어.
릭사엘:...? 그런 소리는 처음 들어보는데.
진짜?
유스텐:...
기, 기니피그...?
릭사엘:...?
일단 그럼 그런 걸로 하고, 샌드위치 어느 거 먹을래. 멜론 프로슈토, 블루베리 크림치즈, 햄 버터 채소. 이렇게 세 가지 싸왔어.
유스텐:아, 내가 고른 햄 넣은 거!
릭사엘:잠깐만. (바구니 안을 살펴보다가 종이 호일에 예쁘게 싸놓은 샌드위치를 건네주며) 자기는 기본 샌드위치를 제일 좋아하는구나.
유스텐:(샌드위치를 받아 호일을 벗겨내며) 정확히는 이 샌드위치용 햄이 좋은 거에 가까워. 맛있잖아.
릭사엘:(햄은 기본 햄이 취향이고...) 그렇구나. 어서 먹어봐. 난 그럼... (바구니에서 블루베리 크림치즈 베이글 샌드위치를 들며) 이거 먹어야겠다.
유스텐:(벌써 한입 베어물고 우물거린다) 블루베리 좋아해?
릭사엘:응, 좋아하지. 과일은 다 좋아해.
(네가 혹여 먹다가 목이 마를까봐 챙겨온 텀블러 마개를 열고, 따뜻한 밀크티를 잔에 따라 내민다) 목 마르면 마셔. 뜨겁진 않을 거야.
유스텐:(냠냠) 부자들은 다 스테이크 같은 거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 고마워.
릭사엘:(피식 웃으며) 그래서 오늘 저녁에 스테이크 먹기로 했잖아.
자기는 어떤 굽기가 좋아? 웰던, 미디엄, 레어.
유스텐:어...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고기는 다 익혀서 먹어야하는 거 아닌가? 남들 다 고르는 거로 할까.' 미, 미디엄?
릭사엘:그래? 난 미디엄 레어 좋아해.
유스텐:미, 미디엄 레어? 다 다른 거 아니었어?
릭사엘:레어도 좋긴 한데, 핏기가 너무 보이는 건 싫어서 그것보다는 조금 더 익혀 먹어.
집 가면 미디엄이랑 미디엄 레어 둘 다 할 테니까, 내 거 자기도 뺏어먹어.
유스텐:그래도 돼...? 고마워...
릭사엘:고맙기는. (샌드위치 포장을 벗겨 저도 한 입 먹기 시작한다)
바람이 잔디를 스치고,
멀리서 물가 소리가 희미하게 들립니다.
아삭한 채소와 풍미 좋은 햄, 버터가 든 샌드위치를 우물우물 씹고 있으니
그동안 끌어안고 살아온 모든 걱정거리가 다 녹아버린 듯한 착각이 듭니다.
가을 하늘은 청명하고 푸르르고
따뜻한 햇살이 보드랍게 몸을 감싸안은 기분.
간간히 당신을 자상하게 살피는 눈빛과 손길까지.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유스텐:'이렇게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꽤 좋을지도. 그동안은 시간 아깝단 생각했는데.' (어느새 샌드위치를 다 먹고 편하게 드러눕는다) 아 - 꿈 꾸는 것 같다. 현실감이 너무 없어.
릭사엘:(천천히 베이글을 베어물다가 네가 먼저 드러눕자 슬쩍 웃으며 제 것을 내려두고는 내 옆에 폭 드러눕는다. 네 이마를 간질이는 앞머리를 넘겨주자 드러난 이마조차 귀여워서 웃음이 샌다) 꿈 같아?
유스텐:(네쪽으로 돌려누워서) 너무너무 꿈 같아. 깨기 싫을 정도야...
릭사엘:(햇살에 화사하게 물든 네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이마에 가볍게 입 맞추며) 안 깨면 되지. 평생 재워줄게.
유스텐:평생...? (속눈썹을 내리깐 채 슬픈 표정을 짓는다) ... 그래도 그런 건 싫어. 꿈이라고 하면 언젠가는 이게 다 사라질 것 같아서.
나 정말 겁쟁이가 됐나봐.
릭사엘:(갑자기 또 침울해보이는 네 얼굴이 안쓰러워 눈가를 문질러주며) 꿈이 아니라 현실이야. 자기가 눈을 떠도 사라지지 않아.
겁쟁이가 되어버린 자기가 싫지 않다고 하면, 내가 너무 나쁘려나?
겁쟁이가 됐다는 건 나한테, 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랑 같은 뜻으로 들려서.
내가 아직 자기한테 많은 걸 안겨주진 못하지만, 대신 곁에서 매일매일 안아줄게. 지켜줄게. 혼자 힘들게 하지 않을게.
유스텐:(눈꺼풀을 스르르 들어올려 널 마주본다) ...정확히 봤네.
난 네게 많은 걸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아. 안 좋은 의미가 아니라... 지금 이렇게 너랑 느긋하게 시간 보내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거든. 이 느낌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어.
요즘은 미래를 한번씩 떠올리게 되는 거 있지.
(눈을 감으며) 내일 아침은 어떨까. 도시락은...
(어딘가 양심에 찔려서) 아, 나 지금 너무 밥 얘기만 하고 있지? 밥만 주면 다 좋다는 그런 건 아니고...
릭사엘:(키득키득 웃으며) 뭐 어때. 자기가 내가 만든 밥을 잘 먹어주면 나야 기분 좋지.
(그리고는 천천히 온유한 미소로 돌아가며) ...자기가 상상하는 미래의 유스텐은, 어떻게 살게 될 것 같아? 최악의 버전 말고, 제일 행복한 최고의 버전으로만 말해줘 봐.
유스텐:제일 행복한 버전...? 음...
...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말 안 할래.
릭사엘:왜 말을 안 해. 내가 자기 애인인데. (네 입술 양 옆을 집게 손가락으로 눌러 붕어입을 만들고는 피식피식 웃는다)
유스텐:(찌릿-) ... 말하면 네가 열받을 정도로 웃을 것 같아.
릭사엘:절대 안 웃을게. 약속.
유스텐:진짜? 웃으면 어떡할래?
릭사엘:소원 하나 또 들어줄게.
유스텐:좋아! 약속한 거다?
(옅게 숨을 내쉬며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입술을 달싹이다가) ... 결혼.
너랑 결혼해서 음... (멋쩍게 볼을 긁적이며) 어디 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신혼 여행도 가고... 또 이렇게 즐겁게 노는 게 갑자기 머릿속에서 떠올랐어.
혹시 너무 진부하거나... 유치할까?
릭사엘:(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네 손에 손깍지를 낀다) 아니. 유치하지도 진부하지도 않아. 그건 내 꿈이기도 한걸.
어디 정확히 가고 싶거나, 하고 싶거나 한 거, 있어?
유스텐:너한테는 별 것 아닌 일처럼 보일까봐 부끄러운걸...
릭사엘:아니야. 나도 못해본 게 얼마나 많은데. 말해줘, 듣고 싶어.
유스텐:... 비행기.
(부끄러워 반대방향으로 돌려누우며) 타서... 기내식 먹어보고 싶어.
식당만큼이나 맛있는 걸 기대하면 안 되는 것쯤은 알아.
그냥... 하늘에서, 끝없는 구름들을 보면서 식사하면 얼마나 좋을까 -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릭사엘:(귀여워... 네 허리에 손을 넣고 등을 꼭 끌어안으며) 그럼 타러 가자.
유스텐:으, 응? 어떻게?
릭사엘:비행기 표 예약하고, 공항 가서 탑승하고, 여행지 즐기고, 돌아오면 돼.
유스텐:갈만한 곳이 있어? 비행기 표도, 해외여행도 돈이 많이 들잖아.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니 두 배로 들텐데...
릭사엘:돈 걱정은 말고. 음- 어디로 가지. '어디 가봤는데 여기 좋더라' 하는 곳, 들어본 적 없어?
유스텐:음... 유럽이나 멕시코를 많이 들어봤어. 정확히 뭐가 좋은지는 모르지만.
릭사엘:그러면 이번 추수감사절 방학에 가는 건 어때.
유스텐:나야 좋지만, 너는 괜찮아? 추수감사절 방학은 짧잖아.
릭사엘:괜찮아. 나도 갈 곳이 없는걸.
카리브 해안으로 휴양 다녀오는 건 어때. 리조트 예약해서.
유스텐:리, 리조트까지?
그러면 나도 보탤게...!
릭사엘:괜찮아, 생각보다 큰 돈 들어가진 않을 거야. (쓰담쓰담) 자기가 힘들게 일해서 모은 돈이잖아.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는 일에 더 써. 그게 날 위한 거기도 해.
유스텐:알았어...
... 정말 고마워, 릭스. 어떻게 이 많은 걸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릭사엘:(피식 웃으면) 갚고 싶어? 그럼 뽀뽀.
유스텐:'여기서?!' 어디에...?
릭사엘:아무 데나. 자기가 원하는 곳에.
유스텐:너무해... 그렇게 대답하다니.
(수상한 일을 꾸미는 것처럼 이쪽을 보는 사람이 없는지 열심히 확인한다) ...
하아... 정말이지... ( 네 이마에 한 번... 으로 끝나는가 싶더니, 뺨과 코끝, 입술에 차례대로 빠르게 입을 맞췄다 뗀다.) '누가 보기 전에 빨리 해치워야 해!'
릭사엘:(그저 장난치려는 마음이었을 뿐인데 다급한 표정으로 얼굴 곳곳에 뽀뽀하는 네가 사랑스럽기 짝이 없어서 소리 내어 웃어버린다) 아하하...! 간지러워, 자기야...!
유스텐:우, 웃지마-...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그리고 내가 웃겨?
릭사엘:아니, 사랑해. (남들이 보든 말든 벅차올라서 네 입술에 쪽쪽 뽀뽀해버린다)
유스텐:(남 시선이 두려워 처음에는 네 어깨를 살짝 밀어 널 말리려 한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간질간질한 마음과, 구름 한 점 없는 날씨, 따스한 햇살, 네 행복해보이는 얼굴 때문인 걸까. 점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피식피식 웃음이 터져나온다.) 리, 릭스...! 자기야, 읍, 흐, ...푸흐, 아하하...! 간지러워!
릭사엘:(네 웃음소리에 맞춰 저도 히죽히죽 웃어버리고는, 마무리로 너를 꼭 껴안는다. 얘랑 꼭 결혼해야지. 반드시. 꼭.)
유스텐:(계속해서 작게 어깨를 들썩이며 웃다 진정될 때쯤 네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준다) ... 너도 이 순간이 꿈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릭사엘:(네 머리통을 꼭 끌어안고 뺨을 비비며) 응, 너와 하는 모든 순간이 꿈 같아.
유스텐:...그럼 우리 둘 다 이상해진 걸까. 시간은 뭘 해도 흐르고, 항상 같은 순간에 멈춰있을 수 없다는 걸 아는데도... 바보같이 영원을 꿈꾸게 돼.
이 모습 그대로, 아무런 걱정없이... 그저 평생을 이러고 있고 싶단 생각이 들어. 현실적으로 그런 건 불가능하단 걸 아는데.
릭사엘:여기서 평생 멈추면 안 되지. 우리 앞으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영원이라. 자기가 꿈꾸는 영원은 어떤 건데?
유스텐:음... 늙지 않은 상태에서, 근심 없이 시간을 무한 대로 즐기는 거?
아마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절대 못 잊지 않을까? 널 처음으로 제대로 보기 시작하고... 네가 이렇게 웃는 모습을 말이야.
죽을 때가 되면... 다시... 생각날... 것 같... (둘 중 하나가 병에 걸리거나, 늙거나 사고가 나서 죽거나... 갑자기 미래를 상상하니까 슬퍼져서 눈물을 뚝뚝 흘린다)
어떡해? 갑자기 너무너무 슬퍼...
릭사엘:...이런. (네가 울먹거리다가 눈물을 툭툭 흘리자 당황하면서도 부드럽게 닦아내어준다. 영원과 죽음, 사고... 그런 것들을 머릿속 한켠에 지우고 살아왔던 탓에 네게 무어라 말을 해야 좋을지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네 몸을 부드럽게 껴안고 등을 쓸어주며) ...쉿. 괜찮아, 지금 내가 옆에 있잖아.
무서워도 슬퍼도 괜찮아. 그게 당연한 거야. 나도 어떤 방식으로든 너와 헤어질 걸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
불가피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 하는 흐름이라면, 후회 없게 하자 우리. (눈물로 흠뻑 젖어가는 네 얼굴을 소중하게 쓰다듬으며) 슬퍼하면서 보내기엔 같이 있는 시간이 소중하잖아.
유스텐:(우느라 전체적인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고 네 품 안에서 작게 떨며) 너랑 헤어지기 싫어...
릭사엘:(가슴이 저리듯 아파와 너를 꼭 껴안으며) 헤어지지 않을 거야. 말했잖아, 관에도 같이 들어가자고.
유스텐:진짜 터무니없는 헛소리라 생각했는데...
(훌쩍) 역시 엄청 큰 관이 있어야겠어.
릭사엘:(보듬보듬) 킹 사이즈로 할까?
유스텐:평생 거기서 살아야하니까 더 크게...
릭사엘:알았어, 제일 크게. (보듬보듬) (쪽쪽)
유스텐:... ...
사람들이 봤을까?
나 우는 거.
릭사엘:멀어서 못 봤을 거야. (쓰담쓰담)
유스텐:...
이제 아기라고 부르는 거 금지할래.
너 때문에 자꾸 그렇게 되잖아.
릭사엘:(그것 때문이 아닌 것 같지만) 알았어, 안 부를게 내 사랑.
(보듬보듬)
유스텐:분명 처음엔 네가 더 아기처럼 굴었는데...
릭사엘:그러게. 이게 인생 역전이구나 싶네. (쪽쪽)
유스텐:놀리기는...
릭사엘:난 자기가 아기처럼 굴 때가 좋은데. 날 믿고 의지해준다는 것 같아서.
유스텐:... 이미 의지하고 있는걸.
나도 네가 아기처럼 구는 거 또 보고 싶어.
릭사엘:자기한테도 그런 취미가 있는지 몰랐어.
음- 어쩐다. 난 정말로 잘 안 우는 편인데.
유스텐:어쩌지... 그럼 또 울려야 하나?
릭사엘:그러고 싶어? (꼬옥...)
유스텐:울리는 취미는 없지만... 난 네가 귀엽게 안기는 것도 좋단 말이야.
릭사엘:귀엽게 안기는 건 언제나 해줄 수 있는데도?
유스텐:어떻게 귀엽게 안기려고?
릭사엘:이렇게지. (상체를 꼬물꼬물 낮춰 네 품에 꼬깃꼬깃 들어가며)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자기랑 결혼할래, 나. (네 품에 고개를 묻고 애교부리듯 살짝 비빈다)
유스텐:으응? '이게 뭐야?' (예상치 못한 행동에 눈만 깜빡이다가) 지금... 애교부리는 거야? 천하의 학생회장님이?
릭사엘:(기껏 용기내서 아무렇지 않은 척 애교 부렸는데 반응이 시큰둥하자 민망하게 떨어진다) ...싫으면 안 하고.
유스텐:(떨어지려는 널 다시 끌어당기며) 말은 끝까지 들어줘야지 - 누가 싫대? 너무 귀엽잖아.
(이마에 쪽) 삐졌어?
릭사엘:(뺨을 물들인 채 네게 꼭 안긴다) ...아니. 안 삐졌어.
유스텐:(웃으며 네 머리 위에 코를 박고 체향을 한껏 들이킨다) ... 나도 네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릭사엘:(심장이 터질듯이 두근두근거려서 네 품에 얼굴을 파묻고 색색거린다) ... 자기가 한 말 이해될 것 같아.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
유스텐:(네 뒷머리를 쓰담쓰담하며) 하하, 역시 너도 그렇지?
릭사엘:(고개를 들어 네 얼굴을 바라보며 슬며시 웃는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도, 마음이 여기 영원히 머물고 싶다고 그러네. 우리 자기 간식도 먹여야 하고 호수에 보트 타러 가야 하는데.
유스텐:(갸웃) 보트...?
아! 까맣게 잊고 있었어.
릭사엘:(키득키득 웃으며) 바-보.
유스텐:그치만 잊어버리기 딱 좋잖아. (툴툴)
날씨는 화창하고, 지금 너랑 안고 있으니까 적당히 따뜻해서 기분 좋고, 가져온 도시락은 맛있고... 여기서 잘 수도 있을 것 같아.
릭사엘:(네 뺨에 부드럽게 쪽쪽거리며) 알지. 나도 지금 딱 좋으니까.
근데 이제 사람들 시선은 신경 안 쓰여? (살짝 턱짓해 멀찍이 피크닉 중인 사람들을 가리킨다)
유스텐:허... 그것도...! 잊어버렸어...
(뒤늦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이, 이제 떨어지는 게 좋을 것 같아.
릭사엘:(슬쩍 웃으며 먼저 일어나고 손을 뻗어 네 몸도 일으키며) 쿠키 먹을까, 이제?
유스텐:쿠키! 좋아.
릭사엘:(바구니에서 곱게 포장한 쿠키 봉투를 내밀며) 밀크티랑 같이 마셔. 먹다 보면 목 메일 거야.
유스텐:고마워. (신이 나서 봉투를 열어 별 모양 쿠키를 하나 꺼내든다) 너무 소중해서 먹기 아까워. 반죽이랑 굽는 건 전부 다 네가 했지만...
릭사엘:굽는 건 오븐이 알아서 해줬지. (먹다가 만 베이글을 다시 집어 먹기 시작하며) 내가 반죽하고, 자기가 모양 찍고, 오븐이 구워줬으니까 완벽한 협업이야.
유스텐:그런 거야?
(코앞까지 쿠키를 들여다보다가) 그럼 이게 우리의 합작인 거네. 2세 같다.
릭사엘:... (네 말에 귀까지 붉게 달아올라 입술을 달싹인다) ...그, 그런 발언을 갑자기 하는 게 어딨어.
유스텐:응? 이럴 때 쓰는 말 아니야?
릭사엘:2세... 라고 하니까 갑자기 상상하게 되잖아.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건 알고 있지만...
유스텐:불가능해도 상상하는 건 가능하잖아.
아 - 너 어릴 때랑 똑같이 생겼으면 좋겠다.
릭사엘:나 어릴 때 어떻게 생겼었는지도 모르면서...
유스텐:당연히 알고 말하는 거지. 액자에 아주 잘 걸어놨잖아.
아- 그렇게 작고 귀여운 애가 이렇게 길쭉해졌다니.
릭사엘:...그, 그건 또 언제 봤어...
(볼이 더 새빨갛게 부풀어오른다)
유스텐:(쿡쿡 웃으며) 거실에 대놓고 있는데 그걸 못 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볼살도 토실토실해서는... 어떻게 하면 이렇게 쭉쭉 자랄 수 있지?
릭사엘:(입술을 민망한듯 좌우로 번갈아 당기며) ... ... 자기 어릴 때 사진도 보여줘.
유스텐:으, 응? 내 어릴 때 사진?
어... 지금은 없어서 못 보여주고, 이따 집에 가서 찾아볼게. 딱히 들고 다니지는 않아서.
릭사엘:정말? (화색하며) 기대된다. 얼른 집에 가고 싶어졌어.
유스텐:진짜 유스텐이랑 데이트 나왔는데 집에 가고 싶어졌어?
릭사엘:음... (바람 빠진 웃음 소리를 내며) 아니. 지금 자기 보는 게 더 좋아. (쪽)
유스텐:(만족스럽게 웃으며) 그래야지.
흠...
(잠시 생각하는 듯 입을 다물었다가 이젠 주위도 안 살피고 네 입술에 입을 맞췄다 뗀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네 얼굴은 꽤나 잊기 힘든 외모니까 시선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어차피 전부 모르는 사람이잖아? 키스만 안 하면 되지 않을까?
