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 07 이게 데이트였다고?!

 




무슨 정신으로 일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을 확인하면 어느새 시각은 10시 56분.
아르바이트 끝나는 시간까지 겨우 4분 남은 시점입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편의점 정리를 마저 하고 있으면
길게 편의점 근처를 기웃거리는 그림자가 보입니다.
유스텐:(멈칫) '뭐야? 왜 저렇게 커?'
(두리번두리번) '설마 슬랜더맨 같은 게 진짜 있겠어?'
(온갖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손은 어느새 카운터 밑에 있는 경찰 호출 버튼에 위치시킨다) '설마 강도 같은 거면 어쩌지? 돈을 줘야 하나? 주면 살려주려나?'
바들바들 떨며 당신이 유리로 된 편의점 창문을 바라보고 있으면
긴 그림자의 주인공이 휙 나타납니다.
릭사엘:(네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밖에서 슬며시 손을 흔들며 웃는다)
유스텐:(눈을 휘둥그레 뜨며) 릭사엘...?
'급하게 나가느라 편의점 어딘지 제대로 안 알려줬는데 어떻게 안 거야?'
방긋 웃던 릭사엘이 당신에게 시선을 떼지 못한 채로
편의점 주변을 돌더니 문을 밀고 들어옵니다.
슬슬 날씨가 추워지는 계절이어서인지
약간의 찬 바람이 그와 함께 들어옵니다.
릭사엘:(편의점 내부를 둘러보다가 슥 카운터로 다가가며) 교대까지 시간 남았어?
유스텐:한 3분 정도...
여기서 일하는 건 어떻게 알았어?
릭사엘:음? 너 어디서 일하는지 아는 학생 있냐고 물어보니까 답해주던데.
유스텐:그걸 아는 애가 있다고? '일부러 학교에서 좀 먼 곳으로 고른 건데??'
릭사엘:잘 모르긴 하더라. 찾느라 애먹었어. (웃음)
유스텐:그럼 설마... 지나가는 애들 하나씩 붙잡고 아는 애가 나올 때까지 물어봤다는 말이야?
릭사엘:학생들 자주 가는 카페에서 공부하다가 한 명한테 슬쩍 물어보니까 다들 옆사람한테 물어물어 대답해주던데.
유스텐:무슨 그런... '여기도 슬슬 관둬야 하나?'
릭사엘:음? (갑자기 낯빛이 안 좋아진 네 안색을 들여다보며)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
유스텐:하아... 아니야. '얘한테 무슨 잘못이 있겠어.'
릭사엘:...말해봐. 내가 뭔가 잘못한 거지?
유스텐:네가 잘못한 건 없어. 내가 너무 안일했던 거지.
릭사엘:(설마...) ...알바하는 곳이 알려지는 게 싫었던 거구나. 미안, 그런 줄 몰랐어.
유스텐:괜찮아. 오히려 알아서 다행이지.
릭사엘:...?
...왜 다른 학생들에게 알바하는 곳이 알려지기 싫은 건지, 물어봐도 돼?
유스텐: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다들 내가 가난한 걸 아는데 굳이 이렇게 일하는 걸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 별로 마주치고 싶지도 않고.
릭사엘:그래도 아르바이트 정도는 다들 하잖아. 난 네가 기죽을 일 없다고 생각해.
유스텐:... 그냥 굳이 아는 사람 마주치기 싫은 게 커서 그래.
릭사엘:...그래도 설마하니 일부러 널 찾으러 여기까지 오는 학생은 없을 거야. 기존에도 없었던 거잖아.
유스텐:그건 그렇지.
릭사엘:그러니까 내 말은,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라는 말이야. 나중에 혹시나 여길 찾아오는 학생들이 늘어나면 그때 생각해도 안 늦어.
유스텐:'그런 것보단... 아까 있었던 일 때문에 이런 곳에서 못 볼 줄 알았는데.'
릭사엘:(슬쩍 시간을 확인하고는 네 손을 부드럽게 겹쳐 쥐며) 교대할 사람은 멀었대?
별안간 붙잡힌 손에 닿는 온기에 입술을 떨면
막 편의점 교대 아르바이트생이 도착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유스텐:(어깨를 움찔거리며 황급히 네 손을 뿌리친다) 괘, 괜찮습니다.
당신이 황급히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하며
아르바이트생에게 카운터 자리를 내주고
간단하게 시재 점검을 하고 앞치마를 벗으면
아르바이트생이 집에 조심히 들어가라는 말과 함께
당신에게 손을 흔들어줍니다.
릭사엘:갈까?
유스텐:그, 그래... '얘는 왜 이렇게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 지금은 같이 가기 불편한데...'
그래도 어쨌든 릭사엘과 함께 편의점 문을 열고 나오면
쌀쌀해진 밤 공기가 당신의 뺨에 다가듭니다.
그러고보니...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었죠.
심지어 당신이 사주겠다고도.
유스텐:'집 가는 길이랑 완전 반대 방향인 여기까지 와줬는데 약속을 취소할 수도 없고... 으으...'
'가만... 좋아하는 건 쟨데 왜 내가 혼자 이렇게 신경써야 하는 거지??'
(다시금 방과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숨이 닿을 정도로 가까웠던 거리. 동공에 거울처럼 가득 담긴 자신의 바보 같았던 모습. ...살면서 타인의 입술을 그리 가까이서 본 적이 있었던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크게 고개를 크게 도리질친다.) '아니, 아니. 뭐냐고 이거???'