릭사엘:(뭘 곰곰이 생각하나 했더니, 귀여운 생각을 했네. 귀여워...) 그런 거야?
유스텐:응. 말 되지 않아?
릭사엘:(쪽) 그러게. 우리 유스 똑똑해.
유스텐:...나 혹시 너 닮아가는 중인가?
릭사엘:어떻게 닮아가는 중인데? 똑똑해져?
유스텐:똑똑해지는 건 모르겠고 점점 뻔뻔해지는 것 같아.
릭사엘:(키득키득) 좋은 거야.
유스텐:원래 같았으면 밖에서 뽀뽀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네가 자꾸 하고 싶게 만들어. 난 잘 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릭사엘:못 참겠어? (쪽) 귀엽다니까...
유스텐:이래서는 집이랑 밖이랑 차이가 없잖아.
릭사엘:그래? 나는 참고 있는데.
유스텐:참고 있다고? 뭐를?
릭사엘:키스하고 싶은 마음.
유스텐:어, 언제부터?
릭사엘:글쎄, 자주.
유스텐:그, ... 그건 안 돼.
여기서 세우면 큰일난단 말야.
릭사엘:(볼이 발갛게 물든 채) 나도 알아. 그래서 더 안 하잖아.
유스텐:'이거... 잘했다고 칭찬해야 하는 건가?' 어...
(슬쩍) 집에 가면 하게 해줄...게.
릭사엘:(슬쩍) ... 어디까지?
유스텐:으, 응? 어디까지?
난 키스만 참는다는 걸로 이해했는데...
릭사엘:...지금은 키스만 참긴 하는데, 알잖아. 난 자기랑 키스하면 다른 것도 참기 힘들어지는 거.
유스텐:...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변태 같은 생각부터 들잖아. 여긴 밖인데.
릭사엘:(너와 시선을 맞춘 채로 바구니에서 쿠키 하나를 집어 네 입에 쏙 넣어주며 웃는다) 알았어, 그럼 이런 얘기는 그만.
밀크티 한 잔 마실래? 지금은 좀 식긴 했겠지만. (서늘하게 식은 잔을 내민다)
유스텐:'하아, 괜히 목 타네. 쟤는 저런 말을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거지?' 어어, 고마워.
(잔을 받아들고 쭉 들이킨다) 후... 좀 살 것 같네.
릭사엘:뭘 그렇게 긴장하고 있어.
...나중 가면 익숙해질 거잖아.
유스텐:(화끈 - ) 으음 - 그건 그렇겠지만, 아직 한 번도 안 해봤으니까 긴장하는 게 당연하잖아.
내가 동정이 아니었으면 좀 달랐으려나... 하아, 아직 할 것도 아닌데 머릿속이 엉망이야.
릭사엘:(음료를 마신 직후라 살짝 촉촉해진 네 아랫입술을 엄지로 부드럽게 당기며) ...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
유스텐:아직 제대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궁금하긴 하지?
애초에 난 내가 남자 좋아할 거란 생각도 안 해봤단 말야.
릭사엘:그건... 그렇지. 그래도 부담스럽지 않겠어? 자기는... 작잖아.
유스텐:어... 무슨... 뜻으로 말하는 거야?
릭사엘:...체구.
유스텐:(삐그덕삐그덕) ... 그, 그러니까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릭사엘:(네가 삐그덕거리기 시작하자 말을 더 고르기 시작하며) ... ... 삽입할 때, 버겁지 않겠냐고 묻는 거야.
유스텐:네, 네가 위고 내가 아래야?
릭사엘:... (원한 포지션이 이게 아닌가...?) 반대가 좋겠어?
유스텐:아, 아니... 그건 아닌데... '의외로 밑으로 가고 싶고 그렇진 않구나.' 어...
(꿀꺽) 너는... 넣고 싶, (도리도리) 들어오고 싶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하아...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릭사엘:그, 음... 나도 아직 해본 게 아니라 그것까진. 사실 혼자서도 내 몸에 손을 대본 적이 없기도 하고.
유스텐:그래도 선호도...는 있을 거 아냐. 자, 잠깐만 너무 이른가?
릭사엘:선호도... 그것도 자기랑 하면서 알아봐야 할 것 같아. 아직은 모르겠어.
유스텐:하아............ 나는 또, 네가 엄청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 했잖아.
릭사엘:자기랑 사귈 거라고 얼마 전까지 생각도 못했었는데 그럴 리가.
유스텐:그럼... 천천히 잘, 생각해 봐.
언제 할지 정하는 건 웃기지만, 이, 이런 건 조율을 해두긴 해야 할 것 같아서...
'어쩌다 대화 주제가 이렇게 됐지? 하씨... 동성 연인들은 보통 어떻게 정하는 거야, 이런 거를?'
릭사엘:음... 계획... 난 단순히 우리 둘이 원할 때 하는 거면 좋겠어.
유스텐:아, 아니... 내 말은... (밑입술을 깍 깨물며 눈을 꾹 감다가) 후... 네가 넣, 고 싶은 건지... 아니면 아래로 가고 싶은 건,지... 그런 것들...
릭사엘:그건... 난 자기 얼굴 보면서 하고 싶으니까... 아무래도 위지.
유스텐:아래에서도 위에 있는 사람 얼굴은 보이거든?
릭사엘:그보다는... (이런 발언 괜찮나...) 자기가 부끄러워하고 힘 풀려서 나른해진 표정 짓는 게 보고 싶어.
유스텐:그건...! ...
으으......... (흐느끼듯 웅얼거리며 무릎을 모아 끌어안고 그 안으로 고개를 더욱 파묻는다. 얼굴을 포함해 귀까지 빈틈없이 빨개진 채로) 그걸 상상했어...?
릭사엘:... 지금, 하고 있...지.
유스텐:그, 그렇구나... '집에 가면 진지하게 운동할 계획부터 세워야겠다... 아니, 내 몸에 대해 볼품없다고 생각할 애가 아닌 건 알지만... 아! 미치겠네! 어쩌다 이런 얘기로 흐른 거냐고...'
'자, 잠깐... 나 왜 "나도 박아보고 싶어!" 라고 말 못했지? 이건...너무 이상하잖아. 둘 다 동정이고, 나는 당연히 남들처럼 평범하게 여성을 좋아할 거라 생각했으니 내가 위인 쪽도 생각하는 게 정상 아닌가? 왜 아무런 말도 못한 거지?' (흘끔) '근데 저 덩치를 박으라고 하면? 좀... 당황스러울 것 같긴 해... 애초에 저쪽이 사이즈,...가 더 크기도 하고... 아니 아니! 뭐라는 거야, 유스텐! 큰 게 남자한테도 좋을지 어떻게 아는데?!'
릭사엘:(한참이나 말이 없어진 네게서 민망하게 시선을 피하며 바구니를 뒤적거린다) ...타르트 먹을래?
유스텐:그래...! 디저트나 먹자. 음...
릭사엘:(타르트를 담아온 케이크 박스를 열어 네 입가로 내밀며) ...아.
유스텐:'이 상황에서 먹이려고 한다고? 방금 우리 섹스 얘기 했는데?! ...지금 보니 손가락은 왜 저렇게 길고... 예쁘게 생긴 거야?' ㄴ, 내가 알아서 먹어도 되는데...
릭사엘:내가 먹여주고 싶어서.
(그러면서도 네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유스텐:머, 먹여ㅈ... (온갖 이상한 의미의 먹여주는 걸 상상해버리고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릭사엘:(네 늘어지는 말 끝에서 묘한 분위기를 읽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먹여줘?
유스텐:'이걸 대체 어떻게 대답해야 해?!!!' 어, 어어...
릭사엘:(네게 물들기라도 한 건지 함께 민망해하며) 입, 벌려야지.
유스텐:'난 왜 이걸 순순히 들어주고 있는 건지...' ㅇ, 아... (뻣뻣하게 입을 조금만 벌린다)
릭사엘:(조심스럽게 네 입에 미니 타르트를 베어물리려다가, 네 입술 감촉이 손끝에 닿자 살짝 파르르 떨며) ...더 벌려야지, 유스.
유스텐:'크, 큰일났다... 입이 굳어버렸어.' ...타르트가 너무 큰 것 같아.
릭사엘:(네가 무슨 상상을 하는지 짐작이 가서 한입 크기로 작은 타르트를 슬며시 바라보다가) ...괜찮아, 다 들어가.
유스텐:'뉘앙스가...' (눈을 반쯤 내리깐 채 타르트에 시선을 고정하고 반사적으로 혀를 살짝 내밀어 입을 더 벌린다. 묘한 분위기 때문인지 이것은 그저 타르트일 뿐이고, 한입에 담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잊어버린다.)
릭사엘:(더 벌어진 네 입술 안쪽에 타르트를 내려놓다가, 혀끝이 손가락에 스치는 감촉에 미묘한 열감을 느껴 입술을 움찔거린다) ... 그렇게 긴장 안 해도 돼. 지금 잡아먹겠다는 것도 아니잖아.
유스텐:(뒤늦게 타르트를 오물거리다 꿀꺽 삼키고는 뺨을 붉힌 채로) ... 나도 아는데, 자꾸 야한 생각이 드는 걸 어떡해.
릭사엘:(잠시 스쳐가는 바람 따라 입술을 다물었다가) ... 대체로... 무슨 생각인데? 내가 자기 안에 들어가는 생각?
유스텐:(생각보다 노골적인 말에 쿨럭거리며 손등으로 입을 가린다) 어, 어떻게...! 아니, 꼭 그런 건...!
릭사엘:... (고개를 숙여 달콤하게 물든 네 입술에 제 입술을 겹쳤다 떼며) ... 아니야?
유스텐:(입술을 달싹이다가) 네, 네가 먼저 이상한 얘길 꺼내서 그렇잖아...!
릭사엘:... 정확히 어떤 말?
유스텐:괜히 체구 얘기를 꺼내서...! 흐으... (울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인다)
릭사엘:(흥분으로 인해 입술이 살짝 마른 와중에도 그런 네가 사랑스럽게만 느껴져서 꼭 껴안으며) ...쉿. 진정해.
유스텐:너는 왜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구는 거야? 억울해...! ㅇ, 왜...! 나만 이렇게 부끄러운 거냐고...
릭사엘:(네 귀에 입술을 슬쩍 붙이고 머뭇거리며, 작게 한숨을 불어넣다가) 부끄럽지 않은 게 아니라...
...흥분했어.
유스텐:흐... 흥분했다고...? 날 놀리려던 게 아니라?
릭사엘:...응.
유스텐:(흥분했다는 말에 슬금슬금 시선이 네 사타구니 쪽으로 향한다) ...
릭사엘:(민망하게 떨어지는 시선이 부끄러워서 살짝 골반을 뒤로 밀며) ...말 하자마자 구경부터 하는 거야?
유스텐:이, 일부러 보려던 건 아니고, 그, ... 미안...!
릭사엘:뭐라고 하려던 건 아니고...
...어쨌든 자기 건데, 뭐.
유스텐:그, 그래... '나도 달려있는 건데, 왜 쓸데없이(?) 궁금해지는 거냐고... 미치겠다. 제정신이 아니야.'
... 너도 했어?
그런... (돌려돌려 말하는 제스쳐를 하며) 알잖아. 그렇고 그런 생각...
릭사엘:(머릿속이 너와 나눈 대화와 야한 생각으로 차올라서, 눈동자를 떨며 풀밭의 살랑이는 풀잎 위로 시선을 애써 고정시킨다) ...이러다가 데이트는 커녕 집에 갈 때까지도 눈 못 마주치겠어.
그야... 당연히 했지.
(입술을 달싹이며) ...나도 한창 건강할 때야, 자기야.
유스텐:알지. 나랑 동갑이니까... 성욕도 별로 없는 편이라 들었고, 무엇보다 네가 그런 상상하는 게 신, 기해서...
(이런 대화를 이런 곳에서 해도 되나 싶지만 계속되는 궁금증에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손을 꼼지락거리다 눈동자를 스르르 굴려 널 바라본다) 무슨... 상상을 했어?
혹시 불편하면 얘기하지 않아도 돼...
릭사엘:불편한 건 아니고... (잠시 머뭇거리며, 공공장소에서 이런 대화를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혼란스러워하다가 눈을 딱 감고 입을 연다) 자기랑 할 때... 자기가 얼굴이 붉어진 채로 걱정하면서도 기대하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보는 걸 상상했어.
밖에서 꺼낼 얘기는 아니긴 하지... 내가 요즘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자기랑 있으면 별의별 상상이 다 나.
유스텐:(한 쪽 팔을 매만지며) 으음... 그렇지. 밖에서 얘기할 주제는 아니긴 해.
나도 마찬가지니까 우리 둘 다 똑같은 거 아닐까? 아마도 첫 연애라서 좀... 이것저것 생각하고 기대하게 되나봐.
릭사엘:(부끄러운 듯 입술을 살짝 말아넣다가 떼며) ...기대도 돼?
유스텐:음... 솔직히 말하면, (끄덕)
릭사엘:(고개를 끄덕이는 네 모습이 예뻐서, 속눈썹을 떨며 살며시 도로 다가가 입 맞춘다) ...기대만 할 거야? ...난 언제든 네 건데도.
유스텐:(입을 벌려 긴장어린 숨을 들이마시며) ... 그 말은... 내가 원하면 어제든지 할 수 있다는 것처럼 들려.
그게 당장 오늘이라 해도...
릭사엘:(아주 느릿하게 고개를 숙여 네 입술을 다시금 베어물었다 떼며) ...그럼, 제대로 알아들은 거네.
유스텐:너는... 그래도 괜찮은 거야?
항상 나한테 맞춰주기만 하잖아.
릭사엘:(코끝이 닿을 듯 숨결이 섞이는 거리에서 고요히 숨을 내쉬며) 그야 네가 원하는 걸, 나도 원하니까. 그뿐이야.
유스텐:... 아주 오래 전부터 원했다는 뜻이야? 그저 내가 원하길 기다리는 거고...
릭사엘:그건 아니지만 너랑 있으면... 더 닿고 싶은 충동을 참기가 힘들어. (붉어진 얼굴로 눈만 차분하게 깜빡이며) 무슨 뜻인지... 알겠어?
유스텐:... 이해했어.
(고개를 뒤로 젖히며) 하아... 우리 진짜 이상해진 것 같아.
릭사엘:(작게 피식피식 웃으며) 그러게. 자기 때문 아니야?
유스텐:너 때문이 아니고?
네가 먼저 날 유혹했잖아.
릭사엘:자기가 먼저 귀여움으로 날 유혹했잖아.
(쪽) 이렇게 귀여운데 사랑에 안 빠지고 배겨?
유스텐:(피식) 난 가만히 있었는데 - 이상하네.
그렇게 따지면 다른 사람들도 날 귀여워해야 하는 거 아니야?
진짜 사랑스러운 건 너지.
릭사엘:'귀엽다'에 이어서 '사랑스럽다'까지... 살면서 한 번도 안 들어본 말을 요즘 많이 듣네. 날 그렇게 보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어.
유스텐:너 말고는 날 좋아하는 사람은 딱히 못 봤는걸. 그에 비해 넌 푹 빠지는 사람들이 많으니, 내 쪽 의견이 더 신빙성이 있는 거 아니겠어?
릭사엘:그렇게 날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데도 내 눈에 자기 하나만 보인다는 사실이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는 사실을 도리어 입증하는 건 아니고?
유스텐:윽. 그 말 조금... 설득력 있으면서도 묘하게 약오르는데.
네가 인기가 아주 많은 걸 알고 있다는 거잖아.
인기 많은 내가 유스텐 애쉬미어라는 사람에게 반했으니- 영광인 거 아니냐 같은!
릭사엘:나 스스로 인기가 많다는 걸 알고는 있지. 그래도 몇 번을 돌아가도 너밖에 안 보였을 거야.
난 널 사랑할 수밖에 없는걸.
유스텐:...듣다 보니까 뭐랄까. 사실은 나, 암암리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드네.
잠깐... 나도 이상해진 건가? 나도 나 자신에 취하고 있는 건가?!
릭사엘:...안 돼. 누가 좋아한다고 해도 안 돼. (너를 품에 꼭 껴안으며) 자긴 내 거란 말이야.
유스텐:당연히 너랑 사귀니까 난 네 거지. ...근데 다른 사람이 날 좋아하는 것도 싫어?
릭사엘:(꼬옥...) ... 친구가 생기는 건 좋은데, 다른 사람이 자기를 넘보는 건 싫어. 자기를 상대로 이런저런 생각을 할 거 아냐.
유스텐:그렇겠지?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걱정할 사람은 네가 아니라 오히려 나 아니야?
난 키도 작고 남자답게 생기지도 않았잖아.
릭사엘:...그래도 세상에 귀여운 사람이 취향인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자기는 그중에서 제일 귀여워서 더 안 돼.
유스텐:그, 그런가...? 게이들도 너 같은 애를 많이 좋아할 것 같은데.
릭사엘:다른 애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쪽)
유스텐:애인이 인기가 없는 게 좋아?
릭사엘:그건 아니지만... (힐끔) 안 그래도 나만 보고 싶은데 다른 애들이 이성적 감정으로 바라보는 건 싫지.
이런 생각이나 하면 내가 너무 나쁜 걸까...
유스텐:딱히 나쁘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질투하는 게 귀엽기도 하고, 너도 내 마음을 이해하는 것 같아서 좋아.
릭사엘:...자기도 질투라는 걸 해?
유스텐:...? 그럼 안 할 줄 알았어?
릭사엘:그건 아니지만 대놓고 얘기할 수준까지인지 몰랐어.
유스텐:나를 뭘로 보는 거야... (툴툴)
불편해?
릭사엘:아니, 안 불편하지. 나도... 좋은걸.
근데 생김새 때문에 사람을 피하는 건 힘든데 ...나 성형수술 할까.
유스텐:뭐?!!!
절대 안 돼!!!
릭사엘:어... 어?
싫어?
유스텐:반대로 내가 성형수술 한다고 하면 흔쾌히 허락할 거야?!
릭사엘:(좋다거나 그냥 그렇다고만 할 줄 알았다)
...아니. 그건 아니지.
유스텐:그런 거라고!
릭사엘:알, 알았어. 진정해.
유스텐:2세로 남기지도 못하는 게 아까울 정도인데 너는...
릭사엘:... 자기 생각보다 내 얼굴 훨씬 좋아하는구나.
유스텐:...
(슬슬 시선을 피하며) 보다 보니까 정이 너무 많이 들었어.
내가 잘난 외모만 보는 그런 아주 차별적인 사람이 아니라! 정이 많이 들었을 뿐이야.
릭사엘:(꾸역꾸역 변명하는 네가 귀여워서 키득키득 웃으며) 그냥 좋다고 해도 돼. 자기야. 티나.
유스텐:...
좋아.
릭사엘:응, 나도 좋아.
유스텐:이목구비가 뚜렷해서 마음에 들어.
릭사엘:(쪽) 자기 거야.
유스텐:(여전히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눈도... 되게 예쁜 푸른 색이라고 생각했어.
머리색도 그렇고... 머릿결도 좋,고...
릭사엘:(귀여워... 사랑스러워) 자기 거야.
유스텐:그렇게 조그만 얼굴에 눈코입이 어떻게 다 들어가는지 신기해. ...입술도 그렇고.
...그냥 볼 때도 부드러워 보였는데, 키...스할 때도 엄청...
(슬쩍 몸을 옆으로 옮기며) 나 이 얘기 그만할래...
릭사엘:(너를 뒤에서 껴안으며 어깨에 턱을 괴고는) 왜 그만해. 나 잘 듣고 있었는데.
유스텐:들을 거 다 들었잖아...