(옆에 있는 너를 흘긋거리며) '다 저 얼굴 때문이야. 객관적으로 예,쁘게 생기긴 했잖아. 사심이 없어도 저런 얼굴이 코앞에 있으면 나 말고 다른 사람도 똑같이 하는 게 정상 아니냐고!'
릭사엘:(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 채 네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은근슬쩍 다시 손을 잡는다) 우리 뭐 먹을래, 유스?
유스텐:'그래, 역시 저 얼굴이 문제인 거야.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고! 쟤는 자기 얼굴이 저렇게 생긴 거 알고는 있나? 어쨌든! 얼굴 때문에 내가 잠시 당황했을 뿐이야. ' (라고 정신승리하다 손에 따뜻한 체온이 닿자 흠칫한다) ... 이제는 되게 자연스럽게 손 잡네, 너.
릭사엘:... 잡고 싶어서. 안 돼? 안 싫어한다고 했잖아.
유스텐:싫은 건... 아니긴 하지. '이런 건 친구끼리도 하는 건데 내가 너무 과민반응 하는 건가?'
(가방끈을 꼭 쥐며 바닥에 있는 작은 돌을 툭툭 찬다) 릭사엘 넌... 친구 많지?
릭사엘:음? 많지. 그건 왜?
유스텐:친구랑은 보통 어디까지 해?
릭사엘:...뭐를 어디까지 해?
유스텐:이런... 손 잡는 거 말야.
릭사엘:너 말고는 아무랑도 안 해.
유스텐:...? 친구 많다며.
릭사엘:...그건 걔네가 나를 좋아하니까 친구로 지내는 거고.
유스텐:넌 걔네 안 좋아해?
릭사엘:음... 싫어하진 않지만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도 않아.
유스텐:(그게 뭐냐는 표정으로 눈을 반쯤 구긴 채 눈썹을 찌푸리며 올려다본다) 그거 친구 맞아?
릭사엘:다들 내 외모랑 성적, 성취에나 관심 있지 나한테 관심 없잖아. 그런 애들한테 마음을 여는 게 쉽지는 않지.
유스텐:'나도 아까 네 외모 생각하고 있었는데.' (괜히 찔려서 속으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눈을 굴린다) 그, 그렇구나.
그래도 그런 것도 너라고 생각하는데.
릭사엘:(피식 웃으며) 내가 아닌 건 아니지만, 군중 속에서도 외로움을 겪는 게 이상하진 않단 소리야.
유스텐:의외야. 난 네가 외로움 같은 건 전혀 안 느낄 줄 알았어.
릭사엘:...사람은 타인을 볼 때 겉모습만 보니까.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사람이기는 하지만서도.
(분위기가 무안해진 듯해 살짝 웃으며 화제를 돌린다) 이러다가 우리 저녁 못 먹는 거 아냐? 뭐 먹을지부터 정하자. 뭐 먹고 싶어, 유스?
유스텐:(항상 찬란할 것 같은 사람인 네가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에 의외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질감이 들어, 의식하고 있던 것을 잠시 잊어버린다) 내가 사기로 했으니까 이번엔 네가 골라봐. 그동안 계속 나한테 메뉴 맞춰줬잖아.
릭사엘:난 식사량이 많은 편이 아니라 뭘 먹든 괜찮아. 네가 잘 먹는 게 보고 싶어서 먹자고 한 거야.
유스텐:나도 가리는 음식 딱히 없어서 괜찮은데. (어깨에 맨 가방끈을 손으로 감싸쥐며 툭-) 네가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궁금해서 그래.
릭사엘:어... 가정식?
유스텐:가정식...?
'집에 가서 먹자는 말을 돌려서 한 건가?'
릭사엘:...외식할 때는 이탈리안 푸드를 주로 먹긴 해.
유스텐:어... '이 시간까지 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으려나...?'
릭사엘:...너 먹고 싶은 거 먹자, 역시.
유스텐:잠...시만. (네게 잡힌 손을 슬쩍 빼내 등을 돌려 휴대폰으로 주변에 밤늦게까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있는지 검색한다)
당신이 구글에 가볍게 검색을 하자
몇몇 레스토랑 식당이 상단에 뜹니다.
[Ashbury Row] - 아메리칸 비스트로
[The Blackwell Kitchen] - 업스케일 캐주얼
[St. Rowan’s] - 영국식 가스트로펍
[Rue Noire] - 프렌치 비스트로
[North Pier Diner] - 심야 다이너
유스텐:'말투 보니까 영국인 같은데... 세 번째 식당을 가야 좋아하려나? 펍이라서 지금 시간에 가면 애들은 가라고 하려나?'
릭사엘:(슬쩍 네 쪽으로 고개를 기울여 함께 네 화면을 들여다보며) 오... 그래도 여러군데 있네.
유스텐:여기 중에 끌리는 곳 있어?
릭사엘:난 어디든 괜찮은 것 같아.
유스텐:(삐죽) 넌 왜 맨날 다 좋다고 해.
릭사엘:너랑 있을 수만 있으면 좋으니까.
그래서, 뭐 먹고 싶어?
유스텐:'내가 사는 건데 먹고 싶은 것도 내가 고르면 이상한 거 아닌가?' ... 혹시 입맛이 없어?
릭사엘:? 아니.
유스텐:(누가 봐도 삐진 얼굴로) 나한테 얻어먹기 미안해?
릭사엘:(잠시 당황하며) 아니야. 그런 거 아니라, 진짜 다 괜찮아서.
... 그런 생각하게 만들 줄 몰랐어. (어디라도 빨리 골라야겠다는 생각에 잠시 고민하다가 세 번째 레스토랑을 고른다) 여기 갈까? 나 영국식 음식 좋아해.