넌 되게 당연한 걸 들은 것처럼 말하네. ... 열받아.
릭사엘:(피식) 자기가 좋아해주니까 기쁜 거야, 그냥.
유스텐:... 넌 진짜... 제대로 빚어서 나온 사람 같아.
사기야.
얼굴 말고 다른 부분도 그렇게 정교할지 가끔은 궁금해.
...
(뒤늦게 뭔가 이상한 말을 했다는 걸 눈치채고는) 아니, 내 말은
아냐.
릭사엘:그럼 보면 되지.
유스텐:그런 게 아냐.
릭사엘:(키득키득) 보면 되짆아.
유스텐:(화끈...) 아니라니까.
릭사엘:방금 전엔 궁금하다며.
진짜 안 볼 거야?
유스텐:...
나, 나중에...
야, 너는... 네가 벗어야 하는 입장인데 하나도 안 부끄러워?!
릭사엘:분위기 무르익은 상태만 아니면 딱히 부끄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유스텐:(궁시렁) 바보...
릭사엘:(키득) 내 몸 보여주는데 나보다 자기가 부끄러워 하는 것 같아.
유스텐:너 대신 부끄러워 해주는 거거든?
릭사엘:정말?
유스텐:정말.
릭사엘:나 안 부끄러우니까, 집 가면 볼래?
유스텐:... (꿀꺽 - )
모, 몰라. 봐서.
가서 생각해.
릭사엘:(피식) 알았어.
유스텐:슬슬 보트인가 그거나 타러 가자...
릭사엘:그러는 게 좋겠어. (주변을 가리키며) 사람이 좀 많아졌거든.
유스텐:(어색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얼른 정리하자.
차에서 잠깐 찾아봤는데, sup이나 카약 같은 걸 대여해주는 것 같더라. 지금 철새 이동 기간이라서 여러 새도 볼 수 있을 거래.
릭사엘:(눈을 크게 떴다가 이윽고 잔잔해지며) 꼼꼼히 찾아봤나 보네. 고마워. (귀여워...)
유스텐:네가 찾는 나룻배는 없더라. 괜찮아?
릭사엘:음... (뒤늦게 고민한다) 카약은 뒤에 탄 사람 얼굴이 안 보이지 않아?
유스텐:음... sup이랑 카약, 카누 다 그런 형태긴 하지?
세일보트도 대여 가능한 것 같긴 한데... 이거 선착순이래.
그리고 조건이 몇 개 붙었던 것 같은데... 조종법을 알아야지 빌려주는 것 같았어.
배 조종할 줄 알아?
릭사엘:
rolling 1d2
(
1
)
=
1
조종하는 법은 알지. 음, 그럼 확인해야 하는 건 세일링 보트가 있나 없나겠네. 한번 가서 물어보자.
유스텐:'보트도 조종할 줄 안다고...?' ㄱ,그래.
흔쾌히 보트 조종하는 법을 안다고 하니
신기한 마음이 듭니다.
당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다리면
릭사엘은 곧 간식과 샌드위치가 남은 바구니를 들고 일어나고
풀밭에 펼쳐두었던 담요를 곱게 접어 허리에 끼웁니다.
자연스럽게 호숫가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 보입니다.
SUP나 카약만 있다는 이야기에
잠시 고민했던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당신과 마주 보고 보트를 타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세일링 요트가 있다니 다행이네요.
피크닉 구역을 벗어나자 발밑의 흙길이 조금 더 단단해지고,
멀리서 물결 부딪히는 소리가 일정한 리듬으로 들려옵니다.
말없이 나란히 걸어도 걸음이 같은 속도를 지닙니다.
호수에 가까이 다가가 보면
호수 위에는 이미 몇 척의 세일링 요트가
하얀 돛을 펼친 채 천천히 움직이고 있네요.
대여장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안내 표지판과 구명조끼가 가지런히 걸려 있습니다.
나무로 지은 작은 건물 앞에서 직원이 서류를 정리하고 있고,
계류된 요트들은 물 위에서 조용히 몸을 흔들고 있네요.
대여 창구로 다가가면 직원이 서류를 꺼내며
무엇을 도와드릴까 여쭤봅니다.
릭사엘이 세일링 요트를 현재 대여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릭사엘:
기준치:50/25/10
굴림:85
판정결과:실패
안타깝게도 지금은 남은 요트가 없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그래도 곧 반납 시간이 거의 다 된 요트 대여자가 있어
10분만 기다리면 탑승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릭사엘:(너를 돌아보며) 기다릴까?
유스텐:10분이면 금방이지. 기다리자.
릭사엘이 대여 의사를 밝히자 직원은
서류의 항목을 체크하며 이용 시간을 묻습니다.
몇 시간 정도 탈까요?
유스텐:이 곳, 노을지는 게 예쁘다고 듣기는 했지만... 집이랑 거리가 있어서 고민되네.
릭사엘:차 끌고 가면 집까지 금방이니까 괜찮을 거야. 저녁까지 타고 갈까?
유스텐:괜찮아? 꽤 긴 시간인데... 네가 지루하다 느낄 수도 있어. 게다가 그만큼 대여하면 돈도 많이 들 거고...
릭사엘:괜찮아. 요즘 일몰 시각이 7시니까, 6시 반까지만 타고 돌아올까? 해 지기 전에는 내려야지.
유스텐:좋은 생각이야...!
릭사엘:(귀여워... 창구 직원을 향해) 6시 반까지 대여할게요.
직원은 릭사엘의 대답에 서류를 내밀고
이름과 서명을 적어달라고 합니다.
곧 릭사엘이 서류 작업을 마쳐 직원에게 돌려주자
직원이 간단한 안전 수칙을 알려주고는
대여비는 선불이라고 하네요.
"시간 당 50달러로, 총 200 달러입니다"
유스텐:오오오오십????!
릭사엘:(카드를 내밀어 태연하게 계산한다)
유스텐:'무슨 배 한 시간 대여하는데 50달러나 받는 거야?!'
리, 릭스? 이거 아닌 것 같은데.
릭사엘:응? (이미 계산을 마치고 카드를 돌려받는 중)
아. 신경쓰지 마. 세일링 요트 대여비는 원래 워낙 비싸. 여기가 저렴한 편이야.
유스텐:여기가 저렴한 편이라고?!!
릭사엘:(피식 웃으며) 막상 타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유스텐:어어...
릭사엘:밖에서 잠깐 기다리고 있자. (네 손을 쥐고 잠시 부두 근처로 향한다)
릭사엘의 옷 주머니로 들어가는 예약 확인서를 멍하니 보며
호수 부두 인근으로 걸어가면
나무 판자 사이로 스며든 물빛이 발밑에서 잔잔히 흔들리고,
묶여 있는 보트들이 바람에 맞춰 미세하게 몸을 흔듭니다.
호수는 여름의 흔적을 말끔히 정리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옅은 금빛과 붉은 기운이 가장자리에 번져 나온 잎들이
색색깔로 호수 위에 비칩니다.
햇빛은 수면을 비스듬히 스치며
반짝임 대신 길고 부드러운 광택을 남기고 있네요.
릭사엘:(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며) 나들이 나오니까 좋다. 바람도 졸고.
유스텐:그러게... '보트 대여하는 게 엄청나게 비쌀 줄은 몰랐어...'
넌 보트 운전하는 법을 어쩌다 알게 된 거야? 아까 들어보니까 대여를 꽤 많이 해본 것 같은데.
릭사엘:배우기만 한 거지, 대여를 자주 해보진 않았어.
어머니께서 요트 세일링을 가끔 하셨던지라 기회가 돼서 배웠을 뿐이야.
유스텐:어머니께서 뭔가 이것저것 많이 다양하게 하시는 편이었나 보네.
릭사엘:아버지는 정적이고 집에 있는 걸 좋아하셨는데, 어머니께선 사교 활동을 즐기셨거든. 나도 자주 데려가셨고.
(피식) 어릴 땐 집에 붙어 있는 사람이 아버지밖에 없었지.
유스텐:두 분은 꽤나 다른 것 같아. 어쩌다 만나게 되신 거야?
릭사엘:(날아오는 낙엽 하나를 공중에서 잡고는) 듣기론 아버지가 어머니께 첫눈에 반해서 구애하셨다고 알고 있어. 친우들 등쌀에 참석한 사교회에서 처음 만났던 걸로 기억하는데, 너무 어릴 때 들어서 내 기억이 정확한지는 잘.
아, 가족 사진 봤으니 알겠지만 난 어머니를 닮은 편이야. 어머니께선 아름다우셨지. 결혼 후에도 구애하는 사람이 많았고.
유스텐:그럴 것 같긴 했어. 그럼... 아버지를 닮은 부분은 뭐라고 생각해?
지금까지 말해준 걸로는 성격도 어머니 쪽을 더 많이 닮은 것 같아서.
릭사엘:음, 그렇긴 해. 내가 아버지 닮은 부분이라면... (공중에서 잡아챈 낙엽을 네게 내밀며) 첫눈에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영원을 맹세하는 사람이라는 거?
사실 아버지께서는 어머니를 만나시기 던 가문끼리 정해진 혼약자가 이미 있으셨었다고 들었어. 그러다가 어머니께 첫눈에 반해서 상대가 대답을 아직 해주지도 않은 사랑 때문에 약혼을 파기하셨었대. 뭐, 근데 더 들어보니 그 결정적 한 방이 어머니께 감동을 줘서 연애적으로 만나게 된 거라곤 하더라.
유스텐:그거 정말... 엄청난 로맨스 스토리잖아. 아, 실존 인물로 이런 감상을 남기는 건 실례인가. 영화 같아.
... (네 얼굴을 바라보다 네가 내민 낙엽을 건네받는다) 사람 설레게 하는 것도 유전인가...
릭사엘:(피식 웃으며, 네 손에 건네준 낙엽이 부스러지도록 네 손에 꼭 깍지를 쥔다) 그런 것 같아?
유스텐:(끄덕) 그렇게라도 설명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네. 너희 부모님의 러브 스토리 말야.
그 시대는... 내가 알기로 파혼도 쉽지 않은 시대 아니야?
마음보단 실리적 이득을 위한 결혼이 많은 걸로 알아.
릭사엘:그렇긴 했지. 아마 그때 그 약혼도 실리적 이유였을 거야. (까지 말하고 저도 웃긴 사실에 피식피식 웃으며) 그런데 그 약혼자보다 우리 어머니 더 신분이 높았었어. 레이븐데일 공작님의 늦둥이 여동생이셨거든, 어머니께서. 어떤 면에서는 아버지께서 결혼을 성공하신 거지.
유스텐:(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럼... 너희 아버지는 사랑도, 영광도 쟁취하신 거네? 난 어머니 쪽이 신데렐라 같은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릭사엘:응, 재밌지?
유스텐:응. 동화 속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어.
난 두 분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정말 행복하셨을 것 같아.
릭사엘:음- 행복하셨던가? 나 어릴 때 어머니께서 늘 주말에 나들이하자고 하시면 아버지께서 바빠서 안 된다고 하셨는데. 어머니께서는 투덜거리면서 앞으로는 아들이랑만 데이트하러 갈 거라고 데이트 하고 싶으면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어야 데이트해줄 거라고 하셨어.
아, 물론 다음날쯤 되면 아버지께서 정말로 싹싹 빌긴 하셨지.
유스텐:하하! 그게 뭐야...
꼼짝도 못 하잖아.
릭사엘:(키득키득) 뭐, 그래도 한쪽은 과감하게 투덜거리고 한쪽은 싹싹 빌고 했던 해프닝 생각하면 사이는 좋으셨던 것 같아.
유스텐:(키득거리다가 부드럽게 미소짓는다) ...너는 어땠어?
부모님의 러브스토리를 들었을 때 말야. 부모님과 함께했을 때는?
릭사엘:나? 이런 구제불능들이 내 부모님이라니- 했지. 그때는 어려서 아버지도 이해 안 가고 어머니도 이해 안 갔거든.
...이해하게 된 지 사실 얼마 안 되긴 했지. (깍지낀 손가락을 움직여 네 손톱 윤곽을 쓸어낸다)
유스텐:뭐 - ? 원래는 어떤 생각을 했길래 그런 로맨스를 듣고도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한 거야?
릭사엘:합리적이지 못하잖아, 그런 충동적인 결정은. 아버지께선 어머니가 받아주실지 아닐지도 모르면서 대뜸 파혼부터 하셨고, 어머니께선 '내가 그렇게 좋다는데 한번 만나나 주자' 하신 것도 그렇고.
유스텐:으음 - (멋쩍게 웃으며 눈을 데구르르 굴린다) 뭐, 맞는 말이기는 하지. 그래도 낭만 있잖아. 아버님께서는 거절 당할 가능성도 생각하셨겠지. 파혼할 정도로 어머님이 너무 간절하고 좋았던 거라 생각해.
릭사엘:...이제는 알지. 다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구나를 널 만나면서 알게 됐으니까.
유스텐:부모님 얘기하다 어째 내가 고백 받은 기분이 드는데? 기분 탓인가?
릭사엘:... 당연히 고백으로 들려야지. 나 이런 말 하는 거 쉽지 않아.
유스텐:(피식) 알지. 나도 그런 말은 잘 못 하는걸. 네가 제일 잘 알잖아.
하루도 빠짐없이 새로운 멘트로 고백받는 기분이네.
릭사엘:(슬쩍 웃으며) 마음엔 들어?
유스텐:처음엔 당황스러웠는데, (눈을 스르르 감고) 갈수록 기대하게 되네. 내일은 또 어떤 예상치 못한 고백을 하려나-
아, 너희 부모님 이야기...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이야기랑 크게 다를 게 없잖아? 그분들은 스케일이 크고 우리는 작지만.
릭사엘:그런가? 그래?
유스텐:아버님이 약혼한 사람이 있다면, 네게는 정해진 파트너가 있었다는 차이지?
릭사엘:그렇게 따지면 맞을지도 모르겠네.
유스텐:... 부모님을 구제불능이라 생각하냐며 네게 뭐라 할 처지가 아니었던 것 같아.
이번 일은 솔직히... 나만 일주일 정도 참으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릭사엘:(네 손등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아냐. 나야말로 독단으로 결정해서 미안하지. 사귀는 사이인데, 통보처럼 이야기했잖아.
사실 자기가 속상해할 거라는 생각을... 못했어. 그때는 나를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서. ...미안, 변명치고는 치졸하지. 그때는 그게 널 위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앞으로는 속상한 일 절대 없도록 할게. 약속해.
유스텐:(네 손을 확실하게 맞잡고는) 내쪽에서 화를 내기는 했지만... 사실 나도 알고 있었어. 네가 어떤 마음으로 그랬는지.
내가 정말 속상했던 건... 네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내 상황도 싫었고, 너는 정말...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사람인데 나 하나 때문에 네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을 하는 게 싫었어. 그게 다야.
... 으음, 좀 민망하다. 어쩌다 이런 얘기를 하게 됐더라?
우리가 타기로 한 보트가 반납된 것 같은데 슬슬 갈까?
릭사엘:(잠시 시간을 확인하며) ...음, 그러게. 반납되고도 20분은 지났겠다. 이제 타러 가자. 일단 타고 나서 호수 한 바퀴 돌까?
유스텐:그러자. 호수가 꽤 넓으니까 그렇게만 해도 시간 금방 갈걸.
릭사엘:좋아. (네 손에 단단히 깍지를 끼고 대여소로 다시 향한다)
예상 시간보다 늦게 배 번호가 달린 열쇠를 건네 받으면
바로 출항 가능하다는 말이 따라옵니다.
릭사엘은 별다른 반응 없이 열쇠를 손에 쥐고
당신과 잡은 손은 놓지 않은 채로 번호를 확인하고는
먼저 요트에 올라타 당신을 요트 위까지 안전하게 태웁니다.
대여된 세일링 요트의 외관은 군더더기 없이 단정합니다.
선체는 짙지 않은 흰색으로 칠해져 있고,
햇빛을 받으면 표면에 잔잔한 광택이 맺힙니다.
오랜 사용 흔적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긁힘이나 마모는 잘 관리된 상태라 전체적으로 깔끔한 인상입니다.
당신이 위를 바라보면 높지는 않지만 곧은 마스트가 서 있고
돛은 접힌 채 단단히 묶여 있습니다.
돛천은 밝은 색으로, 바람을 받으면 쉽게 부풀어 오를 것처럼 팽팽하네요.
물결 따라 선체가 아주 얕게 흔들리자
가슴이 콩닥콩닥 설레어 옵니다.
계류줄을 풀고, 릭사엘이 선미 쪽에 올라 엔진의 시동을 걸면
짧은 진동과 함께 낮은 소리가 울리고, 배가 서서히 힘을 얻습니다.
릭사엘:
항법
기준치:55/27/11
굴림:53
판정결과:보통 성공
당신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부두가 조금씩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요트는 천천히 호수 안쪽으로 나아갑니다.
수면 위에 길게 늘어진 파문이 뒤따르고,
반짝이는 물방울 알갱이가 섞인 풍랑이
시원하게 뺨을 적십니다.
릭사엘은 속도를 과하게 올리지 않은 채
호수의 윤곽을 따라 부드럽게 방향을 잡습니다.
요트가 물과 하늘이 맞닿은 경계를 한 바퀴 훑는 움직임.
그 안에 탑승한 당신들만이 세상의 중심인 듯한 기분이 듭니다.
유스텐:(설렘을 주체하지 못해 앉은 채 종아리를 앞뒤로 달랑거린다) 아- 경치 좋다.
릭사엘:(사랑스러워...) 타보니 어때. 마음에 들지?
유스텐:응. 호수에도 사람이 많을까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네.
릭사엘:그랬어? (귀엽긴... 걱정꾸러기라니까) 이리 와서 틸러 잡아볼래?
유스텐:그, 그래도 돼? 잘못 건드렸다가 고장이라도 나면... (안절부절)
릭사엘:고장 안 나. 무서우면 익숙해질 때까지 같이 잡아줄게. 이리 와. (어서 와서 잡으라는 뜻으로 손을 내민다)
유스텐:으응... (머뭇거리다 네 손을 잡는다)
릭사엘이 손을 뻗어 틸러가 중심이 바뀌자
선체가 미세하게 기울고 수면 위의 파문이 뒤로 밀려납니다.
당신이 조심조심 릭사엘의 손을 잡고 틸러로 다가가자
선미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틸러는 생각보다 단순한 모양입니다.
조타석 뒤쪽에서 곧게 뻗은 나무 하나가 손바닥으로 감싸쥐기 좋게
매끈하게 닳아 있습니다.
복잡한 계기판도 요란한 장치도 없네요.
이 작은 막대 하나가 지금 이 요트의 방향을 전부 맡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당신이 한 걸음 더 다가서자
보트 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이
발바닥으로 느껴집니다.
당신이 옆에서 잠시 구경하고 있으면
릭사엘이 시범을 보이듯 틸러를 옆으로 살짝 기울입니다.
아주 작은 움직임인데도 선체가 미세하게 반응하네요.
릭사엘이 왼쪽으로 당기면 배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틀고
오른쪽으로 당기면 다시 반대로 방향을 잡습니다.
힘이 아니라 각도의 문제라는 걸 보여주듯이요.
당신이 조심스럽게 틸러를 잡으면
손바닥 아래 전해지는 감촉은 단단하고,
물 위에 떠 있는 물건을 잡고 있다는 느낌보다
무언가 살아 있는 걸 건드린 듯한 기분이 듭니다.
릭사엘:(네 손 위에 제 손을 겹쳐 쥐며) 보니까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진 않지?
유스텐:생각보다... 할만한 것 같아!
릭사엘:응, 그럼 같이 해보자. 저쪽 호수 외곽 라인 따라 한번 돌까?
유스텐:(끄덕끄덕!)