유스텐:(힐끔) ...진짜 좋아해?
릭사엘:응, 어릴 때 영국에서 살아서 그쪽 음식이 익숙해.
유스텐:좋아하는 거 잘만 있으면서. 그럼 거기로 가자.
릭사엘:응. (잠시 고민하다가 손을 다시 뻗어 네 손과 단단히 깍지를 낀다)
유스텐:(깍지 낀 손을 빤히 바라보다가) 릭사엘.
(순수하게 궁금하다는 듯) 우리는 무슨 사이야?
릭사엘:...어?
유스텐:난 친구끼린 애칭도 부르고 손도 잡는 줄 알았는데, 넌 친구들이랑은 전혀 안 그런다길래.
릭사엘:음... 아직까진 친구, 아닐까.
(깍지낀 손가락을 조금 움직여 네 손등을 만지작거린다)
유스텐:그치만 친구랑은 안 이런다며.
릭사엘:...너랑은, 그냥 친구가 아니니까.
유스텐:그렇구나. 그럼 사심있는 친구?
릭사엘:...응. (주변을 살짝 둘러보다가 깍지낀 손을 들어 네 손등에 살짝 입 맞추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자고 끌어당긴다) ... 가자. (귀가 뜨거워...)
유스텐:'친구... 친구...' (사심이 가득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정식으로 친구가 생겼다는 것에 조금 설렌다. 미소지으며) 나 친구한테 밥 사주는 건 처음 해봐.
릭사엘:(친구...라는 말에 조금 기분이 가라앉지만 구태여 티내지 않으며 가볍게 웃는다) 영광이네. 유스텐 애쉬미어에게 처음으로 식사 대접 받는 사람이 나라니.
유스텐:(으쓱)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라고.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시켜.
릭사엘:응. (너와 맞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며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당신은 릭사엘과 손을 잡은 채로 가로등이 켜진 거리를 걷습니다.
오늘도 저녁을 거르고 일해서일까요
배에서 슬슬 꼬르륵 소리가 납니다.
조금 걷다 보면 당신이 찾았던 레스토랑이
곧 당신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St. Rowan’s] 라고 적힌 간판에서 부드러운 빛이 흘러나오고
안에서는 가벼운 웃음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이런 곳은 처음인데, 어쩐지 조금 설레기도 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깥과는 사뭇 다른 공기가 느껴집니다.
젖은 밤공기와 함께 따라 들어오던 냉기가
문이 닫히는 소리와 동시에 끊어집니다.
식당 내부는 생각보다 낮고, 생각보다 따뜻합니다.
릭사엘:
크기
기준치:75/37/15
굴림:96
판정결과:실패
그래도 릭사엘의 키보다는 큰 곳이네요.
천장이 낮아서 걱정했는데 다행입니다.
천장은 오래된 목재로 마감되어 있고
벽은 짙은 나무 패널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조명은 밝지 않은 대신 테이블 위에만 조심스럽게 내려앉아
식사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조금씩 가려주네요.
바닥을 밟을 때마다 운동화가 내는 소리가 묵직하게 울립니다.
안쪽에서는 벽난로가 낮게 타고 있고,
커플들이 속삭이며 대화하는 소리 가운데로
가벼운 어쿠스틱 포크 발라드가 흘러나옵니다.
유스텐:'이거 어째... 장소를 잘못 고른 것 같은데.'
릭사엘:(주변을 둘러보다가 네 손을 톡톡 잡아끌며) 저쪽 자리에 앉으면 될 것 같아.
유스텐:(민-망) 여, 여기 말고 다른 데로 갈까? 커플들만 오는 곳 같은데.
릭사엘:뭐 어때. 식사하는 곳인데.
유스텐:(멋쩍게 웃으며) 그, 그...런가? 하긴 여기서 누가 키스 안 하냐고 혼낼 것도 아니고... 식당인데.
릭사엘:(네 입에서 나온 '키스'라는 단어에 살짝 생각한다. 낮에 있었던 일을 조금은 신경쓰고 있는 건가?)
그럼. 가서 앉자.
유스텐:으응! (이런 곳이 낯설어 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도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릭사엘은 창가에서 한 칸 떨어진,
벽난로와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자리를 고릅니다.
당신이 의자에 앉으면 적당히 푹신한 쿠션이 몸을 받쳐줍니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물잔 두 개와 냅킨이 정돈되어 있네요.
신기한 마음으로 주변을 탐색하면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 사이로 허브 향이 은은하게 납니다.
버터와 로스트된 고기, 타임과 세이지가 섞인 냄새입니다.
숨을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어깨에 남아 있던 긴장이 조금씩 풀리네요.
릭사엘:(메뉴판을 펼치며) 뭐 먹을까? 이곳 베스트는 양고기 파이와 레몬 딜버터에 담가 구운 연어래.
유스텐:어어? 잠시만... (후다닥 메뉴판을 따라 펼쳐 어떤 메뉴가 있는지 확인한다) ...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크게 뜬 채 입을 떡 벌린다) '미친!!! 0 하나 실수로 더 적은 거 아니야?'
'나 혼자서 물만 마시면 안 되겠지...?'
릭사엘:(눈이 휘둥그레진 네 얼굴을 조금 걱정스럽게 내려다보며) ...왜 그래?
유스텐:'사겠다고 큰 소리 떵떵 쳐놓고 다른 곳 가자고 하기도 좀 그렇고... 끙...'
'친구에게 처음으로 하는 식사 대접인데다 그동안 해준 것도 많으니까...' (메뉴판을 탁 내려놓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음식이 전부 맛있어보이네. 너 먼저 시켜!