당신의 손 위로 겹쳐쥔 릭사엘의 손은
덮어쥔다기보다는 위치를 잡아주는 느낌입니다.
손가락이 당신의 손가락 옆으로 자연스럽게 맞물리고,
엄지가 틸러 위를 따라 가볍게 얹힙니다.
힘은 거의 들어가지 않았는데,
존재감은 분명합니다.
릭사엘:(사랑스럽기만 한 너를 슬며시 바라보다가 다시 정면을 보며) 자, 오른쪽으로 틀자. 그러면 뱃머리가 왼쪽으로 갈 거야. 세게 안 쥐어도 돼. 가자.
그의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립니다.
당신의 움직임에 맞춰 릭사엘의 손도 함께 움직입니다.
조금만 틸러를 당겨도 배가 반응하고,
그 반응이 손을 통해 다시 전해집니다.
두 사람의 손이 같은 방향으로 힘을 주자, 틸러가 분명한 반응을 보입니다.
배는 즉각 방향을 틀며 호수를 가릅니다.
물살이 선체 옆면을 치고 지나가고, 속도가 붙으면서 바람이 얼굴을 세게 스칩니다.
순간적으로 요트가 더 기울자, 수면이 한쪽으로 확 쏠려 보입니다.
몸이 공중에 살짝 뜨는 감각과 함께 긴장이 치밀어 오르고,
심장이 빠르게 박동합니다.
그럼에도 당신의 손을 부드럽게 쥔 릭사엘의 손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쉬이익-!
물 위에 남은 거친 흔적이 천천히 퍼져 나가고,
숨이 한 박자 늦게 따라옵니다.
릭사엘:잘하고 있어. 한번 더 꺾을까? 이번엔 왼쪽.
방금의 스릴이 남아 있는 손끝을 떨며 당신은 틸러를 다시금 쥡니다.
릭사엘의 손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놓지 않습니다.
필요 없을 때까지,
혹은 당신이 스스로 놓을 때까지.
배는 여전히 바람을 타고 빠르게 미끄러집니다.
다시 한 번 각도를 틀자 선체가 물살을 상쾌하게 가르며
분수가 솟구치는 것처럼 물방울을 튀겨 올립니다.
호수는 잔잔하고,
하늘과 물의 경계는 흐릿합니다.
지금 이 배의 방향을 정하는 손은 당신의 것이지만,
그 위에는 언제든 함께 움직일 준비가 된 릭사엘의 손이 겹쳐 있습니다.
이렇게라면 문득 조금 흔들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가 함께 잡아주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
.
.
요트는 급한 선회를 마치고 다시 직선으로 나아갑니다.
방금 전까지 팽팽하던 바람이 돛을 스치고 지나가며 힘을 풀어 놓고,
수면 위에 남았던 물결도 뒤쪽에서 천천히 정리됩니다.
분수처럼 튀어 올랐던 물방울이 다시 호수로 떨어지며 짧은 소리를 남깁니다.
찰나의 소란이 지나가자, 주변은 거짓말처럼 고요해집니다.
손끝에 남은 떨림이 길게 이어집니다.
릭사엘:(조심스럽게 틸러를 쥔 네 손에서 제 손을 놓으며) 어땠어?
유스텐:재... 재미있어...!
릭사엘:자기가 좋아할 줄 알았어. (쪽)
유스텐:뭔가 엄청 까다로운 걸 한 것도 아닌데 이거 하나로 배가 움직인다는 게 신기해.
릭사엘:귀엽긴... 해보니까 별 것 아니지?
유스텐:응! 이거로 다른 나라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아.
음... 현실적으로 그건 무리인가?
릭사엘:바다에서 타면 다른 나라 갈 수 있지.
자기한테 배 조종술을 자세하게 가르쳐야겠는걸. 다른 나라까지 가려면.
유스텐:우리 마음대로 다른 나라 가도 돼?
릭사엘:(키득키득) 안 되지. 밀입국이잖아.
유스텐:그럼 조종술을 배우는 의미가 없잖아. 해양경찰한테 붙잡혀버릴 거야.
릭사엘:의미 없기는. 취미로 얼마든지 하면 되지.
자기가 이렇게 배 타는 걸 좋아하니 나중에 크루즈 타고 여행 가도 괜찮겠다.
유스텐:(눈이 엄청나게 커진다) 크루즈??!
그거 막... 억만장자들만 타는 거 아니야?
서로 무지 비싼 드레스랑 정장 입고... 한 손에는 샴페인 잔 들면서 되게 품격있는 대화 나누고...
릭사엘:그거는 크루즈 홀에서 파티가 있을 때나지. 하루 종일 드레스랑 정장만 입을 순 없잖아.
유스텐:(꼼지락...) 영화에서 그랬단 말이야...
카지노도 있고... 갑자기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거나, 바다 깊이 자리잡은 빙하에 부딪혀서 사고가 난다거나...! 막, 해적들한테 인질로 잡히거나...
(슬쩍) 크루즈가 그런 거 아니야?
릭사엘:...귀엽다니까, 진짜... (귀여워, 귀여워...)
우리 애기 영화 많이 봤네. 귀여워라. (쪽)
유스텐:애기 아니거든?! 애기가 그런 영화를 어떻게 보냐?
(삐죽) 그리고 너는 애기랑 키스하고 야한 상상 할 수 있어?
추,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 아니야? 영화니까 거의 연출이겠지만 되게 그럴싸했단 말야.
릭사엘:(피식피식 웃으며) 알았어. 그럼 누구 말이 맞나 내기할래?
유스텐:지금? 이자리에서?
내가 불리한 거 아니야? 넌 크루즈 타봤을 것 같은데.
릭사엘:(모른 척) 지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 소원 들어주자.
유스텐:아무리 생각해도 꽁으로 소원권 하나 얻고 싶어서 이러는 것 같은데...
그럼 확인은 어떻게 하려고?
릭사엘:크루즈를 타야지.
유스텐:당장 크루즈 내부로 순간이동을 해서 "오, 오! 잠시 확인차 들렸으니 잠깐만 구경하게 해주세ㅇ" ...
뭐?
그게 말이 돼?
타고 싶다고 아무나 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릭사엘:아는 사람 중에 크루즈 소유자가 있어. (심플)
유스텐:(덜덜 떨며) 그, 그건 더 말도 안되잖아.
너 크루즈가 얼마나 거대한지 알아?
고작 우리 둘 태워달라고 그걸 빌려주겠어?
난 들어가기도 전에 입구컷 당할걸?
릭사엘:왜?
유스텐:그야 난...! 부자처럼 안 생겼으니까!
릭사엘:(애초에 유스 성향상 사람 부딪히는 걸 안 좋아하니 소형 크루즈를 탈 생각이었던 데다, 통째로 빌릴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생각이 여기저기 뻗어나가는 네가 귀여워니 조금만 모르는 척해야지) 누가 그런 걸 따진다고. 그리고 부잣집 도련님처럼 생긴 얼굴이 어딨어. 값진 거 두르면 아무도 몰라.
유스텐:값진 걸 둘러도 태도나 말투, 몸가짐에서 다 뽀록날 거라고...
그리고 나한테 값진 게 어딨어? 내 몸에 널 두를 수도 없잖아.
릭사엘:(키득키득) 왜 날 둘러. 보석을 둘러야지.
유스텐:... (자연스레 눈앞에 있는 너를 옷으로 만들어 두른다고 상상한다) '와...진짜...이상하다...'
릭사엘:자기 또 이상한 상상하고 있어?
유스텐:아니...
안 하고 있었다고 할래...
릭사엘:알았어. 모른 척해줄게.
그래도 크루즈 탑승하는 건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아예 크루즈 선박을 빌리진 않을 거잖아.
유스텐:전세낸다는 거 아니었어...?
릭사엘:(피식피식) 크루즈 전세 내서 둘만 있게? 당연히 아니지. 난 크루즈 탑승권을 받아오겠다는 거였어.
유스텐:그, 그런 거였어...? (멍하니 눈을 깜빡거리더니 얼굴이 점점 빨갛게 물든다) ... 너 - 이, 이... 일부러 제대로 말 안 한 거지?
릭사엘:(일부러는 아니었지만) 일부러라고 하면 어떻게 돼?
유스텐:앞으로 뽀뽀 못하게 할 거야.
릭사엘:키스는 괜찮지?
유스텐:당연히 그것도 안되지.
릭사엘:음. 그러면 그것보다 더 깊은 건?
유스텐:(갸웃) 더 깊은 ㄱ...?
헉!
거봐! 놀리는 거 맞잖아!
릭사엘:(키득키득 웃어대며) 크루즈 얘기, 일부러 말 안 한 거 아니야.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크루즈를 통째로 빌려올 거라는 뜻으로 이해했을 줄.
그리고 섹스도, 난 만약 한다면 키스하면서 하고 싶은걸.
유스텐:너무 갑작스러워서 통째로 빌린다는 줄 알았지 나는...
그, 그리고!
(단어를 제대로 말하기 민망해 점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섹, ...스는... 안 할 거야.
릭사엘:그래? 별로 생각이 없어?
유스텐:(시선을 피하며) 몰-라.
릭사엘:왜 몰라. 자기가 모르면 누가 알아. (귀여워서 너를 꼭 끌어안는다)
유스텐:하느님이 알겠지,뭐...
릭사엘:자기가 얘기를 해야 이해하지, 나도. 안 하고 싶어?
물론 하자고 보챌 생각으로 묻는 건 아니야. 궁금해서.
유스텐:하고는 싶, 지...
릭사엘:그럼 무언가 마음에 걸려?
유스텐:...
준비가 필요해.
릭사엘:어떤 준비?
유스텐:내일부터 조깅하려고...
릭사엘:... 갑자기?
유스텐:(끄덕)
릭사엘:내가 자기 몸 보는 게 부끄러울까봐?
유스텐:... ...
어.
릭사엘:자기 몸 귀엽고 예쁜데 왜.
유스텐:제, 제대로 본 적 없잖아.
릭사엘:제대로 본 적 없어도, 먹기는 조금 먹었잖아.
자기가 운동하는 건 좋지. 하지만 나 때문에 고생하는 건 싫어.
난 너라면 다 예쁠 거란 말이야.
유스텐:뭘 먹었다는 ㄱ...
...
'겨우 잊고 있었는데...!!!!!'
릭사엘:(다시 생각하니 어쩐지 열이 오르는 것 같지만 애써 내러누르며) ...생각났어?
유스텐:하아... 생각났어.
릭사엘:좋아, 그럼 다시 잊고 집 가서 생각해.
유스텐:(앉은 채 무릎 위로 팔꿈치를 댄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이걸 어떻게 잊어버리냐?
릭사엘:그래도 잊어야지. 여기서 세우면 안 돼, 자기야. (키득키득 웃으며 네 몸을 도로 일으키고 틸러를 쥐여주며) 한 번 더 달릴래?
유스텐:(발끈) 안 섰거든?! 생각만 난 거야.
잠깐 여기서 있자...
릭사엘:(생각보다 더 곤란해하는 네 모습을 보다가, 먹다 만 점심 바구니를 뒤적여 쿠키를 꺼내 네 입에 다시 물린다) 맛있는 거 먹고 기운내, 유스.
유스텐:(냠냠...) '억울하네. 왜 나만 이렇게 부끄러워야 하는 거지?'
릭사엘:(귀엽긴...) 하나 더? (네 앞으로 쿠키를 내밀어 쏙 입에 또 물린다)
유스텐:... 밀크티도 마시고 싶어.
릭사엘:알았어. (바구니 안에서 보온병을 슥슥 꺼내 잔에 따라주고는 건네준다) 옳지, 우리 유스. 잘 먹네. 예뻐.
유스텐:(삐죽) 자꾸 놀리면 호수 한 가운데에서 바지를 확 벗겨버리는 수가 있어.
릭사엘:내가 언제 놀렸다고 그래. 여기서 벗겨서 어떡하게. 모두에게 보여주게? (협박 같지도 않은 협박이 귀여워서 그저 피식피식 웃는다)
유스텐:어. 보여주게. 동네방네 다 보여주려고.
릭사엘:내 사랑은 장난꾸러기라니까. 나 그러다가 잡혀가면?
유스텐:일행 아닌 척할거야.
릭사엘:너무해... (시무룩)
유스텐:네, 네가 자꾸 부끄럽게 만들잖아...
릭사엘:그치만 자기가 어떤 부분에서 부끄러워하는지 난 정확히 모르는걸.
유스텐:먹는다거나... 먹는다거나...
릭사엘:먹는 거 관련 얘기면 다 안 돼?
유스텐:안...되는 건, 아니긴 하지...
너는 왜 안 부끄러워하는 거야?! 처, 처음에는 잘만 부끄러워해놓고..
릭사엘:글쎄. 익숙해졌나?
유스텐:익숙해지는 게 너무 빠른 거 아니야?
릭사엘:타고 났나 보지. (으쓱)
유스텐:타고난 동정이란 단어도 있어? 참나...
릭사엘:(키득거리며 바구니에서 쿠키 하나를 꺼내 오독오독 씹어먹는다) 자기가 만들어서 그런가 쿠키도 달달하네.
유스텐:실없어. 바보...
(입술에 쪽 하고는 혀를 살짝 내밀어 메롱한다) 좀 부끄러워하는 척이라도 해주지 그래.
릭사엘:자기가 괴롭히려고 하면, 한껏 부끄러워 해줄게.
(네 빼꼼 나온 혀가 도로 사라지기 전에 고개를 숙여 쪽 빨았다 뗀다)
유스텐:힉...! 너 진짜...!
이걸 호수에 빠뜨릴 수도 없고... (꿍얼)
괴롭히는 게 뭔데? 때리라는 뜻은 아니잖아.
릭사엘:당연히 그런 뜻은 아니지. 자기 순수하구나. (피식)
유스텐:뭐야? 왜 웃어. 너 지금 그 웃음의 의미 뭐야?
릭사엘:그냥. 귀여워서. (쿠키를 오독오독 집어먹으며 보트에 털썩 앉는다)
유스텐:자긴 뭐 얼마나 안다고...(궁시렁)
애들이 포르노 보여줘도 그냥 그랬다며. 그럼 딱히 제대로 알아볼 생각도 없었을 거 아냐.
릭사엘:음, 그렇긴 하지만 들을 만큼은 들었을걸?
자기야 말로 그런 거 관심 없었던 거 아냐?
유스텐:...포르노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 뿐이야.
들을 만큼 들었다는 건 또 뭐야? 친구끼리 야한 얘기도 해?
릭사엘:남자애들 주요 관심사가 그거니까. 많이는 들었지.
유스텐:그럼 너는 그 얘기가 나오면 어떻게 하는데?
릭사엘:그야 당연히- 학생회장으로서 학교 내에선 문란하거나 저속한 대화를 지양해달라고 했지.
유스텐:너답네...
릭사엘:(으쓱-)
유스텐:아니 그래도 처음 봤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어?
릭사엘:뭐를?
포르노?
유스텐:그래.
릭사엘:음... 아무렇진 않았어. 체액을 교환하고 점막을 마찰하는 행위를 왜 하는지 이해가 안 가서. 포르노 산업 구조에서 착취당하는 여성 계급이 있는 건 공공연히 알려진 일인데 모두들 그걸 향유하고 통제를 안 한다는 점도 그렇고...
유스텐:그, ...일리 있는 말이네... '진짜 고자 아니야?'
릭사엘:... 자기 또 나 고자 아닌지 의심하고 있지.
유스텐:(뜨끔!) ... 혹시 내가 말했어?
릭사엘:자기 생각은 표정만 봐도 읽혀.
유스텐:...
그치만 누구라도 네 얘길 들으면 그렇게 생각할걸.
릭사엘:그런가... 그래도 자기한테는 흥분하는데. 고자는 아예 안 서는 걸 의미하는 거아냐?
유스텐:그렇지.
나를 안 만났으면 평생 고자나 다름없이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릭사엘:흠... (피식) 아니라곤 못하겠네.
유스텐:그럼 넌 나랑 체액을 교환하고 점...뭐시기를 마찰하는 행위를 하는 상상은 또 괜찮은 거야?
릭사엘:... (볼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끄덕인다)
유스텐:'아하 - ' (씩 웃으며 네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속삭인다) 너, 지금 상상했지?
릭사엘:(네 눈동자와 입술을 번갈아 보며, 입술을 조금 말아넣는다) ... ... 티 나?
유스텐:(네 볼을 아프지 않게 잡아당기며) 완전 빨개져서는 "나 지금 유스텐이랑 섹스하는 상상했어요." 라고 광고하는 수준인데 뭘.
릭사엘:으읏... 자기가 먼저 상상하게 만들었잖아. (부끄러워...)
유스텐:'이렇게 해야 부끄러워하는구나?' 정확히 무슨 상상했는데?
릭사엘:... ... 그것까지 꼭 들어야겠어...?
유스텐:얘기하기 싫으면 어쩔 수 없고.
(일부러 푹푹 한숨을 크게 쉰다) 하아... 난 애인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미리 알아둬서 공부 좀 하려 했던 건데...
그래서, 플라토닉을 원한다는 거지, 너는?
릭사엘:... ... (날 놀리려고 하네 정말... 그냥 듣고 싶으면 듣고 싶다고 하지.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그냥, 몸 겹치고 삽입한 상태로... 키스하고 가슴 빠는 상상 했어. 그게 다야.
내가 언제 플라토닉만 하자고 했다고... 그렇게 단정 짓는 건 비약이라고.
유스텐:하하! 네가 말하는 괴롭히는 게 이런 거구나? 아주 잘 알았어.
(턱을 괴며) 근데- 하나만 더 물어봐도 돼?
릭사엘:...뽀뽀해주면, 물어봐도 돼.
유스텐:물물교환? 그래, 좋아.
(이미 가까워진 거리에서, 고개를 조금 더 내밀어 입 맞추고 뒤로 살짝 물린다. 눈을 마주친 채 숨섞인 목소리로) 그 상상 속에서의 "나"는 좋아했어? 만족했어?
릭사엘:(손끝이 은근히 파르르 떨려와 손을 조금 뒤로 감추며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 응, 좋아했어. 내 어깨에 팔도 두르고.
유스텐:그랬어?
(네 뺨에 뽀뽀하고 몸을 뒤로 물린다. 일부러 네가 한 말을 돌려주며 얄밉게 웃는다) 꽤 순수하구나, 내 사랑은.
릭사엘:그건, 내가 한 말이잖아. (작게 툴툴거린다)
유스텐:(으쓱) 그랬었나? 네가 귀여워서 그랬지.
릭사엘:(손을 뻗어 네 허리를 끌어당겨 제 품에 안으며) ...놀리기는. 장난꾸러기야.
유스텐:너도 날 엄청 많이 놀렸잖아.
릭사엘:그건 ... 귀여워서.
유스텐:(피식) 장난꾸러기라고 할 처지가 아니야, 너.
장난꾸러기 왕.
릭사엘:자기는 그럼 장난꾸러기 황제 해.
유스텐:싫어.
릭사엘:왜 싫어. 황제잖아. 좋은 거야. (우기는 중)
유스텐:아무리 내가 학업에 신경을 안 쓴다지만 그정도로 바보는 아니거든?
넌 폭군 하라고 하면 그것도 어쨌든 왕이니까 할 거야?
릭사엘:흠...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쿠데타가 일어날 조짐이 보일 때마다 저지할 수 있다면 폭군도 나쁘진 않지.
유스텐:(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는 거야, 진지한 표정으로...
릭사엘:자기, 혹시나 싶지만 절대 쿠데타 군에 붙으면 안 돼. 내가 자기 왕비...는 아니고 국서(?) 시켜줄게.
유스텐:...?
왕비는 왜 안 시켜주는데?
너 뭐 내가 후계자 못 낳는다고 안 시켜주는 거야?
릭사엘:...? 자기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니까.
유스텐:아.
폭군의 국서...?
음...
안 할래!
릭사엘:왜?!
유스텐:(거리를 두며) 폭군이잖아... 너랑 나란히 거리에서 목 매달리는 건 좀...
릭사엘:(삐질) ... 그럼 나만 매달리게 두는 거야?
유스텐:...?
성군이 되면 되잖아.
릭사엘:이럴 수가... 성군이 될 수밖에 없겠네. 폭군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유스텐:재미있을 것 같다고...?
릭사엘:농담이야.
유스텐:(점점 거리를 벌리며) 너... 설마... 학생회장이 된 이유도...?
릭사엘:...그런 거 아냐. 자꾸 그렇게 멀어지면 나도 상처받는다...?
유스텐:아. (다시 순식간에 엉덩이를 네 옆으로 위치시킨다) 데이트인데 상처받으면 곤란하지.
릭사엘:언제는 나보고 좋은 사람이라더니... 나쁜 의도로 학생회장 선 거냐고 하고...
유스텐:당연히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었지이... 너도 참...
네가 좀... (손을 빙빙 돌리며) 진지해보였단 말야?
릭사엘:난 아니라는 뜻을 팍팍 담아서, 부러 과장하듯이 말한 것 같은데.
유스텐:으음... (눈치보다가 너를 꼭 끌어안고 올려다본다) 섭섭했어?
릭사엘:(조마조마한 시선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네 얼굴이 사랑스러워서 피식 웃어버리며 다시 장난치기 시작한다) 응. 이 섭섭함은 말이지, 뽀뽀 백 번은 받아야 풀려.
유스텐:백 번이나?!
언제까지 갚아야 해?
오늘 내로 갚아야 해?
릭사엘:정확히 정해줄게. 지금부터 10분 이내에 뽀뽀 백 번을 상납해야 해. (키득키득 웃는다)
유스텐:뭐?!
안 갚으면 어떻게 돼?
릭사엘:안 갚으면... 흠. 앞으로 일주일 내내 와규 스테이크를 구워줘 버릴 거야.
유스텐:뭐라고?!!
안 돼... 그건 협박이잖아.
릭사엘:자기를 튼튼하게 살찌우려면 어쩔 수 없어. 미안.
이제 어떻게 할래? 뽀뽀 백 번 대 일주일 내내 와규 스테이크.
유스텐:... 10분간 눈 감고 있어, 그러면.
릭사엘:(귀여워 죽겠다, 진짜...)
(밖으로 새어나오는 웃음을 속으로 겨우겨우 눌러담으며) 알았어. 숫자 세고 있을 테니까 시작해.
유스텐:정확하게 세어야 해. 빨리 한다고 대충 세면 화낼 거야.
릭사엘:걱정 마. 꼼꼼히 셀게. (피식피식 웃으며 눈을 꾹 감는다)
유스텐:(이게 다 뭐하는 짓인지... 어색하게 네 입술에 열 번 정도 입을 맞출 때쯤) '가만... 입에다 해야 한다는 조건은 없었잖아. 뽀뽀도 같은 곳에만 계속 하면 감흥이 없지 않을까?'
(방향을 틀어 오른쪽과 왼쪽 뺨에 차례로 열 다섯 번씩 뽀뽀한다)
'뽀뽀 백 번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얼마나 한 건지 기억도 안 나.'
릭사엘:(솜털이 간질여지는 감각에 슬금슬금 웃으며) 간, 간지러워 자기야.
유스텐:견뎌. 네가 뽀뽀 안 하면 날 와규 스테이크로 만들어버린다고 했잖아(?).
릭사엘:내가 언제 자기를 와규 스테이크로 만든다고... 큿흣...! 가, 간지러워...! (그 와중에도 스테이크를 배불리 먹고 몸 여기저기 살이 붙은 너를 상상하며 귀여워한다)
유스텐:나 진짜 진지하게 갚고 있거든? 웃다가 숫자 까먹기만 해봐. (마저 이마에 대충 열 번 정도 뽀뽀한다) '이제 어디다 하지? 입이 저려...'
릭사엘:(한참이나 뽀뽀를 받다가 뽀뽀하는 속도가 느려지자 본능적으로 네가 지쳤음을 눈치챈다. 손을 뻗어 꼭 끌어안고 제가 기습뽀뽀(?)하기 시작하며) 귀여워. 너무 귀여워. 사랑해, 유스. 사랑해.
유스텐:(눈을 꾹 감으며 찡얼거린다) 므으, 읏, 머, 뭐하는 거야아... 아직 뽀뽀 횟수 다 못 채웠단 말야...
릭사엘:(마지막까지 꼭 붙들고 쪽쪽거리다가) 자, 이걸로 100번. (네 입술에 쪽 입 맞추고 윗입술 아랫입술을 번갈아 오물거리다가 뗀다. 두근거림 때문에 볼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 식을 줄을 모른다)
유스텐:(어리둥절) ? 네가 대신 채워준 거야?
릭사엘:당연하지. 우리는 파트너잖아.
유스텐:어...맞는 말이긴 하지.
근데 보통 갚으란 사람이 대신 갚아주기도 해?
릭사엘:보통은 안 갚아주지? 보니까 자기 입술에 쥐나기 직전인 것 같아서 내가 대신 했어. (쪽)
유스텐:고, ...고마워?
릭사엘:별 말씀을, 내 사랑. (쿠키 하나를 쏙 집어 네 입에 다시 물려주며, 너를 품에서 살며시 놓아주고는 하늘을 슬쩍 올려다본다) 슬슬 해가 기우네. 날씨 좋다...
유스텐:그러게... 시간 엄청 빨리 가네. 꽤 오래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릭사엘:그러니까. 자기랑 있으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이러다 금방 늙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유스텐:늙기는 싫은데... 어쩌지.
릭사엘:어쩌기는. 나이 들어도 똑같이 지내면 되지. 매일 뽀뽀하고 나들이 가고, 맛있는 거 먹고.
유스텐:넌 나이드는 게 싫지 않은 것 같네.
릭사엘:(눈을 살며시 감고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며) 응, 자기랑은 나이 드는 게 무섭지 않아 난.
오히려 기대되기도 해. 그때의 난 너랑 어떤 추억을 안고 살고 있을지, 주름이 생긴 네 얼굴은 또 어떤 방식으로 날 사랑에 빠지게 만들지, 미래에 어떤 집 어떤 동네에서 함께 살고 있을지.
물론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점은 불안하지만,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좋은 점에 주목해야지.
유스텐:... 넌 뭔가, 고등학생 같지 않은 어른스러움이 있어.
보통 우리 또래들은 나이먹는 상상 같은 건 잘 안 하려 하거나, 싫어하잖아.
난 상상만 해도 주름이 자글자글할 내 모습이 어색하고 싫은걸...
릭사엘:그래? 난 그때에도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귀여운 사람일 것 같은데.
(네 양뺨에 제 손바닥을 대고 살며시 꾹꾹 누르며) 앞으로 매일매일 활짝 웃는 일이 많아져서, 나이 들었을 때 입술 끝이랑 눈꼬리, 코 옆에 주름이 잡히면 좋겠어.
유스텐:코, 콩깍지야... 늙는 게 뭐가 예쁘다고...
릭사엘:자기는 언제 봐도 다 예쁠 거야. 내가 알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얼굴이니까.
유스텐:그때쯤 되면 파릇파릇한 애들 천지일텐데...
릭사엘:걔네가 파릇파릇하면 뭐해. 네가 아닌데.
내가 사랑하는 유스텐이 아닌데.
자기는 걱정이 너무 많다니까.
유스텐:넌... 나를 만나지 않았을 땐 평소에 어떤 생각을 했어?
미래에 대해 말야.
릭사엘:... 음. '앞으로도 이렇게 외로우려나', '열심히 하는 것말고는 답이 없겠지', '그런데 열심히 해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들을 했지.
그런데 지금은, (네 손에 깍지를 끼며) 기분이 좋아서 다 넘길 수 있어.
유스텐:(널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숙인다) ...의외야. 넌 사랑에 이리저리 휘둘릴 것 같지 않은 이미지라 생각했는데.
릭사엘:...나도 똑같이 생각했어. 감정 따위가 날 바꿔놓진 않을 거라고.
난 매사를 논리적으로 해석하고 규명하고 결정을 판가름 짓는 게 익숙한데도, 왜인지 모르게 네 앞에서는 감정이 늘어나.
유스텐:두렵지 않았어? 평소의 너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리잖아.
릭사엘:두렵다기 보다는 이상...하다고 느끼지. (작게 피식 웃으며) 그래도 행복하니까.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야.
유스텐:...
그동안은 네가 좀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어.
나를 얼마나 오래 봤다고, 사귄지 얼마나 됐다고 영원을 약속하는 건지... 왜 이렇게 큰 걸 턱턱 주려고 하는 건지...
네 얘기를 쭉 들어보니까 어느정도는 이해가 가려고 해. 그러는 편이 행복해서 그런 거지?
난 널 좋아하지만... 여전히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몰라서 무섭고, 널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거든. 네가 싫다는 건 아니야. 정말로.
(손가락을 꼼질거리며) 음... 내게도 네 마음이 이해되는 순간이 올까?
릭사엘:(쓰담쓰담) 모르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까. 혹시나 싶어 얘기하지만 내 마음을 이해할 순간이 안 와도 괜찮아. 난 자기가 본인 행복을 위해 때때로 이기적일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으니까.
(조심스럽게 네 상체를 당겨 제 몸에 기대도록 툭 두며) 그러니까 너무 많은 생각은 말고, 지금을 즐기자. 자기가 미래가 더 이상 무서워지지 않을 때까지 좋은 기억을 많이 채울 수 있게.
(어쩐지 말을 하면서도 울음이 날 것 같아 네 마른 어깨를 부드럽게 쓸어내리고, 입꼬리를 당겨 올린다. 유스, 나는... 너를 사랑해. 이건 단지 '좋아한다'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사실은 말이야, 네가 나를 버리고 떠난대도 난 너를 원망하진 못할 거야. 영원이 아니라 끝이 있어도 괜찮아. 난 그것도 감안하고 너를 사랑하기로 결심했으니까. 물론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너는 미안해하거나 충격을 받거나 속상해하겠지만... 네가 행복하면 좋겠어. 그 행복에 내가 필요하지 않게 되거나 걸림돌이 된다면, 그때는 우리가 멀어져도 괜찮다는 각오로 시작했으니까. 난 네가, 정말로 행복해지면 좋겠어. 그저 그뿐이야. 너한테 이 얘기를 할 날은 절대로 오지 않겠지만... 네가 조금이나마 내 마음을 느껴주면 좋겠어.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미안해, 유스...)
유스텐:응... 이해해줘서 고마워, 릭스.
... 어떤 의미로 내게 그렇게 말하는지 알아. 그래도 난, 그 "때때로"가 너와 관련된 일이라면 이기적이고 싶지 않아.
(몸을 살짝 돌려 너를 꼭 안으며) 그건 너에게 있어 너무 외롭고 슬픈 일이잖아. 너는 또 괜찮다고 하겠지만.
나 때문에 또 네가 희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릭사엘:(쪽) 희생은 무슨. 나도 원하는 건데.
내가 언제 희생했다고 그래. 내가 해주고 싶어서 이것저것 오지랖 부린 거지.
유스텐:해주고 싶어도 너무 과할 때가 있어, 너는.
릭사엘:... 그래도... (말을 늘어뜨리며 슬금슬금 네 눈치를 본다)
유스텐:에휴...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나도 네가 좋으니까 행복했으면 해서 그렇지.
애인이 나 때문에 안 해도 될 거를 감내하려 하는데 누가 "어, 그래-" 하고 넘어가?
바-보. (휙)
릭사엘:(우물쭈물) ...이왕이면 같이 행복하고 싶어서 그러지.
(네 품에 슥 상체를 숙여 고개를 묻고는 좌우로 비비며) 미안해... 삐지지 마.
유스텐:진짜 앞으로 안 그럴 거지?
릭사엘:... 응... (풀죽은 표정)
유스텐:(네 어깨를 감싸안고 작게 흔들거려 둥기둥기한다) 또 그러면 아는 척도 안 할 거야.
릭사엘:... 혹시나 실수로 잘못해도? 모르고 해도? (울망울망한 눈동자로 올려다본다)
유스텐:음... 모르고 한 거는 봐줄게.
릭사엘:다행이다... (상상만으로 십년감수한 듯 한숨을 내쉰다)
유스텐:(피식)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인데 그게 그렇게 무서워?
릭사엘:자기한테 미움 받는 건 생각만 해도 무섭다고...
유스텐:그래? 흠... 그럴 일은 딱히 없을 것 같은데 말이지.
릭사엘:...그런가? 그렇겠지?
휴우...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유스텐:네가 뭐... 통수를 치는 일만 아니면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돈을 빌려달라 하고서 안 갚거나, 내 자존심을 깎아먹는 말을 한다거나, 사고를 쳐놓고 나한테 책임을 덮는다거나 등등... 그런 거 아니면은?
릭사엘:어... 절대 안 할 것 같은 일들인데.
좀 안심해도 되겠다.
유스텐:그렇지?
릭사엘:응. (부비적부비적)
유스텐:애교가 많아졌네.
릭사엘:자기가 예뻐해주니까 그렇지... (쪽...)
유스텐:(쓰담쓰담) 평소에도 이렇게 귀여웠으면 귀엽다는 소리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을텐데. 나한테 처음 듣는 게 아니라.
릭사엘:내가 다른 사람한테 귀엽게 보여야 할 이유가 있어야 말이지. 자기한테만 보여주는 걸로 충분해.
유스텐:(피식) 그렇게 말해주니 기분 좋네. 인기 많은 애인이 더 인기 많아질 이유가 하나 줄었으니 말이야.
(어느새 하늘이 온통 불그스름하게 노을이 진 걸 확인하고는) 이제 진짜 슬슬 반납하러 가야겠다. 또 다른 주제로 대화 시작하다가는 밤이 되어서 호수 한가운데서 고립될지도 몰라.
릭사엘:(피식 웃으며 산등성이로 기울어지는 노을을 바라보다가, 요트 가장자기에 등을 툭 기댄다) ...그러네. 시간이 언제 이렇게 됐지. 하루가 금방 갔네.
물 위에 내려앉은 노을이 나뭇잎처럼 떠갑니다.
하늘의 주황과 분홍은 얇게 겹쳐져 호수 표면에 길게 늘어지고,
잔물결에 그 빛이 조각나는 순간마다 고급 비단처럼 반짝입니다.
어두워진 사위에 맞추어 하늘과 지평선의 경계가 흐려져 있지만
그걸 굳이 나누고 싶어지지는 않네요.
당신 옆에 앉아 있는 릭사엘은 어깨를 당신 쪽으로 툭 기대고
잠시 저녁 놀을 구경하는 당신과 같은 풍경을 바라봅니다.
이 순간만큼은 서로를 보지 않아도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감각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호수의 위에서
가지런히 맞잡은 손이 따뜻하게 저려옵니다.
말은 더 필요 없습니다.
배는 조용히 떠 있고,
호수는 하루를 접어가니까요.
.
.
.
집에 돌아오면 저녁 공기는 부엌부터 달라져 있습니다.
이미 어두워진 창밖을 확인한 릭사엘은
말없이 앞치마를 걸치고, 당신과 함께 손을 씻습니다.
이 집에 함께 들어온 횟수가 얼마 되지 않는데도
어쩐지 익숙하고도 정겨운 느낌이 납니다.
곧 프라이팬 달궈지는 소리가 나면, 릭사엘이 와규 스테이크에
간단하게 소금과 후추만 뿌려 간을 한 뒤
지글지글 스테이크를 고르게 굽습니다.
지방에 녹아내리며 녹진한 감칠맛을 공기중에 퍼뜨립니다.
스테이크는 겉은 색이 단단하고 속은 아직 촉촉할 것이 분명합니다.
아침에 이야기한 대로, 릭사엘은 당신의 것을 미디엄으로 굽고
자신의 것은 미디엄 레어로 고르게 구워낸 뒤
식탁에서 마주 앉아 당신의 스테이크부터 예쁘게 잘라줍니다.
속살이 매끄럽게 드러난 고기를 바라보며 한 입 베어물면
육즙이 과하지 않게 퍼지며 기름의 고소한 맛으로 씹힙니다.
당신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맛있다는 탄성을 내뱉으면
릭사엘은 그런 당신의 반응을 보고
더없이 행복하게 웃습니다.
평화로운 저녁 식사로군요.
혼자가 아니라서 좋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해서 더 좋은.
별의별 얘기를 시시덕거리며 식사를 마치고
접시를 치우고 나면 릭사엘은 천천히
케이크 준비를 시작합니다.
어제 산 과일과 밀가루, 버터, 계란이 적당량씩 계량되어
조리대 위로 올라오면 릭사엘이 당신을 부르고
당신의 몸에 상냥하게 앞치마를 둘러줍니다.
어디 한번, 릭사엘에게 베이킹 반죽하는 법을 배워볼까요.
유스텐:
손놀림
기준치:60/30/12
굴림:67
판정결과:실패
어디 보자... 밀가루를 일단 곱게 체에 치고
버터를 녹이고,
계란 껍데기를 반으로 까서 노른자를 분리하려고 하면...
아뿔싸, 노른자가 터져버립니다.
유스텐:(삐질...) 우리 계란후라이 해먹을까?
릭사엘:(키득키득 웃으며) 괜찮아. 계란 하나 더 쓰지 뭐.
삐질삐질 릭사엘의 눈치를 보고 있으면
릭사엘은 아무렇지 않게 계란 하나를 더 꺼내와
이번에는 직접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해 놓습니다.
계란 껍데기 사이로 노른자가 이리저리 이동하며
흰자만 그릇에 쏙 빠져나가는 광경이 신기하네요.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하는 과정이 끝나면
릭사엘이 가르쳐주는 대로 노른자에 설탕 반을 넣고 흰자에 따로 반을 넣고
당신은 노른자 반죽을 거품기로 믹싱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유스텐:
민첩
기준치:60/30/12
굴림:80
판정결과:실패
파바바박-!
힘껏 노른자와 설탕을 섞다 보니
반죽이 사방으로 튀어나가며...
릭사엘:
민첩
기준치:60/30/12
굴림:8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당신의 얼굴에 튀어 주르륵 흘러내립니다.
...
너, 너무 세게 했나...
아무래도 이게 아닌가 봅니다.
릭사엘:(반죽이 덕지덕지 붙은 네 얼굴을 보며 참을 수 없이 웃음이 터져나온다) 아...! 아하하...! 자기 얼굴 반죽 범벅이잖아.
유스텐:... ...
너무 어려워.
릭사엘:아, 귀여워... (네 얼굴에 묻은 반죽을 손수건으로 깔끔하게 뽀송뽀송 닦아준다)
너무 어려워? 힘을 많이 줘서 그래. 손목 스냅 이용해서 가볍게 섞어. 이렇게. (네가 쥔 거품기에 손을 겹치고, 힘을 가볍게만 들인 뒤 척척 섞는 시늉을 내준다)
등에 닿아오는 체온이 따뜻합니다.
당신이 엉거주춤 손에서 힘을 빼고
반죽을 척척 섞기 시작하면
이번에는 그래도 반죽이 얌전히 보울 안에서 섞이네요.
힘은 많이 안 줘도 되는 거였구나...
당신이 노른자 반죽을 설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곱게 섞어 내려두고
릭사엘을 바라보면 그는 흰자로 머랭을 치느라 당신보다 배로 바빠 보입니다.
생각보다 수고스러운 작업이네요.
그렇지만 처음에는 육안상으로 보이는 큰 거품만 있던 흰자가
투명한 색에서 흰색으로 곱게 부풀어오르는 모습이
마치 오븐 속에 들어간 빵 반죽 같아서
마냥 신기하다는 감상만 듭니다.