릭사엘:음... (가격 때문인가. 조금 걱정되는데... 그래도 이제 와서 안 먹겠다고 하면 자존심 상하겠지) 그럼 난 스카치 에그랑 스패니치 파이.
유스텐:그럼 난... '여기서 제일 저렴한 메뉴가...' 웜 브레드 앤 허브 버터에 치, 치킨 리크 파이로!
마실 건 안 필요해?
릭사엘:음, 그러면 얼그레이 홍차.
유스텐:나는 물 마실게...
릭사엘:코코아 안 마시고?
유스텐:괜찮아. 코코아는 집에서도 마실 수 있는걸.
릭사엘:음, 알았어.
웨이터를 불러 가격도 덜덜 떨리는 주문을 마치고 나면
큰 산을 하나 넘은 것처럼 가슴이 축 늘어집니다.
무슨 메뉴 하나 가격이 하루치 식비보다 비싼지...
유스텐:(등받이에 상체를 흘러내리며) 후...
릭사엘:(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 손바닥이 위로 가도록 놓으며) 괜찮아?
유스텐:어? 당연히! 괜찮지.
릭사엘:무리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그랬어.
유스텐:무리는...! 아니야.
먹고 부족하면 또 시켜도 돼...!
릭사엘:알았어, 고마워. 잘 먹을게.
오늘 일은 어땠어. 많이 힘들었어?
유스텐:평소랑 똑같지 뭐.
너는 어디서 기다리고 있었어?
릭사엘:학교 인근에 있는 카페. 거기 커피 원두가 맛있거든. 가볍게 학생회 안건 문서 정리하고 공부하고 있었어.
유스텐:그랬구나. 음... '혹시 내가 대답도 안 하고 가 버려서 기분 상했을까 싶었는데, 표정 보니까 전혀 신경 안 쓰는 것 같기도 하고...'
릭사엘:하고 싶은 말이 있어?
유스텐:아니?! 없지. '다시 그 주제가 나오면 또 대답해야 할지도 몰라. 그냥 모른 척 하자.'
릭사엘:그래? 보통 사람들은 내 얼굴 보면 말이라도 하나 더 붙이고 싶어하던데. 넌 참 특이해.
유스텐:그런가? 보통은 무슨 말을 하는데?
릭사엘:주제가 다양해서 콕 집어 말하기는 힘든데. 보통은 자기연민하는 얘기나, 본인 도와달라는 얘기.
유스텐:...? 그걸 왜 너한테 얘기해?
릭사엘:모르겠어. 본인이 얼마나 힘든지 얘기하면서 내 환심을 사고 싶은 건지. 아니면 정말로 도와달라는 건지.
유스텐:그치만 넌... 그저 학교 안에서의 학생회장일 뿐이잖아.
다른 애들이랑 같은 학생이고.
릭사엘:그렇지. 다른 애들이랑 크게 다를 게 없는데도, 나한테 자주 그러네...
미안, 너랑 이런 곳에 와서 할 얘기는 아닌데.
유스텐:상상도 못 했어. 그런 얘기보단 다른 대화를 많이 할 줄 알았는데.
너도 참 피곤하겠다. 다들 무작정 기대하니까...
릭사엘:(살짝 웃으며) 이해해주는 거야? 유스는 상냥하네.
잠시 대화를 하며 릭사엘도 참 고생이 많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주방에서 접시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웨이터가 음식을 서빙해 가져옵니다.
천으로 싼 작은 바구니에 담긴 두툼한 빵과,
세이지와 타임이 섞인 연한 버터.
반숙으로 익힌 계란을 반으로 잘라 튀긴 스카치 에그,
당신이 시킨 치킨 앤 리크 파이와
릭사엘이 시킨 머쉬룸 앤 스패니치 파이가
황금빛 페이스트리를 뽐내며 테이블에 놓입니다.
하나 같이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네요.
당신이 잠시 입을 벌리고 있으면
웨이터는 우아하게 테이블에서 벗어나
주방 쪽으로 돌아갑니다.
릭사엘:배 많이 고프겠다, 우리 유스. 슬슬 식사하자.
유스텐:(침을 꿀꺽 삼키며) '맛있겠다...'
'? 잠깐만.' ... ...뭐?
우리 유스???
릭사엘:... (무의식중에 뱉어버린 호칭이었던지라 뒤늦게 멈칫하며) 그렇게 부르는 건 싫어?
유스텐:싫은 건 아니지만, 그건 너무... '많이 가까운 사이 같지 않나?'
릭사엘:(볼을 발갛게 물들인 채 입술을 조금 달싹이다가) ...싫으면 다음부터 안 부를게. 어서 먹자, 배 고플 거 아냐.
유스텐:아니, 싫지는... 음, 그래. 먹자.
따뜻한 빵을 먼저 집어 반으로 가르고
허브 버터를 발라 입에 넣으면
부드러운 빵 결결이 입 속을 채우고
녹아든 버터가 향긋하게 녹아내립니다.
씹을수록 밀가루의 단맛이 늦게 따라옵니다.
급하게 먹을 수 없는 맛이네요.
어느 정도 먹다가 따뜻하게 김이 올라오는 치킨 파이에 포크를 누르면
여타 다른 파이와는 포크가 들어가는 느낌부터 다릅니다.
밀도 있게 꽉 찬 페이스트리 안에 든 닭고기는
부드럽게 잘게 찢겨 있고 리크는 산뜻하게 향을 풍깁니다
군침을 삼키며 적당히 잘라 입에 넣으면
고소한 크림 속에서 닭고기의 감칠맛과 리크의 향긋함.
뒤를 잇는 세이지의 향기가 여운을 남기며 올라옵니다.
유스텐:(전자렌지에 대충 돌려 떼워먹던 음식들과는 다른, 부드러운 식감에 "우리 유스" 사건도 까맣게 잊고 눈을 감은 채 음미한다) '너무 맛있어...'
릭사엘:(만족스럽게 음식을 먹다가 너무도 행복해보이는 네 표정에 픽 웃음을 흘린다) 그렇게 맛있어?
유스텐:(식기에서 윤이 날 정도로 입안에서 남김없이 핥고는) 맛있어...
아, 너는 어때...? 입맛에 맞아?
릭사엘:맛있어. 그리운 맛이야.
데리고 와줘서 고마워, 유스.
유스텐:(첫 식사 대접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것 같아 속으로 안도한다) 그래? 다행이야.
음...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혹시 다른 애들처럼 말을 걸어보려는 것처럼 보일까 싶어 덧붙인다) 사심없는 질문...!
릭사엘:(사심 없다는 뜻을 강조하는 네 목소리에 조금 더 짙게 웃으며) 얼마든지.
유스텐:억양도 그렇고 다른 애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 들었는데... 릭사엘 넌, 영국인인 거지?
릭사엘:맞아. 티 많이 나?
유스텐:조금? (다급하게 두 손을 휘저으며) 이, 이상하다는 건 아니고...!
(검지로 턱을 긁적이며) 집도 잘 사는 것 같은데 왜 굳이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는지 궁금해서.
릭사엘:아, 어릴 때 영국에서 살다가 5년 전쯤 미국으로 이주했어. 영국에서 우리 가문이 불명예스런 오해를 받아서. 생전의 내 부모님은 미국을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하셨던지라 새출발하자는 뜻으로 이곳으로 오셨지.
유스텐:아... 그랬구나...
(두 손을 모은 채 꼼지락거리며) 혹시 실례되는 질문이었다면 미안해.
릭사엘:아니야. 실례기는. (잠시 홍차 한 모금을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으며) 실례되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면 답하지도 않았을 거야. 걱정 마.
유스텐:'그럼 부모님은... , ... 물어보지 말자.' ... 너는 괜찮아?
릭사엘:괜찮아. 다 지나간 일인데 뭐.
유스텐:영국이 그립지는 않아?
릭사엘:조금. 안 그립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래도 이곳을 뜨고 싶지는 않았어.
유스텐:왜...?
릭사엘:글쎄.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네. 영국으로 돌아가면 규율에 얽매여 살아야 하는 게 싫었던 건지, 부모님과 지냈던 지금 집을 떠나기 아쉬웠던 건지.
그래도 지금은 안 돌아가서 다행이었다 싶어.
유스텐:... '설마...' 왜?
릭사엘:내 마음 이해해주는 사람이 생겨서. (너를 향해 검지를 툭 뻗고 슬며시 웃는다)
유스텐:(입을 살짝 벌린 채 잠시 말없이 널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린다) ... 돌아갔으면 더 좋고, 더 나은 사람을 마주쳤을지도 모르잖아.
릭사엘: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네가 아니잖아.
유스텐:(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 취향 특이해. 제대로 된 대답도 못해주는 사람이 뭐가 좋다는 건지...
릭사엘:어쩌겠어. 사랑에 빠지는 것도 내 의지가 아닌데.
유스텐:'어쩔 수 없다 해도 내게 빠질 만한 이유를 모르겠는걸.' 만약 의지로 가능했다면, ... 아니다.
실없는 소리를 했어.
(마른 입술을 한번 빨아당겼다가) 질문 하나만 하려 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지? 영국 얘기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릭사엘:그러게. 어쩌면 지금 이게 데이트인 것도 몰라주는 내 앞의 사람 때문 아닐까.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눈을 감고 웃는다)
유스텐:(구부정했던 자세를 바로하고) 어, 어?
(전혀 몰랐던 사람처럼 눈을 빠르게 깜빡인다) 이거 데이트였어?
릭사엘:그러면 아니라고 생각했어? 야속하네, 내 사랑은.
유스텐:어? '내... 사랑?'
(대답하려다 "내 사랑" 이라는 말에 앞의 말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너, 너...!
(뒤늦게 이곳이 둘만 있는 공간이 아닌, 식당임을 인지하고 소곤거린다) 너 오늘 왜 그래?
릭사엘:(네 반응의 이유를 모르고 고개를 갸웃하며) 음?
유스텐:아침에도 그렇고, 학교 끝나고도, 그리고 지금도...!
ㅇ, 왜 하루종일...!
릭사엘:(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가만 웃으며) 내가 하루 종일 뭐?
유스텐:진짜 몰라서 물어...?!
릭사엘:(아 사랑스러워... 부러 더 모른 척하며) 응. 모르겠는데.
유스텐:(이를 깍 깨물며 노려보다가 홧김에 내뱉는다) 자꾸 신경쓰이게 만들잖아...!
릭사엘:내가 신경 쓰여?
유스텐:그럼 신경 안 쓰이게 생겼어?! 계속 거리를 좁히질 않나, 손도 계속 만지작거리고...!
내가 모를 줄 알아? 네가 사심 채우고 있는 거...!
이번엔 갑자기 왜 이름 말고 내 사ㄹ... , 이라고 말을...!
릭사엘:네가 나한테 흔들려주잖아. 계속.
자꾸 욕심날 수밖에 없게, 싫다고 안 하잖아.
유스텐:그거야 네가 자꾸 다가오니까...!