흡사 구름 같은 모양새입니다.
릭사엘:(손목이 빠지도록 머랭을 치고는, 반죽을 잠시 내려두며 팔을 가볍게 턴다. 그리고는 네 반죽에 곱게 체친 밀가루와 머랭 3분의 1을 넣고, 주걱을 네 손에 쥔 채 겹쳐 쥔다) 자, 섞어봐. 가로로 말고 세로로. 어떻게 하냐면, 주걱을 보울 바닥에 직각으로 들어서 반죽 위에서 아래로 선을 내려긋듯이.
유스텐:'무,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듣겠다.' 어, 어어...
영문을 모르고 릭사엘이 시키는 대로 따라서 어찌저찌 하다보면
뭐... 그래도 섞이기는 섞입니다.
당신이 섞는 방식이 딱히 틀리지는 않는지
릭사엘은 가만히 바라보며 반죽 농도를 계속 확인하고
됐다 싶을 때쯤 머랭을 3분의 1씩 계속 덜어넣어
반죽을 푹신하게 부풀립니다.
오...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네요.
당신이 반죽을 계속 섞다가 마무리로 한 번 더 저어
반죽을 매끈하게 만들고 나면
릭사엘이 박수를 착착 치면서 잘했다고 뺨에 입을 맞춥니다.
그리고는, 케이크용 틀을 세 개 꺼내어 유산지를 자르기 시작하네요.
릭사엘:(잠시 반죽 양을 바라보며) 음, 틀 세 개면 되려나. 반죽이 좀 남을 것 같은데.
유스텐:반죽이 남으면 어떻게 처리하는데?
릭사엘:버리거나, 아니면 대충 틀에 마저 넣어서 굽거나.
이렇게 자투리 반죽을 구우면 크림 스프레딩은 못하고 그냥 크림에 푹 찍어먹어야 하긴 해.
유스텐:그렇구나... 쿠키랑은 다르네.
릭사엘:(키득키득) 그렇게까지 다른 건 또 아니고. 쉽게 못난이 카스테라라고 생각하면 돼. (틀에 맞추어 유산지를 잘라내고 끼운 뒤 반죽을 덜어, 틀에 3분의 2씩 채운다)
주걱이 보울 벽을 긁는 소리가 리듬처럼 이어집니다.
릭사엘은 반죽을 덜어담고 틀을 아래로 탁탁 가볍게 내리쳐 거품을 뺀 뒤
반죽들이 든 틀을 팬에 돌리고 미리 예열해둔 오븐에 밀어넣습니다.
따뜻한 열기가 잠시 빠져나왔다 들어가는 순간
부엌은 다시 기다림의 시간이 됩니다.
신기한 눈으로 당신이 오븐 안을 아침처럼 말똥말똥 바라보고 있으면
릭사엘이 당신의 뒤에 다시금 의자를 끌어와 놓아주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케이크가 조심스럽게 구워지는
버터 향기와 설탕 향기가 솔솔 퍼져나옵니다.
릭사엘:(네 옆에 의자를 끌어와 저도 앉으며) 방법은 복잡해도, 크게 어렵진 않지?
유스텐:(기가 팍 죽어서는) 쿠키보다는 어려운 것 같아...
릭사엘:아냐, 몇 번 하다보면 익숙해질 거야. 나눴다가 합쳤다가 하면서 왔다갔다 해야하는 거에만 익숙해지면 금방 해.
자기는 머리가 좋으니까 금방 배울 거야.
우리가 지금 만든 건 스펀지 케이크야. 반죽이 다 구워지기만 하면 잠시 식히고, 거기다가 크림 바르고 과일 장식하면 자기가 아는 생크림 케이크가 돼.
아, 우리 지금 케이크 세 판 만든 건 알지?
유스텐:(끄덕끄덕) 응...
이걸 집처럼 쌓아서 케이크로 만드는 거라고...
릭사엘:...? (설마 틀 세 개로 케이크 하나를 만드는 줄 아는 건가?) 완성된 케이크가 세 판이야.
유스텐:???
크림 발라서 쌓은 다음에 겉에 또 크림 발라서 하나로 만드는 게 아니야?
릭사엘:(살짝 웃으며) 그렇게 개별로 쌓는 거 말고, 하나를 가로로 잘라서 사이에 크림을 채우고 마무리하는 거야.
우리 한동안은 케이크 파티해야 해.
유스텐:그...그럼... 한동안 케이크만 먹어야 하는 거야? 3개나 만들어버렸으니까??!
릭사엘:(끄덕) 앞으로 한동안 자기 도시락에 케이크가 들어 있을 거야.
유스텐:왜 이렇게 많이 했어??!
정말 나를 살찌워서 잡아먹을 생각인 거야?
릭사엘:(원래 레시피 자체가 이 정도 분량일 뿐이지만, 굳이 정정하지 않고 장난을 친다) 잡아먹게는 해줄 생각이고?
유스텐:그...! 그건...!
...
나, 나중에... (고개를 돌려 화끈거리는 얼굴을 숨긴다)
릭사엘:나중에? 얼마나 나중에? (계속 장난치는 중)
유스텐:너어...
... '장난치는 것 같은데. 혹시 반쯤은 진짜로 언제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보는 건가?'
(슬쩍) ... ... 키, 키스가 익숙해지면...?
릭사엘:그래? 그럼 지금부터 익숙해지도록 시작하면?
유스텐:지금...?!
케이크는?
릭사엘:케이크가 더 먹고 싶어? 그럼 케이크 입에 물고 키스하는 건 어때. (계속 놀리다가 네가 너무 귀여워서 쪽 뽀뽀한다)
유스텐:무무, 무슨 소리야... 그걸 어떻게 해?
릭사엘:음- 잘하면 될걸?
(키득거리다가) 농담이야. 자기가 귀여워서 놀려봤어.
유스텐:난 또 진심으로 하자는 줄 알았잖아...
릭사엘:...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
유스텐:뭐, 를...?
설마... '섹스를???'
릭사엘:...?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케이크 머금고 키스하는 거...?
유스텐:아.
아아-!
근데 케이크 머금고 키스를 어떻게 해?
크림이 입 주변에 다 묻는 거 아니야?
릭사엘:해봐야 알지 않을까?
근데 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자기 말 끝을 흐릴 때면 섹스 생각하는 거 맞지?
유스텐:(뜨끔!!!) ...
(화들짝 어깨를 들썩였다가 슬금슬금 옆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 아닌데.
아니거든?!
내가 무슨 변태인 줄 알아?
평소에 그런 생각 하나도 안 하거든?
릭사엘:...찔러본 건데 극구 부인하네. 내 얼굴은 왜 피해. 진짜야?
유스텐:안 진짜야.
아니
내 말은 그런 생각 전혀 안 했다니까?
릭사엘:그럼 내 얼굴 피할 이유가 없잖아.
유스텐:... '뭐라고 변명하지?'
... ... 부,
(질끈) 부담스러워서 그래! 부담스러워서!
(혹시나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싶어 황급히 덧붙인다) 아, 알잖아. 잘생겼잖아, 너.
(횡설수설) 너! 너 좋아하는 애들이 5초 이상 너랑 눈 마주친 적 있어?
릭사엘:...그래서 매번 내 시선 피하는 거였어? ... (시무룩)
유스텐:아, 아니이...
'어쩌지? "그래! 나 너랑 섹스하는 설레발 쳤다!" 라고 할 수는 없잖아. 으으- 진실을 말해서 쪽팔림을 감수하느냐, 아님 이대로 쟤 얼굴이 부담스럽다고 뻥을 쳐서 피하느냐...'
릭사엘:(풀이 죽어서는) ...난 자기 얼굴 보는 게 좋은데...
유스텐:너는 계속 보면 되잖아... (눈치...)
릭사엘:정면이 보고 싶었단 말이야.
유스텐:그럼 난 눈 감고 있을테니까 실컷 보는 ㄱ... (까지 말하며 네 눈치를 살피다 엄청나게 풀이 죽은 강아지 같은 표정에 말이 뚝 끊긴다)
...
눈도 마주쳐서 보고 싶어?
릭사엘:... (끄덕끄덕)
근데 ... 내 얼굴 보는 게 힘들다고 하니까... (시무룩)
유스텐:(도리도리) 그게, 아... 아니, 아니야.
(안절부절) 힘든 게 아니라 서, 설레서... 음, 그래도 적응...! 해야지! 연인 관계니까!
릭사엘:정말? 그럼 앞으로는 계속 볼 거야?
유스텐:앞으로? 지금?
릭사엘:(끄덕)
유스텐:그거ㄴ... (기대에 가득찬 눈빛에 마음이 무너져버린다) 그래.
릭사엘:(기쁜 표정으로 네 뺨을 양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잡고 네 눈동자를 깊게 들여다보며) ...이대로 '좋아한다'고 해줘.
유스텐:흡... (심장이 곧 멎어버릴 것처럼 심하게 쿵쾅대기 시작한다. 어쩌지? 이 소리가 밖에서도 들릴까?)
조, ... (겨우 말 한 마디가 왜이리 내뱉기가 힘든 건지, 정말 "말 한 마디"일 뿐인데도 큰 무게추를 단 것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좋아해.
릭사엘:(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에 눈이 질끈 감기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더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나도.
너한테 나를 다 줄 수 있을 만큼, 정말 좋아해.
(엄지 끝으로 네 입술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 보고만 있어도 이렇게 좋아서 어쩌면 좋지. 널 보면 내가 어딘가 이상해져.
너도, 그래?
유스텐:(잠깐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응...
말했잖아. 너랑 있으면 생각이 많아져.
릭사엘:(네 입술 주름을 모두 새기려는 듯 천천히 매만지며) 주로 어떤 생각인데?
유스텐:... 너한테 상처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 멀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 그리고, 네가 웃는 게 예쁘다는 생각... 이건 널 좋아한다고 자각하기 전까지도 그랬어.
솔직히 생각을 너무너무 많이 해서 어떤 것들을 했는지 나도 셀 수 없고 기억할 수 없을 정도야.
...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그 많던 생각이 너랑 처음 입 맞추고 나서 처음으로 잠깐 조용해졌었어.
릭사엘:(살짝 웃으며) 처음 입 맞췄을 땐 무슨 생각을 했는데?
유스텐:아무 생각도 안 들었어. 생각이란 걸 못했어, 그때는.
모든 게 너무 조용했어. 그때 그 공간도, 내 머릿속도.
릭사엘:(고개를 슬며시 기울여 네 입술에 짧게 뽀뽀하고는) ...그럼 이젠 입 맞출 때 무슨 생각이 들어?
유스텐:...
평소처럼 많은 생각이 드는 건 아니지만...
잠깐 심장이 엄청 무겁게 느껴져.
사실, 그게 너무 이상해서 혼자 있을 때 잠깐... 음... 안 놀릴 거지?
릭사엘:응, 안 놀릴게. 말해봐.
유스텐:진짜 놀리면 안 돼...
잠깐... 심장 무게가 얼마나 나가는지 검색해봤거든?
근데 1kg도 안 나간다는 거야.
고작 250-300g이래.
너무 이상하잖아.
나는 분명 무거웠는데...
릭사엘:(싱긋) ...그러게. 이상한 일이네.
나도 널 볼 때면 자주 몇 십 킬로그램은 되는 것처럼 느끼는데.
유스텐:혹시 특정 상황이 되면 온몸의 무게가 다 그쪽으로 쏠리는 게 아닐까?
... 그건 역시 말도 안 되겠지.
릭사엘:(키득키득 웃으며 네 볼을 살짝 늘인다) 아무래도. 왜 자꾸 귀여운 소리만 해.
유스텐:귀여운 소리라니... 난 꽤 진지했는데.
릭사엘:음, 진지한 소리라기보다는 귀엽고 순수하기만 한데. (네 볼을 찹쌀떡처럼 주무른다)
유스텐:아므이 그애도 신, (볼이 주물러져 열심히 똑바로 발음하려 애쓴다) 심장! 이 ... 고작 그정도밖에 안 나가는 건 이상해.
릭사엘:(귀여워... 말랑해...) 사람 심장은 본인 주먹만하다잖아. 그러면 (네 손을 꼭 쥐며) 유스 심장은 이만큼 조그마한 건데, 이 정도 무게가 맞지.
유스텐:너무 작잖아...
이 조그만 게 없으면 죽는다는 건 더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릭사엘:그럼 내 심장으로 바꿔 가질래?
(네 앞에 슬그머니 주먹을 쥐여 보여주며) 내 심장은 이만하대.
유스텐:그럼 매일매일 무거울 거 아냐.
그리고 바꿨다가 잘못되면 어떡해?
릭사엘:그게 걱정인 거야? (피식) ... 난 그런 뜻으로 얘기한 게 아냐.
유스텐:어... 그러면?
릭사엘:비 - 밀.
유스텐:뭐야... 내가 숨기려고 하면 어떻게든 알려달라고 온갖 수를 다 쓰면서.
릭사엘:그럼 자기도 온갖 수를 다 써보면 될 일이지.
유스텐:너처럼? 흠... 난 너만큼 똑똑하진 않은데.
릭사엘:똑똑한 거랑은 별개지.
자기도 할 수 있어.
유스텐:그럼... 음...
(슬쩍) 지금 안 알려주면 앞으로 뽀뽀 안 할래.
릭사엘:...
협박 말고 다른 걸 기대했는데.
유스텐:다, 다른 거?
'혹시 지금... 애교라도 부려달라는? 그런 건가?'
릭사엘:...아냐. 싫으면 됐어.
유스텐:아, 아니이... 아니야. 알았어, 협박 안 할게... (안절부절)
아, 알려줘-... 알려주면...
알려주면...! 어... 뽀뽀 열 번? 어, 어때...
릭사엘:...
연인한테 고백을 했는데 무슨 뜻인지 설명하라고 협박을 듣는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겠지...
괜찮아. 신경쓰지 마.
그런 의도로 말하던 게 아니었는데...
무언가 말이라도 해보고 싶지만
괜찮다는 말이 안 괜찮다는 뜻으로 들려서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때 타이밍 안 좋게 오븐에서
팅- 소리가 나며
케이크가 다 구워졌다는 알림이 들립니다.
릭사엘:어, 벌써 다 됐네. 얘기하다보니 금방 시간 갔나 봐. (정말 괜찮다는 의미로 살며시 웃고는 오븐용 장갑을 꺼내 트레이를 꺼낸다)
군침 도는 달콤하고도 폭닥한 향기가 퍼집니다.
3분의 2쯤 채워넣었던 케이크 틀 반죽이
보송하게 부풀어올라 모락모락 김을 피워냅니다.
당신이 여전히 머뭇거리고 서 있으면
릭사엘은 당신이 혹여 화상이라도 입을까 조심스럽게 비껴서
트레이를 가볍게 내려두고 틀에서 케이크를 분리해냅니다.
폭닥폭닥한 케이크 시트가 예쁘게 밖에 놓입니다.
릭사엘:(케이크 틀에서 시트를 분리해두고는) 이대로 잠시 식히고, 조금 이따가 생크림 바르자. 시범 한 번 보여줄 테니까, 자기가 해봐. 재밌거든.
유스텐:(괜찮다는 말에도 잔뜩 풀이 죽어서는) 응...
릭사엘:(별 생각 없이 케이크를 식히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가, 네 풀 죽은 목소리에 돌아보며) ... 자기 괜찮아? 안색이 안 좋은데.
(네 뺨을 가볍게 주무르며) 우리 애기 왜 그래.
유스텐:너 안 괜찮아보여서...
눈치없어서 미안해...
릭사엘:응? 나 괜찮아. 괜찮다고 했잖아.
(장갑을 천천히 벗어 내려두고는) 그것 때문에 기분 안 좋았구나. 이리 와. (안기라는 듯 팔을 뻗는다)
유스텐:(쪼르르 네게 다가가서 안기고는 뺨이 눌리도록 파묻힌 채 웅얼거린다) ... 섭섭하게 했다면 미안해. 매번 이런 식인 것 같네...
릭사엘:(사랑스러워... 네 동그란 뒤통수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미안하기는. 나야말로 걱정하게 만들어서 미안. 나 괜찮아. 정말로.
(작게 피식 웃으며) 왜 이렇게 안절부절 못해. 난 어차피 네 건데.
유스텐:그래도... 내가 네 고백을 못 알아챈 건 사실이잖아...
릭사엘:그럼 이젠 알았으니까 받아주는 거야?
유스텐:지금 받아줘도 늦지 않은 거야...?
릭사엘:(웃음) 자기가 하는 건 뭐든 늦는 법이 없지.
유스텐:그럼 당연히 받아야지. 안 받는 게 더 이상하잖아.
릭사엘:그렇게 말해주니 영광인걸, 자기. (네 정수리에 가볍게 입술을 붙였다 뗀다)
유스텐:'고, 고백을 했으니까 나도 답하는 게 맞는 거겠지?' (머리를 요리조리 굴리다 입을 연다) ㄴ, 나도...!
네가... , 좋, 아.
릭사엘:(장난스럽게) 난 자기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데?
유스텐:그, 그래...?!
그럼... 나도 그걸로 정정할래.
릭사엘:...귀엽긴. (쪽쪽) 누가 이렇게 예쁘래. 나 미치게 만드려고 작정했어.
유스텐:예쁘다고...?
(진짜 뭔 소린지 못 알아들었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린다) 난 예뻐보이려고 하지 않았는데.
릭사엘:예뻐 보이려고 한 게 아닌데도 예쁜 거면, 타고난 거지. (귀여워)
죄 많은 유스네.
유스텐:무슨 소리야....
그리고 타고나길 예쁜 건, (널 한 번 올려다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린다) 너겠지.
릭사엘:내가 어떻게 네 사랑스러움에 비하겠어. (쪽쪽)
유스텐:콩깍지야, 그거.
릭사엘:평생 안 벗겨질 건데 그게 지금 중요한가. (쪽) 안 그래?
유스텐:(콩닥콩닥) 우으... 언제까지 뽀뽀하려고 그래-
릭사엘:죽을 때까지. 입술 닳아 없어질 때까지. (쪽쪽)
유스텐:그, 그건 안 돼...
입술 없어지면 불편하잖아.
릭사엘:설마 진짜 닳을리가. (작게 쿡쿡 웃으며) 죽을 때까지 뽀뽀하겠단 뜻이지.
유스텐:그것도...! 안 돼. ...당장은.
릭사엘:응, 내가 200살까지 살게. 유스 뽀뽀 많이 해줘야 하니까. (쪽)
유스텐:'쟤가 자꾸 뽀뽀하니까 숨을 못 쉬겠어...' (눈을 질끈 감으며) 케이크...!
케이크 만들어야지.
릭사엘:... 아, 맞다. (품속의 네게 온 정신이 팔려서 잊고 있었다)
(천천히 너를 품에서 떼어두며) 우리 자기, 케이크에 크림 바르는 거 가르쳐줄게. 배워볼래?
유스텐:(끄덕) 해볼래.
릭사엘:좋아, 잠시만.
릭사엘은 조리대 찬장을 열고는
이리저리 살피다가 구석에 놓여 있는 돌림판과
스패출러를 꺼내 물에 가볍게 씻습니다.
아무래도 릭사엘도 크림을 바르는 건 오랜만인가 보네요.
당신이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옆에 서자
릭사엘은 미리 휘핑해둔 생크림 보울을 옆에 가져와 두고는
적당히 식은 케이크 시트를 가로로 3등분해 자르고
잘라낸 첫번째 시트를 가져와 돌림판 위에 얹습니다.
릭사엘:(스패출러로 크림을 적당히 떠서 첫번째 시트 위에 슥슥 바른다) 케이크는 한 입에 넣기엔 면적이 좀 큰 편이라, 이렇게 가로로 몇 번 잘라서 사이에 크림을 채워주면 식감이 더 부드러워. 어차피 이 위에 또 시트를 얹을 거니까 꼼꼼히는 안 해도 돼. (그렇게 말하며 시트를 하나 더 올리고, 다시금 위에 크림을 바르고는, 시트를 하나 더 올린다)
릭사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사이사이 크림이 채워진 층층의 시트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제 바깥쪽에 크림을 티 없게 바를 차례인가 보네요.
릭사엘:(전보다 스패출러로 크림을 더욱 많이 떠내고는 한 손으로 돌림판을 잡고, 윗면부터 크림을 바른다) 처음에는 넓게 펼친다는 느낌으로, 크림을 곳곳에 묻혀줘. 그리고 어느 정도 다 발랐다는 생각이 들면, 한손으로 돌림판을 일정한 속도로 돌리고, 스패출러는 대각선으로 쥔 채 위를 매끈하게 해주면 돼. 자세 흐트러지지만 않으면 반듯하게 나와. (네 앞에서 시범을 보여주며, 돌림판을 꾸준히 돌려 케이크 윗면을 매끈하게 다듬는다) 이렇게.
유스텐:어 , 으, 으어? (고장)
이, 이해했어.
릭사엘:스패츌러는 케이크 단면에 모서리를 살며시 닿게 하는 기분으로 반듯이 대고, 반대쪽 날은 사선으로. 옆면도 바르는 방법은 똑같아. 이렇게. (시범을 보여주며 옆면에도 생크림을 깔끔하게 바르고는, 크림이 튀어나온 윗면을 다시 고르게 정돈한다) 여기까지 하면 한 판 끝. 여기다 짤주머니로 모양을 내거나 과일을 올리면 시판용 생크림 케이크야. 지금은 바르는 것까지만 해볼까? (돌림판 위에 있던 케이크를 넓은 접시에 옮겨 담고 다른 케이크 시트를 잘라 첫 번째 조각부터 올린다) 어려우면 도와줄 테니까 해봐. (네 손에 스패출러를 건네주고는, 앞에 세운다)
유스텐:'잘할 수 있을까? 보니까 은근 쉬워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으응!
유스텐:
손놀림
기준치:60/30/12
굴림:69
판정결과:실패
보기에도 조금 어려웠던 탓일까요.
실수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스패출러가 덜덜 떨리더니
크림이 옆면에 벌써부터 다 묻어 버립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릭사엘은 놀란 기색 없이
당신이 발라낸 크림 위에 시트를 하나 더 올려주네요.
릭사엘:자, 다음 것도.
괜찮아, 쿠키 반죽에 커터 찍는 거랑 똑같아. 실수하면 다시 하면 돼. 편하게 해.
유스텐:(손을 덜덜 떨며 안절부절한다) 미, 미안해. 안 예쁘게 됐네...
릭사엘:괜찮대도. 너무 못생기게 나오면 다시 하면 돼.
자 윗면도 해줘.
유스텐:(자신없는 목소리로) 알았어...
유스텐:
손놀림
기준치:60/30/12
굴림:98
판정결과:실패
...
왜 이렇게 잘 안 되는 걸까요.
릭사엘은 능숙하게 잘만 해줬는데...
크림이 덕지덕지 튀어나온 시트를 보니
조금 풀이 죽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릭사엘은 부드럽게 웃으며
당신이 크림을 바른 케이크 시트 위에 마지막 시트를 얹고는
뒤에서 당신의 손을 함께 맞잡아주네요.
릭사엘:잘 하고 있어, 원래 사이사이 크림을 채울 때 크림이 겉으로 조금 빠져나와야 나중에 옆면 다듬을 때 편해. (보듬보듬)
유스텐:정말...? 쿠키보다 더 큰일난 거 아니야...?
릭사엘:응, 아니야. 괜찮대도. (뒤에서 너를 반쯤 끌어안은 채 귀에 쪽 뽀뽀한다) 해도 안 망쳐. 언제든 수습할 수 있으니까. 편하게 해.
유스텐:(설렐 틈도 없이 또 망쳐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잔뜩 기가 죽는다) '크림이 이미 빵가루랑 섞여버렸는데 어떻게 수습한다는 거지?'
'과장된 거짓말은 안 하는 애니까... 생각이 있는 거겠지?' (스스로 확신은 없지만 릭사엘만 믿고 다시 크림을 발라본다)
유스텐:
손놀림
기준치:60/30/12
굴림:58
판정결과:보통 성공
오...
적당히 크림을 떼서 시트 위에 얹고
윗면을 스패출러 아래쪽으로 지그재그 움직이며 고르게 바른 뒤
릭사엘의 도움을 받아 날을 비스듬히 세운 채 돌리자
윗면에 매끈하게 정돈됩니다.
파리가 내려앉아도 미끄러질 것처럼 생겼네요!
뽀얗고 매끈한 윗면을 보자 기분이 좋아집니다.
릭사엘: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잘 하네, 자기. (쪽) 멋지다.
유스텐:와... (활짝 웃으며 네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해냈어!
릭사엘:응, 너무 잘했어. 자기. (예뻐... 신이 난 듯 웃는 네가 사랑스러워 네 양뺨을 붙잡고 입술에 쪽쪽 뽀뽀한다)
이제 옆면도 해볼래? 방향만 수직으로 세우고 방법은 똑같아.
유스텐:(삐질) 이거 조금 고난이도 같은데... 알았어.
유스텐:
손놀림
기준치:60/30/12
굴림:3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요령이 생긴 덕일까요?
이젠 손이 떨지 않아도 슥삭슥삭 크림이 잘 발립니다.
매끈하고 아주 예쁘네요.
팔아도 될 것처럼 생겼습니다.
릭사엘의 도움을 받아 돌림판에 묻은 크림을 정리하고
윗면에 튀어나온 크림까지 슥슥 걷어내면
와,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릭사엘:와, 우리 자기 재능있는걸?
유스텐:'진짠가? 진짜로 재능있는 건지 아니면 내가 초보라고 칭찬하는 건지 모르겠다.' 너무 띄워주지 않아도 돼...
릭사엘:진짜야. 보통 사람들은 네다섯 판 연습한 다음에야 잘하게 되는걸.
유스텐:... (슬쩍) 진짜야?
내가 초보라고 무작정 칭찬하는 게 아니라?
릭사엘:당연하지. 나도 한번에 이렇게 잘하진 못했어. 자기가 대단한 거야. (부둥부둥)
유스텐:(입술을 말아넣었다가 새침하게 볼을 붉힌다) ...그래?
여, 영광인 줄 알아! 넌 내가 만든 첫 케이크를 먹는 거라고! '정확히는 크림칠만 한 거지만...'
릭사엘:알지. 너무 영광이야, 유스. (투덜거리는 건 또 왜 이리 귀여운지. 입술이 절로 붙어 쪽쪽거린다)
이제 남은 한 판도 해줄래?
유스텐:(끄덕끄덕) 맡겨줘.
유스텐:
손놀림
기준치:60/30/12
굴림:29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슥삭슥삭,
하다보니 익숙해져서인지
이젠 쉽게 합니다.
정말 릭사엘의 말마따나
재능이 있는 걸지도요...!
이번엔 도움도 안 받았는데
말끔하게 해냈습니다.
와, 내가 했지만 팔아도 될 것 같다...!
릭사엘:(옆에서 보고 있다가 네가 재주 있게 해내는 모습을 보고 웃는다) 너무 잘하는데? 이제 나보다 잘하는 것 같아.
유스텐:에이- 그건 너무 갔다! 엄청 많이 만든 사람이랑 처음 만든 사람을 어떻게 비교해?
릭사엘:(픽 웃으며) 그 정도로 잘한다는 뜻이지. 너무 기특해. (너를 껴안고 부둥부둥한다) 이제 케이크 아이싱은 다 했으니까, 한 조각 잘라서 먹어볼래?
유스텐:어? 장식은 따로 안 해?
그러려고 과일 산 거 아니었어?
릭사엘:두 판은 장식하고, 한 판은 도시락에 넣게 여기까지만 바를까 했지. 장식 먼저 해볼래?
유스텐:도시락...?
아! (눈을 가늘게 뜨며) 너... 또 그 "살찌우기 프로젝트"인지 그거 하려고 그러지?
릭사엘:그럼 어떡해. 오래 두면 상할 텐데? (눈이 가늘어진 네 얼굴조차도 사랑스러워서 눈꺼풀 위에 쪽 뽀뽀한다)
유스텐:...
알았어.
기껏 만든 건데, 상하면 음식 낭비니까...!
릭사엘:좋아. 그럼 먹으면서 장식도 해볼까. (선반에서 케이크용 나이프를 꺼내 처음에 만든 케이크로 다가간다) 자기가 잘라볼래?
유스텐:'자르는 것쯤이야... 실수하지 않겠지.' 응.
당신은 케이크 나이프로 일정하게 케이크를 자릅니다.
따뜻하면서도 달콤한 냄새가 자르는 동안에도
몽글몽글 피어오르네요.
케이크를 깔끔하게 잘라내고 나면
릭사엘이 접시를 가져와 깨끗이 덜어주고
포크를 내어줍니다.
릭사엘:자, 먹어봐. 입에 맞는지 봐야지.
유스텐:(접시와 포크를 받으며) 고마워.
(식사예절로 눈치보던 건 까맣게 잊어버리고 포크로 케이크 끝부분을 푹 찍어 한입크기로 떼서 먹는다) 음
음?
맛있어!
릭사엘:(귀여워라...) 많이 안 달고 딱 괜찮지? (네 입가에 묻은 생크림을 손으로 슥 닦아주고는 쪽 빨아먹는다)
유스텐:ㅁ, 뭐하는 거야...
릭사엘:내 거 입에 묻었길래, 아까워서.
유스텐:'아, 진짜... 깔끔떠는 도련님처럼 생겨가지고는 사람 설레게 하네...' 바보...
릭사엘:바보가 아니라 사랑에 빠진 사람인 건데.
한 접시만 먹고, 정리하고 자러 갈까?
벌써 밤이 늦었잖아. 내일도 외출해야 하는데, 바쁘지 않겠어?
유스텐:그렇지,참... 피곤하지 않으려면 얼른 자러 가는 게 맞겠네.
릭사엘:그래. 같이 씻을래? 보트 탈 때 내 몸 보고 싶다며.
유스텐:(야무지게 케이크를 먹다가 순간 켁켁거린다) 켁, 켁... 뭐, 뭐라고?
'내가 그런 말을 했었던가?'
릭사엘:정확히는 '궁금하다'고 하긴 했지.
유스텐:궁금하기야 하지...
같이 씻으면 너도 내 몸을 보게 되는 거잖...아.
릭사엘:그건 안 돼?
유스텐:'먼저 몸 보여달라 해놓고 내 몸은 보면 안 돼! 라고 하긴 좀... 그렇겠지?' 어...
(슬쩍) 안 될 거는 없지?
릭사엘:...정 불편하면 욕조에 몸 담그고 있을래? 난 샤워만 하고 잠자리 정돈해둘게.
유스텐:... '어째 뉘앙스가 섭섭한 것 같지 않나?? 으음... 이제 사귀는 사이니까 어차피 몸 정도는 보여주든 말든 언젠가는 보여주게 될 건데 , 내가 너무 내빼는 건가?' 음...
아니, 괜찮아!
릭사엘:...? 괜찮아?
유스텐:ㄱ, 괜찮고 말고! 우리는 사귀는 사이잖아!
릭사엘:(귀여워... 애쓰는 것 같은데 그마저도 귀여워서 웃음이 쿡쿡 나온다) 그래, 그럼 같이 씻자.
당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슨 정신인지도 모른 채
남은 케이크를 꿀꺽꿀꺽 먹어 삼킵니다.
...설마, 무슨 일이 벌어지진 않겠죠?
에이, 설마요.
그저 같이 씻는 것뿐인데.
당신이 접시를 깔끔하게 비워내면
릭사엘은 생크림을 바른 케이크마다 덮개를 얹고는
냉장고에 차곡차곡 밀어넣습니다.
한동안은 정말 케이크 파티를 하겠네요.
릭사엘이 곧 설거지를 마치고 앞치마를 벗어 고리에 걸면
침이 작게 목구멍 뒤쪽으로 넘어갑니다.
릭사엘:씻으러 가자. (너를 부드럽게 안아들고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유스텐:그, 그래... '긴장하지 말자, 유스텐. 긴장할 게 뭐가 있어?! 그저 "같이 씻기"만 하는 것뿐이잖아?! 쟤도 그렇게 말했고. 첫 합방일 새색시처럼 굴 필요 없다 이거야! 분위기만 무르익지 않으면 아무렇지 않다고 했으니까, 그저 쿨하게 남자답게(?) 씻기만 하고? 훈훈하게 머리 좀 말려주다가? 이불 덮고 자면 그만인 거라고!'
릭사엘:응, 씻고 푹 자자. (품에 안긴 네 엉덩이를 부드럽게 토닥이고는 계단으로 향한다)
릭사엘은 당신을 품에 폭 기대게 하고는
그저 당연한 일이라는 듯 계단을 올라갑니다.
언젠가부터 기회가 될 때마다 이렇게 안고 다니는 것 같은데...
제게도 다리가 있다는 사실을 짚어줘야 할지,
아니면 이 호사를 만끽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당신이 다리를 달랑거리며 가만히 실려가다 보면
어느새 계단을 모두 올라간 릭사엘이 욕실의 문을 열고
당신을 내려놓으며 발에 욕실 슬리퍼를 신겨줍니다.
그리고는 팔을 걷고 욕조로 다가가 벽면을 깔끔하게 한 번 닦아내고는
천천히 물을 채우기 시작하네요.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따뜻한 물이 나오는지
작은 수증기가 옅게 공기중에 피어오릅니다.
릭사엘:(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고 네게 다가가며) 옷 벗는 거 도와줄게. 이리 와.
유스텐:자, 잠깐만... 도와준다고?
괜찮아. 나 혼자 벗을 수 있어!
릭사엘:내가 도와주고 싶어서 그래. 안 돼?
유스텐:(삐질...) 안...되지는 않지?
ㄴ, 너...! 전부터 은근히 나를 무슨...! 병자처럼 들고 다니는데! 나, 제대로 걸을 수 있는 사람이거든?!
릭사엘:아는데, 한시도 떨어지기 싫어서.
유스텐:("한시도 떨어지기 싫어서." 그 말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이 꾹 다물린다. 왠지 모르게 딸꾹질까지 하고는) ...
그, ...
음...
으음....
(민망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귀끝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그, 런... 거면 뭐...
릭사엘:(귀여워...) 팔 들어봐. 벗겨줄게.
유스텐:(얼이 잔뜩 빠져서 생각도 안 거치고 얌전히 팔을 들어올리다가 화들짝 놀란다) 아, 아니! '이러면 나부터 발가벗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잖아?'
릭사엘:옳지. (네 상의 아래를 들추고는 위로 슥 벗겨낸 뒤, 청바지 버클도 툭툭 푼다)
유스텐:(버클을 푸는 손을 저지하며) 잠시만...!
우리 얼른 씻고 자야 하잖아? 그러니까...
동시에!
동시에 벗자!
릭사엘:...? 굳이?
유스텐:그 편이 빠르니까...?
릭사엘:나는 밤 날씨 쌀쌀하니까 너부터 따뜻하게 욕조에 몸 담그고 있으라고 그런 건데.
(작게 웃으며) 왜 그리 긴장했어. 안 잡아먹어.
유스텐:아아알거든?! 빨리 씻기 위해 한 번 물어본 거거든?
그리고 잠깐 정도는 괜찮아. 추운 건 익숙하기도 하고...
릭사엘:(무슨 생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알았어. (니트 목 부분의 단추를 완전히 푸르고 벗어낸 뒤, 안에 입고 있던 티셔츠도 함께 벗어낸다)
유스텐:(어색하게 느릿느릿 나머지 옷들을 벗으면서도 네 모습을 흘긋거린다)
릭사엘:(별 생각 없이 제 바지 버클도 툭툭 벗고 속옷도 벗은 뒤 욕실 밖의 바구니에 밀어넣으며) 다 벗었어? 옷 이리 줘.
유스텐:(최대한 사타구니 쪽을 안 보려 애쓰며 팔만 쭉 뻗어 옷을 전해준다) 으응...
릭사엘:(네게서 받은 옷을 바구니에 툭툭 담고는 부드럽게 너를 끌어안으며) 추우니까 들어가자. 물 다 채워졌네.
유스텐:(따뜻한 맨살이 직접적으로 닿자 아랫입술을 꾹 깨물어버린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서는 삐그덕삐그덕 거리며 척척 욕조로 걸어가려 한다) 으, 응!!
릭사엘:(엄청 긴장했나보네... 작게 웃으며 너를 따라 욕조로 천천히 들어간다. 작게 뿌연 수증기가 오르는 곳에서 너와 함께 있으려니 흥분되는 마음보다는 설렘이 강하게 치고 올라온다) 물 온도는 괜찮아?
(손에 물을 한 줌 가볍게 담아 네 어깨를 상냥하게 문질러준다)
유스텐:(흠칫-) 어, 어어- 괜찮지, 당연히!
따뜻해서 좋네! 시원하고...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름)
릭사엘:(작게 쿡쿡 웃으며) 내 몸 궁금하다더니, 구경은 안 하고?
유스텐:할!
할 거야!
이따가...
릭사엘:왜 이따가야. 지금 다 벗고 있는 김에 보면 되지. (네게 몸을 가까이 붙이고 천천히 뺨에 입술을 누른다)
유스텐:그치만, 이거는...
(숨이 턱 막힌다. 흥분해서가 아니라, 긴장감, 부끄러움과 묘한 기대감이 한데 얽혀서 머리가 어지럽다. 입을 세게 다문 채 볼이 빵빵해질 정도로 긴장한 숨을 채워넣는다. 푸- 하고 내뱉고는 눈을 감으며) 너무,
(무릎을 세운 채 그 안에 고개를 파묻으며) 너무... 야한 것 같아...
릭사엘:(들려오는 말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다가 홍당무처럼 달아오른 네가 사랑스러워서 푹 고개를 숙인 네 몸을 부드럽게 끌어안는다)벌써부터?
유스텐:(부끄러움을 참지 못해 앓는 목소리로) 당연하지... 지금... 우리 둘 다 벌거벗고 있잖아-...
릭사엘:그것 때문에 야한 생각 들고 그래? (네 물기 젖은 귓불을 가볍게 쪽 빨았다 떨어진다)
유스텐:그, 그렇지는... 읏, 간지러워.
릭사엘:왜 이렇게 귀엽게 굴어. 네가 너무 긴장하니까 나까지 긴장하게 되잖아. (네 귀에 입술을 붙이고 작게 속삭이듯) 당장이라도 뭐라도 하게 될 것 같고.
유스텐:(마지막 말에 순간 심장이 차가운 얼음물에 담구어졌다가 쥐가 난 것처럼 싸르르해진다. 입술을 여닫다가) ... 무슨,
그거 무슨 뜻이야...
릭사엘:(작게 웃으며) 자기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손 대어 버릴 것 같다는 거지. 무슨 뜻이겠어.
걱정 마, 네가 원하지 않으면 아무 짓도 안 할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조금 몸을 일으키며) 자기 배쓰밤 궁금하댔지? 긴장 풀 겸 하나 풀어줄게.
유스텐:(네가 일어나자마자 벽쪽으로 고개를 휙 돌린다) ... 으응... 고마워.
너, 는... 언제든 준비된 것처럼 말을 하네.
릭사엘:(욕실 찬장에서 예쁘게 반짝이는 금색 배쓰밤을 하나 꺼내려다, 들려오는 말에 작게 웃으며) ...내가 너 아니면 누구에게 이러겠어. 어차피 너밖에 없다니까, 난.