말 나온 김에 좀 묻자. 너, ... 너는 네가!
(눈을 질끈 감으며)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는 있는 거야?
릭사엘:... ...?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지) 알아.
유스텐:알면 왜 그러는 건데?!
릭사엘:... 난 네가 욕심나고, 넌 싫다고 안 하니까.
유스텐:그건...! ... (당장 반박하려 입을 벌려보지만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는다. 사랑 고백에는 확실한 대답을 못해도 행동 자체에 "싫다" 라는 감정은 전혀 들지 않았기에.)
릭사엘:(멀리 네가 앉은 자리까지 손을 뻗어 네 손을 끌어당긴 뒤, 제 뺨 위에 올려두며 가볍게 뺨을 비빈다) ... 내가 계속 이러면 싫어할 거야?
유스텐:(뻣뻣하게 굳으며 대답을 회피한다) ...여기 식당이야. 우리 둘만 있지 않아.
릭사엘:... (여전히 회피만 하려 하는 네 말에 천천히 손을 테이블로 내려주며 눈을 깜빡인다. 가슴이 옅게 시큰거린다) ... 유스. 내 마음은, 가망이 없어?
유스텐:... '이걸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 거지?'
릭사엘:...아니야. 못 들은 걸로 해. 미안. 내가 괜한 소리 했어. (울컥 올라오려는 눈물을 애써 누르며 시선을 피한다)
유스텐:(누가 봐도 상처받은 듯한 네 표정을 보고 심장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대답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확신이 들지 않아 입술만 움찔거린다.) '어줍잖게 위한답시고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엔 너무 미안한걸.'
(고개를 푹 숙이며) 미안해, 난...
'아, 나는 왜 이모양이지. 릭사엘이 어떤 마음일지 알면서 자기 마음도 제대로 결론을 못 내네...' (미안함과 답답함이 뒤섞여 어쩔 줄 몰라 결국 눈두덩이가 물 먹은 솜처럼 습기로 가득찬다)
릭사엘:(그런 너를 애써 모른 척하며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런 분위기에서 네게 식사를 얻어먹기도 제 마음이 얹힐 것 같아. 네가 풀 죽은 사이 슬며시 계산을 마치고 다가오며) ...다 먹었으면 가자. 내가 계산했어.
유스텐:(좋았던 분위기를 자신이 다 망쳐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눈물이 멈출 기미를 안 보인다. 그 모습을 필사적으로 들키지 않으려 고개를 푹 숙인 채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잘한 것도 없으면서 왜 울어, 유스텐...'
릭사엘:(어깨를 작게 들썩이며 우는 게 분명한 네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이 마음 아파 시선을 피했다가, 목이 허전해보이는 네 상태를 보고 제 머플러를 네 목에 조심스럽게 둘러준다) 밖에 추워. 내가 편의점 인근에 차 세워두고 왔으니까 거기까지만 걸어가자. 집에 가야지. (잠시 주춤거리다가 네 고개를 들어올리고 손가락을 미끄러뜨려 네 눈가에 묻은 물기를 자상하게 닦아준다) 뚝. 괜찮아. 네 잘못 없어.
유스텐:(목도리까지 둘러주는 네 다정함에, 도리어 눈물이 더욱 차오른다. 눈에 힘을 주면서까지 참았던 것이 무색하게 아래로 뚝 뚝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안, 해.
(어깨를 부르르 떨며) 미아, 흐... 미안해...
릭사엘:(저보다도 더 서럽게 우는 네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아파와서, 상체를 조금 숙여 네 몸을 부드럽게 끌어안고 등을 쓸어준다) ...미안하기는. 내가 더 미안하지. (제 생각보다 더 여린 네게 부담을 줬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집에 가면 담요 두르고 따뜻한 코코아 마시자. 내가 맛있게 해줄게. (토닥토닥)
유스텐:미안해... 내가 바보 멍청이라서 정말 미안해...
(네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연신 사과를 해대다 온통 엉망이 된 얼굴을 살짝 들어올리며) 내가 미워...?
릭사엘:(눈물 범벅이 된 채로 미안하다는 말만 연신 뱉다가 겨우 내뱉은 말이 밉냐는 말이라니. 이렇게 애틋해서 널 어쩌면 좋을까. 작게 한숨을 내쉬며) 하나도 안 미워. 소중해.
유스텐:(불안한 사람처럼 고개를 묻은 채) 미안해... 미워하지 말아줘...
릭사엘:(네게 확신을 주려는 듯 품에 꼭 안아주며) 안 미워. 내가 널 미워할 일은 없어. 정말이야. 정말 좋아해.
유스텐:(네 품에서 끅끅거리며 울다가 어느 정도 어깨의 들썩임이 잦아든다. 더이상 눈물은 안 나오고 뒤늦게 수치심이 밀려온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와............사람들 다 있는 곳에서 질질 짜버렸다...'
릭사엘:(네가 조금 진정한 듯 보이자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네가 무안하지 않도록 네 목에 둘러준 머플러를 얼굴 반쯤까지 끌어올린 뒤 너를 일으킨다) 괜찮아. 아무도 네 얼굴 못 보게 내가 뒤에서 갈게. 가자.
유스텐:'이미 사람들 다 쳐다봤을 것 같은데.' 으응...
릭사엘의 품에 반쯤 안겨 레스토랑을 주춤주춤 빠져나오면
눈물이 쏙 들어갈 정도로 찬 바람이 당신의 얼굴을 쌩하니 스쳐지나갑니다.
릭사엘은 그런 당신을 보다가 머플러를 조금 더 끌어올려 귀를 덮어주고
당신이 뭐라고 웅얼거리든 말든 독단으로 손을 잡고 걸어나갑니다.
불 켜진 가로등 너머로 당신들의 그림자가 길게 이어집니다.
조금 걷다 보면 릭사엘의 것으로 보이는 아우디 차량이 보입니다.
당신들이 다가가자 차량은 작게 잠금 풀리는 소리가 나고
릭사엘은 당신의 앞에 조수석 문을 열고는
당신을 조심스럽게 좌석에 태워 앉힙니다.
릭사엘:(운전석에 탑승하며 네 몸 상태를 재차 확인한다) 괜찮아?
유스텐:(멋쩍게 코를 먹으며) ...괜찮아.
릭사엘:(슬쩍 네 목에 둘러준 머플러를 끌어내리며 네 눈가가 짓물렀는지 아닌지 확인하며) ...왜 이렇게 많이 울었어. 사람 걱정되게.
유스텐:(바싹 마른 입술에 혀를 빼꼼 내밀어 침을 바르고는) ... 걱정하게 해서 미안.
릭사엘:(상체를 기울여 네게 안전벨트를 매어주며) 아니야. 내 잘못도 있는데. 다음부터 그런 얘기 안 할게.
...그리고 나 너 안 미워. 알지?
유스텐:...왜?
릭사엘:왜냐니. 안 미우니까지. (네 정수리를 톡톡 쓰다듬어준다)
유스텐:(네 눈을 마주칠 자신이 없어 내리깐다) 그치만... 내가 대답도 안 하고 질질 끌어서 널 힘들게 하는 건 사실이잖아.
릭사엘:네가 대놓고 난 연애 대상으로 전혀 안 보인다고 해도 안 미워할 텐데, 괜한 걱정은. (별다른 반응 없이 제 안전벨트를 매고 차에 시동을 건다)
유스텐:... 난 너한테 어울리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생각하기에도, 남이 보기에도.
릭사엘:그걸 규정하는 건 '우리'지, 남들이 판단할 바 아니라고 생각해. (운전대에 손을 올리며 부드럽게 액셀을 밟는다)
유스텐:그럼 넌... 어떻게 판단하는데?
릭사엘:나? 난 네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해.
유스텐:왜? 내가 널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은 딱히 없는 것 같은데...
릭사엘:채워지고 싶은 마음도 없다곤 못하겠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널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유스텐:... ...
릭사엘:나한테 이런 감정 들게 만드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이것만은 네가 알면 좋겠어.
유스텐:(옅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려 계속해서 변하는 창밖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본다) ... 솔직히 너 되게 이상한 ㄴ, ...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했어.
릭사엘:과거형이네.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는데?
유스텐:여전히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고... 왜 주변에서 다들 네 얘기만 하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
릭사엘:(살짝 아리송해하며)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
유스텐:... 알고 있지? 내가 너 엄청 마음에 안 들어하고 경계했던 거.
릭사엘:(잠시 뜸을 들이며) ...어느 정도는.
유스텐:네가 나한테 동정심이나 연민을 느낀다고 생각했어. 부족해본 적 없는 사람들 특유의.
그리고 네가 날 좋아한다고 했을 때, 나 무시하는 애들이랑 네가 내기라도 한 줄 알았다?
솔직히 말이 안 되잖아? 누가 믿겠어. 교내에서 제일 주목받는 학생회장이 늘 혼자 다니는 나 같은 찐따를 좋아한다는 걸.
네가 자꾸 은근슬쩍 거리를 좁히면서 날 당황하게 했을 때는 순간 그런 생각도 들었어. 혹시 네가 ... 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날 쉽게 생각하는 건가 하고...
(피식) 근데 네 눈 보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아닌 건 바로 알겠더라.
(장난스럽게 웃으며 널 향해) 너, 네가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는 알아?
릭사엘:(심장이 쿵쾅거리는 기분이 들어서 자꾸만 네 쪽으로 향하려는 시선을 더욱 붙잡아 정면을 주시하며) ... 나야, 잘 모르지.
유스텐:네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면서 그건 모르는 게 웃기네.
릭사엘:... 그야 널 볼 때랑 거울 볼 때랑 다르니까. 궁금하니까 빨리 말해줘.
유스텐:(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이다가) ... 가망이 없지는 않다는 소리야.
릭사엘:... (생각지도 못한 소리에 입술이 절로 벌어지고 운전대를 쥔 손이 잠시 미끄러졌다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너, 너, 너는 그런 말을 무슨 나 운전할 때 해... (심장 쿵쾅거리는 소리가 귓가까지 둥둥 울려서 정신이 혼미해진다)
유스텐:아. (뒷통수를 긁적이며) 하면 안 되는 거였나?
릭사엘:... ...
(입술을 쉼없이 움찔거리며 숨조차 옅게 헐떡이다가 겨우 진정하며) ... 그... ...
음... (무언가 말을 하고 싶지만 자꾸만 입술이 안쪽으로 말려들어간다) ... 네가 그런 말 하면 심장이 쿵쾅거린단 말이야.
유스텐:네가 많이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난 최대한 빨리 대답해주는 게 좋겠다 싶어서 그랬지...
릭사엘:(차 핸들을 쥔 손가락이 손바닥 안으로 자꾸만 말려들어가려는 걸 간신히 버티며, 새빨갛게 익어버린 얼굴로) ... 그런 의미가 아니라... 너무 기뻐서... 정신 못차리겠다고...
유스텐:어? 정신을 못 차리겠다고? (그러다 사고나는 거 아니야? 반사적으로 네 쪽을 보며) 그, 그러면 안 되지 않나? 그럼 취, 취소해?