(천천히 배쓰밤을 꺼내고 다시 욕조에 몸을 담근 뒤, 네 손을 끌어당긴 뒤 배쓰밤을 올려놓으며) 자. 물에 담가 봐.
유스텐:까칠까칠해... 영상에서 봤을 땐 되게 부드러울 거라 생각했는데.
릭사엘:(귀엽긴...) 물에 녹으면 거품 올라올 거야. 어서.
유스텐:(끄덕이고는 조심스럽게 배쓰밤을 퐁당- 내려놓는다)
약간은 까슬까슬한 질감의 배스밤을 물 위에 퐁당 내려놓자
배스밤이 곧장 사르르 녹기 시작하며 데굴데굴 수면을 구릅니다.
그리고는 작은 거품이 퐁퐁 올라오기 시작하네요.
신기해라...
당신이 멍하니 뽀글뽀글 올라오는 거품이 신기해
톡톡 두드리고 있으면 릭사엘은 손을 뻗어 샤워기를 쥐고는
거품이 잘 올라오게 가볍게 틀어줍니다.
향긋한 일랑일랑 향기가 솔솔 피어오르며
기분이 조금씩 나른해져오고
목욕물은 반짝이는 금빛으로 물듭니다.
가정집에서 하는 목욕인데, 어쩐지 호텔에 온 것 같네요.
어느덧 거품은 가슴께에 찰랑일 정도로 차오릅니다.
거품이 솟아난 탓인지 물에 비치던 살색이 옅어지자
작게 안도의 한숨이 기어 나옵니다.
방금 전까지 너무 긴장하긴 했던 모양이네요.
릭사엘:(천천히 샤워기의 물을 끄고 다시 받침대에 꽂으며) 어때? 향 좋아?
유스텐:응. 호텔에 온 것 같아...
릭사엘:귀엽기는. 긴장은 좀 풀렸어? (물을 한 줌 쥐어다 네 어깨를 문질러준다)
유스텐:(끄덕끄덕)
릭사엘:(사랑스러워...) 안마하고 등 문질러줄게. 편히 있어.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네 어깨와 목덜미를 가볍게 안마해주기 시작한다)
유스텐:안마까지 할 줄 알아?
릭사엘:흉내는 낼 줄 알지. 잘하는지는 자기가 판단해줘. (부드럽게 네 어깨를 감싸고 적당하게 힘을 들여 근육선을 따라 지압한다)
유스텐:나도 마사지 받는 거 처음인ㄷ, ...으음... (기분 좋은 음을 내며 어깨를 늘어뜨린다)
릭사엘:기분 좋아, 우리 유스? (네 뒷목에 작게 쪽 입을 맞추며 어깨를 마저 주물러준다)
유스텐:(작게 숨을 내쉬며) 좋아...
릭사엘:...사랑스러워서는. (네 어깨를 안마해주다가 등까지 주욱 지압해주고는, 거품을 문질러 깨끗이 씻긴다) 나른해? 피곤하면 슬슬 정리하고 자러 갈까?
유스텐:(눈을 꿈뻑이며) 너는? 목욕 더 안 해?
릭사엘:목욕도 좋지만 자기 껴안고 자는 것도 좋아. (네 등에 물을 끼얹어주고는 스륵스륵 닦아준다)
유스텐:(슬쩍 네게 등을 기대며 나른하게) 껴안는 건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잖아.
릭사엘:(작게 웃으며) 그렇긴 하지만, 여기서 뽀뽀하고 키스했다가는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어서.
(나른하게 기울어지는 네 상체를 받고는 뒤에서 부드럽게 껴안는다)
유스텐:(피식) 그러면서 왜 안는 거야?
릭사엘:안는 것도 안 되는 거였어? (함께 피식 웃는다)
유스텐:그건 아니지만 딱히 자제하려는 사람처럼은 안 보이는걸.
릭사엘:아니야. 자제하는 중 맞아. (네 목덜미와 어깨에 잘게 쪽쪽 입을 맞추다가, 살짝 젖은 네 머리카락에 코끝을 대고 얼굴을 비빈다)
유스텐:(작게 웃음소릴 흘리며) 하하, 언행불일치야-
릭사엘:언행불일치라니. 내가 지금 얼마나 참는데. (쪽쪽)
유스텐:(고개를 네게로 돌려 눈썹을 까딱인다.) 뽀뽀를 그렇게 하면서?
릭사엘:이 정도도 안 되는 거였어?
유스텐: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이쯤 되니까 궁금하네. 뽀뽀하는 게 자제하는 거면- 그 반대는 어떤지.
릭사엘:(작게 픽 웃음을 흘리며) 자제하는 게 아니면- (손을 가볍게 들어 네 허리와 엉덩이가 이어지는 곳을 짧게 슥 훑으며) 이런 식으로 굴겠지.
유스텐:(움찔-) 흐...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본다) 놀리기는...
릭사엘:억울하네. 난 그저 예시를 든 것뿐인데. (사랑스러워...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네 등에 제 몸을 푹 마주 기대고는 귓가에 쪽 뽀뽀하며) 사랑해, 유스. 이제 일어날까?
유스텐:그전에 , 음... (잠시 머뭇거리더니) 뭐 하나만 부탁해도 돼?
릭사엘:응, 얘기해봐. 뭔데 그래?
유스텐:그...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얘가 무슨 대답을 해줄지 모르겠다... 무슨 표정을 지을지도...'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린다) 심장소리... 한 번 들어봐도 돼?
릭사엘:(예상치 못한 말에 벙쪘다가 이윽고 작게 피식피식 웃어버리며) ...물론이지. 네 거잖아. 허락 안 받아도 돼. (조심스럽게 네 몸을 제쪽으로 돌린다) 자.
유스텐:(최대한 네 몸에 손대지 않으려 엉거주춤한 자세로 귀만 가슴부근에 갖다댄다) ... 따듯해. 그리고 엄청 빠르게 뛰는 것 같아.
릭사엘:(귀엽기는... 제 가슴팍에 귀를 댄 네 머리통을 부드럽게 끌어안으며) 그거야, 너랑 있으니까. (이 상황이 너무도 설레서 심장이 더욱 콩닥거린다)
유스텐:(살짝 바둥거리며) 그, 그런데 릭스-
너무 가깝지 않아...? 이러면 내가 떨어질 수 없는데...
릭사엘:...조금만, 조금만 이대로. (너를 품에 가득 끌어안고 고개를 숙여 정수리에 쪽쪽 입을 맞춘다)
유스텐:'가, 가까워...!!!! 게다가 뭔가... 닿... 닿고 있지 않아??' (질끈) 으으...
릭사엘:(품에 안겨서 작게 끙끙거리는 네가 사랑스럽기 짝이 없어서, 정수리에 입술을 찍는데도 조금씩 아랫배가 꿈틀거린다. 아, 흥분하면 안 되는데... 왜 이리 몸이 말을 안 듣는지) ...이제 심장 소리 다 들었어?
유스텐:(끄덕끄덕끄덕) 으응...!
릭사엘:그래, 이제 일어나자. (천천히 네 머리통을 감싸안던 팔을 풀고 네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팔이 가볍게 풀려나갑니다.
이젠 일어날 수 있겠네요.
그렇게 당신이 욕조 바닥에 손을 짚고 일어나려 하면...
유스텐:
민첩
기준치:60/30/12
굴림:92
판정결과:실패
미끄덩-!
미끌거리는 목욕물에 휩쓸려
상체가 역으로 고꾸라집니다.
몸을 옆으로 돌려 일어나려 했던 터라
몸이 푹 아래로 꺼집니다.
눈을 딱 감으려던 찰나 뒤에서 허둥지둥 허리 안으로 손이 뻗어 들어오더니
당신이 욕조 벽에 부딪히지 않도록 힘 주어 지탱합니다.
당신은 잠시 멍한 눈을 깜빡이며
상태를 판단하려 애를 쓰면
등 뒤로 매끈한 가슴팍이 닿고
당신을 감싼 허리 아래 엉덩이 사이로
무언가 묵직하게 닿아옵니다.
이거... 이거, 설마...
릭사엘:유스, 괜찮ㅇ?, ... (네 상태부터 살피려다 어쩐지 묘해진 자세에 천천히 굳는다)
유스텐:(딸꾹) ...
'어, 어쩌지? 뒤에 닿고 있는 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거"잖아.'
미,
(황급히 다시 일어나려 하며) 미안...!!
릭사엘:(민망함에 저도 뺨이 잔뜩 붉어져, 멍한 정신으로 황급히 몸을 떨어뜨리곤 시선을 피한다) ㅇ, 아냐... 괜찮아. 안 다쳤어?
유스텐:(얼빠진 얼굴로 고개만 끄덕인다) 어, 어어... 괜찮아. 덕분에...
릭사엘:(부끄러움에 손가락을 말아쥐며) 응... 다행이다. 다치는 줄 알았어. (방금 전의 접촉 때문에 갑자기 반쯤 일어서버린 성기를 어찌하지 못하고 시선만 여기저기 데굴데굴 굴린다)
유스텐:(후다닥 나와서는 수건부터 찾으러 간다) ㄴ, 너도 얼른 나와! 수건 갖다 줄게. 잠시만-
릭사엘:... 으, 응. (...다 눈치챘으려나? 어쩐지 민망해서 입술이 꾹 다물린다)
당신은 후다닥 욕실 선반에서 수건을 꺼내고 하반신에 두른 뒤
여분 수건을 들고 릭사엘에게 도로 다가갑니다.
릭사엘은 당신이 다가오자 작게 한숨을 쉬더니
살짝 엉거주춤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네요.
유스텐:
관찰력
기준치:55/27/11
굴림:18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
당신은 황급히 수건을 가져다주다가
돌처럼 우뚝 굳어버립니다.
하필, 하필 이렇게 민망할 때
왜 저 하반신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오는 건지.
게다가 방금 전의 일 때문인지 반쯤 서 있어
오갈 데 없는 시선이 그대로 멈춰섭니다.
그리고...
뭐, 뭐가 저리 커?!
다 선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릭사엘:(쭈뼛거리며 고개를 반쯤 숙이고는) ...수, 수건 좀 줄래 유스? 그렇게 빤히 보면 나도 민망해.
유스텐:아,
(뒤늦게 자신이 빤히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두 손을 양 옆으로 들어올린다.) 아!
미, 미안해. 일부러 보려던 건 절대 아니야...
(완전히 몸을 옆으로 돌린 채 팔만 뻗어 수건을 내민다) 여, 여기...
릭사엘:그... 음... (네게서 어색하게 수건을 받아들며) ... 어차피 난 네 거니까 보는 건, 괜찮은데 빤히 보길래.
유스텐:진짜... 진짜로 일부러 빤히 보려던 건 아니었어...!
릭사엘:알, 아. 그러니까 너무 어색하게 그러고 있지 마. (네가 내밀어준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훔친 뒤 허리에 감고는 다가가 너를 끌어안는다) ...춥지. 침실로 가자.
유스텐:으, 으응... (어색하게 끄덕이고는) 같이?
릭사엘:응.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어?
유스텐:아니, 없, 없지...
릭사엘:응, 가자. 잠옷 입혀주고 침대 눕혀줄게. (너를 부드럽게 감싸안고는 침실로 데려간다)
릭사엘은 성기까지 노출한 사람답지 않게
이내 당신이 춥지 않도록 감싸고 방까지 데려갑니다.
죽을 맛입니다.
아까 본 하반신이 계속 떠올라서
머리가 핑핑 현란하게 돌아가는 걸 어쩌겠어요.
그런 당신의 상태에 릭사엘은 의아함을 느끼는 듯도 싶지만
당신이 혹여 쌀쌀할까 걱정하는지 다른 생각은 지워낸 듯도 보입니다.
릭사엘의 방 안에 들어서면 실내 온도는 따뜻합니다.
복도만큼 썰렁하지도 않고, 안온한 향기마저 풍기네요.
당신이 눈을 데구르르 굴리며 바라보고 있으면
릭사엘은 곧 옆 방에서 당신의 잠옷을 챙겨오고
당신의 옷부터 먼저 입혀주기 시작합니다.
릭사엘:(상의부터 천천히 꿰어입히고 단추를 차근차근 잠가준다) ...멍한 표정이네. 그렇게 충격이었어?
유스텐:어...? 아니, 충격적인 건 아니고...
ㅅ, 신기해서...
릭사엘:... 어...디가 신기했는데? (무슨 뜻인지 이해를 잘 못한 상태로, 네 잠옷을 입히다 말고 네 얼굴을 들여다본다)
유스텐:그, 그게...
(뭐라 표현하지? 입술을 달싹이다가 고개를 떨군 채 찌끄만 목소리로) ㄴ... 내 거랑 달라서 신기했달, 까...
하, 함부로 평가하는 그런 건 절대 아니고...!
릭사엘:...괜찮아. 너인데 뭐. 난 오히려 네가 놀란 줄 알고 걱정했어.
유스텐:아냐, 놀랄 게 뭐가 있어. 네가 더 놀랐겠지...
릭사엘:음... 심장이 덜컥 떨어지긴 했지만, 어차피 너 아니면 보여줄 사람도 없...는걸.
그래서... 보니까... 어땠는데?
궁금하다고 했었잖아, 내 몸.
유스텐:어? '이, 이렇게 바로 물어본다고??'
내가 말한 건 정확히는 상체긴 했는,데...
릭사엘:...상체는 지금, 도 보고 있잖아.
유스텐:'뭐라고 해야...' 어, 엄청... 예,쁘다고 생각, 해...
하얗고...
릭사엘:(버벅대는 게 귀여워서 네 손을 끌어다 쥐며) 만져볼래?
유스텐:(화들짝 놀라며) 뭐?!
그건...
(잘 빠진 상반신을 슬쩍 훑어보며) '솔직히... 궁금하긴 한데...' 너무 변태 같지 않아?
릭사엘:네 거 네가 만지는 건데 뭐. (싫다고는 안 하는 너를 바라보다가, 손을 끌어당겨 제 가슴팍 위에 툭 얹는다)
유스텐:헉...! (헛숨을 들이키며 손뼈가 두드러질 정도로 손가락을 전부 뒤로 물린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따뜻한 살결이 느껴지자 저도 모르게 힘을 푼다)
릭사엘:(귀여워...) 어때? 더 만져볼래?
유스텐:ㅇ, 왜 막...! 만지라고 하는 거야아...
릭사엘:그럼 만지지 말라고 해? (귀엽기 짝이 없다 정말... 얘를 어쩌지)
유스텐:그게 아니라...(도망치지도 못해서 남은 팔을 들어올려 얼굴을 가려본다.) 아니! 내 말은 왜, 자꾸 유혹하는, 아니... 하아... (얼굴이 홍다무처럼 새빨개진다)
릭사엘:...내가 유혹하는 거 좋아하잖아. 아니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제 가슴팍 위에 놓인 네 손등 위에 제 손등을 겹쳐대고 슬쩍슬쩍 도드라지는 손가락 마디뼈를 문지른다)
유스텐:(일부러 대답을 피하며 꿍얼거린다) 아까는 얼른 자자며-...
릭사엘:그만 만지고 자고 싶어? 자기 편한대로 해. (장난스럽게 미소를 머금은 채로 네 손을 들어올려 손끝에 쪽 뽀뽀한다)
유스텐:(눈을 감아버리고는) 난... 다른 애들처럼... 겉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네가 자꾸 유혹해...
릭사엘:(작게 웃으며) 유혹 맞아? 이미 빠졌으면서.
유스텐:그것도 네가 유혹해서 그렇잖아...!
아, 아니 내 말은...! 빠졌다고는 안 했어.
릭사엘:정말? 아직도? (슬금슬금 다가가 너를 품에 넣고는 귓가에 쪽 입맞추며) 아닌 것 같은데-
유스텐:으으- 너 나 놀리는 거지, 그렇지?!
릭사엘:아닌데. 나랑 같이 관짝에 눕고 싶다고 했잖아. 다 빠진 거 아니었어? 아직 더 빠져야 해? (네 귓불을 잘근잘근 빨며 놀린다)
유스텐:(어깨를 들썩이며) 흐... 그렇지는...
아, 안되겠어...!
너,
너어-!
빨리 옷 입어.
릭사엘:(낮게 쿡쿡 웃으며) 벗지 말고?
유스텐:그,
그래!
릭사엘:(놀리는 게 왜 이리 귀엽지?) 알았어. (허리에 묶어뒀던 수건을 툭 푼다)
유스텐:히익! (어깨까지 바짝 들어올리며 완전히 굳어버린다. 슬쩍 옆으로 몸을 돌려서) ㄴ, 난... 먼저 침대로 갈래!
릭사엘:(귀여워...) 바지는 입어야지, 유스. (작게 키득거리며 허리를 숙여 입히다만 잠옷 바지를 들고, 네 하반신 아래서 물끄러미 너를 올려다본다) 발.
유스텐:(점점 기어들어가는 투로) 내가 알아서 입을 수 있다니까...
릭사엘:발. (꿋꿋하게 올려다본다)
유스텐:고집불통... (툴툴거리며 한발씩 들어올린다)
릭사엘:(능숙하게 네 발에 슥슥 잠옷 바지를 꿰어주고는, 슥 올려 배까지 끌어당겨준다) 착하지. 예쁘다.
이제 침대 가서 누워도 돼.
유스텐:'완전히 어린 애 취급이잖아!' 흥...
릭사엘:삐졌어, 내 사랑? (보드랍게 끌어안고 부둥부둥한다)
유스텐:나 놀리는 게 그렇게 재밌어?
릭사엘:응, 너무너무. 너무 예뻐, 자기야. (쪽쪽)
유스텐:'예쁘다니깐 더 뭐라 할 수도 없고...'
빠, 빨리 자...
릭사엘:응, 알았어. 먼저 누워. 잠옷 입고 들어갈게. (쪽)
유스텐:(끄덕거리고는 먼저 침대로 들어가 이불을 목끝까지 푹 덮는다) '가만... 여기 릭스 침대잖아. 어쩌다 같이 자는 게 이렇게 자연스러워졌지?
릭사엘:(그런 네 생각은 까마득히 모르고, 이불을 목끝까지 덮은 너를 보며 부드럽게 웃고는 잠옷을 슥슥 입는다)
당신이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어쩌다 동침이 이렇게 자연스러워졌나 고민하고 있으면
릭사엘은 곧 이불을 들추고 침대로 들어와
당신 곁에 누워 몸을 쏙 끌어당깁니다.
뭐... 아무려면 어떤가요.
품에 갇히니 무척 따뜻합니다.
콩닥콩닥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려와
누구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릭사엘:바로 잘 거야? (쪽)
유스텐:... 넌?
릭사엘:자기가 잔다고 하면 나도 바로 자고.
유스텐:... 뭔가 바라는 게 있는 것처럼 들리는데.
릭사엘:(작게 웃으며) 착각이야. 너랑은 뭘 해도 좋거든.
유스텐:(잠깐 눈을 굴리다가) 그럼... 눈 감아봐.
릭사엘:(또 무얼 하려고 이럴까) 응. (가볍게 웃으며 눈꺼풀을 슥 감는다)
유스텐:...
(살며시 턱을 내밀어 네 다물린 입술에 새털처럼 가볍게 입을 맞췄다 뗀다. 숨어버리듯 반대로 돌려누워서 이불을 꽁꽁 덮고는) 구, 굿나잇 키스야.
잘 자...!
릭사엘:(먼저 다가온 입술에 살짝 벙쪄 눈꺼풀을 들어올리고는, 느릿하게 깜빡거리다가 동그랗게 부푼 네 머리통을 보고 등쪽에서 끌어안는다. 사랑스러워...) ...자기도 잘 자. 좋은 꿈 꿔.
...사랑해.
유스텐:...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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