취소하고 이따가 말해?
릭사엘:무, 무슨 소리야...! 그걸 왜 취소해... (빨리... 빨리 집에 가야겠어. 미치겠다 진짜...)
유스텐:네가 정신을 못 차리겠다며... 사고라도 나면 어떡해.
그럼 정말 미안해서 죽고 싶을 것 같단 말이야.
릭사엘:내가... 하아... 내가 빨리 갈게. 거의 다 왔어. (눈을 한차례 질끈 감았다 뜨며 골목으로 들어간다)
유스텐:(안절부절) 빠, 빨리 가다가 사고나면 어떡해? 천천히 가는 게...
안절부절 애를 태우며 차 앞유리로 스쳐지나가는 골목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점차 차는 속력이 느려지더니 어느덧 익숙한 주택 앞에서 멈춰섭니다.
운전대를 쥔 손에서 힘을 푸는 릭사엘의 표정이 여전히 발갛게 달아올라 있습니다.
곧 차에서 시동이 꺼집니다.
릭사엘은 차량 시동이 꺼진 후에도 한참을 가만히 앉은 채 정면을 바라보다가
입술을 물었다 떼며 당신을 천천히 돌아봅니다.
아, 또 그 표정입니다.
벅차오른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표정.
릭사엘:(무슨 말부터 꺼내야 좋을지 알지 못하고 입술을 그저 달싹이다가) ...가망 없진 않다고 한 말, 진심이야?
유스텐:'운전 되게 잘하네...' (슬쩍) 그, 그렇지?
"좋다"라고는 말 못했어도 "싫다"라는 말도 안 했잖아. 난 진짜로 싫은 건 아니라서 그랬던 건데...
(민망할 정도로 쏟아지는 시선에 등을 살짝 만 채로 두 손을 모아서 꼼지락거린다) 네 마음이 얼마나 되는지 네가 아니니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얼마나 진심인지 아니까 대충 떠밀리듯 대답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횡설수설) 나, 난...! 이런 건 마음의 크기도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내가 널 많이 힘들게 한 것 같아서 미안해... 나는 네가, '뭐라고 표현을 해야 좋을지...'
무지 비싼 포장지까지 둘러서 주는 마음을... 포장도 안 하고 대충 던져서 돌려주기는 싫어...
릭사엘:(끊임없이 쏟아지는 네 말을 한 단어 한 단어 곱씹다, 심장이 뛰는 소리에 낯을 다시금 새빨갛게 물들이며)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다"로 넘어갈 수 있는지... 네가 직접 알려줘.
(어깨를 둥글게 만 네 상체를 향해 상체를 마주 숙이며 네 뺨에 제 뺨을 맞대고는 작게 속삭이듯) ...그렇게 해주면 안 돼?
유스텐:(흠칫) 가, 가까워, 릭사엘...
릭사엘:(네 귓가에 입술을 붙이고 떨리는 숨결을 가느다랗게 내보내며) ...릭스라고 불러주기로 했잖아. 유스.
유스텐:(뺨이 발갛게 달아오른 줄도 모르고 작게 입술을 움찔거린다) 릭사ㅇ, ... 릭, 릭스...
릭사엘:(네가 제 애칭을 불러주는 목소리에, 아득한 시야가 비로소 걷힌 것처럼 눈꺼풀이 잘게 떨린다. 네 몸을 가득 끌어안고 싶은 충동이 걷잡을 수 없이 차올라 숨이 조금 탁해진다. 네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지 못했는데도 입술이 먼저 열리고 속삭임을 뱉어낸다) ... 네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어. 유스.
입 맞추고 싶어.
...날 밀어낼 거야?
유스텐:어? (갑작스런 물음에 동공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내가 혹시 "네가 좋아." 라고 대답했나?'
릭사엘:(네 뺨에 대고 있던 얼굴을 떨어뜨리며 네 턱을 부드럽게 짚고,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3까지 셀게. 밀어낼 거면 그전에 밀어내.
3.
2.
유스텐:'사, 삼 초를 준다고? 이렇게 갑자기???' (심장이 고장난 것처럼 쨍하게 아려온다. 3초라는 시간은 치사할 정도로 짧은 거 아닌가. 하지만 지금 순간만큼은 굉장히 긴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네 눈을 똑바로 마주본다. ... 그동안 제대로 마주치기도 힘들었는데 어째서 지금은 계속 들여다보게 되는 걸까. 내가 이걸 싫어할까? 지금 내 표정은... 어떻지?)
릭사엘:1.
...제로.
타임오버를 알리는 목소리가 울리는 짧은 순간이
이상할 정도로 길게 울립니다.
심장이 너무도 가까이 있어서
릭사엘이 움직이고 있는지도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당신의 턱을 그러쥔 손이 부드럽게 그 끝을 당기고
가지런한 이마가 먼저 닿습니다.
그 다음은 코끝,
그 다음은 숨결.
심장이 멎을 듯한 순간 속에서
아주 오랜 애틋함을 담은 듯한
입술이 살며시 스칩니다.
아주 가볍고,
애정을 건네듯 부드럽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럼에도 조금 더 오래.
서툴고, 조심스럽고,
간지럽기 짝이 없는 감촉이 닿습니다.
섞이는 숨결이 달디 달다는 착각이 들만큼
파고들지 않는 입맞춤입니다.
다가온 손이 당신의 옆구리를 부드럽게 끌어당기고
감긴 그의 눈꺼풀은 설렘을 담아낸듯 잘게 떨립니다.
차오르는 두근거림 속에서 눈이 뒤늦게 질끈 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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